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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0/15 22:49:51
Name   구밀복검
Subject   킹콩 : 원숭이만이 이해할 수 있는 위대함(스포일러)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oRXPx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 본문 중에는 <킹콩>을 비롯하여 여러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므로 읽는 데에 주의를 요합니다. 특히 0번 항목은 결말까지의 플롯을 써놓은 것이니 스포일러를 피하시려는 분들은 필히 피해가시기 바랍니다.




* 위는 2005년 리메이크작 킹콩의 장면이며, 아래는 1933년 원작의 장면입니다. 둘 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정서는 사뭇 다르죠.



0.
업계에서 백안시 받는 실패한 영화감독인 칼 덴험(잭 블랙)은 이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작품을 찍기 위해서 무명의 배우 앤 대로우(나오미 왓츠)와 시나리오 작가 잭 드리스콜(에이드리언 브로디)과 자신의 스테프들을 이끌고 해골섬으로 떠난다. 해골섬은 공룡이 살고 있는 원시적인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섬이었고, 혼란 속에서 원주민들에게 앤이 사로잡히며, 원주민들은 앤을 거대 고릴라인 킹콩에게 제물로 바친다. 그러나 킹콩은 앤을 죽이지 않았으며, 이런저런 사건들을 거치면서 킹콩와 앤은 서로에게 애정을 가지게 되어 동반하게 된다. 이때 앤을 구하기 위해 정글을 헤매던 칼의 일행들은 악전고투 끝에 킹콩을 포획하여 뉴욕으로 데려온다. 칼은 극장에서 사로잡은 킹콩을 대중들에게 공개하지만, 킹콩은 풀려나게 되고 도시는 혼란에 빠진다. 킹콩은 다시 앤을 만나게 된다. 킹콩은 인간들의 공격을 피해 앤을 데리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가지만, 인간들의 공격에 의해 끝내 죽음을 맞게 된다.



1.
이 영화의 배경은 뉴욕시와 해골섬이며, 각기 서로에게 대응 되는 공간입니다. 이것은 피터 잭슨이 오프닝에 상당히 공을 들인 것으로 확인이 됩니다. 2005년 <킹콩>을 보면,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뉴욕 시의 모습이 심상찮게 묘사되지요. 이는 원작인 1933년작 <킹콩>에는 전혀 없던 부분들입니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 마냥, 뉴욕에는 빈민들이 넘쳐나고, 파업하는 노동자들이 비춰집니다. 금주법은 사람들을 옭죄고 있으며, 집을 잃고 쫓겨난 철거민들이 거리에 나앉아 있고 쓰레기통에서 사과를 주워 먹어야 할 형편이죠. 반면 부르주아들은 그저 이윤에만 몰두할 따름이고요. 젖가슴과 여자 누드가 나오지 않는 영화는 돈이 안 된다는 투정이나 하고 있지요. 이 사이에서 배경 음악으로 I'm Sitting on Top of the World이 울려 퍼지는데, 이는 당시의 뉴욕의 분위기를 형성하면서 동시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위에 올라갈 킹콩을 암시하는 복선으로 작용하죠.

이런 뉴욕의 한복판에 위치해 있는 앤의 극단은 빈곤에 허덕이고 있죠. 처절하게 공연을 펼치지만, 돌아오는 것은 극장의 폐쇄와 봉급 연체입니다. 앤은 일자리를 구하려 노력하지만 매매춘을 알선받을 뿐입니다.

전반적으로 뉴욕시는 상당히 차갑고 냉혹한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도시인들은 허위적이고 얄팍하며 너절한 삶을 살아가고 있죠. 세상은 요지경입니다. 잘난 사람은 잘난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대로 살며 여기저기에서 짜가가 판치죠. 영화도 짜가고 돈도 짜가고 인생도 짜가고 뉴욕도 짜가인 셈입니다.



2.
2005년작 <킹콩>의 러닝타임은 3시간 20분입니다. 극장판을 기준으로  해도 3시간 6분이죠. 원작이 1시간 44분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깁니다. 그렇다고 원작과 피터 잭슨의 작품이 플롯 구성 상으로 큰 차이가 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죠. 이렇게 러닝 타임이 길어진 이유는 도입부에서 시간을 크게 잡아먹었기 때문입니다. 원작에서 킹콩이 등장하는 시점이 약 45분 즈음인데, 피터 잭슨의 <킹콩>에서는 약 70분 즈음이 되어서야 킹콩이 등장하죠.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캐릭터 형상화와 드라마, 그리고 복선의 설치를 위해서입니다.

먼저 캐릭터를 보죠. 원작에서 그저 상업적인 욕망에 의해서만 움직였던 전형적인 탐욕가인 칼 덴험은, 피터 잭슨에 의해 보다 입체적인 캐릭터로 바뀌었습니다. 흥행이나 투자자들의 이해와는 별개로 스스로 찍고 싶은 것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면서도, 그게 도가 지나쳐 광기를 보이기도 하죠. 원작의 칼 덴험이 천박한 자본가라면 2005년 킹콩의 칼 덴험은 로망에 경도되고 그만치로 현실인식은 떨어지는 노답 씹덕후입니다. 동료가 죽은 직후에 ‘모든 수익을 ~에게 바칠 거야’라고 선언한다든가, 동료가 죽어나가는데도 미친 듯이 영사기 돌리고 있는 장면을 보면 웃음이 터질 정도죠. 피터 잭슨의 원시 자연 묘사가 꽤나 끔찍하고 살벌함에도 불구하고 그 와중에 칼 덴험이 영사기 돌리는 것만 보면 배꼽을 잡게 됩니다.



앤 역시 마찬가지죠. 원작에서의 앤은 자의식이 거의 없는 인물입니다. 그저 덴험에게 캐스팅 될 뿐이고, 킹콩에게 붙잡혀갈 뿐이고, 겨우겨우 구출될 뿐이죠. 바비 인형에 불과합니다. 그에 반해 2005년 버전에서 앤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라는 피상적인 클리셰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않은, 활력 넘치는 인물이죠. 그것이 극대화 되는 장면이 바로 킹콩을 상대로 한 무용 신입니다. 그녀는 어떻게든 살기 위해 연기를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와중에도 <해학>이 있으며, 그러면서도 개그를 강요하는 킹콩에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한 사람이지요. 이런 복합성을 띠면서 2005년의 앤은 1933년의 앤과 달리 장식품이 아니라 당당한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외에 칼 덴험의 조수에 불과했던, 전형적인 남성미 넘치는 히어로형 캐릭터엿던 잭 드리스콜이 다소 냉소적이고 고고한 인텔리 작가가 되었고, 잭과 앤의 관계에 보다 밀도를 높인 정도죠. 이외에 엥글혼 캡틴과 신참 항해사인 지미(빌리 엘리어트 역할을 했던 제이미 벨이죠)와 벤 헤이즈 같은 선원들에 대한 묘사도 괜찮게 되어 있죠. 특별히 이들에게 엄청나게 큰 비중을 두지는 않지만 적절히 조화를 이루게 하면서 영화를 보다 풍성하게 해주었죠.

이런 캐릭터를 형상화는 단순히 서사에 드라마를 첨가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동시에 복선의 기능도 수행합니다. 먼저 덴험과 앤의 첫 대면부터가 심상치 않죠. 이들의 대화는 영화의 주제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극의 전개에 개연성을 부여하죠.

덴험 : 앤, 잘 생긴 탐험가가 먼 극동으로 향하는 걸 상상해 봐요.”
앤 : 극동에서 촬영을 하시나요?
덴험 : 싱가포르에서요. 배에 승선하고 나서 신비로운 여자를 만나죠. 연약하고 아름다우며 좀처럼 잊을 수 없는 여자와요. 여자는 자신이 주체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자신을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이끌었다는 느낌을 떨쳐내지 못하죠. 이전까지 그녀의 삶은 이 순간을 위한 전주곡 같은 겁니다. 모든 걸 바꾸어 놓은 이 운명적인 만남을 위해서요. 게다가 그녀의 판단과는 반대로...
앤 :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군요?
덴험 : 그래요
앤 : 하지만 여자는 그 사랑을 믿지 않죠. 심지어 자신이 사랑을 믿는다는 사실조차 믿지 않죠
덴험 : 음...정말요?
앤 : 여자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운명은 예정되어 있거든요
덴험 : 왜 그렇죠?
앤 : 좋은 일은 오래 가지 않거든요, 덴햄 씨

복선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해골섬에 접어드는 장면에서 지미와 헤이즈가 조셉 콘래드의 소설 <암흑의 핵심>을 두고 나누는 대화가 대표적이죠. 이것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야만'이라는 주제를 다룬 <암흑의 핵심>의 문장이자, 이후의 전개를 암시합니다.

지미: 왜 말로우(암흑의 핵심의 주인공)는 그 강을 계속 오르는 거죠? 왜 되돌아가지 않죠?
헤이즈: 그에게는 그러고 싶은 부분이 있는 거란다, 지미. 그의 내면 일부에서는 위험하다고 경고를 하지. 하지만 알아야만 할 다른 부분도 있어. 그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우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기억할 수도 없을 거야. 우리는 한밤중에 여행하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최초의 시대의 밤에, 이미 지나가버린 그 시대의 밤에, 그리고 거의 아무런 흔적도 기억도 남기지 않은 채로. [우리는 포획된 괴물이 족쇄에 묶인 것을 보는 것에 익숙하지. 하지만 거기에서는… 거기에서는 넌 엄청나게 크고 자유로운 괴물을 볼 수도 있을 거다.]"



3.
뉴욕시가 도회적이고 냉정하며 흉흉한 도시 그 자체라면, 해골섬은 굉장히 공포스럽고 야만적이며 처절한 야생의 공간으로 그려지지요. 이 공간의 묘사를 위해 여러 괴수가 등장하며, 그로 인해 <킹콩>에는 공포 영화적인 특성이 부여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킹콩>에서 아동물을 기대했지만, 생각 외로 <킹콩>은 고어했죠. 각양각색의 동식물들이 칼 덴험의 일행을 공격하고 살해하는 장면들은 아동들에게 보여주기에는 참혹하고 잔인한 것입니다. 아마 <킹콩>이 한국에서 생각보다 좋게 평가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겠지요. 도입부는 한 시간이나 되어서 애들은 다 자고 있거나 나가자고 하고, 시간 참고 보고 있는데 잔인한 장면 나와서 경기 일으키게 만들고...그러나 이는 뒤집어 생각하면 그만큼 해골섬의 동식물들에 대한 묘사가 리얼했다는 이야기지요. 그렇기에 호러스러웠던 것이고요.

이것은 1933년에는 결코 누릴 수 없는 수혜로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긍정적인 결과입니다. 과거의 판타지나 SF처럼 상상의 대상을 묘사하는 작품들은, 영화화 할 경우 아무리 섬세하게 처리한다고 한들 특수효과 기술의 한계로 인해 관객이 이물감과 위화감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었고, 어느 정도는 우스꽝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작품들이 기술의 발전을 기다리며 프로젝트를 이후로 미루어야했죠(예컨대 <스타워즈> 1~3편과 같은 것이 좋은 예이며, <반지의 제왕>이 21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영화화 된 이유가 있지요).

이것이 판타지나 SF 같은 가상의 대상을 다루는 데에 있어 애니메이션이 영화에 비해 우위에 섰던 부분이고, 한때나마 애니메이션이 영화를 위협하는 원동력이 되었죠. 그림은 실사와는 달리 단순화가 가능하고, 단순화될수록 추상화되며, 그러면서 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추상 관념’에 호소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졸라맨을 사람으로 느끼는 데에는 아무런 장애요소가 없으며, 스마일 표시를 얼굴로 느끼는 것은 매우 직관적입니다. 누구나 똑같은 방식으로 인지하지요. 반면 <티라노의 발톱>이나 <영구와 공룡 쭈쭈>의 공룡을 실제 공룡으로 느끼기는 어렵지요.

이처럼, 실사 영화가 애니메이션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리함이 분명 존재했던 시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킹콩>이 제작된 시기에는 이미 그 장벽이 해체되었으며 킹콩 스스로도 능동적으로 해체했지요.

* 이하의 장면들은 혐오스러울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 피라냐돈 티타누스의 습격 장면


* 브론토사우루스 무리의 폭주


* 카르닉티스 소르디쿠스의 습격 장면



4.
그리고 이 사이에 킹콩이 있습니다. 원작에서의 킹콩은 그저 괴수고 잔인하게 인간을 살해하며 도시를 혼란시키고 공포를 불러일으키며 퇴치해야할 대상에 불과합니다. 옛날 전래 동화나 민담 같은 곳에 나오는 거대 지네 같은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존재죠. 앤과의 교감 따위도 찾아볼 수 없고요. 물론 원작에서도 문명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찢어발기는 자연이라는 코드는 읽을 수 있습니다만, 딱 그 뿐이죠.

그에 반해 피터 잭슨의 킹콩에서의 킹콩은 감정이입할 수 있는 대상입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킹콩과 앤의 유대죠. 킹콩과 앤의 유대감의 형성에는 대사나 대화나 내레이션이 거의 동원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카메라에 잡힌 화면 그 자체로 끝이죠.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킹콩과 T.rex(정식 명칭은 바스타토사우루스 렉스로, 실제의 T.rex의 4배 크기입니다.) 세 마리의 혈투 시퀀스. 이 시퀀스는 아주 섬세하게 짜여 있어 틈이 들어갈 곳이 없으며 굳이 대사가 필요치 않습니다. 이 점에서 <킹콩>은 매우 무성영화적이며, 그 점에서 유성영화였던 원작을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앤이 육식 공룡인 포에토돈과 마주칩니다. 앤은 이를 피해 통나무 안에 들어갑니다만, 이곳에는 벌레가 가득하지요. 포에토돈과 마주시키며 관객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가, 통나무로 들어가게 해서 살았다 싶은 안락감을 주는 듯 한데, 갑자기 혐오스럽디 혐오스러운 존재가 튀어나오면서 다시 긴장감을 고조시키죠. 이런 식으로 완급이 반복적으로 교차합니다. 이 벌레를 피해서 통나무 나오면서 다시 관객을 안심시키지만, 나와서 보니 자신을 쫒던 포에토돈은 갑자기 등장한 티라노가 잡아먹고 있지요. 관객의 예상을 거듭해서 전복시킵니다. 이후 박진감 넘치는 정글 추격신이 이어지고, 위기의 순간 가까스로 누운 나무에 엎드려서 티라노 피했다 싶을 찰나, 바위 혹은 나무처럼 보였던 게 알고보니 티라노지요. 티라노가 그르렁거리고, 앤은 이를 돌아보며, 티라노가 턱을 벌리며 공격하고, 앤이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한 끼 식사 되기 직전인 찰나에 위기감은 극대화 됩니다. 이 상황에서 킹콩 등장하는 것은 예정된 필연이며 당연한 것이지만 그 전까지의 구성이 잘 짜여 있기 때문에 탄력을 받지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보통은 킹콩이 등장하여 티라노를 쥐 잡듯 패면서 정리 되겠지 싶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가지 않지요. 앤을 잡고 있는 킹콩의 오른팔 쪽에서 또 다른 티라노가 등장해서 앤을 물어뜯으려 하고, 뜯기기 직전에 킹콩이 손을 빼면서 피하지요. 그러면서 관객은 ‘아 킹콩이 앤을 오른손에 들고서 2:1 하는 상황이구나’라고 특별히 의식하지도 않고 직관적으로 알게 되죠. 헷갈리거나 혼란을 빚을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게 티라노 두 마리 vs 킹콩의 대결이라는 것을 관객에게 명확하게 알려주고 어떻게 될지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이때 킹콩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면서 앤을 보호하기 위해 오른손을 치켜드는데, 갑자기 뒤에서 티라노 한 마리가 또 등장하지요. 여기서도 완급 조절이 돋보입니다. 관객을 안심시킨다 싶다가 통수를 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도 티라노가 세 마리로 늘었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게 하고요.

그리고 이후의 전투 구도도 굉장히 깔끔합니다. 보통 이런 식으로 1:1이 아니라 여러 개체가 동시에 나오는 상황이면 움직임이 지저분해지고 정신없게 카메라가 오가니 관객이 도대체 어떻게 치고받는 것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헤맬 수가 있습니다. 인간 간의 전투면 캐릭터의 외모 개성이 있다보니 그런 것이 덜한데, 동물 간의 싸움은 개성이 두드러지지 않기에 혼란이 가중될 수 있지요.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게 없습니다. 샷 하나하나 카메라 회전 하나하나 너무 깔끔해서 관객이 현재 티라노들과 킹콩과 앤이 각각 어떤 동작을 취하는지 다 시야 안으로 들여놓으며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액션 몰입도가 올라가는 거고요. 마치 드래곤볼을 연상시키는 정갈한 액션이지요. 난전 벌이는 와중에 앤을 킹콩이 손으로 움켜쥐었다가 위기의 순간 다시 발로 잡았다 하는 것과 같은 일련의 작은 동작들도 관객 심장 쫄깃하게 하기에 아주 적절하지요.

여기에서 지적할 부분은, 킹콩에 나오는 자연은 불편부당하다는 것입니다. 객관적이며 몰가치적이죠. 만약 이 장면에서 주동인물들을 위협하는 것이 티라노가 아니라 깡패 셋이었으면 굉장히 유치해졌을 겁니다. 하지만 티라노는 깡패들처럼 커플을 희롱하러 오는 게 아니라 단순한 맹수고 포식자이기 때문에, 그저 자연의 약육강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유치하다는 느낌 없이 박진감 넘치는 혈투가 되는 것이지요. 진지함을 위장하며 폼잡고 허세력을 과시하는 히어로들 간의 알맹이 없는 작위적인 배틀과 비교하자면, 그런 설정 놀음이나 캐릭터 메이킹이나 진지병 없이도 극단적인 몰입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이후, 킹콩과 티라노들은 싸우다가 덩굴로 떨어지고, 덩굴에서도 티라노 턱과 앤이 계속 교차되면서 관객이 안심을 못하게 합니다. 앤이 얽힌 덩굴이 진자 운동을 하니까 티라노에게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데 그 스릴감이 참 볼만하죠. 그러다가 티라노 이빨 매달리기도 하고 머리 위에 올라타게 되기도 하고요.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덩굴 신이면 사실 소재의 특성상 얽힌 상태로 운신이 자유롭지 않은 대상을 묘사하는 것이다보니 답답하고 좀 루즈할 법도 한데, 여기서는 바로 그 자유롭지 못한 운신을 도구로 사용하여 스릴을 만들어내죠.

마지막 남은 티라노 한 마리 지상으로 내려와서 턱주가리 부러뜨려 죽이는 피니쉬까지 완벽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컷이 바뀌어 이를 바라보는 앤의 놀란 표정을 교차시켜주는데 이건 관객들 표정이죠. 영화 상으로 이 장면에서 앤이 킹콩에게 경도되고 공감어린 애정을 느끼게 되는데 그게 충분히 납득이 됩니다. 그리고 관객 역시 킹콩에게 애정을 느끼는 결정적인 장면일 테고요

게다가 그간 괴수 영화의 본좌는 <쥬라기 공원>이었고, <쥬라기 공원>의 아이콘은 T.rex였으며, T.rex에 대한 경애감이 괴수 영화 매니아들의 근간에 깔렸음을 생각하면 킹콩의 저 액션  시퀀스의 의미는 가볍지 않습니다. 아마도 ‘나야말로 최강의 괴수다, <킹콩>이야말로 최고의 괴수영화다, <쥬라기 공원>과 비교하지 마라’라는 것이겠지요. <쥬라기 공원>에서 T.rex가 괴수영화의 상징 중 하나가 된 것도 밸로시랩터에게 주인공 일행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극적으로 등장해 일 대 다 상황에서 승리를 거둔 것임을 생각하면 의도된 패러디겠죠.


* 저랬던 T.rex가 <킹콩>에선 턱이 돌아갑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배기 [콩간지]이죠. 이렇게 킹콩의 캐릭터 메이킹이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해골섬을 중심으로 한 서사들은 공포스럽기만 하지 않고 괴수 영화와 액션 영화와 로맨스 영화로 적절히 수렴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블록버스터들을 두고 가해지는 비판에 대해 가장 흔한 반론으로는 ‘너무 진지 빠는 거 아니냐, 오락 영화면 화려하면 그만 아니냐’라는 것이겠습니다만, 그것은 진짜 화려하게 만들었을 때 할 수 있는 항변이지요. 괴수로서의 물성이 물씬 풍겨지는 것이 브록 레스너를 연상케합니다만, 아무리 봐도 전성기 브록 레스너의 경기력보다 훨 좋은 듯 싶네요.

또한, 아무런 서사적 가치가 없는 이런저런 블록버스터들의 액션은 잠깐 눈만 홀리고 끝이지만, 그와 달리 <킹콩>의 경우는 액션에 목적이 있고 이유가 있고 서사적인 맥락이 있기에 감정적 무게감을 띠게 됩니다. 분열되어 있는 킹콩과 앤이 제시되고, 이 와중에 벌어지는 혈투는 그야말로 발레에 비견하는 시각성으로 내러티브를 전달하며, 그 결과로 킹콩과 앤은 자연스럽게 교감하게 됩니다, 액션의 원인, 진행, 결과가 모두 명료하지요. 그러하기에 킹콩의 몸짓 하나하나는 유인원의 무의미한 몸놀림 이상의 것이 되고, 나아가 인간 이상의 것이 되지요. 이 사이에는 말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킹콩>의 액션이 가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5.
그리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옵니다. 해골섬과 뉴욕은 철저히 대조되고, 그리하여 동일한 것이 되지요. 그럼으로써 <킹콩>의 뉴욕은 영화 역사상 가장 상징적이면서 리얼한 The New York City, 뉴욕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앤이 킹콩의 제물로 바쳐지는 장면과 킹콩이 도시인들의 관람거리가 되는 장면의 대조를 통해 쉬 알 수 있습니다. 동일한 카메라 구도를 통해서 킹콩과 앤은 동일시 되고 마찬가지로 문명인들과 관객들은 동일시됩니다. 해골섬은 뉴욕인 것이며 해골섬의 끔찍하고 잔인한 괴수들과 식인종들은 도시의 인간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쯤 되면 이 장면은 이 영화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네들까지 풍자하고 있는 셈이죠. 블록버스터 영화 <킹콩>을 보러 온 우리나, 고릴라 킹콩을 보러 온 관객들이나 실상 다를 것이 없습니다.



* 나오미 왓츠 : 야만인들 = 킹콩 : 문명인들 = 영화 : 관객.
우리도 결국 극장에서 환호하며 우가우가하고 있다능! 미녀와 야수 역시도 양극단에 있고, 그로써 연결되어 한 쌍을 이루죠. 물론 나오미 왓츠는 킹콩보다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인간들의 제물로 바쳐진 킹콩이 뉴욕을 정복하고, 킹콩의 제물로 바쳐진 앤이 킹콩을 정복하며, 피터 잭슨은 우리를 정복하고, 문명과 자연, 인위와 본연이 뒤집어지며, 그와 맞물려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전복되는 변증법이 제시됩니다. 단 한 컷으로 말이죠.

문명과 자연을 대비시킬 때에는 거의 필연적으로 [현명한 야만인] 코드가 들어갑니다. 그러나 <킹콩>에서의 해골섬의 주민들은 이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정치적 올바름은 아예 무시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야만인들을 야만인스럽게 묘사해놓았으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요. 그러나 야만인들과 문명인들이 사실상 동치라는 점을 영화적으로 역설하는 순간 이러한 불건전성은 해결이 되며, 일반적인 야만인들을 대신하여 킹콩이 [현명한 야만인] 역할을 합니다.

짜가 식인종들이 킹콩의 주변을 맴돌며 짜가 앤 대로우를 모조 제물로 바치며 모조 제의를 펼치고 짜가 문명인들이 이를 즐기고 있을 때, 분노한 킹콩은 사슬을 끊어내고 아름다움beauty를 움켜쥐지만, 그녀beauty는 위조된 것입니다. 거짓된 존재들은 모두 도망치고,  이들에게 킹콩이 단호히 응징의 철퇴를 내리죠. 그는 극장 밖으로 나와 beauty를 갈구합니다만, 도시 어디를 살펴보아도 거짓 beauty만이 가득하죠.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킹콩의 눈앞에 드디어 진짜배기 beauty, 앤이 나타납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오로지 빙판에서 미끄러지며 느끼는 유희와 감흥일 뿐이죠. 하지만 인간들은 이를 좌시하지 않습니다. 이 직후에 등장하는 군용 차량에 탑승한 지휘관의 훈시는, 자연과 인간, 원초와 인위, 진실과 허위의 충돌이라는 맥락을 피터 잭슨이 의식했다는 것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되지요.

“여긴 뉴욕시고 신성한 곳이다. 알겠나? 여긴 인간을 위해 인간이 만든 곳이다. 냄새나고 이 있는 원숭이가 아니고!”

물론 바로 직후에 킹콩에 의해 이 트럭은 전복되면서 웃음거리로 전락하죠. 이것 역시 의도가 노골적인 컷이고요.

킹콩은 beauty를 손에 쥔 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올라갑니다. 세상은 허위와 야만과 잔혹함으로 가득합니다. 우리는 ‘인간적’이라는 어휘로부터 따뜻함, 온화함, 인정 따위를 생각하지만, 사실 인간 세상은 매우 차갑고 냉정하죠. 뉴욕시가 보여주는 것처럼요. 홉스의 말대로, 자연상태의 인생은 고독하고, 가난하며, 추악하고, 야만스럽고, 짧은 것이며, 문명인들이 군자연하고 지식인입네 해봐야 자연상태로부터 그리 멀지 않을 따름이지요. 그러나 미녀와 야수의 꾸밈없는 원초적인 애정은 도시의 첨단에 우뚝 섭니다. 그럼으로써 짐승이 인간들 위에 서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우리가 인간적이라고 지칭하는, 휴머니즘의 범주에 포함되곤 하는 일련의 가치들은 사실은 원시적이고 근원적이고 축생적인 속성일 수 있다는 것이 전면으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인간의 비인적이고 기계적인 이해타산과 축생의 인간적이고 정념적인 열정이 대립하지요. 이것은 킹콩이 탈출하기 직전 프리스톤과 잭의 대사를 통해 한층 강화됩니다.

프리스톤 : 아직도 세상에는 미스터리가 남아있고 우린 그 일부분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잭 드리스콜 : 칼에게서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운 것 같군. 사랑에 빠진 존재를 파괴하는 능력 말이야

미녀의 수호자라는 점에서 킹콩은 영웅이나 기사도의 구현자와 흡사하기도 합니다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킹콩이 앤을 지키는 이유는 기사도나 로맨스나 남성성의 과시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일단 킹콩의 성별조차 모호하지요. 킹콩이 암컷이 아니라는 단서는 어디에도 제시되어 있지 않지요. 킹콩은 그저 아름다움을 추구할 뿐입니다. 미의식이 킹콩을 추동하는 본질이죠. 그가 바라는 것은 그저 가장 원초적인 자연으로서 찬란히 타오르는 태양의 아름다운 일출을 만끽하는 것 뿐입니다. 미개한 문명인들은 아름다움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껍데기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만, 킹콩은 그들이 모르는 아름다움을 위해 죽어갑니다. 마치 “이 사람을 보라!”라는 듯 말입니다. 통속적이고 평균적이며 가축처럼 양떼처럼, 상식이라는 이름 하의 노예도덕에 지배받는 반편 인생을 보내면서도, 자신들이 양심적이고 도덕적이며 이만하면 괜찮은 삶을 누리고 있다고 자기기만 속에서 살아가는 허영스러운 도시인들을, 유일하게 귀족적이고 영웅적인 킹콩이 응징하며 미의식의 숭고함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러나 인간들은 끝까지 일관되이 부박합니다. 킹콩이 죽은 직후 인간들은 너나할 것 없이 앞다투어 킹콩의 시신에 몰려가고, 병사들 사진이나 찍고 있고, 쇼와 가십거리를 즐길 뿐입니다. 킹콩이 극장에서 주먹을 휘두르며 알려준 교훈은 전혀 배우지 못한 것이지요. 이 점에서 킹콩이야말로 20세기 뉴욕의 짜라투스트라라고 할 만 합니다. 킹콩의 죽음을 두고 칼 덴험이 “괴수를 죽인 것은 비행기가 아니라 아름다움이었어(Oh no, it wasn't the airplanes. It was beauty killed the beast).”라고 말한 것은 상징적이죠. 이는 이전에 칼 덴햄이 킹콩을 극장에서 공개하기 직전 제시된 복선과 호응합니다.

“아랍의 속담이 하나 생각나는군요. 짐승이 미녀의 얼굴을 내려다 볼 때, 미녀는 짐승의 손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날부터 짐승은 이미 죽을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이러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내지르는 킹콩의 절규는 절절한 것이죠. 누구보다 가장 고귀한 존재가 미개한 인간들에 의해 수모를 겪는 아이러니이지요. 니체가 말의 목을 감싸 안으며 울부짖었듯, 킹콩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감싸안고 비탄을 터뜨립니다. 이에 비하면, ‘으아니 챠! 내가 만든 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죽었을 줄이야 ㅜㅠ’ ‘아크 리액터 때문에 나 죽어감 ㅜㅠ 뭐 이 쯤에서 집어치우면 건강히 장수할 테고 세상의 정의가 그닥 중요한 건 아니지만 여튼 난 아이언맨이니까 시리즈 이어나가야 하잖아. 아 근데 왜 눈물이 나지 ㅜㅠ’라며 개엄살만 부리는 계엄사령관 토니 스타크와는 댈 것이 아닙니다.

말 못하는 짐승 건물 올라가 있는데 사정거리도 안 닿는 위치에서 비겁하게 비행기로 원거리 사격하는 것을 보면, 프로토스 유저가 발업 질럿을 센터로 보낼 때 저그 유저가 뮤탈을 띄운 상황과 같은 무력감을 선사해줍니다. 그런 절망 속에서도 우리의 킹콩이 꾸역꾸역 무너지는 몸을 가누며 전투기 꼬리 붙잡아 박살내는 위용은 좌중을 압도하지요. 마치 잡을 수 없는 속도로 광속 클린치 하는 메이웨더를 신나게 두들겨 패는 마이다나의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앞서 T.rex와의 혈투에서도 그러했듯, 이 장면 역시도 액션의 이유와 동기가 명확하기에 서사적인 의미를 띠게 됩니다. 킹콩이라는 고릴라의 액션과 문명의 허상성에 대한 원초계原招界의 역습이라는 주제가 적절하게 결합되어 있고, 액션의 원인과 과정과 결과가 일목요연하지요. 우리의 킹콩은 인간 이상의 존재로서 자연의 힘을 강력히 과시하지만, 결국은 인간에게 패배한다는 점에서, <원령 공주>의 사슴신과 궤를 같이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패배하지만, 위대한 항전 끝에 패배하기에 영웅적입니다. 인간 이상이자 히어로 이상인, 슈퍼 히어로 그 자체이지요.


* 비겁한 공군 이놈...ㅜㅠ


* 사슴신 니뮤...


* 이것이 우리가 파퀴아오에게 바란 것이죠.



6.
<킹콩>은 미녀와 야수가 중심축을 이룬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미녀와 야수>를 연상케 합니다만, 실상 양자 간에는 현격한 주제와 태도의 차이가 있어 좋은 비교가 됩니다. <미녀와 야수>의 경우, 야수는 인간의 세계로 편입됩니다. 귀족이었던 야수가 보통 사람들의 수준으로 내려오고, 노예도덕을 수용하며 시정잡배가 되고 세속의 가치에 굴종합니다. 그에 반해 킹콩은 그렇지 않죠. 거짓으로 가득한 세속과 문명이 아니라 진짜배기, 알맹이가 있는, 순수한 사랑 그 자체, 관계 그 자체를 지향하며 아주 원초적인, 순수한 욕망과 열정과 관계를 보여줍니다. <미녀와 야수>와는 달리, 킹콩에서의 자연 본연은 문명으로 길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마치 신조협려의 소용녀처럼 말이죠. 생각해보면 킹콩 역시 소용녀만큼 귀엽고 소용녀만큼 모에하고 소용녀만큼 탈속적이며 소용녀만큼 애정결핍이고 소용녀만큼 무지하게 쎄죠. 이 점에서 천재들은 정서적 불안을 내포하고 있는 불완전하고 기괴한 존재들이므로 '일반인'들처럼 통속적이고 세속적인 윤리와 감정과 경험을 배워야만 제대로 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식의 대중주의적 전제를 깔고 있으며 통속적 가치에 경배하는 <굿 윌 헌팅> 등의 천재 클리셰 영화들과는 대척점에 있으며, 비범함을 추구하는 백척간두에는 목가적인 일상을 바라는 소시민들이 낄 자리는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위플래시>와 비슷하죠.

군중들의 삶이란 모든 급과 격을 파괴하고 모든 것을 하향평준화시키는 것이며, 이것은 모든 것의 무화無化와 같습니다. 이러한 천박함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간 이상의 무언가가 되어야지요. <킹콩>은, 그리고 킹콩은 우리에게 예술은 통속을 탈피하는 것이며, 아름다움은 세상을 무시할 때 가능하다는 교훈을 줍니다. 문명의 도금을 벗겨내고, 일상의 목가성을 초월해내고, 세속의 너절함과 결별하여, 인간이라는 외피를 찢어발김으로써 [진정한 원숭이]가 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붉디 붉은 광휘의 아름다움을 마주하며 위대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겠지요. 이 점에서 피터 잭슨은 극장 안에 머무르는 영화가 아닌, 극장 밖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영화를 만들어내었습니다. 그 역시 위대함에 도달한 것이지요.



4/5 ★★★★ 쥬라기 공원의 티라노조차 찢어발길 찬란한 콩간지, 환호하는 도시의 식인종들

* 지난 5월 12일, 제가 패널로 참여하는 팟캐스트 영화계 22화에서 피터 잭슨 감독 및 <킹콩>에 대해 리뷰한 바 있습니다. 본문에 나온 내용과 같은 맥락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봤습니다.

피터 잭슨 특집 : http://www.podbbang.com/ch/8720?e=21705191
킹콩 리뷰 : http://www.podbbang.com/ch/8720?e=21705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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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을 왜 이제 봤을까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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