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 23/03/05 03:00:30 |
Name | 풀잎 |
Subject | 직장내 차별, 저출산에 대한 고민 |
두서없는 애셋 엄마라서 글이 정리가 안되지만 편하게 읽어주세요. 싸우자아니에요. ㅠㅠ 학폭도 문제지만 직장내 폭력은 우리 사회에서 아에 논의도 안됩니다. 언어적 신체적 폭력, 인간존엄성이 무시된 사회이기때문에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은것 같아요. 우리들이 할 일은 아이들이 잘 자라도록 학폭관련일을 무마하지말고 적극적으로 이해찬 이후 망가진 서구식 어처구니없는 미국 모델 따라가는 걸 멈추도록 제도를개선하도록 응원해야합니다. 늘 좋은것만 베끼길 가져오길 !! 일을하는 직장인이라면 나 주위를 들여다보고 주윗 사람들한테 잘 해야 한다고 봅니다. 공부 못하고 실력 없어도 사람으로 기본 대접 받을 수 있어야하구요. 많은 이들이 실력우선주의에 공감하면서 효율성 면에서 일 못하면 받는 댓가가 험해야한다고 쉽게 생각하는듯해요. 적어도 존엄성이 무시되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직장일끝나면 나랑 같은 동네 학부형이 될수도.. 우리 가게를 나서면, 다른곳에서 교회에서 같은 교인으로 등등 함께 커뮤니티에서 부딪힐수 있어요. 지금 직장 동료가 엄마친구의 아들딸 자녀라면? 내가 하는일이 엄마를 민망하게 만들일을 만든다고 생각해보세요. 아무 거리낌없이 사람을 막 대하는 사회가 되어가는듯해요. 힘없는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합니다. 서로 폐끼치지 말고 내 할 일은 내 선안에서 해결해야해요. 같이 배려하고 도와주고 이끌어야 하는데 일못하는 이와 함께 일하는 누구는 누구는 속이 터지겠지만 도와주고 본인은 속으로 감정 컨트롤 해야하고요. 함께 살아야하는 사회 아닌가요. 더해줘도 괜찮아요. 꼭 그만큼 돌려받아야 정석이 아니라 어떨때는 알고 모른척 손해도 나도 되는 여유가 생기는 사회가 되어야합니다. 있는 사람들이 조금 더 손해보아야해요. 감정 쏟아내기의 위험을 모두가 깨달아야합니다.민망해야해요. 내가 잘한다고 나설것이 아니라 나 잘하는건 나만 스스로 만족하면 된다고 봐요. 그걸 뭣하러 알아주길 바라고 나서나요. 성과 주의라서요? 일잘하는 사람은 나서지 않아도 주위에서 다 알아요. 나만큼 너 왜 못하냐고 생산성과 효율성을 앞세우는데 리더라면 직장 선배라면 왜 못하는지 왜 안되는지 부족한면을 밀어주고 도와주고 인지문제로 어쩔 수 없을때는 내가 두 사람 몫을 하면서도 함께 가야한다고 봅니다. (물론 책임을 지고 결국에 성과주의로 인해 동료가 직장을 잃는 건 자본주의의 단면이겠으나.. ) 이용당하고 살라는것이 아니라 서로 도와가면서 부족한 면을 메꿔주면서 동료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건데요. 그럴때 시너지가 발생하고 동료의 성장도 더 쉽게 일어나서 결국 내 일도 동료일도 편해지는듯해요. 동료가 휴가갈때 힘들지만 두배로 일하나 나도 다음에 휴가 즐겁게 갈수 있는 분위기 말이에요. 내가 더 일하라고 하는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나눠주는 일도 극도로 꺼리는 억지로 나눠주는 그런 풍조에 대한 이야기에요. 리더가 없어진 다들 움츠린 사회가 되어가는듯 해요. 나이브 하다고 하지만 왜 드라마 신파에 울고 웃고 합니까, 감정 자극하는 드라마가 많은건, 아마 현실에 드라마 보다 더 심한 경우도 봐와서이지 싶습니다. 드라마에서 남때리거나 폭력을 행사하는건 자제되어야해요. (병폐를 숨기라는게 아니라 자극적으로 이용하지말라는) 완전 생각없이 보고 따라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회곳곳에서 폭력이 침묵속에 용납되지 않도록 서로 배려하고 나서고 용기를 줘야해요. 택시 기사분들의 직장 환경은 어떠신가요? 하루종일 차안에 앉아서 운전대를 잡는 그 분들의 고됨을 알아보시나요? 반가운 인삿말로 그분들의 신경을 낮춰줄수 있는 표현으로 잠깐의 고됨을 잊으실수 있을꺼에요. 서비스직 카운트에 하루종일 서 계시는 분들의 고단함을 아시나요? 슬그머니 앉을수 있는 의자를 마련하자는 운동이 필요치 않나요? 왜 커피는 아랫사람이 사와야하나요? 본인커피 알아서 사오시길!! 나 아닌 남한테 나의 개인적인 일을 시키는 문화는 없어져야합니다. 권위와 권력에 취한 이들이 스스로 부끄러워야해요. 항공사 승무원들에게 하이힐 강요하던 20년전 문화가 이제는 단화로 변했어요. 변호사 사무실 서초동 거리에 정형외과 재활외과 간판이 눈에 띕니다. 하이퍼포먼스를 내는 직종에 대하여 사회가(의사와 변호사 등등) 쥐어짜는?? 시스템인것 의대 법대 보내려는 부모님과 입시 학생들은 생각해본적이 있나요?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퀀트나 맥킨지 직원들이 2-3년 일해보고 환멸에 그 세계를 떠난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심한 경쟁에 우울증 약으로 버티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습니다. CEO 월급 낮춰야해요. 빈부격차를 줄이는 방법은 저는 잘 모르겠으나 인권과 존엄성에 대한 많은 정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깊이 반성하지 않으면 변화가 이루어지기 어려워요. 머리에 각성이될만큼 정신이 스스로 깨어나야해요. 인간존엄성에 대해서 언론과 미디어에서 좀 더 이야길 나누길바래요. 내 속의 치부를 들어내기란 힘들고 아파요. 그러나 들여다보기 싫어도 그 과정이 구질하고 험난해도 곪은건 패내야합니다. 직장내 폭력은 적어도 여기 계신분들은 우리 매너있게 살았으면 합니다. 매너가 인간을 만드는것 사실 같아요. 사실 이 글 쓰면서 저도 동네 가게서 어릴때 소소하게 생각못하고 배려못했던 손해 안볼려고 그랬던 행동들 후회 반성이 앞서네요. 앞으로 안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할것 같아요. 저희 엄마만큼 이웃과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3-03-19 18:44)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7
|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사회에서는 일 잘하는게 착한 거다’ 라는 말입니다.
정상성을 추종하는 걸 넘어 정상성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하고, 조금이라도 벗어난 이들에게 윤리적인 비난을 하고, 심지어 그 비난을 정당화하려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말을 너무 흔하게 너무 자주 듣곤 합니다. 음.. 회사가 이윤을 추구하는 곳인 것도 맞지만, 회사 역시 이 사회의 집단이고, 우리는 하나의 집단의 구성원인거잖아요.
이건 결국 우리 사회가 구성원을 어떻게 대하는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구성원이 조금 부족하더라... 더 보기
정상성을 추종하는 걸 넘어 정상성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하고, 조금이라도 벗어난 이들에게 윤리적인 비난을 하고, 심지어 그 비난을 정당화하려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말을 너무 흔하게 너무 자주 듣곤 합니다. 음.. 회사가 이윤을 추구하는 곳인 것도 맞지만, 회사 역시 이 사회의 집단이고, 우리는 하나의 집단의 구성원인거잖아요.
이건 결국 우리 사회가 구성원을 어떻게 대하는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구성원이 조금 부족하더라... 더 보기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사회에서는 일 잘하는게 착한 거다’ 라는 말입니다.
정상성을 추종하는 걸 넘어 정상성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하고, 조금이라도 벗어난 이들에게 윤리적인 비난을 하고, 심지어 그 비난을 정당화하려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말을 너무 흔하게 너무 자주 듣곤 합니다. 음.. 회사가 이윤을 추구하는 곳인 것도 맞지만, 회사 역시 이 사회의 집단이고, 우리는 하나의 집단의 구성원인거잖아요.
이건 결국 우리 사회가 구성원을 어떻게 대하는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구성원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모두가 같지 않더라도 누구나 존중받으면서 서로 부족한 것을 이해해주면서 사는 사회였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회의 일부인 직장에서도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좋겠구요.
동료가 일을 못할 때 짜증이 나고 미울 수는 있죠. 인간인데 그건 당연한 거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지나치게 비난하거나, 비난을 정당화하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일을 못할 뿐이지, 그 사람의 인성이 나쁜 게 아니잖아요. 실력 또는 정상성이 부족한거지, 인격적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구요.
정상성을 추종하는 걸 넘어 정상성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하고, 조금이라도 벗어난 이들에게 윤리적인 비난을 하고, 심지어 그 비난을 정당화하려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말을 너무 흔하게 너무 자주 듣곤 합니다. 음.. 회사가 이윤을 추구하는 곳인 것도 맞지만, 회사 역시 이 사회의 집단이고, 우리는 하나의 집단의 구성원인거잖아요.
이건 결국 우리 사회가 구성원을 어떻게 대하는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구성원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모두가 같지 않더라도 누구나 존중받으면서 서로 부족한 것을 이해해주면서 사는 사회였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회의 일부인 직장에서도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좋겠구요.
동료가 일을 못할 때 짜증이 나고 미울 수는 있죠. 인간인데 그건 당연한 거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지나치게 비난하거나, 비난을 정당화하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일을 못할 뿐이지, 그 사람의 인성이 나쁜 게 아니잖아요. 실력 또는 정상성이 부족한거지, 인격적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구요.
맞아요. 감정은 자연스러운 거지만, 태도와 감정을 분리했으면 좋겠어요. 특히나 내 감정을 정당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 사람이 싫은 것과, 저 사람이 나쁘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거니까요.
정상성을 추종하다보면, 완벽한 ’정상’은 결국 자기 자신도 끼지못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 역시 비난받고 존중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자신도 받아들이게 되고요.
내가 더 잘했으면 안 그랬겠지만, 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요. 회사 이야기를 할 때. 우리 사회가 그런 말을 스스로에게도 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라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회사가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고 어쩌고 다 떠나서, 그런 멀리까지 보지 말고, 지금 나와 얼굴을 맞대고 있는 사람에게 나와 같이 부대끼며 사는 사람에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 가를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더 잘했으면 안 그랬겠지만, 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요. 회사 이야기를 할 때. 우리 사회가 그런 말을 스스로에게도 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라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회사가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고 어쩌고 다 떠나서, 그런 멀리까지 보지 말고, 지금 나와 얼굴을 맞대고 있는 사람에게 나와 같이 부대끼며 사는 사람에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 가를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오랫동안 정상성에서 한참 부족한 사람이었던 입장에서, 사람은 언제나 그럴 수 있어요. 그리고 그것은 악한 것도, 노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에요. 해야할 것을 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사람은 누구나 부족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제가 정상성의 범주에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야 겨우 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게 가끔 슬픕니다.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것이 더이상 적대적이지 않을 때, 그것이 기쁘지 않고 슬퍼요. 마치, 너는 이제는 자격을 갖춰 우리의 원 안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어. 라는 말을 듣는 기분이랄까. 이전에는 아니었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제가 정상성의 범주에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야 겨우 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게 가끔 슬픕니다.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것이 더이상 적대적이지 않을 때, 그것이 기쁘지 않고 슬퍼요. 마치, 너는 이제는 자격을 갖춰 우리의 원 안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어. 라는 말을 듣는 기분이랄까. 이전에는 아니었고.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충분히 존중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타인을 존중하는 것도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누군가 나에게 폐를 끼치거나 무례하거나 등등을 했을 때, 내가 ‘봐주는’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저를 진짜 미치게 만드는 것은, 넉넉한 내가 혹은 오늘 조금 덜 힘든 내가 오늘 조금 더 힘든 너를 봐주는(이해해주는) 것이 아니고, 내가 무시당할만해서 나는 무시당한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나에게 화를 내고, 내가 그것을 그냥 넘기면, 내가 이해해준 것이 ... 더 보기
저는, 누군가 나에게 폐를 끼치거나 무례하거나 등등을 했을 때, 내가 ‘봐주는’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저를 진짜 미치게 만드는 것은, 넉넉한 내가 혹은 오늘 조금 덜 힘든 내가 오늘 조금 더 힘든 너를 봐주는(이해해주는) 것이 아니고, 내가 무시당할만해서 나는 무시당한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나에게 화를 내고, 내가 그것을 그냥 넘기면, 내가 이해해준 것이 ... 더 보기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충분히 존중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타인을 존중하는 것도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누군가 나에게 폐를 끼치거나 무례하거나 등등을 했을 때, 내가 ‘봐주는’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저를 진짜 미치게 만드는 것은, 넉넉한 내가 혹은 오늘 조금 덜 힘든 내가 오늘 조금 더 힘든 너를 봐주는(이해해주는) 것이 아니고, 내가 무시당할만해서 나는 무시당한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나에게 화를 내고, 내가 그것을 그냥 넘기면, 내가 이해해준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옳고 내가 잘못해서(부족해서), 그 사람이 나에게 화를 내고 내가 잘못한 사람이 되는게 당연한듯한 기분. 집단의 모든 구성원이 늘 그랬듯 내가 문제인 거라고 생각할거라는 기분. 늘 그랬든 너가 욕먹는게 당연하다고 상각할 것 같은 기분.
이 감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언제나 오랫동안 존중받지 못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배제되었던 경험같은 것. 충분히 존중받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상대를 이해해준다든지 존중해준다든지 할 수 있지 않을까,
상대를 이해해줄 때 혹은 봐줄 때 그것이 곧 나를 항상 그랬듯 또다시 내가 없어지고 짓밟히는 것이 될거라는 생각없이, 넉넉한 내가 너를 너그럽게 봐주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안간힘을 써서 내가 무시당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사람들은 저와 마찬가지로 존중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저 만큼 안간힘을 쓸 여유가 없기에, 그게 안되는 것은 아닐까.
저는, 누군가 나에게 폐를 끼치거나 무례하거나 등등을 했을 때, 내가 ‘봐주는’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저를 진짜 미치게 만드는 것은, 넉넉한 내가 혹은 오늘 조금 덜 힘든 내가 오늘 조금 더 힘든 너를 봐주는(이해해주는) 것이 아니고, 내가 무시당할만해서 나는 무시당한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나에게 화를 내고, 내가 그것을 그냥 넘기면, 내가 이해해준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옳고 내가 잘못해서(부족해서), 그 사람이 나에게 화를 내고 내가 잘못한 사람이 되는게 당연한듯한 기분. 집단의 모든 구성원이 늘 그랬듯 내가 문제인 거라고 생각할거라는 기분. 늘 그랬든 너가 욕먹는게 당연하다고 상각할 것 같은 기분.
이 감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언제나 오랫동안 존중받지 못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배제되었던 경험같은 것. 충분히 존중받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상대를 이해해준다든지 존중해준다든지 할 수 있지 않을까,
상대를 이해해줄 때 혹은 봐줄 때 그것이 곧 나를 항상 그랬듯 또다시 내가 없어지고 짓밟히는 것이 될거라는 생각없이, 넉넉한 내가 너를 너그럽게 봐주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안간힘을 써서 내가 무시당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사람들은 저와 마찬가지로 존중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저 만큼 안간힘을 쓸 여유가 없기에, 그게 안되는 것은 아닐까.
지금 세대는 존중받지 못하고 그런 사회가 당연하다고 아마 느낄꺼에요. 안간힘을 쓸 여유조차도 없이 늘 내 등을 누가 찌르지 않나 눈치보고 경계하고 살아야하는 경쟁사회가된거에요. 그래도 그 중에 이건 잘못된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분들이 주위에 있어요. 그런분들과 연대해야합니다. 그런분들에게서 용기를 받고 나를 그라운드(중심잡기) 해야해요.
내가 낮은 포지션에 있다고해도 당하는게 당연할수는 없거든요. 잘못된건 잘못된거에요. 억울한건 억울한거구요.
되갚을필요도 없어요. 구정물에 나 라도 물 안담그고 살도록 노력해... 더 보기
내가 낮은 포지션에 있다고해도 당하는게 당연할수는 없거든요. 잘못된건 잘못된거에요. 억울한건 억울한거구요.
되갚을필요도 없어요. 구정물에 나 라도 물 안담그고 살도록 노력해... 더 보기
지금 세대는 존중받지 못하고 그런 사회가 당연하다고 아마 느낄꺼에요. 안간힘을 쓸 여유조차도 없이 늘 내 등을 누가 찌르지 않나 눈치보고 경계하고 살아야하는 경쟁사회가된거에요. 그래도 그 중에 이건 잘못된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분들이 주위에 있어요. 그런분들과 연대해야합니다. 그런분들에게서 용기를 받고 나를 그라운드(중심잡기) 해야해요.
내가 낮은 포지션에 있다고해도 당하는게 당연할수는 없거든요. 잘못된건 잘못된거에요. 억울한건 억울한거구요.
되갚을필요도 없어요. 구정물에 나 라도 물 안담그고 살도록 노력해야한다고 봅니다.
어린애들에게 잘못하는걸 따끔히 가르치고 선하게 살도록 이끌어야지, 너의 잇속만 챙기라고 어른들이 계속 주입한 결과인것 같아요. 가치관 정립이 필요한 사회인데 다들 미디어에 유튜브에 현혹되어서 스스로를 안들여다봅니다.
내가 낮은 포지션에 있다고해도 당하는게 당연할수는 없거든요. 잘못된건 잘못된거에요. 억울한건 억울한거구요.
되갚을필요도 없어요. 구정물에 나 라도 물 안담그고 살도록 노력해야한다고 봅니다.
어린애들에게 잘못하는걸 따끔히 가르치고 선하게 살도록 이끌어야지, 너의 잇속만 챙기라고 어른들이 계속 주입한 결과인것 같아요. 가치관 정립이 필요한 사회인데 다들 미디어에 유튜브에 현혹되어서 스스로를 안들여다봅니다.
언어적 신체적 폭력, 인간 존엄성이 무시된 사회이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은것 같아요.
매우 공감하는 문장입니다. 제가 속해 있고 속해 있었던 가정, 학교, 직장은 개인을 존중하는 집단이 전혀 아니었어요. 오히려 한 사람의 인격이나 감정을 마구 짓밟는 곳이었지요. 당장 세상을 살고 있는 제가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이 아니다, 살아볼만한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데 누군가를 태어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요.
더불어 여러가지 면에서 삶의 난이도가 너무 높다는 생각도 자주 합니다.
매우 공감하는 문장입니다. 제가 속해 있고 속해 있었던 가정, 학교, 직장은 개인을 존중하는 집단이 전혀 아니었어요. 오히려 한 사람의 인격이나 감정을 마구 짓밟는 곳이었지요. 당장 세상을 살고 있는 제가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이 아니다, 살아볼만한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데 누군가를 태어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요.
더불어 여러가지 면에서 삶의 난이도가 너무 높다는 생각도 자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직장에서 쟤 왜 일 못하냐라고 대놓고 꼽주기 OR 은연중에 무시하며 하대하기를 시전하는 사람들이 싫더라고요. 자기들은 얼마나 그 공간에서 일을 잘한다고 저럴까요? 말씀하신것 처럼 한 사람의 인격이나 감정을 짓밟는거는 흔하디 흔한거라더고요. 누가 한번에 이해못한다고 티끌이라도 실수하면 무슨 대형사고친 마냥 난리 부르스 떨고 사람들 앞에서 막말하고 그걸 또 당연하다고 여기는 거는 이해가 안갑니다. 그렇게 떠들어대는 사람들 중에 절반이상은 일을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아닌데요. 그리고 일을 잘한다고 해도 타인을 짓밟을 권리가 있을까요? 정작 윗사람이나 어떤 인맥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실수하면 아무말도 못하면서요. 나중에 본인이 약자의 상황에 처해지면 무슨 말이 나올까요.
다른 사람 생산성에 방해가 되는 인원을 그냥 두고 보는거면 관리자가 무능하거나 사악한거죠.
조직을 쥐어짜서 자기 성과로 만들고 싶어서라도 썩은 귤은 골라내야 하는데 그걸 못하면 멍청이니까요.
근데 멍청이가 관리자로 있다면 개인적으로 멍청이랑 친해서 이득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면 빨리 빠져 나가야죠.
조직을 쥐어짜서 자기 성과로 만들고 싶어서라도 썩은 귤은 골라내야 하는데 그걸 못하면 멍청이니까요.
근데 멍청이가 관리자로 있다면 개인적으로 멍청이랑 친해서 이득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면 빨리 빠져 나가야죠.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009024453b
제 생각에는 서구권의 많은 사업들이 사회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경우도 많고 여러 크로스 컬쳐적인 트랜드로 봐서 싱가폴 모델을 적용해볼 여지가 많은듯 해요. 미국도 비슷하게 주택개발시에 1/10 ?? 는 공공임대나 저소득층에게 나눠서 주는 방법도 있던데요.
돈이 한곳에 집중되었던 건 예전도 심했는데 그 때는 군중이 몰랐다가 이제는 인터넷으로 다 알게된 시기라 더 세상이 각팍하게 느껴지는듯합니다.
제 생각에는 서구권의 많은 사업들이 사회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경우도 많고 여러 크로스 컬쳐적인 트랜드로 봐서 싱가폴 모델을 적용해볼 여지가 많은듯 해요. 미국도 비슷하게 주택개발시에 1/10 ?? 는 공공임대나 저소득층에게 나눠서 주는 방법도 있던데요.
돈이 한곳에 집중되었던 건 예전도 심했는데 그 때는 군중이 몰랐다가 이제는 인터넷으로 다 알게된 시기라 더 세상이 각팍하게 느껴지는듯합니다.
각자도생을 위한 저출산이,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최후의 집단지성의 연대가 될 것 같습니다.
나라의 존망이 걸릴 정도의 유례없는 저출산이 되니까,
진짜 평균을 받아들이라는 말이 나오고, 인권이나 여유에 대해 돌이켜보기라도 하는거지,
안그랬으면 똑같았겠죠. 너없어도 사람많아~우리 성공공식대로 갈아댈거야~꼬우면 성공해~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최후의 집단지성의 연대가 될 것 같습니다.
나라의 존망이 걸릴 정도의 유례없는 저출산이 되니까,
진짜 평균을 받아들이라는 말이 나오고, 인권이나 여유에 대해 돌이켜보기라도 하는거지,
안그랬으면 똑같았겠죠. 너없어도 사람많아~우리 성공공식대로 갈아댈거야~꼬우면 성공해~
HR쪽의 양대 학파간 딜레마가 생각나네요
능력주의다 vs 아니다.
쓴님이 적으신건 [아니다]쪽의 입장에 가까운 내용들 같습니다.
두 학팍의 의견들이 아무리 토론을 하고 통계와 연구를 들이대도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절대 아니었고
양측의 구조 모두 치명적인 단점들을 가졌기에.
그 속에서 기업들이 터득한건
각자에 맞게 잘 버무리는 조직이 결국 효율성을 발하고 살아남는다.
잘못 버무려 비율적인 기업이 되면 도태된다.
가 현재 진행형이긴 하죠.... 더 보기
능력주의다 vs 아니다.
쓴님이 적으신건 [아니다]쪽의 입장에 가까운 내용들 같습니다.
두 학팍의 의견들이 아무리 토론을 하고 통계와 연구를 들이대도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절대 아니었고
양측의 구조 모두 치명적인 단점들을 가졌기에.
그 속에서 기업들이 터득한건
각자에 맞게 잘 버무리는 조직이 결국 효율성을 발하고 살아남는다.
잘못 버무려 비율적인 기업이 되면 도태된다.
가 현재 진행형이긴 하죠.... 더 보기
HR쪽의 양대 학파간 딜레마가 생각나네요
능력주의다 vs 아니다.
쓴님이 적으신건 [아니다]쪽의 입장에 가까운 내용들 같습니다.
두 학팍의 의견들이 아무리 토론을 하고 통계와 연구를 들이대도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절대 아니었고
양측의 구조 모두 치명적인 단점들을 가졌기에.
그 속에서 기업들이 터득한건
각자에 맞게 잘 버무리는 조직이 결국 효율성을 발하고 살아남는다.
잘못 버무려 비율적인 기업이 되면 도태된다.
가 현재 진행형이긴 하죠.
능력주의다 vs 아니다.
쓴님이 적으신건 [아니다]쪽의 입장에 가까운 내용들 같습니다.
두 학팍의 의견들이 아무리 토론을 하고 통계와 연구를 들이대도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절대 아니었고
양측의 구조 모두 치명적인 단점들을 가졌기에.
그 속에서 기업들이 터득한건
각자에 맞게 잘 버무리는 조직이 결국 효율성을 발하고 살아남는다.
잘못 버무려 비율적인 기업이 되면 도태된다.
가 현재 진행형이긴 하죠.
목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