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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10/03 02:08:44
Name   소요
Subject   청소년, 정체성의 발전, 인종관계
- Tatum, B. D. (2017). Identity Development in Adolescence. In Why Are All The Black Kids Sitting Together In The Cafeteria (pp. 131–164). https://doi.org/10.1680/udap.2010.163 입니다.
- 일전에 상호교차성 전쟁(https://kongcha.net/?b=3&n=11957)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해당 글에 은머리님이 달아주신 댓글(https://kongcha.net/?b=3&n=11957&c=161096)을 보다 떠올라서 소개해봅니다. 빠르게 올리려고 했는데 정신 없다보니 이제서야... 직접적인 응답이라기 보다는 맥락을 보다 이해하기 위한 글이에요.

들어가며

저자 테이텀은 초등학교 때는 섞여서 잘 놀던 흑인 학생들이 청소년기에 들어서면 왜 자기들끼리 모이게 되는지를 질문해요. 만약 중고등학교로 올라오면서 연고가 없는 학생들끼리 모이게 된다면, 이런 인종 분리 현상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유치원-초등학교-중/고등학교를 변화 없이 다 같이 올라가는 경우에도 6~7학년부터 인종 간 분리는 시작되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사춘기가 들어서면 우리는 자아에 대한 질문을 시작해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 등등이요. 이런 자아에 대한 질문은 인종을 중심으로 구성될 수도, 젠더를 중심으로 구성될 수도, 계급을 중심으로 구성될 수도 있어요. 그리고 각각의 질문은 맥락 없이 우연히 일어나지만은 않아요. 저자 테이텀은 흑인 학생들은 스스로를 인종적인 관점에서 먼저 바라보게 된다고 주장하며, 이는 사회에서 한 개인에게서 무엇을 먼저 읽어내는가와 무관하지 않다는 논지를 펼칩니다.

한 개인은 정체성을 한 번 모두 탐색하지 않아요. 청소년 시기에는 다양한 정체성 영역 중(직업 계획, 종교적 신념, 가치와 선호, 정치적 소속과 믿음, 젠더 역할, 에스닉 정체성) 일부는 성취되더라도 일부는 유예되거나, 탐색되지 않은 채 남겨지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스스로에게 어떠한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탐색의 우선순위가 달라져요. 하지만 미국 맥락에서는 백인종 - 유색인종의 위계적 대비가 두드러지지지요.

우리의 자아 인식은 주변으로부터 받는 메세지에 의해 형성되어요. 테이텀이 직접적으로 용어를 쓰지는 않지만, '호명'이라는 알뛰세르의 유명한 개념을 떠올릴 수 있을 거예요. 한 아이는 수많은 특징을 지녀요. 키가 또래보다 작을 수도, 수학을 잘할 수도, LOL에서 탑라인을 갈 수도, 13살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사회에서 흑인 청소년들을 부르는 주된 분류는 '흑인'이에요. 이런 메세지라는 건 꼭 깜둥아(negro)! 같은 언어적인 형태를 띠지만은 않아요. 여성이 흑인 남학생 옆을 지나가면서 속도를 내 금새 멀어진다든지, 흑인 남학생이 지나갈 때 옆의 차가 자동적으로 잠기는 소리를 듣는다든지, 마트에 갔더니 경비원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감시한다든지, 새로 산 자전거를 타고 다른 마을에 갔더니 경찰이 훔친 건 아닌지 검사한다든지, 낯선 사람이 자신은 농구를 할 것으로 가정한다든지 하는 것들이지요. 나이에 따른 차이는 있지만, 언제건 그 시기는 찾아오게 되요.

인종-에스닉-문화적(racial-ethnic-cultural) 정체성의 형성을 이해하기

심리학자 윌리엄 크로스와 빈타 크로스는 "인종적, 에스닉적, 문화적 정체성은 생애 경험의 수준 속에서 중첩된다"고 주장했어요. 저자 테이텀이 세세하게 각 용어의 정의를 분류하고 있지는 않아요. 한국에서는 에스니시티라는 용어도 그리 익숙하지는 않으니까요. 에스닉이라는 용어를 이해하려면 한국에서 사는 한국인이 미국 백인을 만날 때, 미국에서 사는 2세대 한국인이 백인을 만날 때 느끼는 관계의 미묘한 차이에 주목하시면 되요. 인종 관계가 보편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국지적인 맥락에서 빚어나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럼 이 국지적인 차이는 무엇일까요? 거칠지만 문화라고 칭할 수 있을 거예요.

흑인 청소년들은 지배적인 백인 문화의 여러 믿음과 가치들을 흡수해요. 여기에는 백인이 미국 사회의 주류 집단(그것이 과잉된 환상이든 아니든지)이라는 메세지도 들어가고요. 이런 메세지를 숨쉬듯이 들이키는 건 흑인 청소년과 백인 청소년 모두 마찬가지에요. 물론 이는 가정의 맥락에 따라 매개되요. 가정 내에서 다른 메세지를 전달해주는 경우 외부 사회의 메세지는 영향이 감소되지요.

생태학적 환경이 개인에게 던지는 메세지가 변화하고 청소년을 둘러싼 세계가 사회에서 이해하는 '흑인성'을 흑인 청소년들에게 돌려주기 시작하면, 이 학생들은 자신들의 집단 정체성과 그 의미(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를 이해하는 방식을 발전시켜요.

상기한 이해로의 이행은, 청소년들이 인종주의(racism; 여기서 인종주의를 인종차별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요)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도록 강요하는 (연속된) 사건에 기반해요. 이 글에서 탐색하듯이, 많은 연구들은 이 이행이 중/고등학교에 일어난다고 지적해요. 아, 물론 인종이라는 카테고리가 정체성 탐색과 집단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끼치는 건 굳이 흑인 뿐만은 아니에요. 백인 청소년들도 이 점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지요. 하지만 존 피니와 스티븐 타버가 48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흑인 청소년들 특히 흑인 여학생들에게서 가장 적극적인 탐색이 나타난다는 거였어요. 이건 단순히 인종/젠더의 교호를 떠나서 학생들이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학교의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요. 백인 학생들이 다수인 학교에 다니는 흑인 학생과, 흑인 학생들이 다수인 학교에 다니는 흑인 학생을 비교해 볼 수도 있어요.

이런 차이가 체계적으로 빚어지는 까닭은 생태학적 환경이라는 것이 제도화 되기 때문이에요. 대표적인 예로는 수준별 수업(tracking)을 들 수 있어요. 학교 관리자들은 학생들을 '수준별로' 배치하는 방식이 공정하고 객관적이라고 주장하지만, 학생들이 배치되는 방식에는 인종적인 패턴이 뚜렷하게 나타나요. 인종적으로 섞인 학교에서 흑인 학생들은 낮은 등급에 배정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흑인 학생들에게 '흑인이란 무엇인가'라는 메세지를 전달해요.

학교 밖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역동도 다르지는 않아요. 데이트를 예로 들어볼까요. 사춘기가 들어서면 미국 부모들은 인종 간 데이트에 대해 불안을 느낀대요. 인종적으로 섞인 공동체에서 생일 파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는 그 불안을 보여줘요. 초등학교 때는 인종이 아니라 젠더로 구분되어요. 남학생은 남학생만, 여학생은 여학생만 초대하지요. 중/고등학교로 들어서면 젠더의 경계는 약해지고 인종 간 경계가 부각되요.

백인 위주의 공동체에서 흑인 여학생들이 겪는 경험은 주목할 만해요. 백인 친구들은 연애를 하기 시작하는데, 자신들은 그렇지 못하거든요. 누가 성적으로 매력적인지(sexually desirable) 아닌지를 전달하는 메세지는 흑인 여학생들에게 깊은 상처로 자리잡아요. 자신들의 매력을 매우 낮게 인식하게 만들고요. 필라델피아의 한 흑인 여학생은 같은 반에 흑인 남학생이 없어서 "고등학교 내내 백인 남학생이랑 한 번 잘 해보려고 했지만pursuing White guys throughout high school" 소용이 없었어요. 백인 남학생들이 백인 여학생들과 데이트 하는 모습을 보는 건 "개빡치는 really pissed off"일이었지요.

흑인이 다수인 동네에 사는 흑인 여학생들은 다른 경험을 해요. 사회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에, 사회에서 흑인 여학생들을 묘사하는 부정적인 고정관념(학교 중퇴, 10대 미혼모, 마약 중독, 가정 폭력 희생자, 에이즈) 등에도 더 잘 저항하지요. 

고정관념에 저항하고 자신들에 대한 다른 정의를 확인하는 과업은 공동체의 인종 구성과는 별개로 대부분 흑인 여학생에게 마찬가지에요. 이런 과업은 때때로 대중 문화에서 흑인 여성들이 초성애적(hypersexualized) 혹은 다른 부정적인 방식으로 묘사됨에 따라 더 복잡해져요. 흑인 여성들에 대한 이미지는 언제나 성애화 되기에, 사춘기 들어 변화하는 자신의 신체 그리고 남성 상대방들의 신체를 지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어요. 물론, 가정에서 어떠한 메세지를 전달하느냐에 따라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상쇄하는 효과가 나타나기도 하지요.

흑인 남학생들은 범죄자라는 이미지를 마주하게 되요. 하지만 백인 학생들이 다수인 학교에서도, 흑인 학생들은 운동 선수로서의 재능이 있다면 사회적 성취를 이룰 수 있어요. 미국 사회는 흑인 운동 선수라는 이미지를 껴안았고, 덕분에 흑인 운동 선수들은 흑인 여학생에게도, 백인 여학생에게도 종종 선망되고는 하지요. 

일상에서 부딪치는 작은 메세지들 - microaggressions; 미세한 공격들 - 은 누적적인 효과를 발휘해요. 이는 오프라인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일어나고요. 유색인종 학생들은 백인 학생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온라인에서 보내요. 그리고 거기서 인종이라는 기준으로 그들을 공격하는 수많은 메세지들을 마주하고요. 수많은 유색인종 학생들 중에서 흑인 청소년들이 특히 더 거세고 직접적인 공격을 마주하게 되요. 온라인 비디오 게임을 하면서 부딪치는 모습들 (흑인들에 대한 공격적인 조크, 흑인을 나무에 매단 모습을 깃발로 사용하는 길드 등)은 그 예지요.

조우에 대처하기: 대항적 정체성을 발전시키기  

테이텀 책의 제목은 '왜 모든 흑인 아이들은 카페테리아에서 함께 앉아있는가?'에요. 인종주의의 경험이 필연적으로 자기 분리(self-segregation)으로 귀결되는 걸까요?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소망이 일견 이해되더라도, 그것만이 설명요인의 전부는 아니에요. 

언급했던 '일상에서 부딪치는 작은 메세지'들은 개별로만 뜯어놓고 봤을 때는 심각하지 않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봅시다. 한 교사가 중 2 흑인 여학생을 보고 방과 후 수업 과목으로 춤을 제안했어요. 학생은 자기는 그런 거 안 좋아한다고 했고, 교사는 춤을 좋아할 줄 알았다고 답한 상황이 생겼죠. 이 교사는 원래 평판도 좋고, 나름대로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학생들을 대하는 사람이고요. 때문에 흑인 여학생이 백인 친구들에게 이 점을 성토하자, "스미스씨는 좋은 사람이야. 그가 그런 뜻으로 그리 말하지는 않았을거야. 확실해.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지 마Oh, Mr. Smith is such a nice guy, I'm sure he didn't mean it like that. Don't be so sensitive"라고 답합니다.

아마도 백인 친구의 생각이 맞을 거예요. 스미스씨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겠죠. 하지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감정이 격하될 때, 인간은 정서적으로 거리를 두게 되요(disengage). 대화를 이어나가기를 포기하고, 자신을 더 잘 이해해 줄 누군가를 찾아나가게 되지요. 인종적 메세지를 주목해서 읽어줄 수 있는 흑인 여학생들을요. 그렇게 흑인 여학생들끼리 책상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야 너 그거 아냐. 스미스 선생 나한테도 어제 똑같이 물어봤어. You know what, Mr. Smith said the same thing to me yesterday!". 흑인 학생들이 자기들끼리 모이는 거는 백인들이 꼭 공격적이라서가 아니에요. 이 문제에 있어서 그들에게 원하는 지지를 받기가 힘들기 때문이지요.

인종이라는 주제가 개인적 삶에서 부각되면서, "어린 흑인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What does it mean to be a young Black person? How should I act? What should I do?"는 특히 중요해요. 아버지, 어머니, 이모, 삼촌들이 역할 모델이 될 수 있지만, 이는 대부분의 청소년들에게 크게 와닿지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흑인'임을 거부하겠다는 것도 아니지요. 많은 학생들은 성장해서 부모처럼 되기를 원해요. 하지만 방법을 모르지요. 그 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또래 집단이에요. 어떻게 흑인이 되는지how to be Black 알고 있어 보이지요. 이들은 대중 문화 속에 비춰지는 전형적인 흑인의 이미지를 받아들였고, 자기 현시에 이 이미지들을 반영해요.

시니시아 포드햄과 존 오그 부는 고등학교에서 현장연구(fieldwork)를 실시해서 미국 흑인 학생들이 정체성 발달 단계에서 보이는 심리적인 패턴을 기술했어요. 청소년들은 흑인들이 미국 사회에 완전히 편입하는 걸 막는 체계적인 배제를 점차 인식하게 되고, 인식에 따라 생겨난 분노와 억울함이 대항적인 사회적 정체성(oppositional social identity)를 발전시키게 한다고요. 이 대항적인 태도는 인종주의의 심리적인 공격으로부터 정체성을 방어하도록 하고, 주류 집단과 거리를 두게 만들지요.

"종속적인 소수자들은 특정한 형태의 행위, 사건, 상징, 의미들이 백인 미국인의 특징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적절하지 않다고 여기게 된다. 동시에 그들은 다른 형태의 행동이 백인 미국인의 생활양식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적절하다고 여기게 된다. 백인의 문화적 준거틀에 해당하는 태도에 맞춰 행위하는 것은 "백인하기"이며 부정적으로 인지된다. Subordinate minorities regard certain forms of behavior and certain activities or events, symbols, and meanings as not appropriate for them because those behaviors, events, symbols, and meanings are characteristic of white Americans. At the same time, they emphasize other forms of behavior as more appropriate for them because these are not a part of white Americans' way of life. To behave in the manner defined as falling within a white cultural frame of reference is to "act white" and is negatively sanctioned." (시니시아 포드햄 & 존 오그 부, 1986)

특정한 발화, 의복, 음악 형식은 "진정하게 흑인적authentically Black"인 걸로 받아 들여지고, 높은 가치가 부여되요. 백인성과 연관된 행위나 태도는 경멸당하고요. 또래 집단이 무엇이 흑인이고 무엇이 아닌지 내리는 평가는 청소년들의 행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백인이 많은 동네에서 온 한 고등학생 소녀는 흑인 학생들에게 거부당했던 경험을 다음과 같이 회상합니다.

"걔들은 "야 넌 백인처럼 말하고, 백인처럼 생각하네"라 했어요. 백인처럼 말한다는 반응은 저에게는 터무니 없었어요... 9학년 때 경험은 끔찍했어요. 정말 싫어하는 랩 음악을 듣기 시작했어요. 저는 흑인이 되어야 했어요. 근데 그건 바보 같잖아요. 흑인이 된다는 건 단순히 누가 어떻게 행동하냐가 아니잖아요. 하지만 다른 흑인 여학생들은 오래도록 저에게 다가오지 않았어요. 첫 한 해는 지옥이었죠. Oh you sound White, you think you're White," they said. And the idea of sounding White was just so absurd to me .... So ninth grade was sort of traumatic in that I started listening to rap music, which I really just don't like. [I said] I'm gonna be Black, and it was just that stupid. But it's more than just how one acts, you know. [1he other Black women there] were not into me for the longest time. My first year there was hell."

인종주의라는 스트레스를 맞닥뜨리는 상황에서 지지를 구하기 위해 동료 집단과 함께 하는 건 긍정적인 대처 전략이지요. 문제는 학생들은 흑인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매우 좁은 정의에 기초한다는 거고, 이마저도 대개 문화적 고정관념에 의지한다는 거예요.

대항적 정체성의 발전과 학업 성취

불행히도 흑인 청소년들에게, 자신들의 문화적 고정관념은 학업 성취를 포함하지 않아요. 흑인 학생들의 85%는 대학(college) 이상의 교육을 희망해요. 그들의 가족들도 그걸 원하고요. 역사적으로 유색인종 부모들은 교육을 자녀들의 인생을 위한 기회로 생각하지만, 자녀들의 교육 성취는 백인 학생들에 비해 뒤쳐지고는 해요. 그럼 우리가 앞서 살펴본 정체성 형성 과정이 학업 성취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연구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복잡하다고 합니다. 연구가 실시된 학교의 맥락의 다양성이 연구 결과의 변동성을 설명할 수 있지요. 인종분리가 심한 학교, 그러니까 흑인이 대다수인 학교에서는 흑인 학생들이 상위권부터 하위권까지 모두 분산되어요. 대화 패턴, 옷 입는 방식, 음악적 취향 등을 가지고 "백인처럼 행동하네"라고 비꼴 수는 있지만, 학업 성취는 문제가 되지 않지요. 인종적으로 섞인 학교로 가보면, 여기서는 백인들이 AP나 IB (일종의 상급반, 대학 수준을 미리 땡겨서 듣거나 국제적으로 인증되는 다른 형태의 수업을 듣는 반이라 보시면 됩니다) 수강생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흑인과 히스패닉은 일반적인 그리고 특수 학습의 다수를 차지하지요. 여기서는 학업 성취를 내는 것이 흑인성과 결부되어 문제가 되요. 이런 학교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흑인 학생들과 인터뷰를 해보면, 이런 또래 집단의 압력을 이겨내는 것이 가능했다고 스스로를 설명해요. 비록 불편하더라도요. 학업적인 성취가 빼어나지 않은 흑인 학생들은 다른 방식으로 자아를 발전시켜요. 좋은 운동 선수가 되거나, 쿨해지고 터프해지거나, 교실에서 광대가 되거나, 혹은 다른 방식으로 승인(affirmation)을 구하죠.

대학에 진학한 흑인 학생들을 인터뷰 해 보면 또래 집단이 학업 성취를 흑인성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경우 (그러니까 인종적으로 섞인 학교) '오레오' 같은 비난을 듣고는 했고, 흑인 또래들로부터 사회적인 거리를 두었다는 이야기를 해요. 또한 상급반에서 한 두명만 흑인이기 때문에 백인 학생들과의 관계를 맺는데도 어려움을 겪었고요. 포드햄은 이 때 사람들이 취하는 전략으로 인종에 대한 무관심(racelessness)를 지적해요. 자신들을 종속적인 집단의 구성원으로 정체화 할 수 있는 특징을 강조하지 않음으로서 주류 집단에 동화되는 전략이지요.

다른 전략으로는 자신의 흑인 정체성과 문화를 거부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흑인 정체성을 학교나 주류 제도에서 활용하는 방식이 있어요. 사절단(emissary) 전략인데, 자신의 성취를 자기 인종 집단에 근거한 것으로 바라봐요. 예를 들자면 한 학생은 다른 학생들이 학업 성취를 가지고 흑인 정체성을 부정하면 "그럼 박사 학위를 가진 마틴 루터킹도 흑인이 아니고, 감옥에서 공부한 말콤x도 흑인이 아니Martin Luther King must not have been Black, then, since he had a doctoral degree, and Malcolm X must not have been Black since he educated himself while in prison"라고 받아쳤대요. 그러면서 자신이 학교에서 발견하는 인종 차별에 대항하는 정치적 태도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면서 흑인 공동체에 대한 충성을 드러내고요.

나가며

이후 부분은 어떤 식의 개입이 가능할지, 교육학적인 여러 개입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얘기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저작권 문제도 있으니 남은 절반은 생략할게요. 테이텀의 주장은 요약하자면 대안의 제시, 대안적인 롤 모델의 제시라 할 수 있어요. 일례로 2008년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워싱턴 DC에 위치한 흑인 다수 중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숙제 완수 비율이 치솟았다는 보고도 있었지요. 

학교 카페테리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흑인 학생들의 인종-에스닉-문화적 정체성 발달 과정은 인종주의의 심리적 공격으로부터 보호적인 효과를 제시하지만, 주류 미디어의 편견을 다시 왜곡된 형태로 반영하는 편협한 흑인성 정의 때문에 흑인 학생들의 정체성 발달과 표현을 다시 왜곡해요. 인종화(racialization)라고 하는 보다 추상적인 상위 개념의 구체적인 한 형태라 할 수 있겠지요. 본문에서는 교육에 그리고 흑-백 관계에 초점을 맞추지만, 이런 정체성 발달 과정은 전방위적인 영향을 끼치지요.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일어나는 인종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한 틀로 삼아도 좋고, 정체성 발달이라는 과정을 보다 추상적으로 받아들여서 한국의 젠더 갈등 및 이 젠더 갈등이 청소년들의 정체성 발달에 다시 끼칠 영향을 추측해보는 방향으로 삼아도 좋을 것 같아요. '페미니스트' 정체성 발전이든, '안티페미니스트' 정체성 발전이든 (지지를 구할 수 있는) 집단에서 가해지는 동조화 압력과 이로 인한 정체성의 협소한 정의와 발전은 생각해볼만한 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거 올렸던 성매매 청소녀의 사회화 과정(https://kongcha.net/?b=3&n=6554)에 나왔던 하우그의 성애화 이론을 겹쳐서 볼 수도 있겠고요.

//

본문에서 함께 언급한 다른 학자들의 글은 아래와 같습니다.

William E. Cross and T. Binta Cross, "Theory, Research, and Models," in Handbook of Race, Racism, and the Developing Child, ed. Stephen M. Quintana and Clark McKown (Hoboken, NJ: Wiley and Sons, 2008), 156.

Jean S. Phinney and Steve Tarver, "Ethnic Identity Search and Commitment in Black and White Eighth Graders," Journal of Early Adolescence 8, no. 3 (1988): 265-77. See also French et al., "The Development of Ethnic Identity During Adolescence."

Signithia Fordham and John U. Ogbu, "Black Students' School Success: Coping with the Burden of 'Acting White'" Urban Review 18 (1986): 176-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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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 어머 이런건 바로 추게야
  • 오오 추천하지 않을 수 없네요
  • 어르신 잘 읽었습니다. 역시 연륜과 통찰력!!! ㅡㅡb
  • 늘 좋은 소재 감사합니다.
  • 요즘 읽고 고민하는 내용에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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