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6/05/07 16:25:11
Name   모모스
Subject   배틀크루저와 자연선택


스타1에 나오는 배틀크루저

배틀크루저 (Battlecruiser) 는 일본식 분류법에 따라 주로 "순양전함"으로 번역됩니다. 전투순양함이라 불러도 무방합니다. 어차피 둘 다 표준어는 아니라고 하네요.  

순양전함은 20세기 초 영국에서 최초로 개념을 정립하고 건조한 전투함으로 당시 주력전투함인 전함 (Battleship) 의 크기에 전함과 같은 무장인 12~14인치 주포로 무장하고 엔진을 더 키우고 선체를 날렵하게 하여 속도를 키운 함정입니다. 즉 속도와 화력을 극대화한 전투함입니다. 영국에서만도 무려 13척이나 건조되었고 일반적으로 3만톤에 이르는 당시 전함과 거의 같은 크기의 전투함이었습니다. 일반순양함보다는 장갑이 두껍지만 전함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약한 장갑이고 빈약한 부포와 대공포 등이 단점이었습니다.

순양전함은 당시엔 획기적인 개념으로 순양함과 구축함으로 이루어진 적의 전위부대를 박살내고 적의 전함이 출연할 때 치고 빠지거나 아군의 전함과 함께 강력한 화력을 바탕으로 적을 분쇄하고 빠른 속도로 적을 추적하는 일까지 맡길 예정이었습니다.  엄청난 활약을 할 거라 믿어졌지만 실망스러운 전과를 내고 사라집니다.

실전에서는 전함처럼 운용되다가 1차 대전 유트란트해전에서 인디패티거블 (HMS Indefatigable, 25노트, 12인치 8문, 배수량 18,500톤 ), 인빈시블 (HMS Invincible, 25.5노트, 12인치 8문, 배수량 17,250 톤), 퀸 메리 (HMS Queen Mary, 28노트, 13.5인치 8문, 배수량 27,200톤 ) 등이  터져나갔고
(당시 주력전함은 20노트안팎의 속도를 냈습니다.)


위 사진처럼 길고 크고 아름다운 역대 최대 순양전함 후드 (HMS Hood, 31노트, 15인치 주포 8문, 배수량 46,680톤) 는 1941년 그 유명한 독일의 최신고속전함 비스마르크호 (30노트, 15인치 8문, 배수량 41,700톤) 의 일격으로 단 8분만에 격침당합니다.

1941년 리펄즈 (HMS Repulse, 30노트, 15인치 주포 6문, 배수량 27,650톤) 는 최신전함 프린스오브웨일즈와 함께 인도양에서 다수의 일본해군항공대 육상공격기 "G3M 넬" 에 의해 격침당합니다. 리펄즈는 해전 중 하늘에서 공격 받아 파괴된 최초의 대형전투함이란 불명예를 안게 됩니다.  

그 밖에도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일본의 공고, 히에이, 하루나, 기리시마도 순양전함입니다. 고증에 맞게 스타에서도 배틀크루저가 잘 터지죠? 아닌가?

순양전함은 당시 복잡한 해전을 극복하기 위해 태어난 다양한 돌연변이 군함 중 하나입니다. 함을 건조하는데 그 시절 기술 수준에 따라 쓸 수 있는 자원은 한계가 있어서 무장, 속도, 방어력에 분배를 해야하는데 순양전함은 거대한 몸에 속도와 공격력을 최대로 집어 넣었지만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했기에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다른 함정보다 손실도 많았습니다. 결국엔 모든 나라에서 새로운 순양전함을 추가로 건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전함과 같이 운영되는 미숙함으로 더욱 많은 손실을 보았고 최종적으로는 고속전함과 전투비행기라는 강력한 경쟁자들과 경쟁을 벌여 자연선택되는 과정을 겪어 멸종하게 되었습니다. 자연계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자원의 배분, 돌연변이, 무한경쟁, 자연선택이 이루어집니다. 속도나 공격력이 가장 강력하다고 그 생물이 항상 살아 남는 것이 아니라  기생충이 많은 환경이라면 기생충에 대한 저항성이 큰 생물이 살아남습니다. (번식방법, 이동성, 먹이, 집단생활 등의 여러 요인들이 있겠네요.) 주어진 자연환경에 맞게 조화로운 생명체가 자연선택되는 것과 순양전함의 예를 비교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와 같은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라는 진화의 원리가 생명체는 물론  배틀크루저 (순양전함) 에도 적용되었습니다.  

스타의 빌드오더와 전략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 쓸 수 있는 자원이 한정되어있어 이를 적절히 배분하여 유닛을 생산하고 전략을 짜서 적과 상대해야 합니다. 무조건 공격적인 빌드를 선택한다고 항상 승리하는 것은 아니죠. 적의 빌드와 전략 등의 자연선택이 강요하는 환경에서 이에 맞게 여러가지 돌연변이 빌드오더와 전략이 나오고 경쟁을 통한 자연선택에 의해 승리할 수 있는 돌연변이 빌드오더와 전략이 선택되고 진화 발전해가는 패턴입니다. 순양전함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승리의 빌드오더와 전략은 항상 빠르고 공격적인 경우만 있는게 아닙니다. 보통 극단적인 빌드보다 조화로운 운영이 훨씬 안정적이고 승률이 높은 경우가 많죠. 우리의 모든 생활 환경에 이와 같은 돌연변이와 경쟁을 통한 자연선택이라는 진화의 원리가 숨어있습니다.


순양전함은 그나마 오래 살아남아 활동했던 편에 속하는 함종입니다. 아예 건조 중에 취소된 불쌍한 돌연변이함들도 있고 순양전함보다도 더 짧게 존재했던 돌연변이함들도 많습니다.

1. 작은 함에 화력과 속도 등을 때려넣었으나 짧게 생존했던 독일의 그라프슈페 (28.5노트, 11인치 6문, 12,100톤) 같은 독일의 포켓전함이 대표적입니다.
2. 전함 2~3개를 만들 수 있는 자원을 때려박아 어마어마하게 큰 전함이 된 일본의 야마토, 무사시 (29노트, 18인치 9문, 71,659톤) 도 짧게 생존하고 사라졌습니다.
3. 순양전함만큼 큰 미국의 알래스카급 대형순양함 (33노트, 12인치 주포 9문, 28,880톤, 대공포 127mm 12문, 40mm 72문, 20mm 다수) 은 단지 고속항공모함을 따라다니는 단순 방공순양함으로 짧게 활약하다가 멸종되었습니다.
4. 카사블랑카급 호위항공모함 (20노트, 5인치주포, 7800톤, 함재기 28대 운용) 은 2차대전 중 무려 50척이나 건조된 항공모함으로 속도도 느리고 장갑은 아예 없지만 상륙부대의 항공지원을 위해 대량 생산되어 전투에 투입된 전투함입니다. 당시 미국의 주력항공모함은 24척이 생산된 에식스급 (32.7노트, 27,500톤, 함재기 100대 운용) 이었습니다.  호위항공모함들이 레이테만해전에서 일본군함의 철갑탄을 맞았는데 장갑이 없으니 철갑탄들이 그냥 선체를 통과해버렸다고 합니다. 구멍만 내버린거죠. 어찌 되었거나 안습인 전투함입니다. 시대의 요구로 대량 건조되어 잠깐 쓰이고 도태시킨 함종입니다.  2차대전 후 모조리 스크랩되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리버티수송선을 개조한 44척의 보그급 호위항공모함과 카사블랑카급후계로 만든 9척의 커먼스먼트급 호위항공모함도 더 있습니다.)  


이에 반면 구축함 (Destroyer) 은 계속 후손종을 남기면서 오래 살아 남은 함종입니다. (19세기 후반부터 21세기인 현재까지)

구축함의 본래 이름은 torpedo-boat destroyer로서 19세기 후반 아군의 대형전투함에 위협이 되는 적의 고속소형어뢰정을 깨부수려고 전위에서 활동하게 만든 함정입니다. 그 후 주력함대 주위에서 적에게 어뢰를 쏘기도 하고 연막을 뿌리는 등의 여러 임무를 담당했고 1, 2차대전에는 대잠업무와 대공업무까지 해냈던 만능 전투함입니다. 지금은 이지스함이라는 최종 형태로 진화되어 살아남은 대단한 함종이죠. 오랜 시간동안 돌연변이와 자연선택 속에서 계속 후손종을 남긴 함종입니다.    

한국형 이지스 구축함 세종대왕함

그 밖에 장거리 타격력을 가진 미국의 대형핵항공모함 (프로토스 캐리어?) 과 무한한 에너지로 바다 속을 누비는 핵잠수함 등이 돌연변이와 자연선택 속에서 살아 남았네요.


구축함은 마치 중생대에 태어나 공룡 등살에 땅속에서 숨어지내다가 결국 신생대에 주류가 된 포유류 같네요.
드레드노트급전함처럼 대형전함 이나 순양전함 등의 대형전투함은 고생대의 거대한 곤충류나 중생대의 거대 공룡과 비교해 볼 수 있구요.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05-16 17:19)
* 관리사유 : 추천 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5
  • 이 아재 사실 밀덕임?
  • ㄴㄴ 스덕임
  • 아니야 블덕이야
  • 춫천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88 일상/생각종합 정치정보 커뮤니티, 홍차넷 37 Leeka 16/04/20 6680 9
189 역사일본 창작물 내에서의 임진왜란 16 눈시 16/04/22 7211 7
190 의료/건강. 47 리틀미 16/04/23 7476 4
191 문화/예술옛 그리스 항아리 27 Moira 16/04/24 9856 8
192 역사시빌 워 - 미국 남북전쟁 (1) 16 눈시 16/04/24 6674 6
193 의료/건강비아그라와 시알리스 이야기 20 모모스 16/04/25 11488 13
195 역사시빌 워 - 미국 남북전쟁 (2) 10 눈시 16/04/26 6739 7
194 역사시빌 워 - 미국 남북전쟁 (끝) 16 눈시 16/04/27 6105 9
196 경제한국 해운업 위기의 배경에 대한 브리핑 30 난커피가더좋아 16/04/27 7800 6
197 역사유게에 올라온 유재흥 글에 대해 67 눈시 16/04/29 6980 34
198 기타커피 이야기 - Caffeine (리뉴얼버전) 15 모모스 16/04/29 6383 3
199 일상/생각[조각글 24주차] 이해와 인정 사이 4 nickyo 16/05/02 4891 3
200 정치/사회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과 5월 광장의 어머니회 2 커피최고 16/05/02 5900 6
201 과학쌀, 보리, 밀 이야기 (자화수분-자웅동주식물) 3 모모스 16/05/06 7482 5
202 과학배틀크루저와 자연선택 12 모모스 16/05/07 6649 5
203 일상/생각육아일기 - 2016년 5월 23 까페레인 16/05/10 4861 5
204 꿀팁/강좌우리의 뇌에는 청소부가 있어요. 66 눈부심 16/05/12 8419 11
205 요리/음식덴뿌라와 튀김의 기원 29 마르코폴로 16/05/14 14694 11
206 정치/사회. 58 리틀미 16/05/20 8467 16
207 역사와이프 팝니다 38 기아트윈스 16/05/21 9256 12
208 경제한국에서 구조조정은 왜 실패하나?-STX법정관리에 부쳐(상) 26 난커피가더좋아 16/05/25 8342 8
209 일상/생각어느 시골 병원 이야기 35 Beer Inside 16/05/28 7154 12
210 기타아들이 말을 참 잘합니다. 37 Toby 16/05/30 6202 25
211 일상/생각아버지는 꿈꾸던 시베리아의 새하얀 벌판을 보지 못할 것이다. 4 원더월 16/05/30 4820 7
212 정치/사회새누리 측 노동법 개정안 간단 요약 정리. 11 당근매니아 16/05/31 6113 5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