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7/03/14 23:31:36
Name   Zel
Subject   치킨값에 대한 단상..
엊그제 복면가왕을 보다가 배달의 민족 앱으로 처음 배달을 시켜봤습니다. 항상 앱에서 지역 랭킹보고 인터넷에서 전화번호 보고 주문했는데 (앱에 떼인다길래) 엊그젠 너무 너무 귀찮아서.. BBQ 황금올리브를 시켰습니다. 16000원. 제가 미국에 꼴랑 1년 있다 왔지만.. (뭐 쥐쥬래곤은 안합니다) 음 13불에 닭 한마리, 배달 팁도 안줘도 되고, 마트에선 3-4불의 생닭. ㅇㅋ 납득가는 가격. 이런 결론였고 결과물도 훌륭하고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러고 이 사태를 접하게 되었죠.. 아 천원 올리는거, AI 핑계대는거 등등.

예전에 티타임인가 타임라인인가 제가 한번 올린 적이 있는데. 제가 미국에서 제일 감동 받았던 음식은 스테이크도 아니고, 랍스터도 아니고 충무김밥였습니다. 정식 가게도 아니고 한인마트 코너에서 파는 거였어요. 개당 8불 정도 였어요. (정정합니다. 7불였던 듯) 한국 돈으로 만원 (이것도 세금포함 9천원). 한국서야 비싸죠. 근데 그 동네에선 햄버거 다음으로 제일 싼 음식인데.. 그 퀄러티가 쩔었습니다. 밥은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자포니카에, 김도 퀄 좋고, 석박지 큼직큼직.. 결정적으로 오징어가 한국에서 먹던 말라 비틀어져서 수분 하나도 없는 다리 한 두개에 맵기만 더럽게 매운게 아니고, 수분을 충분히 함유하고 있는 말랑말랑하고 양념도 맵지 않은... 아 이거구나 싶더라고요. 한국에서 충무김밥 먹으면 어떻습니까? 맨날 밥은 많고 오징어는 적으니 어떻게든 밥이랑 오징어랑 맞춰 먹을려고 별 짓을 다하지 않습니까. 여기선 오징어가 남아요. 혹시 샌프나 베이가시는데 궁금하시면 쪽지주세요. 11시에 마트에 나오는데 1시 전에 다 팔립니다. 한국에서의 이 4-5천원의 가격 캡을 뛰어 넘으니 이 정도가 나오는구나 싶더라고요. 지금도 그 정도 하는 한국가게가 주변에 있다면 기꺼이 만원을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다. 제가 좀 벌거든요 ㅋ.

다시 닭값으로 돌아간다면. 우려하시는 분들의 의견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독과점은 아니지만 시장 선두주자고, 오르면 같이 오를거고, 서민물가에 영향이 오고 기타등등. 가격이 오른다고 퀄이 따라오는것도 아니고 금방 창렬해질꺼고.. 근데 저는 이런 도그마가 좀 싫어요. 쉐프가 만드는 배달통닭도 가능하고, 익스트라버진 올리브유가 아닌 손으로 짠 참기름으로 튀겨도 좋고..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고 거기에 합당한 가격을 받고, 각자 '형편대로' 먹으면 되는데 그게 안되는.

또 이해가는게 물론 있죠. 말로만 그렇게 하고 사기치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거품 붙고. 어쩌고 저쩌고. 여기에 부족한건 사실 '신뢰' 이고 '응징' 인거죠. 좋게 만들었다 라는 신뢰가 없고, 사기 쳤을때 징벌적 배상이나 개인적인 손해배상 청구가 사실상 안되는 시스템에선 사기꾼만 남는 장사인. 이해가 갑니다. 이런 전제가 없는 상태에서는 모두가 하향평준화로 갈 수 밖에 없겠죠.

5공떄였나 노태우때였나.. 라면 양사가 고급라면을 준비했었습니다. 개당 500원/ 천원. 신라면이 200원, 안성탕면이 120원 하던 시절입니다. 라면 회사들은 그런 주장을 폈어요. '더이상 라면은 한끼를 때우는 불량 식품이 아니다. 충분한 요리가 될 수 있다.' 물론 회사들이야 명분이 그렇고 주 목적은 이윤창출이겠지만 이거야 말로 자본주의에서 익스큐스 되는거 아닙니까? 군사정권과 그 앞잡이였던 언론들이 개패듯이 팼어요. '아니 서민의 먹거리인 라면이 천원이 왠말이냐?' 그 당시 짜장면이 천원였을꺼에요. 그래서 라면 양사가 출시를 다 포기해서 저희는 신라면 안성탕면 삼양라면만 줄기차게 먹었죠. 30년이 지나도 똑같은게 답답함을 느낍니다. 아 진짜 촌스러워요. 군사정권의 마지막 끝장을 찍은 이 시점에서 웬 데자뷰입니까? 라면은 독과점이기나 하지.. 그러고 세무조사할려는게 잘했다는 평가를 들으면 진짜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한국에서 외식문화에서 이를 탈피한건 스시가 유일해 보입니다. 1인당 몇천원 부터 코지마 같은 30여만원을 넘어서는. 이게 서민음식도 아니고, 일본음식이다 보니 가능한 면도 있겠지만 이런 다양한 스펙트럼을.. 한식에서도, 치킨에서도 보고 싶습니다. 그러고 각자가 생각하는 합리적 가격에 지출하는거. 망상일까나요.

세줄요약.

1. 비싸니깐 맛있더라.
2. 맛있는거 먹고싶다.
3. 애취급 하지마라.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7-03-27 07:59)
* 관리사유 : 추천 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0
  • 제가 좀 벌거든요 ㅋ 라는 패기넘치는 문장을 보고 어떻게 추천을 아니 누를 수 있단 말입니까?
  • 닭은 음메음메하고 울지요.
  • 시스템이 후졌어요..ㅠㅠ
  • 본문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05 일상/생각어른들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는 착한 사람 되지 마세요. 27 Schweigen 20/09/07 8826 70
1359 일상/생각한국사회에서의 예의바름이란 18 커피를줄이자 24/01/27 8819 3
582 과학국뽕론 44 기아트윈스 18/01/25 8818 36
354 기타우리 아들의 신박한 표현들 29 Toby 17/01/25 8815 11
511 체육/스포츠타이거! 타이거! : 게나디 골로프킨-사울 카넬로 알바레즈 전에 대해 19 Danial Plainview 17/09/16 8814 17
228 역사왜 사계절이 뚜렷하면 좋은 나라일까. 43 기아트윈스 16/07/05 8801 5
478 일상/생각... 37 켈로그김 17/07/21 8793 21
696 역사고대 전투와 전쟁 이야기 (2) 3 기쁨평안 18/09/13 8788 9
332 영화2016년 1년 결산을 해봤습니다. 추천작 15개. 25 구밀복검 16/12/28 8781 4
999 정치/사회섹슈얼리티 시리즈 (7) - 마이 리틀 섹시 포니 28 호라타래 20/08/18 8776 25
361 꿀팁/강좌사진찍으러 갈까요? 22 사슴도치 17/02/07 8755 25
393 문학채식주의자 - 90년대 이후 국내 여성 문학 속 일련의 작품군에 대한 단상 48 팟저 17/03/21 8736 14
921 의료/건강'코로나19'라는 이름이 구린 이유 29 Zel 20/02/14 8729 14
614 정치/사회슬라보예 지젝과 정치적 올바름 17 Eneloop 18/04/10 8727 17
85 과학불멸의 세포 17 모모스 15/10/09 8727 10
386 일상/생각치킨값에 대한 단상.. 76 Zel 17/03/14 8720 10
713 일상/생각햄 버터 샌드위치 30 풀잎 18/10/13 8712 24
717 철학/종교은탄환의 딜레마 15 메아리 18/10/16 8710 24
656 꿀팁/강좌고부갈등을 해결해보자 - 희망편 40 기아트윈스 18/07/02 8704 56
980 일상/생각40대 부부의 9급 공무원 도전기 36 4월이야기 20/07/08 8703 51
742 철학/종교인생은 아름다워 22 기아트윈스 18/12/08 8690 50
951 일상/생각돈으로 헌신에 감사 표하기 28 구밀복검 20/04/22 8687 25
162 철학/종교매너의 진화 11 눈부심 16/02/28 8684 7
1068 일상/생각제조업(일부)에서의 여성차별 71 Picard 21/03/12 8677 16
225 요리/음식아빠요리 만들기 - 스테이크를 맛있게 굽기 위해 필요한 도구 24 졸려졸려 16/06/29 8655 5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