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1/12/14 20:07:42
Name   샨르우르파
File #1   헌혈.jpg (160.7 KB), Download : 23
Subject   헌혈하는 것의 의미


방금 헌혈하고 돌어왔습니다.
올해 다섯번째, 제 생애 23번째 헌혈입니다.
제 올해 마지막 헌혈이 되겠네요.

처음부터 헌혈을 즐겼던 건 아닙니다.
학창시절에 학교로 헌혈차량이 와서, 선생님이 헌혈 할 거면 해볼래? 해서 시작했습니다.
수업중이라 합법적으로 수업 쨀 수 있었기에 올 때마다 했습니다.
구급차 안에서 헌혈하는 느낌도 재미있었고, 사은품도 짭짤했습니다.
쿠키와 쥬스는 맛있었고, 고등학생 신분으로 문상 쓸 일은 별로 없었지만 도움이 됐네요.  

대학 올라와서도 헌혈하는 버릇은 이어졌습니다. .
시간이 많아서 심심할 때 할 수 있었고,
헌혈 사은품인 영화관람권, 문화상품권, 까페 쿠폰을 쓸 일이 훨씬 많아졌고
대학 봉사활동 시간으로도 (한 번뿐이지만) 인정받았거든요.  

사회복무요원 시절에도 자주 했습니다.
사은품은 물론에 헌혈 한 번에 두시간 공가라 개꿀이었고,
4.19 이벤트시기엔 헌혈자에게 하루 공가를 주는 짭짤함을 누렸습니다, 하 추억돋네. 
지금도 관성처럼 헌혈을 합니다. 정기적 참여하면서 사은품을 받으면 더 좋겠지? 같은 마인드로.
적어도 두 달 전까진 그랬습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 때까진. 

"제 삶의 터전을 갑작스럽게 잃게 된다면, 어떤 게 남아 제 위안이 되어줄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제 생각이 미쳤던 건 헌혈이었습니다.
헌혈을 버릇처럼 해서 의식하지 않았지만, 헌혈은 응급상황에 환자에게 수혈해서 생명을 살리는 봉사활동이지요.

제가 돈, 명예, 권력, 직업, 가족, 친척, 친구, 지인, 취미생활처럼 삶의 모든 걸 잃어버린다 해도,  
헌혈을 통해 위급한 사람의 목숨을 살았다는 성과는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헌혈은 제 인생 성취의 최소한으로 남아있겠지요.
절대 잃을 수 없는 인생의 유일한 성취... 헌혈은 위기 상황에서 제 삶의 마지막 활력소로 남아있을 겁니다.

그런 결론에 도달하니, 헌혈 참여 의지가 더 높아졌습니다.
요즘같은 불안한 세상에서 삶의 정신적 보루를 만들기에 헌혈만큼 쉬운 게 없거든요. 

갑자기 헌혈 관련 사은품을 모두 중단한다고 해도 저는 꾸준히 헌혈을 할 겁니다.
이번이 23번째고, 헌혈이 만 69세까지 가능하니 죽기 전에 200번을 채우는 게 목표입니다. 

여러분, 헌혈하세요.
헌혈바늘이 들어갈 때 따끔한 거 말고는 힘들지도 않고, 
오래 걸리지도 않으면서,
사람을 직접 구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봉사활동입니다.
물론 대한적십자사가 개선할 게 많은 조직이고, 나이 많으신 분들에겐 매혈의 나쁜 이미지가 남아있는 건 압니다.
그럼에도 저는 헌혈하면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사회에 공헌하고 사은품 받는 걸 넘어, 스스로의 삶에 대한 의미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삶이 무료하고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분들은 꼭 헌혈을 해보셨으면 합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1-12-28 09:39)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24
  • 춫천
  • 추천
  • 훌륭한 생각, 훌륭한 태도, 훌륭한 글귀
  • 헌혈추
  • 좋은청년이구먼
  • 잘 읽었어요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305 창작서울에 아직도 이런데가 있네? 7 아파 23/06/01 4183 24
1246 과학이번 카카오 사태에 가려진 찐 흑막.jpg 코멘터리 18 그저그런 22/10/25 4832 24
1241 기타대군사 사마의 감상. 나관중에 대한 도전. 10 joel 22/09/30 3556 24
1152 일상/생각헌혈하는 것의 의미 9 샨르우르파 21/12/14 3742 24
1116 정치/사회동북아에서 급증하는 무자녀 현상 (부제: 초저출산이 비혼'만'의 문제인가?) 23 샨르우르파 21/08/13 5814 24
1101 역사왜 작은 어머니를 숙모라고 부를까. 24 마카오톡 21/06/30 5262 24
1098 기타한국 만화의 이름으로. 고우영 수호지. 15 joel 21/06/15 5324 24
1065 정치/사회수준이하 언론에 지친 분들을 위해 추천하는 대안언론들 20 샨르우르파 21/03/03 7924 24
1058 문학오늘부터 5월까지 덕수궁미술관에서는 20 순수한글닉 21/02/04 4785 24
1054 일상/생각내가 맥주를 마실 때 웬만하면 지키려고 노력하는 수칙 52 캡틴아메리카 21/01/21 6370 24
1013 일상/생각나는 순혈 오리지날 코리안인가? 50 사이시옷 20/10/05 6186 24
971 정치/사회그냥 이야기 12 Schweigen 20/06/16 4375 24
916 창작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5 작고 둥근 좋은 날 20/01/29 6291 24
827 과학블록체인의 미래 - 2018 기술영향평가 보고서 2 호라타래 19/07/03 6971 24
765 일상/생각돈이 없는 것보다 더 부끄러운 것 10 The xian 19/01/31 7294 24
717 철학/종교은탄환의 딜레마 15 메아리 18/10/16 7468 24
713 일상/생각햄 버터 샌드위치 30 풀잎 18/10/13 7294 24
623 일상/생각선배님의 참교육 12 하얀 18/04/29 7230 24
618 기타황구 출현 이틀차 소감 15 쉬군 18/04/19 6958 24
584 문화/예술프사 그려드립니다. 72 1일3똥 18/01/28 8405 24
572 역사무굴제국의 기원 26 기아트윈스 18/01/06 6256 24
566 의료/건강완벽한 보건의료제도는 없다 ('완벽한 보건의료제도를 찾아서'를 읽고) 18 Erzenico 17/12/26 7058 24
515 일상/생각조카사위 이야기. 47 tannenbaum 17/09/21 7917 24
483 일상/생각인생은 다이어트. 12 프렉 17/07/26 6706 24
400 일상/생각부쉬 드 노엘 18 소라게 17/03/28 5800 24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