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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9/27 17:21:56
Name   기아트윈스
Subject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씨 만난 썰
보고드립니다. 

약속했던대로 데보라 스미스씨를 만나고 왔어용.


행사란 게 대단한 건 아니고, 그저 저희 과 건물의 작은 회의실에서 13~5명이서 둘러 앉아서 문제의 책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어요. 북토크라나. 전 데보라가 무슨 발표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그냥 다 같이 책이야기만 하더라구요. 전.... 문제의 책을... [안] 읽고 가서... 읽은 척 하느라 진땀을 뺐지요 =_=

현장엔 의외로 한국인 수가 적었고 (4명?) 그나마도 대부분 흐콰 잉화(anglicised)가 상당히 진행된 분들이라 다행히도 팍지쏭을 아느냐든가 킴츼를 좋아하느냐든가, 한국인이 노벨 문학상을 받을 가능성을 알려달라든가 하는 사상검증성(?) 질문은 안나왔어요.

데보라는 전형적인 새침한 영국인 느낌이었어요. 아 이걸 뭐라 표현을 못하겠는데 영국인 군상 중에 되게 내성적이고 새침새침한 타입이 있어요. 데보라는 딱 그 타입의 화신 같은 느낌. 게다가 약간 긴장했는지 1시간 30분간 계속 자기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비비 꼬았지요. 덕분에 정면에 앉은 저도 1시간 30분간 계속 그게 신경이 쓰여서 스크류바가 된 기분을 느꼈어요.


1. 번역할 책을 어떻게 고르는가.

데보라는 잉국 문학계 입장에서 보았을 때 굉장히 낯선 언어권에서 책을 찝어왔기 때문에 자기가 번역할 책을 자기가 고를 수 있었대요. 불어나 독어 같은 경우는 국제에이젼트들이 쫙 확립되어있어서 대부분 출판사에서 번역할 책을 고르고 역자를 찾아서 계약한대요. 자기는 그냥 한국의 "스테디 셀러" 코너에 있던 이 책을 읽어보고 느낌이 좋아서 했다고.. 또 번역 시작 전에 확인해보니 <채식주의자>가 이미 중국/일본/베트남 등지에 번역출간되었을 뿐더러 심지어 폴란드/아르헨티나에서도 출간되어있었대요. 그리고 대개 좋은 평가를 받았구요. 그래서 해도 괜찮겠구나 생각했다고 해요.

그 외에 배수아, 안도현 같은 분들 작품도 번역한 모양인데 안도현의 경우는 이거 좀 해달라고 의뢰가 들어와서 한 거라고 해요.


2. 저자와의 컨택은 얼마나 자주?

채식주의자의 경우는 초고가 거의 다 되고 나서야 한강씨랑 컨택이 됐대요. 한강씨가 번역본을 다 읽어보고 몇 군대 의미나 뉘앙스 문제에 대해 질문하고 살짝 수정했던 걸 제외하곤 별다른 터치(?) 같은 건 없었다고 해요. 역자로서 원저자와 컨택하는 게 끔찍한 일인 경우가 종종 있는데 다행히도 한강씨는 매우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또 최근에 5.18을 소재로 한 한강씨의 작품인 <소년이 온다>를 영문명 <휴먼 액츠(Human Acts)> 로 출간했는데 이거 번역할 때는 시작부터 저자와 계속 컨택하면서 작업해서 약간 더 빡쎘다고 했구요.


3. 번역할 때 한국적인 소재나 맥락을 처리하는 법에 대하여.

한 질문자가  <더베지터리안(The Vegetarian)>에서 한국적인 특수 소재나 소품들이 뒤로 물러서는 듯한 인상을 받았는데 의도한거냐고 했어요. 데보라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했구요. 자기가 보기엔 <채식주의자>는 매우 보편적(universal)인 이야기여서 한국적 맥락 밖에서도 얼마든지 읽고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라 그런 인상을 받은게 아닌지 되물었어요.

하지만 근간인 <휴먼 액츠(Human Acts)>  는 광주사태라는 매우 특수하고 구체적인 역사경험을 배경에 깔고 있으며 전라도 방언과 서울 방언 사이의 느낌적인 느낌 같은 차이를 살려야 해서 조금 더 힘들었대요. 이건 "맨부커 수상자 한강의 근간"이라는 마케팅 포인트가 없었다면 영미권 독자들이 읽다가 어렵고 낯설어서 도망쳤을지도 모른대요.

여기서 자연스럽게 방언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어요. 누군가가 한-일 간에 번역을 할경우 영남방언을 간사이벤으로, 간사이벤을 영남방언으로 번역하는 경향을 언급하면서 혹시 너도 그런 방식에 찬성하느냐구 물었지요.

데보라는 한-일 간엔 그게 어떻게 가능할런지는 몰라도 자기가 보기에 한-영 간엔 안 될 것 같았대요. 80년대 한국 농민이 구수한 뉴카슬 억양을 쓰는 걸로 묘사하면 독자들이 다들 확 깨버릴 거래요. 그래서 자기는 그냥 말의 톤에 차이를 줬대요. 작중에서 전라도 방언은 가족의 언어, 친밀한 언어요 서울 방언은 포멀한 언어래요. 그래서 전라도 방언은 일부러 온정적인 구어체 (warm and colloquial)로 했다고 합니다.


4. 상 받아서 좋아?

사실 수상 유무와 무관하게 책은 책이고 그 가치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 지는 않고 많이 팔려서 기분 좋대요 ㅎㅎ

얼마나 팔렸냐니까 정확한 판매부수는 연말에 통장에 찍혀봐야 안대요. 출판사에 따르면 초판을 2천쇄였나 2천5백쇄 정도만 찍었는데 수상소식 듣자마자 바로 6만부를 더찍었대요. 열라 부러운 것..


5. 독자들의 반응은?

최초의 리뷰는 이 책을 한국적 특성(Koreanness) 속에서 파악하려는 거였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특히 맨부커 수상 이후엔 그런 리뷰들을 공박하면서 보편주의 (Universalism)에 가까운 리뷰가 많이 나왔대요. 전부다 알진 못하지만 영국 독자들은 대개 페미니즘 소설로 받아들인대요. 미국은... 아시잖아요 걔들이 좀 피상적(superficial)인거 (좌중 낄낄낄). 미국에서 나온 광고문구, 서문(preamble) 같은 거 보면 파인다이닝(Fine dining) 이라느니 글루텐프리 컵케잌(Glutenfree cupcake) 라느니... (좌중 깔깔깔 아이고 배야).

그 외엔 작중 주인공의 행보가 약간 수동적인데,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싸돌아다니는 영미식 주인공관(agency)에 익숙한 독자들이 좀 답답해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대요. 특히 결말에 대해선 이렇게 끝나버리면 안 될 것 같은데 후속작 없냐고 물어온 사람도 있었구요.


6. 왜 한국이었는지

한국 정부/민간 단체에서 펀딩을 많이 해줘서 -_-;; 또 우연히 2012년 런던 한국 북페어 같은 데 갔다가 붙잡혀서;;


7. 한국어 배울 때 어려웠던 경험에 대해

자긴 심지어 지금도 한국어 회화는 못한대요. 자기한테 이건 번역용 언어고 그래서 딱 그만큼이라고 합니다. 얼마후 한강씨와 같이 미국 어디에 초청받아서 가게 되었는데 주최측에서 자기한테 한강씨 통역을 부탁한다고해서 요즘 걱정이 많대요.


8. 일부러 여성 작가들만 골랐나?

꼭 그런 건 아니래요. 그냥 최근 한국 문단이 여성작가 강세가 아닌가 싶대요. 이상문학상 등 대개의 문학상 수상자를 보면 여성이 더 많다는 인상을 받았고, 특히 현재 한국 문학계의 가장 큰 특징인 단편(Short stories)을 여성들이 잘 써내고 있어서 그런가 어떤가 모르겠대요.

일전에 한국에 갔을 때 문학동네에서 낸 20세기 한국문학선 같은 걸 봤는데 책 측면에 저자 얼굴이 주루룩 박혀있었대요. 쭉 보니 다 남자 얼굴만 나오다가 여자 하나 쏙 나오고 (팍굥리) 그런 식이더래요. 그래서 아 한국 문단에서 여성 강세는 최근 일이구나 하는 걸 알았다고..


9. 좋아하는 영미 작가나 작풍은?

버지니아 울프, 모비딕. 생각해보니 자기는 번역문학을 더 많이 읽고 자랐던 것 같대요. 요즘 작가 중에는 특별히 좋아하는 이가 별로 없대요. <위대한 유산> 같은 건 좋았는데 다른 디킨슨 작품은 싫어하고.




총평:

북토크가 끝난 후 저녁식사자리가 예약되어있었는데 데보라는 다른 일이 있다고 가버렸어요. 무슨 일인가하니 마침 오늘 내일 양일간 요 근처에서 세계한류학회 같은 게 열린대요. 그래서 거기 가서 뭔가 해야한다고 총총 사라졌어요.

나머지 인원들이 모여서 저녁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번역자가 존중받는 시대가 온 건 좋긴 한데 과연 이정도로 존중받을 정도인지 의문스럽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한 분이 "내 학부시절 지도교수가 나츠메 소세키의 노벨상 수상작 번역자셨어. 하지만 그 분 이름이 뭐시깽인지 아무도 모를 거야. 당시엔 번역자가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다고 그분이 막 열내고 그랬었는데 요즘은 이렇게 슈퍼스타 취급을 받다니 놀랍네. 역자를 초대해서 북토크도 하고. 솔직히 난 아직 적응이 안 돼"

ㅇㅇ 모두 동의했어요. 하지만 뭐 데보라 덕분에 한국 국립도서관에서 넉넉히 지원해준 돈으로 저녁밥 맛있게 먹었으니 개이득. 다들 고기를 배불리 먹고 웃으며 해산했답니다.


(1차 오탈자 수정)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10-10 10:54)
* 관리사유 : 추천 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
  • 귀한 기회를 홍차넷 유저들과 나눴다니.. 추천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 배불리 고기 드셔서 추천합니다.
  • 잘 봤습니다. 추천!


Beer Inside
채식주의자는 읽지도 않고 고기 드셨군요. :-)
기아트윈스
허허허...

데보라가 수동적 주인공관에 대한 이야길 하다가 저를 똭 쳐다보면서 "네가 보기에도 그 점이 거슬렸니" 하는 거예요. 전 인상 팍 쓰고 심각한척 하면서

"아니, 나에겐 전혀 거슬리지 않았어. 하지만 내가 한국인이어서 그랬는지도 몰라. 넌 어땠니?"

하고 능청스럽게 옆자리에 앉은 이탈리아 친구에게 공을 넘겼지요. 그 친구도

"나도 아무렇지 않게 잘 읽었지" 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식사자리에서 물어보니 걔도 안 읽어봤대요 ㅋㅋㅋㅋㅋㅋ
보이차
푸흐흐흐흐크크
라이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생기발랄
으헝헝 책임지세요. 방심하면서 댓글보다가 뻥 터져서 마시는 탄산수 맥북에 뿜었어요 ㅠㅠ
기아트윈스
애플스토어가 생긴다니 거기 수리 맡기시는 걸로... (죄송)
ㅋㅋㅋㅋㅋ ㅋㅋㅋ 아 교활한 유학생들
레이드
ㅋㅋㅋㅋㅋㅋㅋ
재밌게 읽었습니다 마치 제가 현장에 있었던 것 같네요 ㅎㅎ
기아트윈스
현장감이 잘 전달됐다니 기쁩니다 ㅎㅎ
잘읽었습니다! 제가 부탁드린 질문이 1번이군요 흐흐
기아트윈스
ㅎㅎ 기회가 없을 줄 알았는데 질의응답만 계속되는 북토크라서 제게도 턴이 많이 왔어용.
Ben사랑
번역자는 존중받을 만 합니다..제가 좋아하는 교수님이 번역을 많이 하셔서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거긴 한데.. 제2의 창작 수준이더군요. 단순히 글자 대 글자를 옮기는 수준을 뛰어넘더군요. 물론 그 존중받을 정도는 당연히 원 저자보다 훨씬 못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요.;;
기아트윈스
물론이죠. 십분 동의합니다.
Ben사랑
근데 그 분이 지금은 안 그러시는데,
처음 어떤 책을 번역하실 때 관련 배경지식을 공부하신다고 10년인가 15년인가를 써버리셔서 ㅡ.ㅡ 그 책의 발매시기가 극히 늦어졌죠.

원래 과학철학자이신데, 이를 뇌과학과 접목시키는 책인가봐요. 그래서 이 책을 번역하기 위해 뇌과학을 공부하시느라..;; 이젠 뇌과학책 번역할 때 기본 지식이 있어서 그렇게는 안 하시죠.
감사감사... 현장 묘사를 잘 해주셔서 막 실감나요. >.<
데보라 씨의 대답에 대해 수다를 얹어보고 싶은 게 몇 가지 있는디... 좀 이따 또 올게요.
기아트윈스
퇴근하고 다시오셔요 ㅎㅎ
데보라 스미스를 보면 되게 재미있어요. 저나 제 주변의 몇몇 사람들이 겪었던 내적 경험들을 그대로 가지고, 외적으로도 놀랄 만큼 성공한 결과로 가져간 사람이에요. 번역의 원칙이라든지 외국어 (문학) 텍스트를 읽는 관점 같은 건 거의 정석에 가까워요. 문제는... 역시 한국어 실력.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사실 알려진 것과 다르게 문체적으로 대단한 작품은 아니에요. 이 정도 분량의 소설이면 그 가치가 거의 한두 페이지 내에서 결정돼요. 범상하고 지루한 캐릭터와 문체. 평론가 조재룡 씨가 그랬는데 ... 더 보기
데보라 스미스를 보면 되게 재미있어요. 저나 제 주변의 몇몇 사람들이 겪었던 내적 경험들을 그대로 가지고, 외적으로도 놀랄 만큼 성공한 결과로 가져간 사람이에요. 번역의 원칙이라든지 외국어 (문학) 텍스트를 읽는 관점 같은 건 거의 정석에 가까워요. 문제는... 역시 한국어 실력.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사실 알려진 것과 다르게 문체적으로 대단한 작품은 아니에요. 이 정도 분량의 소설이면 그 가치가 거의 한두 페이지 내에서 결정돼요. 범상하고 지루한 캐릭터와 문체. 평론가 조재룡 씨가 그랬는데 [한강 텍스트에서 보이는 얼마간의 진부함도 번역을 거치며 살아났다]고. 저도 거기에 동의할 수밖에 없고, 영어 번역본을 한두 페이지 읽어보고는 생각했어요.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에 오역이 많다고 비판하는 블로그들이 있었는데, 오히려 제겐 '한강이 스미스를 오역한 것'이라고 말해야 정당할 것처럼 느껴진다고요. 최소한 제가 읽어본 초반 몇 페이지만 보면 스미스의 <The Vegetarian>이 작품으로서 훨씬 낫고, 훨씬 더 지적으로 생동감 있게 전달돼요. 그 필력이 어디까지 유지되었을지는 뒷부분을 더 읽어봐야 알겠죠. 물론 저의 미흡한 영어 실력 때문에 오판했을 수도 있지만...

데보라가 왜 한강을 선택했고 채식주의자를 선택했는지? 저는 경험상, 그 작품의 수준이 데보라의 한국어 수준에 맞았기 때문에, 라고 생각해요. 유명한 소설인데 서점에서 서서 펼쳐 읽었을 때 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가 몇 개 없고 꽤 잘 읽힌다, 그러면 초보 번역가는 자신감이 생겨요. 만일 그가 한 10년 정도 한국어를 배우고 그 많은 오역들을 피해갈 정도의 수준이 됐다면 훨씬 야심찬 선택을, 더 어려운 작품을 골랐을지도 모르죠. 사실 데보라가 보여준 지금까지의 행보는 전통적인 문학 연구자나 애호가라기보단 블루오션을 발견한 영민한 사업자 같은 것이었어요. 굳이 한국 소설이 아니라도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 어느 나라에 가든 괜찮다고 생각하는 모험가 같은 느낌. 결코 저는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고, 앞으로도 즐겁게 지켜볼 거 같아요. 본인도 꽤 솔직한 편이고요.
기아트윈스
맞아요. 이미 본인이 출판사를 설립한데다 그 출판사의 목표가 영미권에 잘 알려지지 않은 언어권의 작품을 찾아 번역한다는 거니(한국 포함) 그 사업가로서의 수완을 알 만해요.

제가 <채식주의자>나 <The Vegetarian>이나 둘 다 안읽어봐서 문체 부분은 뭐라고 할 말이 없네요. 안 읽어봤다는 걸 위에서 미리 밝히지 않았으면 여기서도 심각한 어투로 뭔가 아는척 읊조릴 수 있었을 텐데 아쉽군요 ㅋㅋ

데보라가 자기가 왜 <채식주의자>를 골랐는지에 대해 말할 때 받아적은 노트를 그대로 옮겨드... 더 보기
맞아요. 이미 본인이 출판사를 설립한데다 그 출판사의 목표가 영미권에 잘 알려지지 않은 언어권의 작품을 찾아 번역한다는 거니(한국 포함) 그 사업가로서의 수완을 알 만해요.

제가 <채식주의자>나 <The Vegetarian>이나 둘 다 안읽어봐서 문체 부분은 뭐라고 할 말이 없네요. 안 읽어봤다는 걸 위에서 미리 밝히지 않았으면 여기서도 심각한 어투로 뭔가 아는척 읊조릴 수 있었을 텐데 아쉽군요 ㅋㅋ

데보라가 자기가 왜 <채식주의자>를 골랐는지에 대해 말할 때 받아적은 노트를 그대로 옮겨드리자면,

"Excellent. what is the point of translation. there's no point in publishing already available. felt new. felt different. it was never a best seller. but a steady seller. 한강 was not a part of any particular trend. a little bit old fashioned. classical style, so called. witty. postmodern elements. "

위의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 거예요. 공개된 자리고, 이미 지난 과거의 순간을 여러번 이런 자리에서 설명하느라 자기도 모르게 잘 정리되고 약간씩 수정된 설명일 테니까요. 하지만 a little bit old fashioned, classical style. 이라고 한 건 아마 정말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 그리고 제가 노트테이킹은 안했지만 분명 was not too experimental 같은 말도 했어요. 이렇게 보면 Moira님 말씀처럼 딱 당시 본인의 한국어 구사수준에 맞았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 번역했던 게 아닌가 싶네요 ㅎ
취재노트까지 오픈해 주시고 넘 고마워요. 그 동네에 유명인사가 자주 오면 좋겠당 ㅎ
알료사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전문적인 식견은 없지만 그래도 소설 많이 좋아하는 입장에서 채식주의자 문체는 최소 중상타 이상이라고 봐요. 유튜브에서 핸드폰 리뷰하는 언더케이진가 하는 사람이 갤럭시S7 리뷰하면서 그러더라구요. 평범하고 무난하지만 어디 한군데 흠잡을곳 없고 전반적으로 뛰어난데 별거 아닌거 같아도 그렇게 만드는게 정말 어렵고 사용자 입장에서 그만한 폰이 없다고. 제가 소설을 보는 관점도 비슷합니다. 우와 이 작가 문장 개쩌는데!! 하는 작품도 있지만 특별한 포인트 없이 그냥저냥 읽히는데 다 읽고 나면 그 인상이 지워지지 않... 더 보기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전문적인 식견은 없지만 그래도 소설 많이 좋아하는 입장에서 채식주의자 문체는 최소 중상타 이상이라고 봐요. 유튜브에서 핸드폰 리뷰하는 언더케이진가 하는 사람이 갤럭시S7 리뷰하면서 그러더라구요. 평범하고 무난하지만 어디 한군데 흠잡을곳 없고 전반적으로 뛰어난데 별거 아닌거 같아도 그렇게 만드는게 정말 어렵고 사용자 입장에서 그만한 폰이 없다고. 제가 소설을 보는 관점도 비슷합니다. 우와 이 작가 문장 개쩌는데!! 하는 작품도 있지만 특별한 포인트 없이 그냥저냥 읽히는데 다 읽고 나면 그 인상이 지워지지 않고 되돌아보았을 때 그 힘이 적잖이 문체에서 나왔다는걸 느낄때가 있어요.

데보라의 한국어 실력에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맞은게 아니라, 데보라의 한국어 실력으로 읽기에도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임팩트있게 다가갈 정도로 채식주의자의 문체가 훌륭했던 겁니다. 마치 Moria님의 미흡한 영어 실력으로도 데보라의 The Vegetarian을 지적으로 생동감있게 읽을 수 있었듯이요.(죄송합니다ㅜㅠ 겸양으로 쓰신 표현일 뿐 제가 평가할 영어 실력이 아닌데...ㅜㅠ 저는 영문판 못읽습니다ㅜㅠ)

데보라가 한국어 공부를 더 해서 읽어야 하는 더 어려운 한국어 소설은,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세계무대에서 안통할거라 봅니다. 최소한 저는 문학에 한해서는 그런 글 좋게 보지 않아요.

아, 데보라 오역 논란에 대해서는 저도 데보라 편입니다. 원래 번역은 창작이니까요.

데보라가 블루오션을 잘 발견한건 맞는데 한국 소설은 이제 데보라에게 문학 연구자나 애호가의 면모를 보일 수 있게 바꿔줄 겁니다. 한국 소설에는 그만한 힘이 있어요. 왜냐하면 한국인들이 그만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오랜 외침에 시달려온 한과 식민통치에 굴하지 않았던 정신, 세상을 둘로 나누었던 공산진영과 자본주의진영의 군대가 한곳에 몰려 피를 뿌렸던 땅,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이 단기간에 진행된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정보화... 20세기의 한국문학은 너무 그 민족주의적이고 운동권 성격인 부분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어느정도 먹고 사는 문제와 정치적 투쟁에서 벗어나게 된(물론 상대적으로... 지금도 문제 많지만 아무렴 독재시절만 하겠습니까...) 2000년대 이후에는 그동안의 포텐이 터질 때가 됐다고 보는겁니다. 문단중심으로 돌아가는 데에서 발생하는 고질적인 병패들과 낮은 독서율 같은 것을 절망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앞서 이야기한 그런 장점 쪽에 더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한국문학 구리다 미문만 쓰려고 한다 루저이야기만 쓴다 읽을거 없다 그러는데 저도 당연히 도스토예프스키 빅토르위고 셰익스피어 피츠제럴드 이런 작가들하고 비교하면 한국소설 읽을거 없죠... 그런데 그건 박지성이 펠레한테 안된다는 얘기랑 똑같은거고 귀욤뮈소 베르베르 코엘류 이런 작가들이랑 비교하면 한국소설이 절대 꿀릴거 없다고 봅니다 ㅎ
Ben사랑
한국문학이 꽤 경쟁력 있는 건가요? 일본문학 등 다른 세계문학에 비해서 한참 뒤진다는 평을 어디서 들어서 걱정이 되었었는데, 그렇지 않나보네요.
알료사
제가 너무 단정적으로 확신에 찬듯한 어투로 댓글을 단거 같네요 ;; 약간 팬심 섞인 개인적인 기대이긴 합니다. 객관적인 경쟁력을 이야기하면 확실히 일본이나 다른 선진국에 못미칠거 같아요.. 저는 잠재력 측면에서 희망적으로 보고 있는데요, 이렇게 오버스러운 댓글을 단건.. 보통 한국소설 읽을거 없다고 이야기하는 네티즌들이나 지인들 보면 정작 그네들이 읽는 그때그때 유행하는 외국 베스트셀러 소설들 보면 뭐야 우리가 꿀릴게 뭐 있어, 이런 생각 들거든요.. 하긴 살만 루슈디나 오르한 파묵 같은 작가들 보면 울나라 아직 멀었네.. 싶기는 ... 더 보기
제가 너무 단정적으로 확신에 찬듯한 어투로 댓글을 단거 같네요 ;; 약간 팬심 섞인 개인적인 기대이긴 합니다. 객관적인 경쟁력을 이야기하면 확실히 일본이나 다른 선진국에 못미칠거 같아요.. 저는 잠재력 측면에서 희망적으로 보고 있는데요, 이렇게 오버스러운 댓글을 단건.. 보통 한국소설 읽을거 없다고 이야기하는 네티즌들이나 지인들 보면 정작 그네들이 읽는 그때그때 유행하는 외국 베스트셀러 소설들 보면 뭐야 우리가 꿀릴게 뭐 있어, 이런 생각 들거든요.. 하긴 살만 루슈디나 오르한 파묵 같은 작가들 보면 울나라 아직 멀었네.. 싶기는 합니다.. ㅜㅠ;;

... 한 2년 전쯤인가 한강씨의 희랍어 시간을 읽고 참 괜찮다.. 생각했었는데 올해 맨부커상 후보 올라간거 보고 에이 설마.. 했어요.. 이상문학상 수상집에서 몽고반점을 읽었는데 별로였거든요.. 그런데 맨부커상 수상 결정된거 알고 흥분되기도 하고 어라 그때 내가 뭘 잘못 읽었나 해서 채식주의자를 사서 읽었는데 몽고반점이 거기서 2부에 해당되고 전체 맥락에서 보니 그때서야 이해가 됐었죠.. 와 우리나라에서도 이정도 소설이 나오는구나, 그래, 그러고보면 괜찮은 작가들 꽤 있지, 하면서 들뜨고 고무됐는데 사람들이 그러는거에요... 그거 상 번역 잘해서 탄거라고.. 데보라 공이 크다고.. 평소에 '원작이 좋으면 번역이 어떻든 어느 나라에서도 좋게 읽힌다. 외국문학이 한국에 들어올때든 한국문학이 외국에 나갈때든'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저는 반감이 생길수밖에 없었죠.. 그러던 차에 데보라 이야기가 나와서 평소 생각을 적어보았는데 너무 확신이 지나쳤네요. 한국소설은 문학상 수상집이나 신인작가들 작품집 정도나 보고 세계문학은 진짜 안읽으면 대화에 못낄거 같은 베스트셀러나 챙겨보지 제가 한국문학의 객관적 경쟁력을 논할 깜냥은 못됩니다 ㅜㅜ 그냥 팬심이죠 뭐.. 그리고 며칠전에 기아트윈스 님께서 써주신 '쓰기 시대'에 대한 글.. 저는 좀 부정적인 댓글을 달긴 했는데 사실 내심으로는 적잖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압도적인 양은 결국 질로 연결될 거라고.. 조아라 같은 웹소설 환경도 긍정적으로 보구요.. 새롭게 도래한 '쓰기 시대'란 결국 그렇게 쓰여진 글을 읽어줄 독자들을 확보했다는 것이고 이것은 곧 읽는 문화도 바꼈다는 거고 이러한 변화는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몇 세대가 지나든 언젠가는 보수적인 기존 문학계에도 영향을 미칠거라 생각합니다. 마치 하루키가 초창기에는 자국 내에서도 평가저하되었지만 지금은 자타공인 유력한 노벨상 후보인 것처럼 꾸준한 대중적 인기와 작가 본인의 노력은 결국에는 권위까지도 얻게 된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놓고 보면 이렇게 새로이 만들어지고 있는 리그에서는 한국이 꽤 앞서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제 아들뻘 세대 이전까지는 문학에서도 한류가 한번은 휘몰아칠거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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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사랑
알료사님 늘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확실히 잠재력은 우리나라가 여러 경험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희망적일 수 있겠네요. 한강씨와 같은 소설가들, 그리고 우리나라의 여러 '쓰기 환경'들이 더 좋은 우리나라 문학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힘을 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소설을 좋아하시는군요. 분명히 최근 발표된 작품들은 저보다 더 많이 읽으셨을 거 같아요. 저는 문학상 수상작품집 같은 것도 안 본 지가 너무 오래 돼서... 기회가 되면 게시판에서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텐데..! (꼬신다)

그런데 음.. 말씀하신 몇몇 부분에서 좀 위화감이 들어요. 우선 출판된 문학작품의 문체를 중상타 이상, 이하,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건 많이 낯설어요. 문학 전문 출판사에서 책으로 만들어져 출판되는 대부분의 소설들은 이미 평론과 독회를 거친 작품들이지요. 아예 기본이 안 되는 작품들은 필터에서 걸러져서 ... 더 보기
한국소설을 좋아하시는군요. 분명히 최근 발표된 작품들은 저보다 더 많이 읽으셨을 거 같아요. 저는 문학상 수상작품집 같은 것도 안 본 지가 너무 오래 돼서... 기회가 되면 게시판에서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텐데..! (꼬신다)

그런데 음.. 말씀하신 몇몇 부분에서 좀 위화감이 들어요. 우선 출판된 문학작품의 문체를 중상타 이상, 이하,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건 많이 낯설어요. 문학 전문 출판사에서 책으로 만들어져 출판되는 대부분의 소설들은 이미 평론과 독회를 거친 작품들이지요. 아예 기본이 안 되는 작품들은 필터에서 걸러져서 시장에 나오지 않잖아요. (물론 이 시장 자체가 지금 너무 작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긴 하지만 일단 그건 넘어가고요.)

이 시장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작가와 작품들은 '누가 누구보다 잘 쓰고 누구보다 못 쓰고' '누구는 별점 4개 누구는 3개' 하는 식의 비평적 평가의 서열관계 안에 놓이지 않아요. 그것이 다른 시장과 다른 예술-비평 시장의 법칙이에요. 만일 공적으로 서열평가가 요구되는 경우가 있다면 책광고를 위해서 정량적 지표로 판매부수 또는 작가의 문학상 수상 경력을 인용하는 경우, 한국문학번역원의 공무원 입장에서 '이 작품은 밀어줘야 한다 왜냐하면 해외경쟁력이 있는 작품이므로. 그 근거는 어쩌구저쩌구...' 하는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경우, 그리고 한정된 작품들 내에서 문학상 수상작을 반드시 결정해야 하는 심사위원들의 경우 정도일까요. '한국 소설에는 힘이 있다' '한국이 꿀릴 거 없다' '한국에도 이 정도 작품은 있다' '세계 무대에서 통한다' 같은 말들은 그런 공적인 포지션에 사람들이 스스로를 이입하면서 하는 말이지요. 저는 저같이 평범한 독자들이 그렇게 스스로의 자의식을 설정하는 것은 위태롭다고 보기 때문에 그런 말을 쓰지 않으려고 해요.

하지만 그런 경우들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개인 단위에서 끊임없이 작품을 평가하고 비교하고 점수를 매기게 되죠. 가치 없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의 본능이잖아요. 그렇게 사람들이 귀한 것과 하찮은 것, 위대한 것과 위험한 것, 영원한 것과 찰나적인 것을 구분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형성되고 연마되는 것이 소위 예술적 '취향'(심미적 판단)이라는 것인데, 이 취향이란 녀석은 자연스럽고 순수한, 서로간에 익스큐즈해야 하는 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라 이미 사회적, 역사적으로 구성된 불순한 산물이에요. 취향은 서로 경쟁하고 서로 비판해야 해요.

정성일 씨가 예전에 그랬는데, '영화평론가가 해야 하는 일은 임권택보다 김기덕이 낫다, 또는 김기덕보다 임권택이 낫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임권택은 임권택이고 김기덕은 김기덕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라고요. (임권택 김기덕 말고 다른 감독일 거 같은데 정확하게 누군지 까먹었네요) 정성일이 '누가 누구보다 낫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평론가는 별점리뷰자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것, 소비자에게 어떤 걸 사고 어떤 걸 피하는 게 좋은지 구매팁을 알려주는 서비스업자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임권택은 임권택이고 김기덕은 김기덕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은 '임권택을 좋아하든 김기덕을 좋아하든 서로 취향을 존중하라'가 아니고, 임권택의 포텐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방식과 김기덕의 포텐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방식은 다르다는 거예요. 그리고 임권택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인가를 놓고 비평가들은 서로 경쟁하는 거죠. 서로의 취향과 세계관을 마구 물고뜯으면서.

저와 알료샤 님의 <채식주의자>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데, 서로가 각자의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고 취향의 경쟁을 하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아요. 그런데 제가 볼 때 알료샤 님이 좀 불리해요. 어떤 대상을 '까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고 까는 방법도 수십 수백 가지지만 '칭찬하는' 좋은 방법을 찾는 것은 너무나 어렵거든요. 공성전으로 치면 '까는 쪽'은 수성이고 '칭찬하는 쪽'은 공성이라서, 최소한 세 배 이상의 병력이나 혁신적인 공성무기가 필요한 듯해요..

좀 길게 쓰게 되었는데, 혹시 기분 상하시는 부분이 있었다면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길 바래요.
무지한 저는 이런 댓글에서 또 배우고 갑니다
알료사
아뇨아뇨;; 이런 답글을 받게 되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읽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말씀하신대로 중상타를 치느니 꿀리지 않는다느니 별점을 세개 주느니 마느니 이런거 정말 어색합니다. 그런 어색함을 Moria님께서 말씀하신 '문체적으로 대단한 작품은 아니다' '범상하고 지루한 캐릭터와 문체' '데보라의 번역본이 작품으로서 훨씬 낫고 / 훨씬 더 지적으로 생동감있게 전달' 이라는 부분에서 저도 똑같이 느꼈습니다. 다른 작품간에 별점을 매겨 비교하는것도 힘든데 다른 언어로 씌여진 같은 작품간에도 그정도의 우열이 매겨진단 말인가... 더 보기
아뇨아뇨;; 이런 답글을 받게 되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읽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말씀하신대로 중상타를 치느니 꿀리지 않는다느니 별점을 세개 주느니 마느니 이런거 정말 어색합니다. 그런 어색함을 Moria님께서 말씀하신 '문체적으로 대단한 작품은 아니다' '범상하고 지루한 캐릭터와 문체' '데보라의 번역본이 작품으로서 훨씬 낫고 / 훨씬 더 지적으로 생동감있게 전달' 이라는 부분에서 저도 똑같이 느꼈습니다. 다른 작품간에 별점을 매겨 비교하는것도 힘든데 다른 언어로 씌여진 같은 작품간에도 그정도의 우열이 매겨진단 말인가... 하구요.

평론가는 별점리뷰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도 공감가네요. 제가 이동진 평론가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동진은 별점을 두개 두개반 주어 놓고서도 그 영화의 장단점을 거의 엄대엄 수준으로 이야기해 주더라구요. 이동진이 별 두개 준거는 다른 평론가들이나 영화 매니아들한텐 거의 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날려 버립니다. 그런데 이동진이 엄대엄으로 이야기해준 덕분에, 아 이 영화는 구리지만 이런 매력도 있겠구나, 근데 그거 내 취향이네, 하고 보아서 완전 마음에 들었던 경우가 많아요. 별점만 보고 쓰레기네 걸러. 했으면 놓쳤을 영화들이죠.

채식주의자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2부 몽고반점의 화자가 영혜가 사는 원룸을 찾아갔는데 전화를 걸어도 초인종을 눌러도 반응이 없고 문은 열려 있길래 그냥 들어가 봅니다. 그런데 때마침 샤워를 마친 영혜가 욕실문을 열고 나옵니다. 이런 흔해빠진 장면이라니요 ! 왜 그런거 있잖습니까 드라마나 애니에서 이성의 집에 들어갔는데 딱 목욕타올로 주요부위만 걸친 이성이 나와서는 서로 꺅꺅거리며 난리나는거요.. ㅋ

ㅋㅋㅋ 이런 장면이 나오네, 하고 웃으며 읽으면서도 이건 다르다. 라고 느꼈습니다. 분명 수도 없이 보아온 장면인데도 그런 장면을 저는 처음 대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아마 영혜가 꺅꺅거리지 않고 담담하게 몸을 가려서일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그걸 문체의 힘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디서 줏어들은거긴 한데 소설 기법에 낯익은 것을 낯설게 느끼도록 하는 기술이 몇가지 있다면서요? 뭐 그런거 아닐까 생각한거죠. 그 장면이 뭐 주제의식이나 독특한 구성 때문에 별달라 보인건 아니었을 테니까요. 바로 이어서 영혜의 알몸을 자세하게 묘사하면서도 성욕과 무관하게 그리는게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부분이 소설 전체에 걸쳐서 여러 군데 있었어요. 어차피 제 주관적인 느낌이고 이 느낌을 문체력 89.7 / 100 이런식으로 측정할 순 없지만요..

어떤 대상을 가장 잘 까는 방법은 '에이 그거 재미 없더라' 하고 무심하게 한마디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훌륭한 무신론자는 '세상에 하느님이 어딨어 보이지도 않는데 ㅋㅋㅋ' 하면서 길거리 선도자들 곁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쳐 버리는 사람이구요. 무슨 리처드 도킨스처럼 '만들어진 신' 같은 종교 비판 서적씩이나 내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신을 부정하려면 이렇게까지 공을 들여야 한다'라고 오히려 신의 존재감을 더 부각시킬 뿐이지요. 채식주의자를 수백억 수천억 가지 방법으로 까든 반대로 그 세 배 이상의 방법으로 찬양하든 각자가 채식주의자를 읽고 느낀 무엇인가는 변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채식주의자를 읽었고, 어떤 사람은 '이게 뭔말이여 원래 상 받는 소설은 이렇게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는거여?' 라면서 책을 덮고, 어떤 사람은 몇날 며칠을 영혜가 고민했던 문제가 바로 내 문제였다면서 피상적인 삶 속에 묻혀 있던 그 문제를 굳이 끄집어내 잠을 못 이룹니다. 저희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장기 입원중이신데 우연히 병동 책꽂이에서 한강 소설 한권을 접하고는 그 이후 일주일에 한번 시내 외출을 나갈때마다 꼭 서점에 들러 다른 한강 소설을 사 가져 들어가고 없는 책이 있으면 서점 주인에게 다음에 이 책좀 준비해 달라고 부탁하곤 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너무 어두운 책만 읽는거 같다고 한마디 하시길래 제가 다른 책들을 사드렸는데 한 두어달 다른 책을 읽는가 싶더니 아무래도 나는 한강거를 읽어야겠다며 제가 회수했던 한강 책들을 다시 다 가져오라 하네요 ㅋ

어렸을 때 어린이 역사책과 위인전에서 양만춘 장군의 안시성 수비에 깊은 감명을 받았더랬습니다. 와.. 저렇게 작은 성에서 저렇게 엄청난 대군을 막아낼 수 있구나..그러는 한편, 저 대군으로 저 작은 성을 못뚫어? 공격이 그렇게 어려운건가? 이런 생각을 막 하다가 결국엔 고구려가 망하자 이제는 거꾸로 아니 그렇게 수비를 잘했는데 망하네.. 수비란거는 이런건가.. 하고 좌절했었죠. 이미 당나라가 고구려 침공을 결정한 순간부터 두 나라간 국력의 격차가 공격과 수비를 어떻게 잘 하느냐로 극복될 수준이 아니었던 거죠.. 채식주의자를 가지고 취향경쟁을 하자면 확실히 저의 공격은 Moira님의 수비를 뚫지 못할 겁니다. 저는 대군을 갖추고 있지도 못한 반면 Moira님의 성은 안시성보다 크고 견고한데다가 양만춘같은 명장이 지키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미 채식주의자가 전 세계 독자들과 평론가들에게 각인시킨 인상은 그런 공수의 대결을 무의미하게 만들기에 충분한거 같아요..

하지만, 그래도 저는 채식주의자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떠듭니다. 왜냐하면 재미있으니까요. 어쩌면 채식주의자라는 소설을 읽는 행위보다 더. 밀란 쿤데라가 그런 소설도 썼잖습니까. 무의미의 축제. 라고 ㅎ

채식주의자가 말하려고 하는건 기아트윈스님의 본 글에도 나와있다시피 아주 보편적인 문제입니다. 세계어디에나 채식주의자는 있고 세계 어디에나 집단주의에 억압받는 소수자는 있습니다. 영국 작가도 쓸 수 있고 프랑스 작가도 쓸 수 있고 남미 작가도 쓸 수 있고 굳이 한강이라는 대한민국 작가가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할 필연성은 없습니다. 그런데 데보라는 블루오션으로서의 한국 문학을 택했다 ??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고 또 실재로 이야기해 왔던, 그래서 범상하고 지루해지기 십상인 이야기. 이건 레드오션인데? 그런데 저는 읽으면서 아 이것이 한국 문학이기 때문에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었겠구나, 싶었어요. 마치 부산행을 보며 국내 관객들은 지겨워했지만 외국에서는 호평을 받았던 것처럼요. 채식주의자를 펼치자 마자 화자가 영혜와 결혼한 이유에 대해서 말하는데, 남자가 그런 이유로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왠지 세상 어디에나 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더 많을거 같았어요. 직장 상사들과의 부부동반 모임이라든가 장모의 생일축하와 집들이를 겸해 이루어진 가족 모임에서도, 외국인이 읽기에 아 우리도 이런거 하지, 그런데 한국에서의 분위기는 이렇구나, 하는, 익숙함과 새로움을 동시에 갖춘 장면들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페미니즘 얘기가 나올만한 부분, 가족 구성원들은 분명 사랑으로 육식을 권하는데, 그 모습은 전형적인 한국형 가부장중심 가정이고 그것이 영혜에겐 억압이 되고 같은 여자인 어머니와 언니까지도 그 가정에 속하려면 영혜 편을 들어줄 수 없는 상황.. 이런 것들이 한국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가족에서 여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떠들어온 서양 사람들에게 '뭐야? 또 그 얘기야? 지겹게.' 라고 할법도 한데, 그 지겨운 주제가 살짝 한국적인 분위기를 가미하니 '그래 아직 우리도 이거 해결 안됐지, 이거 생각해볼만한 문제야' 이렇게 만들어주는거 아닐까. 하고 전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강의 다른 소설인 소년이 온다는 국내 독자들은 '뭐야 또 광주야 이제 그만좀 하자' 이럴수도 있지만 서양사람들이 읽기에는 '이게 무슨 얘기지... 한국 역사 공부해야되나.. 귀찮아.. ' 이렇게 되버릴거 같거든요. 그런 면에서 채식주의자는 성공적이었던거 같아요.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그러다가 2부에서 예술과 외설의 경계 문제로 넘어가는데 동시에 그러면서도 페미니즘과 가부장제의 문제를 놓지 않습니다. 영혜의 형부가 예술가의 안목으로 영혜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가족공동체에서 소외된 영혜를 구해주는듯 하지만 형부는 여전히 기존 질서의 틀 안에서 망설이고 고민끝에 영혜를 안을때의 모습은 여자를 소유하고 싶은 전형적인 남자일 뿐이었습니다. 고기 반찬 내놓으라고 성화였던 영혜 남편과 크게 다를것도 없었죠. 이 몽고반점이 제가 이상문학상 수상집에서 별로였던게, 너무 있을법하지 않은 일이었거든요. 여자 알몸 촬영하는 영상예술가란게 우리 주변에 흔할리도 없고, 옷을 벗고 자기 몸에 식물을 그리고 모르는 남자와 몸을 맞댈 여자는 더더욱 없고, 게다가 마지막에 형부와 그 짓을 하는 지경으로 가면 이건 완전 판타지의 영역이잖아요... 아니 차라리 불륜 스토리로 짜면 그럴수도 있지 싶겠는데.. 여기에 무슨 예술이 어쩌고 하면서 욕정에 불타 떡을 치나 했는데, 이걸 맨부커상 수상 소식을 듣고 1부 채식주의자와 이어서 읽으니끼 아 그래 이러면 얘기가 되지 하고 납득했습니다.. 흔한 배우자 선택 이야기.. 흔한 반찬투정 이야기.. 흔한 직장모임 이야기.. 흔한 가족모임 이야기.. 로 이야기를 풀어가다가 흔하지 않은 예술과와 흔하지 않은 욕정을 연결시키고 3부에서는 기어이 안드로메다로 가죠.. 나무가 되겠다니요.. 나무를 그리는 것도 미친 얘기 같았는데 이제 아예 나무 그 자체가 되겠답니다. 그런데 이 1부 2부 3부 연결이 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와중에도 문득문득 평범하지 않은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그런 생각들은 쓰잘데기 없는 망상 같기도 하고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나 바빠죽겠는데 하며 덮기도 하고 두루뭉실한 것들을 구체적인 언어를 가진 생각으로 다듬는 일이 그 실효성에 비해 지나치게 번거롭기 때문에 그냥 흘려 보내려 하지만 그 구름 같기도 하고 수증기 같기도 한 무언가들은 항상 우리 안에 떠돌고 있어요. 그걸 그냥 방치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도 많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인생이 망가질 정도로 고통스러워하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도 마치 신발 안에 가시가 들어간 것처럼 신경쓰여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통했던' 것은 사람들이 감추고 있지만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했던 그 가시를 찾아주었기 때문입니다. 뽑아주진 못했더라도 최소한 '너 지금 가시 때문에 따끔거리지 않니?'하고 물어봐 주었고, 적지 않은 독자들과 평론가들의 반응은 '어 그래 나 사실 그동안 많이 아팠어 ㅜㅜ' 였던 거죠. 근데 이 가시를 찾는 일이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거든요. 평범한 현실에서 출발해서 구름과 수증기 속으로 들어가 헤매야 하는데 그 작업을 한강이라는 작가가 해냈고 그 과정에 한국적인 무언가가 묻어 있었고 서구의 한 번역가는 지겨운 소수자 떡밥, 지겨운 페미니즘 떡밥이 넘쳐나는 레드 오션의 무대에 색다른 양념을 쳐서 색다른 맛으로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요리사를 한국이라는 블루오션에서 찾아냈다고 생각합니다.

공성은 실패하겠지만 여전히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채식주의자를 읽고 감동하고 있을겁니다. 폰으로 작성중인데 글 날아갈까 무섭네요 ㅋ 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요? 그래도 재미있으니까요... ㅎ 음... 일단 전체복사를 해놔야 되는데...
기아트윈스
두 분 댓글 모두 아주 재밌게 읽었어요. 채식주의자를 읽지 않은 제가 보기에도 흥미진진하네요. 공성전은 넘나 잼나요.
Beer Inside
기아트윈스님도 기아트윈스의 영문 삼국지.... 같은 것을 쓰셔서...

수능필독도서의 반열이 오를 날이 오시기를......
기아트윈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 꿈도 희망도 없어용 ㅜㅜ
소노다 우미
채식주의자와 고기라니.. 채식을 하셨어야죠 ㅠㅠ!
기아트윈스
한강씨 본인도 상금으로 푸짐하게 고기를 먹지 않았을까요 ㅋㅋㅋㅋ
포켓몬사냥꾼
정말 즐겁게 잘읽었어요!

책 제목을 알면, 읽어본 것과 다름없죠.
기아트윈스
암요. 제가 그래서 도서관 가면 열심히 눈팅합니다.
저는 한강의 다른 소설이자 연작같은 작품인
"내 아내의 열매" 를 먼저 읽어서 그런지
주인공 영혜의 수동성이
식물화 되어가는 과정이라 거슬리진 않았어요

그런데 확실히 채식주의자의 결말은
먼저 쓰여진 작품이지만 "내 아내의 열매" 로 이어져야 맞는 것 같아요
결말이 거기서 끝나면 안 되고 후속작을 찾았다는 독자의 의견이 이해가 되네요.

그러고 보니 "내 아내의 열매" 도 번역이 되었으려나??
기아트윈스
글쿤요. 찾아보니 내 아내의 열매는 번역이 안 되어있어요.
사나운나비
와...댓글 수준이....
언능 채식주의자 읽고와야겠어요+ㅅ+
기아트윈스
에...저도.... 음... 책을 어디에 박아뒀더라;;
진지하고 즐겁게 읽은 책이라곤 해리포터 시리즈, 반지의 제왕 시리즈 밖에 없는 이공계인은 그냥 슥 훑었을 뿐인데도 감탄을 하고 갑니다.... 이따가 댓글 다시 샅샅히 읽어보러 와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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