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4/01/22 18:48:38
Name   양라곱
Subject   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3)
지난 글에서는 극적인 연출을 위해서 계약 만료 당일 오전, 집주인 연락이 갑자기 온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사실 앞선 맥락이 있습니다. 회원님들의 도파민 분비에 일조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읍니다 ^_^

—————————

D-Day 오전

아침에 출근하면서 집주인에게 [계약만료 알림 + 미 반환시 법적대응 예고 문자]를 보냈다. 꾸준히 이야기해 왔듯, 어차피 제 날에 돌려줄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오전이 채 지나기 전에 주택관리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업체: 집주인께서 벽 타공 보수비용은 없던 걸로 하시고, 오늘 정산 하자십니다.

내 입장에서야 이상한 비용 청구 안 하고돌려준다 하면, 그대로 정리해도 되니, 그러자고 했다. 아무렴,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여기서 이 정도로 마무리하는 게 맞지. 우리는 사이다 썰을 기대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미적지근한 그 어드메 아니겠나.

그렇게 전세금을 돌려받고 끝이 났다.



—————————




...이길 바랬는데, 업체랑 통화 중에 집주인의 전화가 왔다. 솔직히 받아봤자 좋은 꼴 못 볼 거 뻔하니 안 받고야 싶었지만, 분쟁은 끝내야 하기에 전화를 받았다. 마무리하는 마당이니, 직접 정리하고 싶었나, 생각을 했다.

오산이었다.


집주인: 당신이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나한테 법적 대응을 한다고 그러는 거에요?


???
아니, 그러면 내가 내 돈 제대로 안 돌려줄 거라고 협박하고 잠수탄 사람을 뭘 믿고 그냥 기다립니까? 

그 이후에는 대충 나에게 일방적으로 소리만 지르길래, 나도 무시하고 설명을 시작...했더니 전화를 끊었다.

ㅎ....

애플워치에는 심박수 모니터링 기능이 있다. 평소에도 간간히 내 심박수를 측정해 주는데, 평소보다 비정상적으로 심박수가 높아지면 [마! 닝겐! 괜찮나? 니 그거 서터레스다 서터레스!]하면서 알려준다. 내 인생에서 이게 울린 게 딱 세 번인데, 해외 출장 가서 수백 명 앞에서 발표했을 때, 집주인이 전화해서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고 전화 끊을 때, 그리고 계약 만료 당일 오전에 집주인 전화 받았을 때이다. 
내 인생에서 소중한 두 번의 기회를 가져간 사람... 그전까지 혈압 오른다든가, 머리에 피가 쏠린다든가 하는 말들은 그저 수사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내 몸의 생리적 변화를 직접 경험하면서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는 걸 체감했다.



머리가 뜨거워졌지만, 일단 업체랑 다시 통화를 했다. 여전히 합의 내용은 유효했기에 업체에서 오늘 정산해 주는 걸로 하고,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렇게, 정리가 되었다..
면 이 글을 쓰지도 않았다 2트


D-Day 오후

오후에 업체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집주인이 건물 배전반 수리 비용 명목으로 나에게 50만 원을 받아야겠다는 것이다.

아... 정말 미치셨나 보다. 

이 부분도 간단히 설명하자면
(1) 분쟁 중에 건물 전체 배전반에 화재 발생
(2) 수리를 위해 호실마다 집주인이 업체와 직접 돌아다니며 수리 진행
(3) 나는 집주인과 분쟁 중이었으므로, 절대 집주인에게 직접 비밀번호를 알려줄 수 없음
(4) 업체에게 직접 알려주는 조건으로 수리 가능하다고 답변
(5) 갑자기 해결됐다고 업체에서 피드백이 옴

그래서 그 당시에 뭘 어떻게 해결했다는 건지 갸웃했었는데, 그 해결이 나에게 따로 비용 청구하는 거였나보다 깔깔

결국 [내가 그걸 왜 줌? 미치심? → 아 못 줌? 그럼 나도 보증금 못 줌. 껒]의 핑퐁으로, 파토가 났다.
이제 정말 남은건 법적대응 뿐이야

D+1

자정이 지나는 순간부터 더 이상 임대인/임차인의 관계가 아닌, 채무자/채권자의 관계가 되었다. (법적으로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내 마음의 태도가 그렇게 되었다)
미리 준비해 놓은 서류를 자정이 지나는 순간 제출하려고 했는데.... 아니, 여기서 인터넷 등기소가 서버 점검을?

임차권 등기명령에 필요한 서류는 아래와 같다.
(1) 주민등록등본 → 주소지, 확정일자 및 전입일자 확인용
(2) 임대차 계약서 사본 → 계약 확인용. 확정일자 필수
(3) 등기부등본 → 인터넷 등기소에서 전자소송 사이트로 전자발급 가능.. 인데 서버 점검이라 다음 날 해야 함
(4) 부동산목록 → 부동산 정보 및 약식 도면. 대충 아래처럼 그리면 된다.
(5) 기타. 이것저것 필요하다. 내 경우에는 묵시적 갱신 상태였기 때문에, 집주인에게 계약 해지 의사 표현을 했다는 것을 증명할 자료가 필요했다. 계약만료일이 나와 있는 문자 내역이 있어서 이를 첨부 + [집주인과 분쟁이 있어서 꼭 임차권 설정이 필요합니다 판사니뮤ㅠ] 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용증명 폐문부재 내역도 첨부하였다.


대충 요런 정도의 간단한 도면이 필요하다.

결국 자정 지나서 바로 신청하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전자소송 비용 결제도 시간이 정해져있어서, 서버점검 아니었어도 낮에 결제 했어야 했다. 밤새 두근두근하는 마음을 가득 안고서, 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나서 출근 전에 전자소송 사이트에서 신청을 완료했다.

D+4
아니.. 아무리 주말이 껴있었지만 너무 진행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속으로 징징거리던 차에, 법원에서 전화가 왔다. 내일 오전 중으로 결재 올릴 거니, 몇 가지만 보정해서 제출하라는 이야기였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퇴근하자마자 즉시 작성해서 올려드리겠습니다.

D+5
이잉.. 오전에 결재 올려준다며.. 일과시간 끝났잖아.. 하고 또 징징거리는데, 저녁에 아래처럼 문자가 도착했다.



아니 왜 퇴근도 못하시고 이걸 지금 처리하십니까 GOAT.. 바로 전자소송 사이트에 들어가서 결정정본을 읽어보았다. 생각보다 쉽게, 그리고 빠르게 처리돼서 새삼 놀랐다. 생각해보면, 임차인 입장에서는 돈을 못 돌려받으면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심정이니.. 이런 게 나라의 배려이지 싶었다. 감사합니다 갓한민국 펄-럭


(내가 아는 주문은 시작은 달콤하게 평범하게 너에게 끌리는 거, 아니면 주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밖에 없었는데..)

D+6
아침에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아마 집주인도 어제 동일한 문자를 받았을 테니, 마무리를 해야겠다 생각을 했겠지.

업체: 그… 배전반 수리도 없던 걸로 하자고 하십니다..
양: 그걸로 퉁 못칩니다. 원금 + 이자 일할 계산 + 법적 대응 비용 일괄 청구합니다. 
업체: 잠시만요... (5분 뒤) 그… 집주인이 꺼지시랍니다 ㅠㅠ [문학적 과장]
양: ? 진짜로??
업체: ㅜㅜㅜ 저도 진짜 사이에서 죽겠습니다 ㅜㅜ

이거는 생각을 못 했다. 여기서 [문학적 과장]을 한다고? 
그리고 나서 업체를 통해서 배전반 수리 비용 150만 원짜리 견적서를 전달해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람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러니까, 슬슬 이제는 인도적 차원에서 측은해지기 시작했다.

(참고) 이자에 관련하여서는, [임차권 등기명령 결정 → 임차권 등기 완료 → 전출신고 후]부터 청구가 가능하다. 따라서, 나중에 민사에서 승소하면, 이자는 전출신고부터 선고 당일까지 청구되는 것이다.

아니 그렇다 한들, 임차권은 이미 설정되었고, 소송까지 이어지면 더 깨지면서 두드려 맞는 건 집주인이다. 계약 만료일에 나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음으로써, 이후의 전개는 무조건 내가 이기는 싸움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아무리 자존심 상한다 하더라도, 최고의 수는 내가 등기명령 신청하기 전에 돌려주는 것, 그 다음은 지금이라도 합의하고 다음 세입자를 빨리 받는 것, 최악의 수가 민사까지 가서 패소하고 이자까지 싹싹 토해내는 거다.

이성적 판단을 못 하는 사람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뭐, 그렇긴 해도, 어쩌겠습니까.
퀸지은님이 말씀하신대로, 내가 가해자인가? 싶지만 할건 하고, 받을 건 받아야지.



———————————

분량 조절 실패로 4화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4-02-04 21:01)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22
  • 왜 쿠키를 구워왔는데 다음회차를 볼수가 엄성!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88 정치/사회제1저자, 교신저자, 학회, 자리싸움, 그리고 관행 25 烏鳳 19/04/03 6568 23
733 기타향수 초보를 위한 아주 간단한 접근 18 化神 18/11/22 7266 23
694 정치/사회서구사회에 보이는 성별,인종에 대한 담론 29 rknight 18/09/08 8200 23
662 의료/건강발사르탄 발암물질 함유 - 한국 제네릭은 왜 이따위가 됐나 11 레지엔 18/07/12 6417 23
634 의료/건강술을 마시면 문제를 더 창의적으로 풀 수 있다?!!!! 61 소맥술사 18/05/15 8072 23
612 정치/사회미중갈등의 미래와 한국의 선택 19 Danial Plainview 18/04/08 6267 23
611 체육/스포츠산 속에서 안 써본 근육을 쓰다가 5 매일이수수께끼상자 18/04/04 7753 23
585 여행힐링이고 싶었던 제주 여행기 上 15 소라게 18/01/31 7190 23
570 IT/컴퓨터정보 기술의 발달이 지식 근로자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추억 11 기쁨평안 18/01/03 9716 23
559 의료/건강제목은 못 정하겠음 32 mmOmm 17/12/07 7231 23
542 정치/사회성매매 청소녀의 사회화 과정 30 호라타래 17/11/08 8607 23
502 IT/컴퓨터컴쫌알이 해드리는 조립컴퓨터 견적(2017. 9월) 25 이슬먹고살죠 17/08/29 9384 23
390 일상/생각누군가의 운구를 함께 한다는 것 8 그럼에도불구하고 17/03/17 4872 23
215 경제베어링스 은행 파산사건과 금융에 관한 이야기. 11 줄리 16/06/10 9547 23
113 정치/사회11.14 후기입니다 5 nickyo 15/11/14 5790 23
1358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3) 17 양라곱 24/01/22 7238 22
1353 의료/건강환자의 자기결정권(autonomy)은 어디까지 일까? 7 경계인 24/01/06 2240 22
1339 체육/스포츠JTBC서울국제마라톤 후기 10 영원한초보 23/11/09 2199 22
1302 일상/생각빨간 생선과의 재회 13 심해냉장고 23/05/21 3234 22
1297 문학82년생 이미상 5 알료사 23/04/29 4039 22
1269 기타2022 걸그룹 결산 10 헬리제의우울 23/01/23 3306 22
1239 정치/사회한국 수도권-지방격차의 의외의 면모들 45 카르스 22/09/20 6111 22
1183 일상/생각농촌생활) 3월 중순 - 4월 초 18 천하대장군 22/04/08 3644 22
1180 일상/생각일상의 사소한 즐거움 : 어느 향료 연구원의 이야기 (3편) 12 化神 22/03/25 4489 22
1167 일상/생각내 고향 서울엔 11 사이시옷 22/02/14 4024 22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