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7/10/30 22:09:29
Name   droysen
Subject   독일 대학원에서의 경험을 정리하며: 1편
안녕하세요. 인터넷 커뮤니티라고 불리는 곳에 거의 처음으로 글을 쓰게 되어서, 제대로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학부로 사학과를 전공하고, 2년 전쯤 독일로 건너와서 석사부터 사학과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대학원생입니다. 제 닉네임을 보고 제 전공을 유추하신 분이라면 역사학, 혹은 넓게 보면 인문학에 관심이 좀 있는 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지금은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유학 가는 것이, 과장 조금 보태서 해외여행 가는 것만큼이나 흔해진 시대에, 굳이 제 경험을 쓰고자 결심하게 된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한국에서의 유학을 나가게 되는 대부분의 학생분들이 미국이나 영어권 국가로 가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장 제 부모님부터가 제가 어릴 때 미국에서 유학하셨거든요. 때문에 미국에서의 유학생활에 대해서는 여러 경로로 여러 방면에 대해서 많이 알려져 있죠. 이에 반해 유럽에서의 유학 생활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두번째는 유럽으로 유학을 온 경우도, 석사부터 시작하게 되는 경우는 드문 편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지금은 교수가 되신 나이대의 학자분들 중에 박사를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하신 분들은 많이 있지만, 이 분들은 대부분 석사까지 한국에서 마치고 박사 논문만 유럽에서 쓰신 경우에 해당합니다. 지금은 유럽 교육계에서의 볼로냐 협약 이후로 좀 달라지긴 했지만, 예전에는 박사과정의 경우 유럽은 오로지 논문만 썼습니다. 코스웍을 거쳐야 하는 미국의 시스템과는 달랐죠. 그래서 이 분들이 돌아와서 유럽의 교육에 관해서 이야기할때도, 수업이나 시험에 관한 경험담은 많이 안 알려지게 됐어요 (혹시 아니라면 이 글의 가치가 없어지겠네요 -.-).

제가 굳이 제 경험에 대해서 쓰게된 세번째이자 마지막 이유는, 유학생의 대부분이 공학을 비롯한 이과쪽 공부를 하는 분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넓은 의미에서 문과에 속하는 사회과학을 공부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흔히 '문사철'이라 불리는 인문학을 공부하시는 분들은 찾아보기 어렵거든요. 있어도 이분들은 앞문단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박사과정부터 외국에서 하는 경우가 많고요. 아무튼 그래서, 유럽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의 경험도 궁금한 분들이 계시지 않을까 싶어서 글을 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본심은 이걸 계기로 제가 겪은 4학기의 석사생활을 정리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렇게 대놓고 말하면 명분이 없잖아요 ㅋㅋ

한편에 정리를 다 못할 것만은 확실하지만, 구체적으로 몇편에 나눠쓸건지는 생각한 바가 전혀 없고 생각나는대로 쓸 것이기 때문에 우선 시간순서대로 써보겠습니다.

역시 대학교에 지원하는 과정부터 써야겠죠? 독일은 한국과 학기제가 다릅니다. 아니, 미국과도 다르고 심지어 옆나라 프랑스와도 다릅니다. 한국은 봄/가을 학기로 나뉘지만 독일은 겨울/여름 학기로 나뉩니다. 겨울 학기는 10월 중순부터 개강이고, 여름 학기는 4월 중순부터 개강입니다. 학년 개념이 희미하고 학기로 나누기 때문에 겨울과 여름 학기 중 어느게 시작이라고 명확히 말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전통적으로 겨울학기를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습니다. 입학 지원도 학기마다 받지만, 과에 따라서는 겨울학기에만 지원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2년 전 겨울학기에 지원했는데요. 그해 10월에 시작되는 학기에 입학하기 위해서 5월말까지 지원을 해야했습니다. 독일 대학의 경우 서열로 나뉘지 않기 때문에 제 과와 세부전공에서 평판이 좋으면서 관심사에 맞는 교수가 있는 학교를 찾아나섰죠. 또 원칙적으로 한 도시에 하나의 대학이 있기 때문에 도시와의 궁합도 중요합니다 (베를린이나 뮌헨 같이 예외적으로 도시 내에 여러 개의 대학이 있는 곳도 존재하긴 합니다). 그 결과 3 곳을 추렸는데, 하이델베르크, 프라이부르크, 괴팅겐 대학이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세 도시는 모두 인구 10만에서 20만 사이의 조그마한 대학도시라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미국에서 살았던 5년을 제외하면 인생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살았지만, 아니 어쩌면 그랬기에, 작은 도시가 더 끌리더라고요.

어쨌든 모든 대학이 그렇듯, 지원을 하려면 필요한 서류가 있겠죠? 여태까지 들었던 수업 목록과 학점 내역, 어학 능력에 대한 증명서류, 이력서, 그리고Motivationsschreiben이라고 하는, 이 대학에 왜 지원하게 되었는지에 관해서 1-2 쪽 내외로 짧게 쓴 글을 제출했습니다.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서 어학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면, 독일의 경우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TestDaF라고 하는 시험을 치뤄야 합니다. DSH라는 시험도 있긴 하지만, 이 시험은 독일 내에서만 볼 수 있기에 한국에서 입학을 준비하는 경우에는 볼 수가 없습니다. 테스트다프라고 하는 시험은 IELTS의 독일어 버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읽기/쓰기/말하기/듣기 4가지 영역이 있고, 영역마다 5등급으로 점수가 나뉩니다. 5가 최고 등급이고, 과마다 다르긴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모든 영역에서 4등급 이상을 받아야 입학이 가능해집니다. 전 아무래도 한국에서 준비하다보니 말하기와 듣기가 제일 힘들었는데, 운이 좋게 말하기가 4가 나오고 나머지는 5가 나와서 바로 지원했습니다.  

흔히 독일의 교육시스템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도 "독일 대학은 입학은 쉬운데 졸업이 어렵다"라는 말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독일에서도 경쟁이 치열한 의학 같은 과가 아니라면 맞는 말입니다. 위에서 말한 어학시험과 최소한의 학점(보통 4.5 만점으로 3.0 이상)을 갖췄다면 일반적인 과에는 입학에 큰 걸림돌은 없습니다. 다만, 독일의 경우 위의 기준 학점이라는게 평균에 가까운 학점입니다. 독일은 점수 체계가 특이해서 1,0이 최고점이고 4,0이하가 낙제인데, 독일 학생들의 평균학점은 2,5 정도거든요. 그리고 한가지 입학이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학부와 다른 전공을 대학원에서 하려는 경우 입학이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학부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석사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한다면, 한국의 경우 지도교수가 될 분과 상의해서 입학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독일은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어있습니다. 또 한국에서 바로 석사로 지원하실 경우 조심해야될게 있는데, 전공하고자하는 학문의 수업을 최대한 많이 들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복수전공을 하지 않고 심화전공을해서 130학점 중 80학점 가까이 사학과 수업을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입학 조건으로 2학기 내에 여기 학부에서 하는 세미나 하나에 참석하고 시험을 이수해야한다는 조항이 딸려왔습니다.

어쨌든 5월에 그렇게 우편으로 지원을 마치고, 한국에서는 마지막 학기 기말고사까지 마치고 7월부터 답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 곳으로부터도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홈페이지에는 6월말에서 7월초에 연락을 준다고 공지되어 있는데 말이죠. 연락을 해보니 한곳으로부터는 해당 과 교수진이 한국 대학에 대해 잘 몰라서, 입학을 허가해야할지 말아야할지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고 합니다 ㅡㅡ 분명 위에서 말한 Motivationsschreiben을 썼는데, 조금 더 자세히 왜 특히 이곳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은지 써서 보내면 도움이 될거라고 하더군요. 다른 곳은 알고보니 합격통지메일이 스팸으로 가 있었습니다 ㅡㅡ 학교 메일을 썼는데, 외국 대학에서 온 메일을 스팸으로 처리하면 어쩌자는건지...

어쨌든 다시 입학동기를 설명한 메일을 보낸 곳으로부터 위에서 말한 조건부입학을 허락받고 8월 초에 독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직 개강은 하지도 않았는데 내용이 벌써 꽤 되었네요. 한번에 너무 많이 쓰면 읽는 분들도 고역이실테니, 여기서 1편은 우선 마무리하겠습니다!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7-11-13 09:13)
* 관리사유 : 추천 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25
  • 더... 더... 많은 내용을 달란말입니닷!!
  • 성실한 연재의 시작일까요
  • 추천합니다.
  • 감사합니다
  • 재밌게 잘봤습니다. 일기장으로라도 좋으니 꾸준히 써주세요!
  • 우와 대단한 결심을 하고 가셨군요 _ 앞으로 글 기대하겠습니다!
  • 오...재밌어요. 이 후 내용이 기대되네요.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18 문학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 오직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위로 8 다람쥐 24/11/07 891 32
1417 체육/스포츠기계인간 2024년 회고 - 몸부림과 그 결과 5 Omnic 24/11/05 662 31
1416 철학/종교비 내리는 진창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걷는 자. 8 심해냉장고 24/10/30 935 20
1415 정치/사회명태균 요약.txt (깁니다) 21 매뉴물있뉴 24/10/28 1764 18
1414 일상/생각트라우마여, 안녕 7 골든햄스 24/10/21 946 36
1413 문학뭐야, 소설이란 이렇게 자유롭고 좋은 거였나 14 심해냉장고 24/10/20 1571 40
1412 기타"트렌드코리아" 시리즈는 어쩌다 트렌드를 놓치게 됐을까? 28 삼유인생 24/10/15 1878 16
1411 문학『채식주의자』 - 물결에 올라타서 8 meson 24/10/12 960 16
1410 요리/음식팥양갱 만드는 이야기 20 나루 24/09/28 1236 20
1409 문화/예술2024 걸그룹 4/6 5 헬리제의우울 24/09/02 2088 13
1408 일상/생각충동적 강아지 입양과 그 뒤에 대하여 4 골든햄스 24/08/31 1431 15
1407 기타'수험법학' 공부방법론(1) - 실무와 학문의 차이 13 김비버 24/08/13 2065 13
1406 일상/생각통닭마을 10 골든햄스 24/08/02 1996 31
1405 일상/생각머리에 새똥을 맞아가지고. 12 집에 가는 제로스 24/08/02 1612 35
1404 문화/예술[영상]"만화주제가"의 사람들 - 1. "천연색" 시절의 전설들 5 허락해주세요 24/07/24 1453 7
1403 문학[눈마새] 나가 사회가 위기를 억제해 온 방법 10 meson 24/07/14 1925 12
1402 문화/예술2024 걸그룹 3/6 16 헬리제의우울 24/07/14 1700 13
1401 음악KISS OF LIFE 'Sticky' MV 분석 & 리뷰 16 메존일각 24/07/02 1597 8
1400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3) 26 삼유인생 24/06/19 2802 35
1399 기타 6 하얀 24/06/13 1874 28
1398 정치/사회낙관하기는 어렵지만, 비관적 시나리오보다는 낫게 흘러가는 한국 사회 14 카르스 24/06/03 3090 11
1397 기타트라우마와의 공존 9 골든햄스 24/05/31 1938 23
1396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2) 18 삼유인생 24/05/29 3092 29
1395 정치/사회한국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1) 8 삼유인생 24/05/20 2658 29
1394 일상/생각삽자루를 추모하며 4 danielbard 24/05/13 2064 29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