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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10/15 23:08:16 |
Name | 난커피가더좋아 |
Subject | 노벨경제학상 앵거스 디턴과 21세기자본 도마 피케티는 대립하는가? |
부제: 디턴은 어쩌다 '반피케티 전선'의 선봉장으로 보도됐는가? 1. 앵거스 디턴은 누구인가? 뭐 간단한 팩트만 얘기하자면, 201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프린스턴대 교수 아재(?)입니다. 그는 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을까요? 아까 점심시간에 직장동료 등과 이 주제로 신나게 떠들던 분위기에서 너무 당연한 듯 올린 내용으로 글이 꼬이기 시작했고, 최근 매주 대학원 발제문을 쓰던 습관까지 더해저 아예 망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그렇게 올린 글은 삭제를 했습니다만, 이미 국내 다수의 언론들이 혼란만 가중시켜놓은 상황에서 어떻게 글을 시작해야할지는 계속 고민이 됐습니다. 도대체 이걸 어디에서부터 정리해서 올려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마침 좋은 정리기사가 하나 떠 있어서 그것으로 시작합니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5/10/13/story_n_8283744.html 아까(삭제한 글에서)는 제가 이 얘기를 하기 위해 직접 가디언 기사와 갤럽의 영어기사 링크를 걸어야 했는데 이렇게 친절한 해설본이 그새 나왔군요. 그 일부분을 보죠. 미국 한 온라인 매체의 보도를 허핑턴포스트가 인용한 부분입니다. [디턴은 경제학 모델이 ‘이래야 한다’고 상정하는 세계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의 소비자들은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으며, 빈곤은 각 나라마다 철저하게 다른 특질을 드러낸다. “세계 빈곤율이 사상 처음으로 10% 밑으로 떨어졌다는 뉴스를 읽을 때, 당신은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묻고 싶을 겁니다. 답은 가계 서베이와 자료 수집, 복지 측정에 대한 디턴의 작업에 있습니다.”라고 ‘Marginal revolution’의 알렉스 테브록은 적었다. “디턴의 주요 업적은 세계 빈곤을 이해하고 측정하는 부분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음도 위의 허핑턴포스트 기사에 재인용된 가디언 보도에요. [스웨덴왕립과학원은 이렇게 소개했다. “소비와 수입에 대한 디턴의 심층적 연구는 현대 거시경제학 연구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케인즈 이후 이전까지의 거시경제학 연구자들은 오직 총자료(aggregate data)에만 기댔다. (이와 달리) 오늘날 연구자들은 거시적 층위에서의 관계를 다룬다 하더라도 보통 개별적 층위에서 출발하며, 전체 경제에서 산출된 숫자와 개인의 행동을 주의 깊게 결합시킨다.” 이건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디턴 교수의 선구자적인 연구 덕분이다.] 일단은 그가 누구이고 왜 상을 받았는지는 저 허핑턴 포스트 기사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읽고 오시면 되겠지만, 제가 약간만 더 쉽게 풀어보면, 또한 <위대한 탈출>이라는 번역서 내용을 토대로 첨가해보면 그의 업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빈곤과 불평등을 이해하는 데 있어 뭉뚱그려진 데이터와 잘 추출된 수치에 의존한 게 아니라, 각 국가의 맥락과 개인의 소비행태를 다양한 차원에서 실증적으로 분석했고 이것이 학계에 큰 기여를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작년에 대유행을 한 도마 피케티와 마찬가지로 그도 역시 '불평등'을 중점적으로 연구한 것입니다. 2. '불평등이 성장을 촉발시킨다', '그는 피케티를 멋지게 반박했다' 디턴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다음날 아침에 나온 대한민국 언론의 헤드라인은 대략 이런식이었습니다. 도대체 이와 같은 오해는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일단 피케티의 논리부터 알아봅시다. 피케티의 몇 개의 핵심 주장만 살펴보면, 그는 전체 국민소득에서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커지면서 불평등이 심화된다고 하고, 자본소득 내에서의 불평등도 심각하다는 지적을 함께 하는데요, 결론적으로 세계의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고 하고 이는 기존 주류경제학의 가정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집니다. 즉 경제가 성장하면 불평등이 커지다가 일정수준을 넘어서면 다시 줄어든다고 하는 가정을 반박하는 것이지요. 이 복잡할 수 있는 얘기에서 딱 두 가지만 기억해보죠. 1)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 2)이렇게 심화된 불평등은 이후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에 모두 악영향을 끼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미래는 그렇게 어둡지 않다.) 자, 뭐 이리 보니 부유세 정책 주장 등이 좀 빡세서 그랬지 뭐 피케티 아재도 그닥 빨갱이는 아닙니다. 어쨌든 이 피케티의 반대편에 서기 위해서는 논리적으로 디턴 교수는 다음과 같은 주장 중 하나를 펼쳐야 합니다. 1)세계의 불평등은 심화되지 않았다. 혹은 2)불평등은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최소한 1)번과 2)번 중 하나의 주장을 강력하게 펼쳐야 피케티의 반대편에 서는게 되겠지요?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위대한 탈출>을 보면 그가 반박하는 건 오히려 이스털린 역설입니다. 이스털린 역설이란 건, 소득이 증가할 수록 행복도 계속 증가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일정 소득 이상이 되면 행복감은 상승하지 않는다는 건데, 디턴은 그건 반박합니다. 하지만 <위대한 탈출>의 내용과 그의 인터뷰 등을 조사해 보면 [전 세계는 자유시장경제에 기반한 성장을 통해 예전에 비해서 많은 '복지의 향상'과 '생활수준의 향상'을 일궈냈지만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평등은 나쁘기만 한 건 아니고, 경제성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공정한 경쟁이 있다면 불평등은 각 개인 혹은 국가의 '성장의 동기'가 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정도의 주장을 펼칩니다. 기본적으로 '성장을 중시'하는 건 맞지만, 불평등이 성장을 촉진한다거나 성장으로 모든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그 어느 입장도 아닌 겁니다. 심지어 지난 경제성장의 필연적 결과로 불평등이 심화했다고 말하는데요? 그리고 오히려 이건 경제에나 민주주의에나 좋은게 아니라고 합니다. 앞서 허핑턴 기사를 읽고 오시지 않은 분들은 메이저 보수경제 신문인 매경의 다음 기사만 보셔도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977369&utm_source=facebook&utm_medium=sns&utm_campaign=share 매체 성향까지 감안해서 본다면, 이 정도면 도대체 피케티의 반대편이라는 논리는 말이 안되는 거지요. 그럼 도대체 오해의 소지는 어디에 있는가? 그가 종종 말하는 '불평등이 상황에 따라 개인 혹은 국가의 성장을 독려할 수 있다' 정도의 말이 확대 왜곡 재생산 된 측면이 큽니다. 여기에 <위대한 탈출>에 '빈곤국 원조'와 관련돼 그가 제시하는 대안이 부풀려 진겁니다. 그는 "원조정책은 이런저런 왜곡과 문제로 큰 도움이 안될 수가 있으니 오히려 성장촉진정책을 써야 빈곤을 탈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취지로 말하는 데, 이 부분을 신나게 언론이 따 온 거지요. 3. 어디서부터 꼬였나? 이 비하인드 스토리는 아까 글을 쓸때만 해도 '소설' 수준이었는데, 약간 더 알아보니 '팩션'수준까지는 되는 거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피케티 책을 번역한 건 모 경제신문사 논설위원입니다. 그리고 그 신문사는 피케티를 초청해 강연회도 엽니다. 그 번역서가 나올 때쯤 경쟁사에서 책이 나오는 데 제가 볼때 '악의'가 있던 건 아니고 그냥 핫한 피케티에 편승해 가려했는지 책 띠지에 '피케티 vs 디턴'이라고 박고, 아예 그런 방식으로 요점정리를 해버린 비평까지 책 내부에 박아서 출판을 해버립니다. 그리고 중요한 '출판 보도자료'를 그렇게 내요. 모든 책은 출판되고 나면 각 언론사에 보내질때 'A4 4~5페이지'의 보도자료와 동봉됩니다. 그 많은 책을 다 읽고 서평을 쓸 순 없을테니 읽고 쓰는 핵심기사들 외에는 기자들도 아마 그 보도자료를 중심으로 책을 훑어보고 소개기사를 쓰는 모양입니다. 피케티 책이라면 억지로라도 다 읽고 기사를 썼을 메이저 신문사의 기자들도, 아마 잘 모르는 디턴 아재의 책은 그 보도자료 중심으로 써서 간단히 올리고 말았겠지요. 아니 근데, 그 디턴 아재가 그간의 다른 연구성과로 인해 이번에 노벨상을 받았네요. 한국시간으로 밤 늦게 발표되니 신문사들은 부리나케 예전 자료를 뒤집니다. 근데 그 자료는 저 왜곡된 자료로군요. 이제 수수께끼가 좀 풀리는 기분입니다. 4. 나오며-근대화 이론 악용의 재탕인가? 아까 삭제한 글은 사실 이 근대화 이론이라는 정치학 이론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 마지막 부분에 쓰면 좋을 듯 합니다. 세이무어 립셋이라는 '안 건드린 것 없는 미국 정치학자 아재'는 1950~60년의 온갖 자료를 박박 긁어모아서, 경제발전이 정치발전을 가져온다는 주장을 합니다. 경제가 성장할 수록 민주주의도 발전한다는 것인데 이게 되게 단순 명료하지만 실제 검증은 쉽지 않거든요. 워낙 옛날이라 자료 오류도 많고 해석에도 문제가 많았지만 그래도 꽤나 설명력이 높은 이론이었습니다. 그런데, 대충 예측하실 수 있듯이 이 이론은 제3세계 독재국가에서 무지하게 정권들이 악용해 먹습니다. 뭐 출발점 자체가 '사회주의 확산'을 막고 '마르크시즘에 대한 반론을 과학적으로 하겠다'의 성격이 있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진짜 너무 악용됐죠. 뭐 굳이 반인반신 누구를 떠올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서 이와 유사하게 한 위대한 경제학자의 연구와 성과를 악용하려는 사람들도 이 나라에 존재한다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샌델 열풍, 피케티 열풍, 헬조선 담론과 금수저/흙수저 유머의 범람 속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이 사회 전반의 정서와 다양한 문제제기를 디턴의 몇 가지 주장과 문장을 따와서 '불평등은 나쁜거 아님. 그래야 열심히 노오오력을 할거 아님. 성장하면 다 해결됨'이라는 말로 덮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입니다. 가디언 기사 중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이번 노벨경제학상은 피케티와 앳킨스(또 다른 불평등 연구의 대가)와 함께 받았으면 좋았을 것] 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노벨상 수상 이유를 보면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었다고 봅니다만, 저만큼 많은 함의를 담고 있는 말도 없는 것 같습니다. * 난커피가더좋아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5-10-23 07:51)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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