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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2/09 13:18:36
Name   Zel
Subject   의전은 어떻게 실패했는가 ?
로스쿨과 사시존치 주장과의 갈등이 최고조인 이 시점에서 의전을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로스쿨과 같이 생긴 쌍둥이였지만 지금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실패'라고 단언할 수 있는 제도지요.

의전이 생긴 정책적 이유라면 아마 '입시지옥'+ '고교 서열화' 철폐 가 가장 큰 목적이었을거고, 의대에 있는 아주 소수의 지지자들은 아마 순수하게라면 '응용융합 과정으로서의 의대' 라는 슬로건 + '미국이 8년하고 내가 8년 안해도 되니깐' 하는 막연한 갑질 + '등록금 두배로 상승 및 고질적 의대서열 타파'에 눈독들인 일부 사학재단의 합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로스쿨 설치의 대상이 될만한 서열의 학교와 그렇지 않던 학교간의 갈등이 주로 있던 로스쿨과는 달리 의대는 국립대의 대대적 반대, 특히 서울의대의 강한 반대에 부딛혔습니다.
http://www.segye.com/content/html/2005/11/03/20051103000311.html
http://news.donga.com/3/all/20051104/8244367/1
반대로 의대 투탑 중의 하나인 연세의대는 (특히 재단측에서) 내심 받았으면 하는 생각이 많았지만 모양새 때문에 꽤 눈치를 봤었습니다.

정부에서는 의전을 받지 않으면 BK21 사업이라는 연구중심대학사업 (BK교수들이 서울대에 많았죠) 지원을 끊겠다는 강수까지 썼으나 서울대교수들은 성명서까지 쓰면서 끝까지 저항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학비 상승만 시키고 실익이 없다", "6년이 8년이 아니고 군대도 가야되니 10년 이상을 학부에 있는건 사회적 낭비다.." 등등 이유였지만 그 아래에서는 어짜피 우수자원을 독식하는 서울대니 현 시스템을 바꿀 필요가 없다라는 색안경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사실 시스템 바꿔도 독식의 자신감이야 여전하지만..) 이 와중에 청와대 비서관 및 교육인적자원부 공무원들의 '패악질'에 의해 서울의대교수들이 많은 '수모'를 겪었다는 이야기도 직접 듣긴 했습니다만.. 여튼 당시 정부 분위기를 타고 더 밀어 붙였지요. 이런 분위기는 이 분의 글이 꽤 팩트에 가깝습니다. http://theacro.com/zbxe/free/135365 제가 전임의할때 들은 이야기과 교차검증이 되거든요.

하지만 결국 서울의대도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사실 그 백그라운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http://article.wn.com/view/WNAT74fcb5e5fbb5a43b24f0287cb214af91/
들리는 풍문으로는 의전을 안받으면 서울대 로스쿨도 안주겠다는 정부의 협박에 대학에서 압력을 넣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확인은 안되지만 이렇게들 믿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도 존심쩌는 그 양반들은 의전 100%는 안하고 의예과 50%+의전 50% 로 예과의 맥을 놓지는 않습니다. (샌님들 답게 이 50%의 향후를 계속 모니터링 중입니다. 뒤끝쩔어서 아마 30년 뒤에 코호트 스터디도 나올겁니다 백퍼.)

그 이후의 학부생활에 대해선 사실 잘 모릅니다. 제 한참 아래기도 하고 두 집단간 반목이 굉장히 심했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의대라는 집단은 그 도제시스템 때문에 어느 대학이던 폐쇄적이며 소위 '똥군기'가 꽤 쩌는 동네입니다. 거기에 절반의 이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집단이 생겼으니 당연히 편가르기가 됬겠지요. 제 모교의 경우 이 당시 많은 동아리들이 명맥이 끊어졌습니다. (많은 의전 출신들은 동아리 생활을 시간낭비로 본다고 해서..네 사실 맞습니다.) xx충의 거의 제대로된 지속적 용도가 바로 이 의전생들 뒤에 붙여졌습니다. 의전생들 입장에서도 굉장히 억울한 - 수업료 두배로 내고 똑같은걸 듣고 있습니다 - 상황이었지만 예과-본과-전공의-교수 로 굳건한 의대 시스템에서는 엄청난 약자일 수 밖에 없었고, 그 색안경은 현재도 진행형입니다. 제가 관찰한 바에도 꽤 다른 집단적인 느낌이 있습니다만 wrong이 아니라 different겠죠. (하지만 wrong으로 받아들이는 현실..) 전공의 선발하는 교수들 중에도 이 색안경이 엄청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만해도 의전 출신에 대한 약간의 기대가 있었습니다. 특히 암기머신인 예과-본과생에 비해 자기 학부 전공이 있던 (특히 공대) 의전 출신자일경우 정말로 융합된 사고와 연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맨날 직관으로 두리뭉실하게 아는 도메인 변환과 Fourier Transformation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MRI physics를 이해하지 않을까? 등등을 생각했지만, 아직까지 제가 관찰한 바로는 의전시절에 다들 세뇌가 되어서 그냥 또다른 암기머신들이 되 버렸더군요. 그래서 '융합학문'은 거의 '개소리'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아 물론 교양으로서의 의미는 남아 있겠지만 제가 평가하는건 실용적인 의미지요.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교수나 연구자가 되면 잊혀진 소질이 되살아 날지는 모르겠지만.

이보다 더 현실적인 문제는 바로 의대내 과별 서열의 고착화 입니다. 이건 전적으로 의전출신만의 문제는 아니고 분명 세태를 반영하는 부분이 큽니다. 하지만 오비이락이라고 볼 수 있어도, 마치 IMF전후 비 의대 자연계/공대 계열의 위상 추락만큼은 아니더라도 의전 출신자 이후 병원내 과별 막장과/천상계가 구분이 확실히 되는건 사실입니다. 애시당초 의전 지지자들이 주장했던 '기초의학'의 발전 같은 소리는 완전 개소리가 되었고, 제 학생때만 해도 수석 졸업자들이 가끔 지원하기도 하던 기초의학은 이제 몇년에 한 두명 지원하는 기피분야가 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안철수씨 정도의 성적이라면 아마 요즘 같으면 생리학 교실 대신 서울대 이비인후과 아니면 강북삼성 피부과/성형외과를 갔을 겁니다.. 화장실에 야설만 쓰던 서민교수님도 아마 개업을 했겠죠.

저기 아크로 글이 꽤 통찰력이 좋은 것이 이미 '헬조선'을 경험했거나 '헬조선'을 알고 지원한 의전 출신과, '슈바이처','사꽃나','닥터노먼베쑨','성채'.... '뉴하트' 등등을 보고 지원한 덜떨어진 의대 출신 중에 누가 다시 '헬조선'중의 헬인 '해부학교실', '비뇨기과','신경외과', 그리고 신흥막장 '내과'에 지원하겠습니까.. 서성한~ 중경외시 의 서열이 이제 '내외신신비흉가..' 로 시작되는 새로운 서열로 변경되었을 뿐이죠. 네 사실 이건 의전이 오해를 사는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몇명의 아웃라이어들로 겨우 유지되던 집단은 붕괴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망하는게 더 나을 수도 있겠죠. 아니 더 낫습니다.

의전이 다시 없어지게 된건 이 외에도 공중보건의 수 격감 (군필자들이 의전에 많이 들어와서) 등으로 인한 공공보건 붕괴 (이것도 붕괴하는게 좋습니다) 도 있고 의대교수들의 징징도 있고 뭐 결정적으로 MB정부가 되면서 참여정부 정책들 다 폐기시키다 보니 묻어간거겠죠. 의전 준비학교로 전락해버린 일부 이공계의 반발도 거셌고요. 로스쿨처럼 존속을 원하는 학교도 별로 없고..(재단은 아직도 꽤 있습니다만 명분이 밀려서 말도 못합니다. 물론 재단이 쌘 차대학이라던지 그런데는 유지하고 있죠. 우수학생의 유치에도 유리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몇몇 소수학교를 제외하고는 이제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고 앞으로도 부활할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http://www.docdocdoc.co.kr/news/newsview.php?newscd=2013080800020

세줄요약

1. 기약없는 사시와는 달리 의과대학은 그럭저럭 잘 돌아가고 있었다.
2. 학벌차별철폐 드라이브와 돈에 현혹된 일부 대학의 주장으로 의전원 제도가 시행되었다.
3. 헬조선은 그대로인데 의대만 없어진다고 학력차별이 없어질 리도 없고, 다른 부작용이 많아서 롤백하였다.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5-12-21 23:28)
* 관리사유 : 추천 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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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알못인데 이해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 현직자분의 자세한 설명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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