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8/11/13 13:46:08수정됨
Name   세인트
Subject   아내가 게임을 실컷 할 수 있으면 좋겠다.
* 이 글은 옆동네에도 같은 내용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이 글은 제가 예~~~전에 올린 졸문

https://kongcha.net/?b=3&n=6764

https://kongcha.net/?b=3&n=6622

이 두 개의 글과 와 이어져 있는 글입니다.

- 쓰고나서 보니까 속 생각을 마음 가는데로 쓰다보니 본의아니게 반말체처럼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너른 양해를 구합니다. ㅠㅠ












내 아내는 게임을 좋아하는데 잘 못한다.

솔직히 못한다. 일단 신경쓸게 많아지거나 실시간으로 뭔가 바빠지면 허둥지둥하면서 컨트롤이 전혀 안 된다.

옆에서 보고 있자면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게임을 좋아하는 것 만으로도 대단히 감사한 거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이번에도 내가 로스트 아크라는 국산게임 나오는데 친구들이 재밌겠다고 했다며 해볼까 했다.

아내는 유튜브로 이것저것 찾아보더니 자기도 재밌겠다고 해보겠다고 하더라.

솔직히 좀 걱정이 앞섰다.

나라는 새끼가 어떤 새끼인가. 당시 애인과 와우 같은 공격대 소속이었는데

애인이 좀 잘못했기로서니 (사실 좀 큰 잘못을 하긴 했다...)

공대장이 '니 여친인거 알지만 쟤 도저히 안되겠다 자르자' 했을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오케이 잘라!' 라고 했던 나였다. (그래서 차였다)

다른 온라인 게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시간을 두고 혼자 차근차근 하는 건 뭘 해도 잘 하는 친구긴 하지만

일단 손이 느리고, 빠른 대처를 못하는 아내에게

실시간으로 판단을 요구하는 게임들은 너무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아무튼 어찌저찌 시작을 했고, 예전처럼 맨날천날 게임할 시간도 안되고 대기열도 압박이다보니

그렇게 높은 레벨을 찍지는 못했다.

근데, 아내는 아직 20렙도 못 찍었다. 내 절반도 안 되는 렙... 정말 렙업 못하더라. 그냥 클릭만 하고 갖다놓고 하면 되는데...

어느순간 아내가 피곤하다고 먼저 잔다거나 할 때 혼자 달린 결과다.

근데 아내가 가끔 '여기 와서 이거 좀 같이 깨자' 할 때마다 짜증을 팍팍 냈다.

'아니 그냥 매치하거나 사람들이랑 깨면 되는데 거참'

몇번 그렇게 면박을 줬더니 아내가 혼자 하면서 내 도움을 청하지 않더라.

그리고도 한참 게임하다 말고 옆에 아내 화면을 봤다. 무슨 벌레 알을 터뜨리고 있더라.

그런가보다 하고 한참 또 내 게임을 하다가 한 지역 퀘스트가 완전히 끝나서 흡연실에 담배 태우러 가려고 다시 아내 화면을 봤다.

아내는 아직도 벌레 알을 터뜨리고, 벌레같은 애들이랑 술래잡기를 하며 엄청 고생하고 있더라.

갑자기 아차 싶은 생각이 들어서 봤더니, 던전이었다.

해당 레벨 4명이서 가서 깨는 던전을 혼자 깨고 있더라.

뒤늦게 놀래가지고 그걸 왜 혼자갔냐 하고 같이돌자 했더니 일단 이거 깨고 그다음에 이야기하잔다.

담배를 줄담배를 피우고 와서 아내 화면을 보는데, 정말 힘들게 하지만 근성있게 도망다니면서 한대씩 치면서

결국 보스까지 혼자 다 잡더라.

그리고 나서 이야기를 꺼냈다.

"끝났다니까 물어보는데, 왜 그걸 혼자 깼어? 내가 같이 하면 되는데..."

아내가 나직하게 이야기했다.

"요 앞에 던전 갔는데, 사람들이 스토리 스킵 안하니까 막 뭐라 하더라. 그래서 너 부른건데, 너도 ESC 눌러대고 있어서 스토리 다 보고 하려면 혼자 해야겠더라고"

아 너무 미안했다. 이제는 직장도 있고 일도 힘들고 하니까 예전처럼 빨리 못 키운다고 느긋하게 하자고 해놓고서

오히려 그 없는 시간이라는 조급함에 옆에서 같이 게임하고 싶어하는 아내 내팽개치고, 스토리도 죄다 스킵해가면서

국산겜이 다 그렇지 하면서 넘겨버린 심술궂은 아저씨 하나만 앉아 있는게 보였다. 그게 나였다.

그러고나서 생각해보니 아내는 게임을 못하는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해도

근성과 노력으로 극복하면서 결국 자기 힘으로 다 깨던게 아내였다.

블러드본도 결국 내 도움 없이 1회차 2회차 엔딩도 봤고

4인용 던전도 자기 힘으로 깨고



게임 뿐만 아니라 인생도 남들보다 몇 배는 꼬여도 결국 승리하던게 아내였다.

오히려 나같았으면 진작에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서 놔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고생을 겪고도

너무 아프고 힘들다고 하면서도 결국 자기 힘으로 극복한게 아내였다.

아내가 거의 8년 넘게 너무나 고생했던 자신을 괴롭혔던 머리수술이 잘 끝난게 불과 2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나는 어느새 그걸 다 까먹고 '게임 달랑 한두시간 했다고 피곤하다고 그러냐 근성없게' 이딴 소리나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가 어서 빨리 후유증 잘 털고

하고 싶은 게임 다 실컷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중간에 입원하기 시작하면서 놓고있는 갓오브워도 엔딩 봤으면 좋겠고
(스포일러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다)

같이 게임 실컷 해도 괜찮은 체력이 될 때까지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아내가 이번에 자기가 키우는 바드캐릭터용 한정판 아바타가 그렇게 이쁘다고 그러던데,

요번주에 살포시 선물함에 아바타나 하나 넣어놔야겠다.

* 토비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8-11-29 20:02)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28
  • ㅠㅠㅠㅠㅠㅠ
  • 춫천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18 기타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 오직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위로 8 다람쥐 24/11/07 861 31
1417 기타기계인간 2024년 회고 - 몸부림과 그 결과 5 Omnic 24/11/05 641 31
1416 기타비 내리는 진창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걷는 자. 8 심해냉장고 24/10/30 913 20
1415 기타명태균 요약.txt (깁니다) 21 매뉴물있뉴 24/10/28 1742 18
1414 기타트라우마여, 안녕 7 골든햄스 24/10/21 936 36
1413 기타뭐야, 소설이란 이렇게 자유롭고 좋은 거였나 14 심해냉장고 24/10/20 1559 40
1412 기타"트렌드코리아" 시리즈는 어쩌다 트렌드를 놓치게 됐을까? 28 삼유인생 24/10/15 1859 16
1411 기타『채식주의자』 - 물결에 올라타서 8 meson 24/10/12 948 16
1410 요리/음식팥양갱 만드는 이야기 20 나루 24/09/28 1221 20
1409 문화/예술2024 걸그룹 4/6 5 헬리제의우울 24/09/02 2080 13
1408 일상/생각충동적 강아지 입양과 그 뒤에 대하여 4 골든햄스 24/08/31 1418 15
1407 기타'수험법학' 공부방법론(1) - 실무와 학문의 차이 13 김비버 24/08/13 2046 13
1406 일상/생각통닭마을 10 골든햄스 24/08/02 1984 31
1405 일상/생각머리에 새똥을 맞아가지고. 12 집에 가는 제로스 24/08/02 1600 35
1404 문화/예술[영상]"만화주제가"의 사람들 - 1. "천연색" 시절의 전설들 5 허락해주세요 24/07/24 1443 7
1403 문학[눈마새] 나가 사회가 위기를 억제해 온 방법 10 meson 24/07/14 1910 12
1402 문화/예술2024 걸그룹 3/6 16 헬리제의우울 24/07/14 1688 13
1401 음악KISS OF LIFE 'Sticky' MV 분석 & 리뷰 16 메존일각 24/07/02 1589 8
1400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3) 26 삼유인생 24/06/19 2790 35
1399 기타 6 하얀 24/06/13 1863 28
1398 정치/사회낙관하기는 어렵지만, 비관적 시나리오보다는 낫게 흘러가는 한국 사회 14 카르스 24/06/03 3082 11
1397 기타트라우마와의 공존 9 골든햄스 24/05/31 1931 23
1396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2) 18 삼유인생 24/05/29 3083 29
1395 정치/사회한국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1) 8 삼유인생 24/05/20 2652 29
1394 일상/생각삽자루를 추모하며 4 danielbard 24/05/13 2054 29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