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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11/14 17:07:03수정됨
Name   기쁨평안
Subject   고대 전투 이야기 - (7) 진형
방진이라는 것은
"부대의 배치를 어떻게 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구성해서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적군의 피해를 극대화 시키느냐?"
를 목적으로 하는 병력 배치 방법입니다.

사실 병력이라는 것이 스타크래프트처럼 배럭에서 찍으면 튀어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한 국가에서 노동력의 충추가 되는 18세~40세 사이의 남성들을 생산활동에서 격리시킨 뒤,
그들에게 비싼 장비를 지급하고 오랜시간 훈련을 시켜서 만들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전쟁을 할 때에는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군의 병력 손실을 최소화 시키면서 이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피로스의 승리, 또는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전쟁에 이겨도 승리 이후의 과실을 잘 소화시키지 못한다면 결국 사회적으로 더 큰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이죠.
그리고 고된 전투에서 살아남은 병력은 점점 "정예 병력"으로 업그레이드가 되는 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생사가 오고가는 전투 속에서 경험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전쟁에서는 교환비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모든 전쟁 지휘관이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대충 급하게 긁어모은, 훈련과 무장도 제대로 되지 않은 부대를 가지고 상대의 주력 부대에 피해를 입히거나 발을 묶어놓고
자신들의 주력 부대로 적의 심장부를 괴멸시키거나 심대한 타격을 주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이라는 것이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어서 항상 가위바위보 싸움이 되기 마련인데요.

무기체계에 따른 병과가 구분되지 않았던 고대를 생각해봅시다.
전투라고 해도 많아야 몇백명 수준인 시절. 무기는 칼, 도끼, 창들고 닥치는대로 돌격하던 시절 말이죠.

대충 가정을 해서 500명 대 500명의 보병이 붙는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각 부대는 50명씩 10줄로 배치를 하겠죠. 당연히 맨 앞에 가장 강력한 용사들을 배치할 테구요.
그리고는 서로를 향해 다가갈 것입니다.

이런 류의 전투에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최초의 일합]입니다.  
동일한 전투력의 병력이 맞부딪히게 되면 이론적인 교환비는 1:1 입니다.
너도 한방 나도 한방에 한명씩 죽는거죠.
그러면 이론적으로는 최초의 일합 이후 각 부대의 앞열은 25명씩 남습니다.
그러면 뒷열의 25명이 재빠르게 빈공간을 메우고 다시 제2합으로 들어가게 되죠.

그런데 한쪽의 전투 숙련도가 높던지, 무기가 더 좋던지, 아니면 운이 좋아서던지 해서 이 교환비가 깨졌다고 봅시다.

1.2 : 0.8 이라고 해보죠. 이러면 별 차이 안나는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이런 결과가 나오면 일 합이 끝나고 난다음 남은 병력이 한쪽은 30명, 한쪽은 20명이에요.

그러면 제2합에는 어떻게 되나요?

1등급병사 30명 + 2등급 병사 20명 vs 1등급병사 20명 + 2등급 병사 30의 싸움이 됩니다.

더구나 양측의 1등급은 같은 1등급이 아니에요.
굉장히 복잡한 수식을 돌려사 (여백이 부족해서) 대충 때려맞추면 2합이 끝나고 남은 병력은

1등급 병사 25명 + 2등급 병사 10명 vs 1등급병사 10명 + 2등급 병사 5명이 됩니다.

제 3합에서는?
1등급 병사 25명       1등급 병사 10명
2등급 병사 10명   vs  2등급 병사  5명
3등급 병사 15명       3등급 병사 35명

이 다음은요? 그냥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지는 거죠.

사실 거의 대부분의 전투는 특별한 전술이 없다면 [최초의 일합]에서 승부가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롤에서 스노우볼이 굴러가듯이 처음에 발생한 이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잡을 수 없이 불어나기 때문이죠.

이런 이유로 "영웅"급 장수의 존재는 매우 중요합니다.
항우라던지, 관우라던지, 척준경이나, 사자왕 리처드 같은 먼치킨들 말이죠.
사실 이들은 수백명과 싸워서 이길 필요도 없습니다. 사실 그럴 수도 없죠.
이들은 사실 [최초의 일합]에서 적의 최 정예 병사 최소 3명만 죽이면 됩니다.
(점프 강킥 - 앉아 중킥 - 파동권 3단 콤보 발동)

이러면 이 영웅과 그 주변 3명의 병사는 그 다음 2합에서는 6명을 죽이고요.
그 다음 3합에서는 이 영웅과 그 주변 9명의 병사가 20명을 죽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그 다음에는 이들을 막을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 ^^)


<영화 허큘리스의 한장면>
위 영화 허큘리스는 어쩔수없이 과장이 들어가있지만 그래도 상당히 현실적인 편에 속합니다. 비키니 갑옷을 입고 화살을 쏘는건 어처구니가 없지만..



진법이라는 건 또한,
농경민족이 외부에서 침략해오는 유목 야만족의 굇수스러운 강력함을 막기위해 발전한 측면이 큽니다.

농사만 짓다가 갑자기 쟁기 대신 창 들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농경민족 군대를 상대로
일평생 전투로만 단련된 야만인 전사들은 공포 그 자체였을 테니까요.
대부분의 이런 야만전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명예롭게 여기기까지 하다보니,
목숨보다 지켜야할 것이 많은 농경민족은 상대적으로 위축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농부들이 기본이 된 보병 진법은 "어떻게 하면 덜 죽고, 죽더라도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죽을 것인가?"를 목표로 발전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시간을 끌면요? 구원군이 옵니다. 이들은 기병일 수도 있고요, 귀족들의 군대일 수도 있고, 기사일수도 있어요.
아무튼 중요한 건 농민들이 뼈빠지게 농사지어서 갖다바친 음식을 먹으면서 하루종일 무술 연습만 한 무력집단인 것이죠.
무기와 방어구도 훌륭하고 말도 있으면 더 좋죠.
이들이 사실상 농경민족의 주력이 되는 것이죠. 결국 이런 무력집단들이 나중에는 기사가 되고
이들에게 농민들이 자신들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해주길 바라면서 시작된 계약관계가 봉건제의 시작 아니겠습니까.

어찌됐건, 이런 연유로 보병이 버티고 옆에서 기병이 지원을 하는 것이 거의 모든 군대의 기본 전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대의 돌격력을 막기 위해 궁병을 배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 돌격을 하는 적들을 향해 화살을 쏜다 해도 많아야 두 세번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적의 기세를 누그러트리는 데에는 충분하거든요.
그래서 중앙에 보병, 그 뒤에 궁병, 옆에 기병을 놓는 것이 거의 정석이 되었죠.
기병을 분리해서 양 옆에 두느냐, 한쪽에 집중해서 두느냐..뭐 이런 차이는 있지만요.


물론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른 경우도 많이 있죠.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와 히타이트와의 전투는 전차(채리엇)부대끼리의 싸움이었습니다.
앞선 글에도 말씀드렸듯이 이들의 주 무기는 화살이었기 때문에 전차부대간의 전쟁은 평원에서 빙글 빙글 도는 것이었을 겁니다. 돌면서 화살을 쏘다가 떨어지면 본대로 가서 보급받은 뒤 다시 가서 화살을 쏘고
만약 조작 실수로 엎어지게 되면 말발굽이나 전차 바퀴에 깔리고.


<고대 이집트와 히타이트간 벌어진 유명한 '카데시 전투'>

이런식의 소모전이 계속되었을 겁니다.

팔랑크스야 말고 남자의 로망이라 생각했던 그리스에서는 오직 팔랑크스로만 이뤄진 부대끼리 창으로 쑤시면서 싸웠죠.
서로 오른쪽으로 밀다보니 이들도 거대하게 원을 그리며 돌면서 싸우게 되고..


좁은 지형에 병력을 배치시켜 적의 대병력과 효율적으로 싸우기도 하고요. (영화 300같이)

삼국지에 나오는 팔진도라는 것도 소설에는 막 연기가 피어오르고 천둥번개가 치는 걸로 나오는데,
사실은 기병이 부족한 촉나라에서 수레를 이용해 기병의 접근을 막으면서
연속 발사가 가능한 석궁(연노 라고도 하고 제갈량이 개발했다 해서 제갈노라고도 합니다. 영어로 추코누)으로 싸운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해요.


----
이렇게 해서 고대 전투 이야기는 마무리 지을까 합니다.
사실 이거보다 더 자세하고 정확한 이야기는 나무위키에 다 있어요.
더 전문적인 이야기들, 고대의 유명한 전투들에 대해 자세한 기록도 많고요.
그냥 제가 생각했던 것들을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고,
또 혹시나 이런 거에 새롭게 관심을 가지시는 분들이 있다면 좋을 것 같아서 한번 도전을 해봤는데, 쉽지는 않네요.

틈틈히 쓰다보니 문장 흐름도 안맞고 비문도 많고 그런데, 너그럽게 봐주세요. 틈틈히 고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토비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8-11-29 20:02)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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