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3/08/16 03:31:37
Name   소요
Subject   뉴욕의 나쁜 놈들: 개평 4센트
"왜 강제로 내 차를 견인해. 안 돼! 경찰 불러!"

"내 등 뒤에서 꺼져 새끼야"

"이건 내 차고, 난 너를 부르지 않았어. 이건 위법이야"

"좆까세요. 6주 뒤에 보자고. 보관료 낼 준비나 하시고"

차에 체인을 걸던 운전수가 뒤에 선 저를 몸으로 밀어냅니다. 다시 붙으니 또 등으로 저를 쳐냅니다. Opps~ Excuse me~ 이죽거립니다. 밀려나면서 고개가 돌아갑니다. 저 구석에서 카센터 직원들이 영상을 찍고 있습니다.

견인차 운전수를 따라다니며 계속해서 항의합니다. 운전수가 표정을 굳힙니다. 운전석 한 켠에서 드라이버를 뽑아 치켜들면서 노려봅니다. 뭐라고 빠르게 말합니다. 영어가 짧아 다 들리지는 않고 마지막에 Your Asians... 어쩌고 하는 것만 들립니다.

자 시간을 돌려봅시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더라...

.
.
.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정든 학교 근처 월세방을 떠나 새로운 동네에 월세를 구했습니다. 저는 이제 학교에 안 가도 되고, 아내는 새로 학교에 입학하니 아내 중심으로 생활권역을 바꾸기로 했지요. 무엇보다도 이전 집은 쥐와 벌레 때문에 아내가 스트레스를 크게 받았었어요. 새로운 동네라 모르는 물정이 많아 걱정되지만, 백인들 많이 사는 교외의 한적한 동네니 총기사고는 덜 보겠다 싶었지요. 유일한 문제라면 교외인지라 대중교통이 워낙 없어 차가 없으면 노답이라는 거였지요.

그 유일한 문제가 터집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 차 배터리가 방전된 겁니다. 친구 부부가 중간중간 봐줬지만 배터리 자체에 문제가 생겼죠. 30시간을 넘겨 죽울둥 살둥 겨우 동네로 돌아오니 이거 창고에 넣은 짐을 뺄 방도가 없었지요. 우선 친구 부부가 차를 고칠 때까지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보험사에 연락해서 견인 서비스를 부르고, 추천 카센터 목록에서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카센터를 찍었습니다. 배터리 문제인지 아닌지도 확인해야 하니 안전하게 가야겠다 싶었지요.

카센터는 생각보다 많이 허름했어요. 그래도 뭐 배터리 관련 문제는 어려운 작업이 아니니 구색만 갖추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 싶었지요. 사장에게 얘기하니 메카닉이 월요일 오전에 오니 등록만 하고 가라더군요. 키를 넘겨주고 터덕터덕 걸어왔습니다.

.
.
.

짐을 푸는데 아내가 사색이 되어 말을 겁니다. 검색해봤는데 그 카센터 아무래도 위험한 곳 같다고요. 구글 리뷰 평점 1점, 중고차 판매 사기는 기본이고, 살짝 고장나서 온 차도 피해를 과장해서 돈을 빼먹는다는 리뷰들 뿐이더라고요.

기왕 일은 벌어진 거 대응책을 세웠습니다. 아침에 일찍 가서 최대한 가격을 미리 협상하고, 문제가 있겠다 싶으면 견인 서비스를 불러서 다른 곳으로 ㅌㅌ 하기로요. 최악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돈을 주고 빠져나오는 방안도 염두에 뒀지요.

.
.
.

그렇게 월요일 아침 9시가 되자마자 카센터로 갔습니다. 아내가 배터리 교체 가격을 묻자 앉아서 기다리고 합니다. 미리 가격을 알고 싶다고 얘기하자, 사장이 갑자기 화를 내며 아침 9시부터 재수없게 뭐하는 거냐고 꺼지라고 합니다. 옥신각신 하는 와중 차 키를 챙겼습니다. 어쨌건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견인차를 불러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지요.

밖에 나가서 견인차를 부르는데 사장이 걸어옵니다. 주말 동안 차를 여기 뒀으니 보관료를 내야 하지 않냐고요. 그러면서 보관료는 200달러라고 합니다. 이게 뭔 개소리지? 키를 달라길래 거부했습니다. 그러니 자기가 견인 서비스를 불러서 제 차를 다른 곳에 보내버린다 하더군요. 이미 우리가 따로 견인 서비스를 불렀다고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아내는 친구 집에서 점프 스타터를 챙기러 이동했습니다. 잠시만이라도 배터리를 충전해서 차를 이동시킬 생각이었지요. 그 사이 카센터측 견인서비스가 도착하고, 운전수가 체인을 걸기 시작합니다.

.
.
.

사방이 적들이고, 영상은 저쪽이 찍고 있고, 완력을 쓰는데도 거리낌이 없는 놈들이라 경찰 밖에는 답이 없겠다 싶었습니다.

경찰서에 전화해서 카센터와 갈등이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2~3분만에 경찰들이 달려오더라고요. 그 사이 아내와 친구들도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경찰들은 우리 편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문제 벌어진 게 원투데이가 아닌지 경찰들이 바로 여기는 shady business로 유명한 곳이라고 설명을 해주더라고요. 카센터나 견인차주도 경찰들에게 반항하지 않았어요.

경찰들에게 설명을 들으니 저쪽이 원하는 돈을 주고 빠져나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 했습니다. 저쪽이 청구하는 보관료 225달러에, 견인비용 140달러 4센트를요. 그래도 경찰 입회 하에 처리하면 더 피곤해질 일은 없을테니 동의했습니다. 다른 견인차 운전수가 와서 우리 차를 아파트로 옮겼습니다.

경찰들이 와서 위로를 해줬습니다. 워낙 진상들이라 매번 사건만 일으키니 주변에 저기는 절대 이용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달라고 하며, 물리적 접촉 관련해서는 담당자가 휴가에서 복귀하면 처리하도록 인계해두겠다 했습니다. 견인수에게 140달러를 주고 4센트를 찾는데, 경찰이 자기 지갑에서 4센트를 꺼내 대신 주었습니다.

.
.
.

석사 학위논문 연구를 위해 국제결혼여성 분들을 인터뷰 할 때 인상 깊었던 표현이 있어요.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식을 낳은 분이셨는데, "나도 한국에서 새로 태어났다"는 표현을 하셨지요.

새로운 환경, 새로운 문화, 새로운 법체계/감정, 그리고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익혀나가는 건 언제나 어려워요. 10-20대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노라면, 한국이라는 사회를 익혀가며 겪는 시행착오나 특유의 문화적 가치체계에 자신을 깎아나가는 분투가 힘들었던 감정들이 꼭 들어가 있었어요. 한국의 논리를 체화한 이후로는 어려움을 금새 잊어버린 채 뒤쳐지는 타인을 질책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만, 많은 사람들은 [한국인이 되어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고 오래 걸렸다는 걸 기억하지요.

유학을 와서 거진 4년 동안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집과 학교만 오갔어요. 때문에 미국 사회는 제한적으로 접했었어요. 주변에 농반진반으로 나는 미국에 간 것이 아니라 내 학교에 간 것이라고 얘기하고는 했지요. 그러니 미국 사회에 대한 체험적인 지식들이 부족했지요. 이번에 진상들을 만나게 된 인과관계를 따져보면 그런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많아요.

동네 어르신은 정말로 해결할 수 없는 큰 일이 아니라 누군가 한 마디 조언해주면 문제 없이 해결될 것들이 인간 삶의 발목을 잡는다고 강조하고는 했어요. 계층 간 문화적 지식차 그리고 문화적 안내인의 역할에 관한 이론적인 얘기를 트랜스내셔널 이론과 연결하여 언급할 수 있을 주제기는 한데, 거기까지 주저리주저리 하는 건 과도하네요. 서로 다른 생애경로를 밟아가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체계적으로 숨쉬듯이 쉬운 것이 누군가에게는 체계적으로 호흡곤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 마 그런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 미국 땅에서 몇년 간 더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기의 게임의 규칙들을 다시 익혀나가야 해요. 전 차보다는 요리에 관심이 많지만 차에 관해서 더 많이 배워야 겠고,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만나게 될 갈등들에 대해서도 미국의 상식적인 대응책이나 법적인 기준들을 또 익혀야겠지요. 언제 이걸 또 다 하냐 싶지만 모두가 그렇게 좌충우돌하며 살아가니까요. 모두에게 이번 생은 처음이기에, 모두에게 살아간다는 건 항상 어렵고요.

그래도 뉴욕 경찰 분들이 최대한 도와주려고 했던 마음과, 4센트를 개평(?)으로 마음에 담고 힘을 내봐야겠습니다.

.
.
.

아침에 차 부품점에 가서 배터리를 샀어요. 배터리를 사면 자동으로 갈아준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아마 여기 사람들은 자기 차를 처음 끌기 시작하는 10대 후반에 배울 지식이겠지요. 30대 중반에 360달러를 내고 배울 지식은 아니기는 한데 흑흑ㅠㅠ 감자칩을 100개는 넘게 살 돈인데 흑흑

그럼 이제 K-캴챠에서 배운 지식을 따라 구글 리뷰를 적고, 보험사에 해당 카센터를 자동 추천에서 빼달라고 메일을 써봐야겠습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3-08-28 21:42)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20
  • 머나먼 이국에서 고생많으셨습니다
  • 이역만리에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 고생 하셨습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347 일상/생각빙산 같은 슬픔 10 골든햄스 23/12/17 2320 37
1268 일상/생각니트라이프 - 1. 새로운 땅에 한 발을 내딛다. 4 BitSae 23/01/22 2372 17
1351 기타안녕! 6살! 안녕? 7살!! 6 쉬군 24/01/01 2404 29
1338 기타2023 걸그룹 5/6 5 헬리제의우울 23/11/05 2410 12
1379 일상/생각인지행동치료와 느린 자살 8 골든햄스 24/03/24 2419 9
1389 꿀팁/강좌[해석] 인스타 릴스 '사진찍는 꿀팁' 해석 24 *alchemist* 24/04/23 2438 16
1366 체육/스포츠(데이터 주의)'빌드업 축구'는 없다. 우루과이전으로 돌아보는 벤투호의 빌드업. 13 joel 24/02/12 2439 30
1290 의료/건강70일 아가 코로나 감염기 9 Beemo 23/04/05 2468 6
1377 꿀팁/강좌그거 조금 해주는거 어렵나? 10 바이엘 24/03/20 2473 13
1352 역사정말 소동파가 만들었나? 동파육 이야기. 13 joel 24/01/01 2482 24
1335 역사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알기 위한 용어 정리. 2편 6 코리몬테아스 23/10/14 2486 12
1323 영화콘크리트 유토피아 - 각자에게는 각자의 하느님이 6 골든햄스 23/08/27 2523 12
1325 정치/사회구척장신 호랑이 포수 장군의 일생 3 당근매니아 23/09/05 2539 16
1321 일상/생각뉴욕의 나쁜 놈들: 개평 4센트 6 소요 23/08/16 2577 20
1390 일상/생각나는 다마고치를 가지고 욕조로 들어갔다. 12 자몽에이슬 24/04/24 2577 19
1293 일상/생각인간 대 사법 3 아이솔 23/04/11 2595 17
1313 일상/생각벗어나다, 또는 벗어남에 대하여 11 골든햄스 23/07/24 2601 27
1261 체육/스포츠10의 의지는 이어지리 다시갑시다 22/12/31 2643 6
1395 정치/사회한국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1) 8 삼유인생 24/05/20 2666 29
1332 일상/생각나의 은전, 한 장. 6 심해냉장고 23/09/30 2674 24
1342 일상/생각이글루스의 폐쇄에 대한 잡다한 말들. 10 joel 23/12/03 2675 19
1344 일상/생각비오는 숲의 이야기 38 하얀 23/12/14 2679 56
1318 체육/스포츠대모산 간단 가이드(수서역~청솔마을 코스) 20 산타는옴닉 23/08/03 2686 19
1295 문학과격한 영리함, 「그랜드 피날레」 - 아베 가즈시게 6 심해냉장고 23/04/24 2688 16
1337 일상/생각적당한 계모님 이야기. 10 tannenbaum 23/10/30 2694 48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