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2/05/08 00:13:53
Name   카르스
Subject   윤석열을 맞이하며: 진보 담론의 시대는 끝났다
길고 길었던 문재인 정부도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고, 이틀 뒤 윤석열 정부가 취임합니다.
문 정부의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10년주기 정권교체 법칙을 무시하고 단번에 정권교체에 성공한 윤석열을 보면서, 예전부터 생각해온 문제 하나가 확실해졌습니다.

IMF 이후 현재까지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진보* 담론의 시대는 확실히 끝났다고.
진보 담론이 수명을 다했기 때문에 단번에 정권교체가 되었으며, 윤석열이 걱정되는 진보는 새 시대에 맞는 담론을 만들어낼 의무가 있다고.


*여기서 진보는 편의상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더불어민주당 등 민주당계 정당과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 통합진보당을 거쳐 정의당/노동당/녹색당 등으로 이어지는  유럽식 진보정당 둘 모두를 포괄합니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둘 모두 생각보다 공통점이 생각보다 많고, 진보 담론의 종말은 양 정당 모두에 해당한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IMF 경제위기는 한국 사회에 굉장한 충격이었고, 그와 동시에(어느 정도는 그 때문에) 김대중 당선으로 한국 현대사의 진정한 첫 정권교체가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정치, 경제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충격으로 인해 한국 사회의 담론지형은 크게 바뀌게 됩니다. 사실 구조적 변화는 노태우/김영삼 시기부터 조짐이 있었는데, 김대중/노무현 시기에 들어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집니다. 반공 권위주의가 지배했던 한국 사회에 어마어마한 충격이었죠. 

그 전이라고 진보 담론이 없었던 건 아닌데, 장면 내각 이후 처음으로 진보정권을 맞은 상황에서 새천년의 시대가 오고, 인터넷과 휴대폰과 같은 온라인 문화가 폭발하고, IMF 위기를 일단 '표면'적으로 극복했고, 한일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등 급격한 발전에 성공하면서 그에 맞는 진보 담론의 수요와 공급 모두 비대해졌습니다. 지식인과 예술계에서 진보 담론이 지배한 걸 넘어, 아동/청소년들이 보는 잡지와 책에도 해당 코드가 유행하게 됩니다. 이는 2000년대에서 2010년대 초반에 아동청소년기를 보낸, 신문과 책을 즐겨읽던 제가 보증합니다.

아래는 그 결과로 만들어진 진보 담론들의 일부입니다. 

- 정치를 넘어서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을 지배하는 권위주의를 타파하자! (특히 노무현의 핵심 코드) 
- 수도권 패권주의 및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균형발전으로 나아가자! (이것도 노무현의 핵심 코드)
- 외세에 이용당해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 한민족인 북한과의 적대를 끝내고 통일로 나아가자. (햇볕 정책) 
- 혈통 민족주의는 시대착오적. 다문화주의로 가자! (탈민족주의 담론) 
- 한국은 복지가 매우 부족한 국가. 북유럽을 본받아서 고부담-고복지 국가가 되어야, (복지국가 담론)
- 저성장 실업난으로 인한 청년 문제가 심각. 부모보다 가난할 것으로 기대되는 첫 세대다! (88만원 세대 담론) 
- 미국 패권주의를 규탄한다! 대안적 세계질서를 모색하자 (반미운동)
- 입시지옥, 사교육 지옥, 권위주의 교육을 타파하고 청소년이 살기 좋은 나라로! (당시 대안세력이던 전교조의 활약) 
- 민주당이야말로 진짜 보수다. 한국의 자칭 보수정당이라는 건 극우 독재 수구세력일 뿐. (한국 사회의 우편향 담론)
- 국가는 부유해졌지만 재벌들이 과실을 독차지해서 서민에게 돌아간 건 없다! 빈부격차만 심해졌다! (양극화 규탄 담론)
- 한국 최저임금은 너무 낮다! 대폭 올리자! (최저임금 1만원 운동)
- 한국은 장시간 노동의 나라! 저녁있는 삶을 만들자! (손학규 공약)
- 왜곡선동을 일삼는 조중동 보수언론 카르텔을 타파하자! (안티조선 운동) 
- 투표율이 떨어지고 있는데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여준다! (최장집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핵심 주장 중 하나)
- 등록금이 너무 올라서 학생 부담이 극심하다! 정부는 대책을 내놓아라! (반값 등록금 운동)
- 한국 부동산은 미치도록 비싸. 버블이라 곧 일본처럼 붕괴될 것. (선대인)
- 한국은 잘살았는데 행복해지지 못했다. 경쟁사회를 벗어나 탈물질주의, 웰빙의 삶으로 가자. (이스털린의 역설)
- 한국 문화는 군대 문화나 다름없다. 사회의 병영화를 타파하자! (탈군대문화 운동)
- 징집병이 헐값에, 제대로 된 보상 없이 부려먹히고 있다. (열악한 징병제 개혁 혹은 모병제화 운동) 
- 극악의 경쟁문화 때문에 청소년을 포함한 자살률이 세계 최고다! (위의 이스털린의 역설과 연관)
- 한국 사회병폐로 인해 세계 최악의 저출산! 애를 낳을 수 있도록 사회구조를 개혁하자. (저출산 정책)

등등...

저때만 해도 진보 진영에서는 거의 신줏단지 취급받은 주장들이고, 이에 회의적인 주장들은 구습으로 매도되었습니다. 
진보 진영이 학술, 출판 및 문화예술 분야를 쥐어잡았기에, 이 진보들의 인식은 수많은 대중들에게 넘어갑니다.  
그리고 위 인식에 근거한 국가 어젠다와 정책들을 요구했고, 정부는 이를 상당수 받아들였습니다.  
심지어 보수우파도 진보적 어젠다/정책을 생각보다 많이 수용했습니다. 이명박의 보육지원금, 박근혜의 기초노령연금 정책이 대표적이죠.   
그 악명높은 뉴라이트 운동도 진보 정권과 진보 담론에 대한 안티테제로 나온 게 큽니다. 그들이 비판했던 진보 담론 수준 이상으로 망가지는 처참한 결말만 나왔지만. 


하지만 평생 갈 것 같은 위 담론도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적 경험상 박근혜 때부터 조짐이 보였습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진보진영의 비판이 지나치고 무의미하다, 반대를 위한 반대라면서
보수와 반노반문 진보 일각에서 조심스럽게 비판이 나오더니, 
박근혜가 탄핵되면서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서 비판이 잠시 그쳤다가,
문재인 정권이 국민들의 지지를 잃으면서 문재인/민주당 비판의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반-진보담론들이 넘쳐나오면서 확실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문재인 정권은 10년주기 정권교체 법칙도 무너트리고 단번에 윤석열로 정권을 교체시켰습니다. 
0.7%차긴 했지만, 그래도 진 건 진 거죠. 
그리고 윤석열은 확실히 날이 선 정책기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까고 보면 기존 정책들을 그렇게까지 뒤집진 않았지만, 공개적으로 반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보이고 있지요. 

이제 진보좌파들의 담론은 무력하게만 메아리칠 뿐입니다.

그렇다면 왜 포스트-IMF 진보 담론의 시대가 끝났을까요? 이는 매우 복합적입니다. 


1. 담론을 통한 사회개선의 성공 : 수명을 다한 담론들

진보좌파들은 잘 인정하지 않는 사실인데, 한국 사회는 분명히 빠르게 개선되어왔고 이는 최근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가 최근 한국 문화 컨텐츠의 대유행과 코로나 (상대적) 대응 성공이었죠.
그 결과, 과거에 담론으로 제기된 사회문제들 중 현재 해결되어 더 이야기될 일 없어진 게 많습니다. 위 리스트에서만 골라봐도

- 혈통 민족주의는 시대착오적. 다문화주의로 가자! (탈민족주의 담론) => 외국인 및 이주여성이 빠른 속도로 유입되어 외국인 비율이 다문화사회 기준이라는 총인구대비 5%를 곧 돌파할 예정.
- 한국은 복지가 매우 부족한 국가. 북유럽을 본받아서 고부담-고복지 국가가 되어야, (복지국가 담론) => OECD 선진국에서 제일 빠른 복지예산 증가세를 보였고, 세율도 그 못지않게 올랐습니다.
- 권위주의 교육을 타파하자! => 현재는 체벌은 금지되었고 촌지도 거의 사라졌지요. 수련회, 얼차려, 아침조회같은 권위주의 잔재도 많이 사라짐.
- 한국은 장시간 노동의 나라! 저녁있는 삶을 만들자! (손학규의 공약) => 여전히 꽤 긴 편이지만 주6일제 시절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 있었습니다. 
- 투표율이 떨어지고 있는데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여준다! (최장집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핵심 주장 중 하나) => 2000년대까지는 투표율이 낮아졌는데 그 이후 반등해서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 등록금이 너무 올라서 학생 부담이 극심하다! 정부는 대책을 내놓아라! (반값 등록금 운동) => 소득반영 장학금 + 저리 학자금 대출로 상당부분 해결.
개인적으로도 제도 덕에 등록금 반도 안 내고 학교 다녔네요.
- 한국 문화는 군대 문화나 다름없다. 사회의 병영화를 타파하자! => 적어도 민간에서 군대식 교육을 하는 경우는 많이 줄어듦. 
- 징집병이들 헐값에, 제대로 된 보상 없이 부려먹히고 있다. (열악한 징병제 개혁/모병제 도입 운동) => 적어도 월급만 보면 징병제 국가 평균 레벨까진 올랐습니다. 윤석열 월 200만원 봉급 공약은 지나치게 높아 장교/부사관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정도. 

이들 담론은 목적 달성에 성공했기에 더 제기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수명을 다해 자연으로 돌아갔죠.


2. 서구 선진국이 한국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 타 선진국의 상대적 쇠퇴
사실 서구 선진국이 옛날만 못하게 된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멀리 보면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과 신자유주의 시대(경제학자들은 모호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표현은 아닙니다)까지 거슬러 올라가죠.
그동안은 정도가 심하지 않았고 인터넷도 덜 발달해서 숨길 수 있었는데,
최근 10여년동안 서구의 정치적 혼란상이 전세계로 생중계되면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입시교육이 유례 없다고들 하던데, 타 선진국도 대학진학률이 높아지고 교육열이 심해지면서(미국 상류층 입시 이야기 들어보면 한국 강남부모에 비견될 정도입니다) 한국과 차이가 줄었습니다. 
한국 정치인들이 교양 없다고들 까던데 이는 서구 극우 정치인들의 극단화로 도찐개찐(심지어 서구가 더 심한 면도 있는)으로 전락했습니다.
한국에 자유주의가 부족하다고 하던데 코로나19 시국에서 서구는 동북아 때보다 더 심한 수준의 락다운/백신패스/백신 음모론으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서구선진국을 본받자는 진보좌파 담론들은 매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서구 선진국이 매력적이어야 본받을 수 있는데 그게 아니면 모범은 커녕 조롱거리만 될 뿐이죠.



3. 처음부터 틀렸던 주장들의 잘못이 드러남

사실 위의 주장들 중에서는 해당 주장이 나올 시기부터 이미 틀린 이야기인 게 많았습니다.
팩트체크 문화가 부족했고, 타국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고, 기성 반공 권위주의의 안티테제 수준의 주장이 많았고,
자료를 찾을 인터넷 등 인프라도 부족한 시절이었기에 더더욱.

- 외세에 이용당해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 한민족인 북한과의 적대를 끝내고 통일로 나아가자. (햇볓 정책) => 반공교육 잔재는 교정되야 하지만 그걸 핑계로 너무 간 주장들이 많았죠. 무슨 미국이 한반도의 철천지원수라던가, 한국 전쟁이 남한이 선제공격한 전쟁이라던가, 남북분단을 외세에 이용당한 결과로만 보는 피해자 의식이라던가, 북한이 남한보다 친일 청산을 더 잘 했다는 오해 등등...
- 한국은 복지가 매우 부족한 국가. 북유럽을 본받아서 고부담-고복지 국가가 되어야, (복지국가 담론) => 북유럽식 복지국가화는 한국에서 가능하지도 않고.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그게 진정 바람직한지도 의문입니다. 의의도 많지만 한계도 많은 유형.
- 한국 최저임금은 너무 낮다! 대폭 올리자! (최저임금 1만원 운동) => 2000년대까지는 낮았을지 몰라도 그 이후는 절대 작지 않죠. 지금 기준으론 오히려 높은 편. 그 상황에서 무리하게 높이려 시도했다가 쓸데없는 논란과 비용만 만들었습니다.
- 민주당이야말로 진짜 보수다. 한국의 자칭 보수정당이라는 건 극우 독재 수구세력일 뿐. (한국 사회의 우편향 담론) => 한국은 유럽보다 보수적이긴 한데, 보수/진보 기준은 굉장히 모호하고 복잡한 문제라 우경화 여부를 단정짓기는 굉장히 복잡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 복지국가화를 보면 거꾸로 한국에 진보정당만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건 너무 나간 발상이지요. 그리고 왜 '유럽'이 절대적인 기준점이 되어야 하죠?
- 저성장 실업난으로 인한 청년 문제가 심각. 부모보다 가난할 것으로 기대되는 첫 세대다! (88만원 세대) => 실업난은 분명 심각한 문제이지만 부모보다 현재 청년이 가난하다는 근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옛날보다 생활수준/소득 향상속도가 줄어들긴 했습니다만. 차라리 양극화의 심화라면 이해는 하지만...
- 국가는 부유해졌지만 재벌들이 과실을 독차지해서 서민에게 돌아간 건 없다! 빈부격차만 심해졌다! (신자유주의화 규탄 담론) => 위와 비슷합니다.
- 한국은 잘살았는데 행복해지지 못했다. 경쟁사회를 벗어나 탈물질주의, 웰빙의 삶으로 가즈아~ (이스털린의 역설) => 한국에 이스털린의 역설이 적용되는 지부터 의문입니다. 2000년대까지는 생활수준이 올라가면서 행복도도 동시에 올라갔습니다. 2010년 이후도 상승세는 약해졌고 통계지표마다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약하게나마 올라간 편이고요. 
- 한국 부동산은 미치도록 비싸. 버블이라 곧 일본처럼 붕괴될 것. (선대인) => 저때가 미치도록 비쌌다면 지금은 대체 뭐라고 수식해야 할까요?
- 극악의 경쟁문화 때문에 청소년을 포함한 자살률이 세계 최고다! (위의 이스털린의 역설과 연관) => 청소년 자살률은 타국대비 그렇게 높지 않고, 전반적인 자살률은 노인 빈곤으로 인한 노인 자살 문제가 큼임이 최근 많이 밝혀짐.

이렇게 거짓으로 드러난 주장이 많아서 옛날만큼 권위를 갖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진보 담론 전반적인 몰락이죠. 


4. 진보 진영이 해결하지 못하거나 도리어 악화시킨 사회문제들

담론이 잘못되었거나, 정치권이 정책/어젠다 내놓을 역량이 안 되거나, 정치인이 부패했거나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담론이 제시한 사회문제들은 보수정권 때는 물론이고 진보정권 때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많았습니다.
아니, 차라리 보수정권 때 그나마 나았던 게 많았죠.
이는 결국 진보 담론의 효능감을 낮추고 냉소만 갖게 만들어 진보 담론의 몰락으로 이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사교육, 입시교육 문제는 지금은 더 심해졌습니다. 
김대중-노무현과 문재인의 대북 유화정책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실패했습니다.
지역격차(인구 측면에서), 저출산, 부동산 가격 문제는 그냥 말을 말고요. 


5. 진보의 위선으로 인한 이미지 실추

진보 진영은 이명박/박근혜 시절부터 무리수 둔 안티테제적 비판을 해대다가,
정작 문재인 정권 들어서니 역량 부족은 기본이고 윤리적인 추태를 벌인 끝에 이미지가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반북강경 모드로 불신을 자초하긴 했지만, 천안함 침몰 사건에서 국제조사단 연구결과조차 불신하고 음모론 펼친 건 추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분명 박근혜 정부 책임도 크지만, 진보진영이 과도하게 이용했던 면도 있었습니다.
검찰 수사가 지나쳤을 수도 있지만, 조국을 지나치게 옹호했던 것은 중도층의 반감을 샀습니다.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 성범죄 3연타와 2차가해 추태는 여성과 중도층에게 환멸만 주었습니다.

그렇게 전국민적 비판과 냉소만 받게 되고, 결국 진보 담론의 몰락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IMF 시기부터 지금까지를 지배한 진보 담론의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좋은 이유도 있고 나쁜 이유도 있습니다.
이유가 어찌 됐건, 지금 위 이야기를 반복한다면 언제적 이야기/틀린 소리를 언제까지 반복할거냐는 식의 비아냥만 돌아설 겁니다.

그렇게 한국 사회에서 담론은 텅 빈 상태가 되었고, 그 자리를 분노와 혐오와 극단화가 채우고 있습니다.
뭔가 불만은 많은데 기존 담론들이 불만을 해소해내질 못한 부작용의 결과이지요.


그렇다면 어떤 담론이 필요할까요?

혹자는 정의당과 같은 유럽식 진보정당이 내놓는 담론을 대안으로 내세울 겁니다.
유감스럽지만 저는 그들이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최근 몇 년 간의 행보를 봤을 때 정치적 역량 자체가 국가운영을 하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이며,
이들이 내놓는 정책이라는 걸 보면 민주당계 정당의 어젠다/정책을 강도만 높인 수준인 게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민주당의 문제가 어젠다/정책의 강도가 약했기 때문이라 보지 않습니다. 
방향부터 잘못된 게 많아서, 강도만 높여봤자 더 일을 망칠 뿐입니다.

그리고 이들 유럽식 진보정당은 큰 위기를 맞고 있지요.  
지지도나 대선 득표율만 보면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제3진영까지 올라오는 데 성공한 이후 최악의 상황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우선 한국 사회의 발전상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사회병폐를 해결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 사회를 너무 긍정적으로 봐도 문제지만, 너무 부정적으로 봐도 문제될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이 너무 낮다는 인식에 갖혀 있으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부작용을 무시하기 쉽습니다.
한국인들의 자산/소득수준을 과소평가하면 주택가격 상승 잠재력을 과소평가하기 쉽습니다.
지금까지의 노동시간 단축 효과를 당연시만 여기면 이로인해 발생하는 사회 변화(예: 여가 인프라 수요의 증가)를 무시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세계적 위상이 높아졌음을 인정하지 않고 언행을 벌이면 국내에서 벌이는 추태가 전세계에 생중계됩니다.

더욱이 진보좌파들은 한국 사회의 발전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기에, 그 태도를 벗지 못한다면 대중의 불신과 냉소를 걷어내지 못할 겁니다. 발전상을 인정하지 않은 채 펼친 정책으로(부동산 정책처럼) 민생에 악영향 끼친 게 한둘이어야죠.


이제 한국은 과거의 개발도상국이 아닙니다.
30, 20년 전은 물론이고 10년 전에 비해서도 개선된 부분이 많습니다.
오히려 산업구조나 디지털화, 코로나 대응 등 몇몇 부분은 서구 선진국이나 일본보다 앞서다는 평가까지 받는 시점이죠.


새 술은 새 부대에 싸야 하듯, 이런 새 시대엔 새 담론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보진영의 미래가 암울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잘못된 한국 사회 이해로 인해 한국 사회의 미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한국은 국내외적인 수많은 우려를 극복해서 꾸준한 성공 스토리를 그려냈습니다. 앞으로도 성공 스토리를 그려낼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담론부터 개혁해야 합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2-05-24 10:09)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50
  • 피할 수 없는 인구절벽으로 인한 하강을 대비하여 완만하되 재도약 가능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정당으로 변모하여 재집권 할 수 있길 바라며 추천.
  • 굉장히 좋은 글입니다.
  • 와우...좋은 글이네요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28 일상/생각입학사정관했던 썰.txt 17 풍운재기 18/05/08 7297 21
91 과학쓰레기 유전자 ( Noncoding DNA ) 와 유전자 감식 23 모모스 15/10/20 7312 9
756 일상/생각대체 파업을 해도 되는 직업은 무엇일까? 35 레지엔 19/01/11 7338 33
899 영화시카리오 - 현실에서 눈을 돌리다 29 코리몬테아스 19/12/18 7344 15
924 정치/사회봉준호 감독 통역을 맡은 최성재(Sharon Choi)씨를 보면서 한 영어 '능통자'에 대한 생각 31 이그나티우스 20/02/19 7363 23
560 일상/생각내가 사회를 바라보는 눈 9 다시갑시다 17/12/08 7368 20
267 기타[마르크스 사상사 시리즈] 1. 맑스?마르크스? 29 nickyo 16/09/21 7374 5
683 문화/예술트로피의 종말 6 구밀복검 18/08/16 7385 13
648 체육/스포츠17-18 시즌 메시 평가 : 그아메, 하지만 한정판 14 구밀복검 18/06/14 7388 13
632 의료/건강26개월 남아 압빼수술(a.k.a 충수절제술, 맹장수술) 후기 30 SCV 18/05/14 7396 15
197 역사유게에 올라온 유재흥 글에 대해 67 눈시 16/04/29 7398 34
690 의료/건강의느님 홍차클러님들을 위한 TMI글 - 아나필락시스 사망사건과 민사소송 22 烏鳳 18/08/28 7399 10
518 일상/생각평등 31 알료사 17/09/26 7411 27
413 꿀팁/강좌국립중앙박물관에 가 보세요! 34 열대어 17/04/16 7416 15
836 역사고려청자의 위상은 어느 정도였을까? 17 메존일각 19/07/24 7416 31
1198 정치/사회윤석열을 맞이하며: 진보 담론의 시대는 끝났다 76 카르스 22/05/08 7417 50
336 정치/사회대리모 문제 37 烏鳳 17/01/03 7418 12
240 문학히틀러 <나의 투쟁>을 읽고 7 DrCuddy 16/07/28 7420 13
951 일상/생각돈으로 헌신에 감사 표하기 28 구밀복검 20/04/22 7424 25
564 일상/생각이상하게도 슬리퍼를 살 수가 없다 21 소라게 17/12/21 7425 22
395 정치/사회화장실을 엿본 그는 왜 무죄판결을 받았나 13 烏鳳 17/03/24 7443 29
727 IT/컴퓨터인터넷 뱅킹, 공인인증서를 사용하지 않아도 안전할까? 31 T.Robin 18/11/07 7448 10
605 철학/종교감동(感動) 23 기아트윈스 18/03/22 7451 31
623 일상/생각선배님의 참교육 12 하얀 18/04/29 7452 24
494 문학제가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 보려 합니다. 33 그리부예 17/08/16 7470 12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