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17/08/22 00:07:54 |
Name | 코리몬테아스 |
Subject | 브로드웨이와 인종주의 - 흑인 배우가 앙졸라스를 할 때 |
2014년 레미제라블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공연에서 Kyle Scatliffe 라는 흑인 배우가 앙졸라스 역을 맡았습니다. 앙졸라스는 레 미제라블의 상징적인 캐릭터 중 하나고, 혁명운동가의 이데아 같은 존재죠. 그리고 백인입니다. 하지만, 브로드웨이에서 캐릭터의 인종과 연기하는 배우의 인종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이전에도 있었고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죠. 브로드웨이의 colorblind(인종불문주의)는 문제삼기에는 너무 멀리 왔습니다. 브로드웨이에서 배역의 인종과 배우의 인종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브로드웨이 연극의 상당 부분은 서구 고전(그것도 특히 영국과 미국)을 각색한 것이 차지하고 특히 대형극의 상당수는 1970년대 이전의 작품들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브로드웨이의 프로덕션 회사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하는 대형극의 경우 아직까지도 시대극이 가장 안전하고 인기있기 때문에 이런 전통이 유지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배역의 인종과 배우의 인종을 일치시키려 하면 유색인종에게 주어질 수 있는 역할은 매우 한정적이게 됩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인종차별 논쟁으로 흐르게 되죠. 그런데 캐릭터의 고증을 중요하게 여기는사람이 ‘난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지만, 흑인인 앙졸라스는 인정할 수 없어’ 라는 주장을 한다고 생각해보죠. <“난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닌데 그래도..” 뒤에 오는 문장들은 전부 인종차별주의적 문장이라는 다이어그램> 저런 주장이 위의 그림처럼 인종차별주의적 주장일까요? 실제로 레미제라블 리바이벌의 캐스트가 정해진 이후에 이런 내용의 항의가 프로덕션사에 전달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팬으로서 있을 수도 있는 의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브로드웨이의 환경아래에서 유색인종의 입지를 줄이는 압력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브로드웨이는 그런 논쟁을 하기에는 유색인종 캐스트에 대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저런 항의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럼 25주년 공연은 어떻게 보셨어요? 에포닌이나 팡틴이 리 살롱가인건 괜찮나요?”라고 대답을 돌려주는 걸 선호합니다. 승리의 역사는 때로는 논리보다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도구거든요. <레 미제라블 25주년 “다른 사람한테 말하기 무서운데..작품의 역사적 배경과 어울리지 않는, 인종불문주의 캐스팅이 싫어. 그래서 레 미제라블 25주년 공연의 자베르가 정말 싫었어.”
<1993년 레 미제라블에서 에포닌 역할을 맡아 인종의 벽을 허문 캐스팅을 이뤄낸 걸로 아직까지 회자되는 리 살롱가의 에포닌. 유색인종에게 영감을 준 예술인 리스트를 뽑으면 항상 들어가죠.> “리 살롱가의 에포닌을 변호하던 논리 중 하나는 [그녀는 충분히 백인처럼 보여요. 뭐가 문제죠?] 였어요. [유색인종이어도 괜찮아.]보다 더 강력한 변호였던거 같아요.” 이런 선구자적 인물들의 도움으로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서 인종불문주의는 잘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선례가 있다.’는 걸로는 충분하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역사는 순종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고 저변의 논리가 더 중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죠. PC 문화가 만들어낸 잘못된 전통을 이제 뒤집을 때가 왔다면서 카일의 캐스팅을 뒤집으려 하는 사람이 등장한다면 앞선 선구자들은 중요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종불문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캐스팅에 인종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체계적 질문(Systematic questioning)을 해보라고 합니다. A “앙졸라스는 백인이에요. 백인이아닌 앙졸라스는 인정할 수 없어요. 원작(Original)을 중요시 여겨야 한다는 주장은 인종차별이 아닙니다.” B “당신이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면 배우의 피부색은 정체성이 아니라 신체의 특징적 색깔(color)일 뿐이죠? 당신은 캐릭터의 신체적 특징과 배우의 신체적 특징이 맞기를 바랄 뿐인가요?” A “그렇죠” B “그럼 마이클 맥과이어(10주년 공연)의 앙졸라스도 마음에 안드시나요?” A “왜죠?” B “마이클 맥과이어는 백인이라 흰 피부를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그의 머리색은 검은 색이죠. 빅토르 위고는 앙졸라스가 태양처럼 타는 듯한 금발을 가지고 있다고 묘사했고요. 피부색만 맞으면 다른 신체적 특징들은 달라도 되는 건가요? 피부색과 머리색은 무슨 차이가 있죠? 그게 단순한 신체적 특징이 라면서요?” A “19세기 프랑스의 경찰이나 혁명지도자가 흑인일 수는 없어요.” B “19세기 프랑스에선 사람들이 총을 맞은 다음 노래하고 춤추면서 죽어갔나요? 물리법칙을 무시한 괴력을 내는 전과자가 대부호가 되고 시장이 될 수 있고요? 이런 극적이고 픽션적 요소는 수용하면서 인종만은 선택적으로 거부해야 하나요?” A “그걸 다 똑같이 중요시 여겨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B “당신을 인종차별주의자라 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솔직해지세요. 당신은 ‘고증’이 맞지 않는 게 싫은 게 아니죠. ‘피부색에 대한 고증’이 맞지 않는 게 싫은 거죠.” (10주년 공연, 마이클 더글라스의 검은 머리 앙졸라스)
(아랍계 캐나다인 라민 카림루의 25주년 앙졸라스) 위의 체계적 질문들은 인종주의와 그걸 회피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가정들을 깔고 있기 때문에 공감이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 논리(연극에서 피부색의 차이는 다른 신체적 차이만큼 똑같이 사소하고, 피부색에 대한 불평 역시 그만큼 사소해야만 인종주의자가 아니다.)가 얼마나 정밀한지와 관계없이 저 주장들은 브로드웨이에서는 지금까지 강력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공연예술이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사실주의에 대한 요구에서 자유롭다는 점 덕분에 인종불문주의는 빠르게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미스 사이공 크리스와 킴>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인종불문주의가 백인 배역들한테만 선택적으로 작용한다고 불평합니다. 가령 미스 사이공에서 백인 병사인 <유색인종의 비율이 눈에 띄는 해밀턴> 이런 백인 배우들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가장 크게 일었던 건, 뮤지컬 ‘해밀턴’의 2016년 캐스팅 공고 때 였습니다. 해밀턴은 2015년 혜성처럼 등장한 뮤지컬로 독립전쟁 시기 알렉산더 해밀턴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극은 독립전쟁이라는 시대극을 힙합,랩,재즈,블루스 등을 도입하여 풀어냈고, 시대극을 다루고 있음에도 캐스트 중 흑인,라티노,아시안 등 유색인종의 비율이 백인보다 높은 걸로 유명합니다. 인종주의에서 자유로운 뮤지컬이란 찬사를 받는 해밀턴은 이미 토니상을 타기도 했죠. 그런데 작년 프로듀서 측에서 낸 공고문이 이렇게 되어있어 논란이 일었습니다.
“비-백인의 20~30대 남녀 배우를 찾고 있습니다.” 이는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전미배우협회는 이 캐스팅 공고문에 대해 프로덕션 사에 대해 항의했습니다. ‘Non-‘ 뒤에 인종적 특징(ethnic characteristic)을 붙이는 공고는 배우협회에서 금지하는 것이고, 이는 인종주의에 해당한다는 항의였죠. 해밀턴 측은 이에 대해 공고 전에 이미 배우협회와 사전협의를 끝마친 상태였고 문제없는 걸로 합의 본 일에 대해 다른 말을 한다고 반격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비백인 배역들을 찾는 공고를 낼 것이란 것을 사전에 타진했는데 전미배우협회측에서는 설마 저런 언어로 공고를 낼 줄은 몰랐던 사건으로 결론났습니다. 최종적으로 저 공고를 통한 캐스팅은 성사되었고 해밀턴은 성황리에 2017년 투어를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전미배우협회와 해밀턴 프로덕션 사이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었는 지와 무관하게 이 캐스팅 공고에 대한 찬반양론은 공연계를 넘어서도 뜨거웠습니다. 사실 해밀턴의 공고자체는 인종불문주의와는 조금 다른 영역에 있습니다. 프로덕션에서 특정 나이 인종 성별 키 등을 고려하여 캐스팅 하는 것 자체는 자유와 재량의 영역입니다. 인종불문주의 캐스팅을 옹호한다 해서 인종적합주의 캐스팅에 반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흑인 배우가 앙졸라스는 맡는 데 문제없다고 생각하지만, 백인배우만을 캐스팅하는 것 역시 프로덕션의 자유라고 생각해.’ 자체는 일단 양립가능한 주장입니다. ‘can’과 ‘should’는 동의어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런 모호한 지점을 완전히 이해하는 인종불문주의자들과 역인종주의에대한 성토는 많지 않고 이 논쟁은 아주 소모적인 방향으로 서로에게 상처만을 남긴 채 식어버렸습니다. 또 이 문제에서 해밀턴이 역인종주의적 모습을 보이거나 혹은 그렇게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은 행동을 한 것은 사실이기도 하고요. 브로드웨이에서 어떤 피부색의 배우들이 어떤 역할에 캐스팅되냐에 대한 문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미국 사회 전반, 그리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에 쉽게 대비됩니다. 리 살롱가가 에포닌에 캐스팅된 것은 영광의 역사였고 승리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 승리는 평등의 시대로가는 이정표로 빛나고 있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 파편화된 문제들은 과거의 빛을 잃어버린 듯 합니다. 브로드웨이가 진보와 혁신, 자유의 웅변자라고 자처하는 만큼 이런 문제들을 현명하게 해결 함으로서 사회에 모범을 보여주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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