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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08/03 18:39:28
Name   소요
Subject   상호교차성 전쟁
원문 링크: https://www.vox.com/the-highlight/2019/5/20/18542843/intersectionality-conservatism-law-race-gender-discrimination

Vox라는 미국 미디어에서 나왔던 기사입니다. 지난 학기 수업 때 읽었던 기사인데 소개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이제 풀어봅니다. 저작권을 위해 뼈대만 담고, 일부만 세세하게 옮기면서 원문 병기합니다. 기자는 Jane Coaston입니다.

* 번역에서 right와 conservatives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우파로 번역했읍니당.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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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우파가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라는 단어에 지니는 반감은 커요. 상호교차성이 뜻하는 바는 "너가 소수자이기 때문에 특별한 기준을 적용받고, 특별한 취급을 받는다because you’re a minority, you get special standards, special treatment in the eyes of some"로 여겨져요. 또한 페미니즘의 한 형태를 보여주는데, 이 페미니즘은 "너에게 꼬리표를 붙이고, 너가 얼마나 억압되어있는지 알려주고,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지 알려puts a label on you. It tells you how oppressed you are. It tells you what you’re allowed tosay, what you’re allowed to think"주지요. 우파 입장에서 상호교차성은 희생의 음모론(conpiracy theory of victimization)이에요.

크렌쇼(Crenshaw)는 1989년 어떻게 인종, 계급, 젠더, 그리고 다른 특징들이 서로 간 "교차"하고 중첩되는지 묘사하기 위해 상호교차성이라는 개념을 고안했어요.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 퍼졌고, 우파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지요.

기자는 우파 내 상호교차성 비판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파의 분노가 이론 그 자체를 향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비판자들 대부분도 상호교차성 개념이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세계를 조우하는 방식을 정확하게 기술한다는 걸 인정했지요. 흑인 여성들의 체험 - 혹은 차별 경험 - 은 백인 여성의 그것과, 흑인 남성의 그것과 달라요. 비판가들은 그 함의, 활용,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그 귀결을 반대해요. 이 귀결에는 인종적/문화적 위계를 반대로 뒤집에서 새로운 위계를 만드는 것이 있지요.

하지만 크렌쇼는 흑인 여성이 가장 위에 위치한 위계를 만드려 하지 않았어요. 인종적 위계를 전적으로 없애고자 했지요.

크렌쇼를 만나다

기자가 크렌쇼를 만났을 때, 그는 한창 "상호교차성에 대한 신화부수기 Mythbusting Intersectionality"라는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상호교차성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는 건 학술 토론장만은 아니에요. 상호교차성은 좌파와 우파를 가르는 기준선이 되어 왔었어요.

상호교차성에 대한 논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요. 1) 크렌쇼와 같은 학자들이 상호교차성 개념으로 무엇을 가리키고자 하는가? 2) 어떻게 집단 간 불평등을 철폐하고자 하는 활동가들이 이 개념을 해석해왔는가? 3) 활동가들의 이 개념 활용에 대해 우파 세력들이 어떻게 응답했는가?

크렌쇼는 이 모두를 지켜봤어요. "사상이 맥락과 내용을 벗어나서 퍼져나갈 때 일어나는 일이지요 this is what happens when an idea travels beyond the context and the content". 

"상호교차성"의 기원

상호교차성이 무엇인가, 무엇이 되어왔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종과 시민권에 관한 크렌쇼의 30년에 걸친 저작을 살펴봐야 해요. 크렌쇼의 관심사는 비판적 인종 이론(critical race theory)라는 이론으로 응축되요.

비판적 인종 이론은 1980~90년대에 일군의 법학자들이 고안했어요. 당대에는 법 체계 내의 차별과 인종주의는 비합리적이며, "편견의 비합리적 왜곡이 제거되고 나면, 기저에 자리잡은 법적 사회경제적 질서는 공정하게 배분되는 정의라는 중립적이고 바람직한 상태로 바뀌리라 that once the irrational distortions of bias were removed, the underlying legal and socioeconomic order would revert to a neutral, benign state of impersonally apportioned justice"는 공감대가 있었거든요.

크렌쇼가 보기에 이러한 공감대는 위안적이면서 위험하다는 점에서 기만이었어요. 크렌쇼는 인종차별(racism)이 1965년 민권법(Civil Rights Acts)가 통과되면서 사라졌다고 믿지 않았고, 단순히 몇 세기 동안의 일탈이라 입법부의 교정 이후에는 더 이상 법 혹은 법에 의존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으리라 믿지도 않았지요. 오히려 크렌쇼는 미국의 법적 그리고 사회경제적 질서가 대부분 인종주의에 기반해 있다 보았어요.

비판적 인종 이론이 제안되기 이전에는 법과 사회 구조 자체가 본질적으로 인종차별적이라는 관점이 많지 않았어요. 일부 왜곡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때묻지 않은 걸로 인식되었지요. 때문에 법/사회 제도에서 인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해석하는 도구가 적었어요.

크렌쇼는 비판적 인종 이론에서 확장된 상호교차성 아이디어를 고안했어요. 1989년에 발표한 그의 논문 Demarginalizing the Intersection of Race and Sex는 https://chicagounbound.uchicago.edu/cgi/viewcontent.cgi?article=1052&context=uclf 에서 읽을 수 있어요. 이 논문에서 크렌쇼는 인종 차별과 성 차별이 교호하는 세 개의 법적 사례를 분석해요.

1976년에 일어난 DeGraffenreid v. General Motors의 사례를 볼게요. 다섯 명의 흑인 여성이 제너럴 모터스 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어요. 연공 서열 규정이 흑인 여성들을 배제한다고요. 간략하게 말하자면, 제너럴 모터스 사는 1964년 이전에는 흑인 여성을 고용하지 않았어요. 1970년 초 경기 침체 때 회사는 연공 서열을 기반으로 일시 해고를 결정했고, 1964년 이후 고용된 모든 흑인 여성들은 그로 말미암아 일시 해고되었지요. 이와 같은 규정은 따로따로 봤을 때는 젠더 차별로도 인종 차별로도 들어가지 않았어요. 하지만 법원은 젠더 차별과 인종 차별 주장을 묶으려는 시도가 불가능하다고 결정했지요.

(이후에 다른 케이스도 기술하는데,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해당 본문 참고 바랍니다.)

크렌쇼는 흑인 여성을 순수하게 여성 혹은 순수하게 흑인으로 취급하는 법원 결정이 흑인 여성이 집단적으로 마주하는 구체적인 어려움을 무시한다고 주장해요.

"상호교차성은 법원이 인식하지 못했던 차별법 내 역동을 비추는 분광기였어요. Intersectionality was a prism to bring to light dynamics within discrimination law that weren’t being appreciated by the courts", "법원은 인종 차별은 젠더를 막론하고 모든 흑인에게 일어나는 일로, 성 차별은 모든 여성에게 일어나는 일로 간주해 왔지요. 그리고 만약 이러한 관점을 지닌다면 흑인 여성이나 다른 유색인종 여성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인식하기 어려워져요. In particular, courts seem to think that race discrimination was what happened to all black people across gender and sex discrimination was what happened to all women, and if that is your framework, of course, what happens to black women and other women of color is going to be difficult to see"

그렇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어요. 크렌쇼의 이론은 주류가 되었어요. 옥스포드 영어 사전에 2015년 등재되고, 2017년 여성의 날에도 큰 관심을 받았지요. 여성의 "정체성을 교차하기intersecting identities"란 여성들이 "수많은 사회 정의와 인권 이슈에 영향을 받는impacted by a multitude of social justice and human rights issues"것 뜻한다고 주목 받았어요. 크렌쇼는 "상호교차성에 대한 아이러니한 일은 유명해 지기 위해서 법의 세계를 떠나야 했다는 거죠. the thing that’s kind of ironic about intersectionality is that it had  to leave town — the world of the law — in order to get famous"라 웃었어요.

크렌쇼는 다른 사람들이 상호교차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지켜본 경험을 유체이탈 경험에 비교해요. "때때로 저는 사람들이 '상호교차성은 이렇고 저렇고'라고 말하면, '오 그게 누가 제안한 생각이지요'라고 물어봐요. 그럼 그들은 저를 인용하지요. 그러면 저는 '전 그렇게 쓴 적이 없어요. 그렇게 말하지도 않았고요. 제가 상호교차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와도 달라요.'라고 말해줘요. “Sometimes I’ve read things that say, ‘Intersectionality, blah, blah, blah,’ and then I’d wonder, ‘Oh, I wonder whose intersectionality that is,’ and then I’d see me cited, and I was like, ‘I’ve never written that. I’ve never said that. That is just not how I think about intersectionality.’” 덧붙이면서 그는 사람들이 상호교차성에 대해 듣거나 아는 것은 직접적인 경험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하고요.

어떻게 우파는 상호교차성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하고, 상호교차성에 공포를 느끼도록 학습되는가

2015년 이후 상호교차성에 대한 우파의 반응은 오락거리부터 노골적인 공포까지 다양했어요. 2017년 작가 설리번은 상호교차성이 일종의 종교와 같다고 주장했어요. 모든 인간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 고전적인 정설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고, 모든 발화가 걸러지고, 원죄론이 몇몇 정체성 집단과 결합한다는 지적이었지요. 

하지만 많은 우파들은 좀 더 정교한 관점을 지녀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겹쳐진 정체성에 따라 서로 다르게 차별을 경험한다는 상호교차성의 개념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데이비드 프렌치는, "서로 다른 범주에 속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경험을 한다는 건 일종의 상식이지요. It’s sort of this commonsense notion that different categories of people have different kinds of experience"라고 말해요.

반대하는 건 대학 혹은 그 너머에서 일어나는 상호교차성의 적용이에요. 우파들은 상호교차성 개념이 자신들을 공격하는데 쓰이고, 자신들을 새로운 중첩되는 억압 내의 희생자로 만든다고 주장해요. 상호교차성은 억압의 위계를 단순히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는 그 역으로 작용해서, 백인 스트레이트 시스젠더들에게 종교적 저주를 내린다고 인식해요.

"싸움이 시작되는 곳은 Where the fight begins", 프렌치가 말하기로는 "상호교차성이 기술에서 처방으로 움직일 때 일어나요. is when intersectionality moves from descriptive to prescriptive". 그건 마치 상호교차성이 발화되기 전까지는 보수주의자들도 문제 없는 언어로 느끼는 것과 비슷하지요.

벤 샤피로는 2018년 한 우파 교육 영상에서 상호교차성을 "너의 생각이 지닌 가치라는 게 얼마나 많은 희생자 그룹에 너가 속하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일종의 정체성 정치이다. 그 바닥에는 사람들이 모두 혐오하기를 사랑해마지 않는 백인 스트레이트 남성이 있다 a form of identity politics in which the value of your opinion depends on how many victim groups you belong to. At the bottom of the totem pole is the person everybody loves to hate: the straight white male"라고 주장했어요. 

인터뷰에서 샤피로가 제시한 정의는 크렌쇼가 이해하는 자신의 이론과는 벗어나 있었어요. 샤피로가 정의하는 "피해자성의 위계hierarchy of victimhood" 속에서 백인 남성은 바닥에 있어요. 여자라면 남성보다 더 피해자이고, 흑인이면 백인보다 더 피해자이고, 흑인 여성이면 흑인 남성보다 더 피해자라는 거지요. 

기자는 샤피로에게 크렌쇼의 1989년 논문을 가져다 주었어요. 샤피로는 이 논문이 "상대적으로 나무랄데 없어 보인다 seems relatively unobjectionable"라 응답했어요. "저는 이 이론에 대해서 학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토론 속에서 듣기 시작했어요. '너의 특권을 검토하기'라는 세션에서요. 그건 제가 상호교차성 이론을 접한 첫 장소이고, 대부분이 대중의 시선 속에서 상호교차성 이론을 접하는 첫 장소입니다. I first started hearing about this theory in the context of a lot of the discussions on campus, the ‘check your privilege’ discussions. That was the first place that I came across it, and that’s honestly the place that most people first came across it in the public eye"

"저는 그걸 반교차성 교차성이라 부르죠"

크렌쇼는 우파의 상호교차성 비판이 진짜로 이론을 겨냥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파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비판의 일부에 활용하지는(예를 들면 샤피로가 '내가 백인 스트레이트 남성'이라 얘기하는 것처럼) 않았겠지요. 

정체성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물론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 한은요. 그리고 현재 정체성 위계의 위쪽에 위치한 사람들은 이러한 위계를 함께 철폐하는데 함께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자리를 잃어버리는 데 더 관심이 많지요.

크렌쇼는 "당신이 자신의 정체성을 펼쳐서 특정한 비판을 시작할 것이라면, 당신이 비판하려는 정체성 정치와 당신의 정체성 정치는 정확하게 어떤 차이가 있나요? When you’re going to sign on to a particular critique by rolling out your identity, exactly how was your identity politics different from what you’re trying to critique?"라 말합니다. "이건 당신이 누구냐는 문제에요. 그게 당신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고요. It’s just a matter of who it is, that’s what you seem to be most concerned about"

새로운 카스트 제도라는 공통적인 비판은 어떤 면에서는 크렌쇼의 이론에 담긴 기본적 진리를 확인해줘요. 한 개인은 어떻게 그들이 비춰지고, 이해되고, 다루어지는지에 영향을 미치는, 상호 교차하는 개인적 정체성들을 지닌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크렌쇼는 비판가들의 주장을 반박하며, 상호교차성은 현존하는 것들의 뒤집혀진 이미지 속에서 세계를 새롭게 창조하려는 시도가 an effort to create the world in an inverted image of what it is now" 아니다라고 말해요. 상호교차성의 핵심은 더 평등한 시스템을 만들어 내기 위한 "더 많은 옹호와 개선적 실천for more advocacy and remedial practices"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요.

결론적으로 상호교차성 개념 자체는 기존의 문화적 구조나 권력 역동을 뒤집자는 것이 아니에요. 현존하는 권력 역동을 같이 철폐하자는 것이지요. 

기자가 인터뷰한 우파들도 상호교차성 개념 자체는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어요. 법적 개념으로서 혹은 아이디어로서 상호교차성에 대해서는 딱히 개의치 않았고요. 하지만 상호교차성의 실천에 대해서는, 더하여 상호교차성이 그들과 사회에 묻고 혹은 요구하리라 결론내린 것에 대해서는 매우 신경쓰고 있었지요.

상호교차성이라는 아이디어는 한 형태의 억압을 다루기 위한 노력이 다른 억압들도 고려하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드러내요. 그리고 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준비되지 않거나, 답할 생각이 없는 질문을 제기하지요. '상호교차성주의자'들의 가치를 충실히 따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지요.

상호교차성은 권력 불균형의 분석 혹은 준수이기도 하면서 권력 불균형을 철폐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권력 불균형의 준수는 이를 철폐할 수 있는 도구보다 논란이 덜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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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줄이다보니 본문의 뉘앙스와는 미묘하게 달라진 것 같은데, 상호교차성 개념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풀어주는 뼈대들은 그래도 다 옮기고자 했습니다.

많은 독자를 위한 글이다 보니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지점이 있고, 정작 활동가들이 왜 특정한 방식(이를테면 '너의 특권을 검토하기' 같은 세션으로 아이디어를 전파하는지)으로 상호교차성을 수용하고 퍼트리려고 하는지는 없어서 아쉽기는 해요. 이게 참 재미있는 영역일 것 같은데 말이죠.

처방과 기술 사이의 구분을 조심하라는 접근을 크렌쇼의 것으로 기억했는데, 번역하면서 다시 읽다 보니 크렌쇼의 아이디어는 아니었네요. 기억의 한계여... 크렌쇼가 구체적으로 현재 활동가들의 상호교차성 활용에 대해 어떤 스탠스를 지니는지는 최근 논문들을 좀 더 봐야겠습니다.

대중운동에서의 상호교차성 활용을 둘러싼 비난이나 찬양으로 댓망진창 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ㅠㅅㅠ 대부분 눈치채셨겠지만, 한국에서의 페미니즘 대중운동이나 혹은 그 언저리의 무언가를 둘러싼 논쟁과 겹쳐지거든요.

그보다는 상호교차성 개념을 수용/거부하는 양상도 상호교차적이라는 관점에 주목하면서, 수용/거부하는 두 양상 모두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싸우지 말고 사당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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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상 감사합니다.


하마소
정체성은 중첩되어 세분화되지만, 동시에 여러 영역의 전반에 발을 들여야 하는 문제가 생기죠. 그러니 정체성 내의 역할에 천착하게 되면 쉬이 모순에 빠지게 되고. 그 점들이 잦은 예시들처럼 전장을 형성하게 되는 것. 그런데, 또는 그러다보니 관련한 전투는 한 점에서 만나는 일이 거의 보이지 않더라고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이어져 길고 긴 전선을 이룰지언정, 어느 한 지점에 전면전을 촉발하지는 않고. 그러다보니 길고 긴 평행선은 그저 지치지 않는 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게 되더군요. 전장이 아닌 논의를 보고싶읍니다.
네네, 요렇게 판을 깔아두는 것도 전쟁 대신 논의를 이끌기 위한 안배같은 거라 혼자 생각합니다 ㅋㅋ 기사 내용이야 알 사람들은 다 알 기초적인 내용인지라... 허수아비 치기라도 줄이면 좀 낫겠다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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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이야기이긴한데요,
'균형잡힌 권력' 혹은 '권력 동역학의 철폐'같은게 말이 되는 목표일까요?
개인적으로는 추구할만한 추상적 가치일 뿐, 모든 가치가 그렇듯이 100% 실현은 불가능한(무엇이 100% 실현인지를 정의하기도 모호한) 가치가 아닐까 싶어요. 민주, 자유, 평화, 숨결더운 사랑과 마찬가지로요.
그렇게 답해주시니 조금은 이해가 가면서 동시에 더 큰 의문이 생깁니다.
이 인류란 집단은 100프로 실현불가능한 무언가를 대체 얼마나 안다고 그걸 위해 끊임없는 희망과 노력을 하는걸까요?! 심지어 그걸 이룬다고 이 사회? 공간? 집단? 인류?가 더 나아지는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요새 근본적인 것에 자꾸 의문을 가지게 되어 큰 일 입니다. 욕구가 많은데 도를 닦아야 하는 길로 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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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인 것에 대한 의문 충족도 중요한 욕구 아닐까요?! 상기했던 가치 추구도 인류 차원을 넘어 개인의 삶을 충만하게 만들기 위한 한 요소라 생각해요. 혹자는 그 가치를 위해 자기 삶의 균형을 지나치게 망가뜨리기도 하고, 혹자는 뒤집혀진 순수라는 면에서 가치라 여겨지는 모든 걸 부정하기도 하지만요.

말씀하신 질문으로 돌아오자면, 끊임없는 노력이라는 것이 희망의 본질적인 속성이 아닐까 싶어요. 미래라는 시간을 현재에서 경험하는 한 양태이기도 하고요.
주식하는 제로스
글을 읽고 상호교차성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는데,
그걸 알고서도 상호교차성이라는 단어를 보았을때는
막상 그 의미가 전혀 연상되지 않습니다.

뭐라고 번역해야겠느냐 대체용어를 물으시면 딱 답은 못하겠습니다만
상호교차성이라는 단어가 썩 좋은 번역은 아닌것 같다고는 말하고 싶습셉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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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 그렇군요. 전 본문에 적은 용례에 너무 젖어서 그런지 좋다/안 좋다도 인식하지 않고 써왔거든여
주식하는 제로스
본문 내용 정도로 설명이 없으면 무슨소리인지 전혀 감이 안올것 같아요-.-
중첩성.. 중첩정체성? 정체성중첩? 결합정체성?
교차정체성? 중첩정체성? 지금 단어 번역은 정체성이라는 측면은 가정하고, 교차성이라는 정보만 드러내니... 아니면 페미니즘에서 교차성 페미니즘이라 쓰듯이, 형용사처럼 쓰는 게 더 받아들이기 좋을지도요.
주식하는 제로스
교차억압성이라고 쓰기도 하나봐요..?
그런 용례는 제가 거의 못 봤어요 ㅋㅋ 교차성을 억압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좀 위험한디...
주식하는 제로스
https://pgr21.com/freedom/92803#4333229

그냥 지나가다 본 댓글인데 마침 상호교차성 얘기를 했던 터라 기억이 나더라고요 ㅎㅎ
아마 원문은 같은 용어일것 같은데 해서
다시갑시다
Intersection이 수학에서 교집합을 의미하는것과 뿌리를 같이하는 단어인데, 그게 교차성으로 번역된건 아쉽긴합니다.

상호교차성은 뭔가 방향성이있는 느낌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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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딱 이렇읍니ㄷ...읍으..ㅂ...
먹이님의 경험은 남성으로 설명되는 부분이 있고, 의사로 설명되는 부분이 있는데, 때로는 '남성 의사'로서의 독특한 경험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ㅋㅋ 그 중 무엇이 더 본질적이고 부차적이냐도 존재하지 않고요 (그래서 젠더를 가장 중요한 정체성으로 꼭 요청할 필요도 없고). 오래전부터 아이디어 자체는 제기되어왔고, 크렌쇼가 체계화 하였다 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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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하는 제로스
근데 그 개념자체는 당연하다면 당연한거 아닐까 싶기도 합니당..거기다 연령을 얹을수도 있고 인종을 얹을수도 있고
네네, 그래서 크렌쇼가 미국의 판례? 케이스를 가지고, 이 당연한 것이 고려가 덜 되고 있다고 포착했던 거기도 하구요.

전 페미니즘 담론 내에서 상호교차성을 수용하면서, 젠더를 우선시하던 접근에서 빠져나올 길이 보다 열렸던 게 아닌가 싶어요. 트랜스젠더 논쟁에서 드러나듯이, 무엇이 '여성'인가는 천착할 수록 어려운 주제거든요. 그래서 여성의 본질을 운동을 위해 [전략적으로만] 요청한다는 전략적 본질주의가 저 꼬꼬마 시절에 나왔던 거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어찌볼런지 모르겠네여
제 경험은 홍차넷 회원으로 설명되는 부분이 있고 그게 더 본질적입니다 (끌려간다...)
그렇다면 운영진이 억압을 ㅋㅋㅋㅋㅋ!
은머리
CRT의 상호교차성이 원론적으로는 그렇다가 되겠네요.

제가 이해하는 CRT는 대중화되기에는 잠재적으로 굉장히 급진적이에요. 일단 CRT에서는,

미국 사회는 객관적, 보편적인 가치를 지닐 수 없다고 봅니다. 인종을 막론하고 접근하는 colorblindness는 그 자체로 객관적이고 타당한 가치이나 그건 순전히 백인우월주의자 입장에서만 객관적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백인들에게는 SAT가 입학생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수단일지 모르나 SAT시험비용이 부담스러운 많은 흑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죠. 인종을 막론하고 균등한 기회를 줘 받자 출발점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이상 시민운동 후의 중립성... 더 보기
CRT의 상호교차성이 원론적으로는 그렇다가 되겠네요.

제가 이해하는 CRT는 대중화되기에는 잠재적으로 굉장히 급진적이에요. 일단 CRT에서는,

미국 사회는 객관적, 보편적인 가치를 지닐 수 없다고 봅니다. 인종을 막론하고 접근하는 colorblindness는 그 자체로 객관적이고 타당한 가치이나 그건 순전히 백인우월주의자 입장에서만 객관적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백인들에게는 SAT가 입학생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수단일지 모르나 SAT시험비용이 부담스러운 많은 흑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죠. 인종을 막론하고 균등한 기회를 줘 받자 출발점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이상 시민운동 후의 중립성, 객관성으로는 백인우월주의를 벗어날 길이 없다고 봅니다. (이게 틀린 말은 아니죠.)

권력을 쥔 인간이 어떤 경험을 했냐가 제도나 가치체계에 반영되는 거라 보기 때문에 권력이 요동치는대로 가치는 바뀔 수 있고 따라서 객관성, 보편성을 담보할 수 없죠. 좋은 예가 All men are equal이라는 미국 콜로니스트 건국주의자들의 가치는 흑인들에게는 웃기는 짬뽕인 거예요. 그래서 동상은 내려와야 하는 거죠. 미국의 리버럴리즘 또는 평등주의 가치도, 근본부터가 기울어진 운동장판이었던 흑인들에게는 백인의 경험만을 반영한 백인우월주의 가치인 것이고 백인우월주의를 지우려면 제도마다 계급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 외 인종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도 치열하게 반영해야 하죠. 페미니즘도 인종차별을 의식해야하구요. 상호교차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에요.


미국에서 CRT 교육을 두고 양진영간 피터지는 싸움을 하는 중인데요. 미국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는 거랑 CRT가르치는 거랑 달라요. 보수들이 CRT를 반대하는 건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미국이 백인우월주의사회다라고 가르치는 건 해당이 되겠네요. 그런데 백인우월주의 사회에 대한 교육은 주로 교사들을 상대로 이루어지고 있고 초, 중, 고 아이들에게는 이런 거 안 가르칩니다. 아이들을 상대로 쓸데없이 급진적이거나 섬세하게 문제적인 교육을 시전하는 뉴스에 대해 듣긴 하지만 분란조장형 반인종차별 교육이 염려해야할 흐름이라는 데는 저는 회의적이에요. 보수가 공포조장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죠.

그렇지만 CRT는 분명 급진적 BLM 운동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어요. 이들은 맑시즘의 계급주의에 인종주의를 대입해 사회를 해석하고 급진성을 키웠지요. 풀뿌리운동이었던 BLM과 달리 민중과는 동떨어진 채 리버럴 언론에서 윤색되어 등장한 BLM운동가들은 인종차별 서사를 비틀어 의뭉스럽게 금전을 획득하고 자신들의 재산증식에 BLM 대의를 이용했어요.

역설적이게도 리버럴언론의 힘을 입어 상당한 권력을 쥐게 된 BLM운동가들이 백인경찰에 의해 ‘살해’당한 흑인 남성의 경험을 대대적으로 피력해 과장된 서사로 승승장구하는 동안 흑인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폭력피해자들의 경험은 철저히 무시됐지요. ( https://youtu.be/J_4Ohw_ulRw
How Grieving Mothers Are Supporting Each Other | Glenn Loury
)

BLM운동으로 경찰폭력에 대한 경계와 감시는 강화됐어요. 그러나 다른 범죄들은 하향세인데 무엇때문인지 유독 증가한 총기살인비율의 가장 큰 피해자는 저소득층 흑인커뮤니티라는 건 아이러니한 결말이죠. 리버럴 언론에서 전하는 메세지는 아니지만 BLM운동의 결과는 조지 플로이드 사망 1주기행사의 풍경이 잘 반영하는 것 같아요. 범죄자들의 차가 행사지역 근처를 지나가면서 대략 30발을 쏘죠. 흑인 커뮤니티의 치안이 더 불안해졌음을 알 수 있지요. 그렇지만 이건 중산층 리버럴이 경험하는 문제가 아닌 거죠. ( https://twitter.com/gabegutierrez/status/1397243087584473089?ref_src=twsrc%5Etfw%7Ctwcamp%5Etweetembed%7Ctwterm%5E1397243087584473089%7Ctwgr%5E%7Ctwcon%5Es1_&ref_url=https%3A%2F%2Fwww.nbcsandiego.com%2Fnews%2Fnational-international%2Fturning-mourning-into-dancing-festival-to-remember-george-floyd-on-anniversary-of-his-death%2F6140857%2F )

CRT의 문제점은 계급격차가 아닌, ‘인종간’ 불평등을 구조적인 문제에서만 찾는다는 데 있어요.

가난한 흑인커뮤니티에 주로 백인중산층 소비자들이 애용하는 프랜차이즈 가게 Target이 들어서면 경사입니다. 우범지역이라 사업하러 잘 안 들어 오거든요. (한국인 빼고요.) Target은 경제적인 계산이 나쁘지 않았던 이유 외에도 소수인종을 배려한다는 이미지 인센티브까지 고려해 볼티모어의 한 흑인 커뮤니티에 가게를 오픈했어요. 팬데믹을 거친 여파도 있지만 BLM시위가 한창이었을 때 매달 비용으로 나간 보안 비용이 3만불이었죠. 도난으로 인한 피해도 겹쳐 감당이 안 돼 결국 문을 닫았어요. 이런 현상을 두고 NYT는 동네 흑인목사의 목소리를 빌어 잦은 도난이 문제면 보안을 강화하라고 주문을 했어요. 정체성 정치는 피억압자를 규명하고 정책적으로 피해보전을 요구하는 데에만 열을 올리고 시민성 회복의 중요성은 거론하지 않고 있어요. 이게 담론에 포함이 안 되어 있어요. 구조적인 문제에만 천착하니까요. ( https://www.nytimes.com/2021/06/30/business/target-baltimore-store-closings.html )

흑인 커뮤니티는 아무 노력도 안 하냐. 합니다. BLM단체는 흑인을 ‘살해’하는 백인경찰만 규탄하지만 Anti-violence가 대의인 흑인단체들도 있어요. 전자는 왜곡된 서사지만 돈이 되는 반면, 후자는 흑인 커뮤니티 내부의 문제를 주로 다루고 경찰과의 협력을 도모하지만 언론사에는 인기가 없는 주제라 돈도 없죠.

그래도 리버럴 언론들과는 달리 바이든 정부는 흑인정체성정치를 적당히 포용하면서 원래 하던대로 중심을 잘 잡고 있는 것 같아요. 정부인사 고용에서는 다양성의 본보기를 보여주었고 코비드 지원금을 대대적으로 풀어 힘든 서비스직에서 노동자가 귀한 사회가 됐고 (얼마나 오래 갈 지는 모르겠지만요) 아동세금공제로 빈곤층이 많은 혜택을 받고 있거든요.

미국 사회가 (언론때문에) 어떤 종류의 피로감을 경험하고 있든 오프세계의 미국은 인종차별이 개선되어야 하는 나라가 맞습니다. 미국흑인이 겪는 차별을 잘 보여주는 한 가지 사건을 들어보면,

LA에는 Baldwin Hills Crenshaw Plaza라고 하는, 큰 몰이 있는 흑인커뮤니티가 있어요. 흑인밀집지역에 대중적인 유명브랜드들이 즐비하고 ‘커다란 몰에 흑인 소상공인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 풍경’은 그리 흔치 않습니다. 소유주가 이 몰을 내다팔려고 하자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흑인들이 밀려날까봐 각종 흑인단체/시민들(BLM단체가 참여했다는 말은 못 들었어요)이 115밀리언 달러를 모아 몰을 사들이려 했죠. 가장 고가를 제시했지만 백인 소유주는 더 적은 금액을 제시한 한 건설사에 팔아버렸어요. 백인우월주의란 게 저런 거구나란 생각이 들게 하죠. ( https://thehill.com/homenews/state-watch/565647-black-community-group-loses-bid-to-acquire-downtown-la-mall-despite?fbclid=IwAR3YYSwuGm0ruQU-L0aCfbdATxFWwNXgEQi09t2gGQnbZdNF69vi5MBeugQ )

미국 흑인들이 문제가 많고 되게 불쌍한 사람들인가 싶으시겠지만 언론에 나오는 시카고 흑인우범지역은 저는 잘 실감이 안 나고 등산 가면 흑인, 백인, 히스패닉, 아시안 고루고루 다 보고 제눈에는 다들 친절한 미국인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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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주워 들은 CRT는 백인우월주의비판이라고 간략하게 요약이 되는데 리버럴 언론에서는 CRT가 너도 나도 비판은 하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는 이론이라는 식으로 정면대결을 피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아이들을 상대로 인종의식을 강요하는 교육이 제가 짐작하는 이상으로 진행이 되고 있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생각하구요. 이 영상을 보니 교육이나 제도권에 좀 이상한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긴 한가 봐요. 완벽주의, 기록을 잘 하거나 글을 잘 쓰는 것, 위기대응의식, 개인주의 등이 다 백인우월주의 문화라고 교육하는군요(이건 아이들 대상은 아니고 이런 사고를 바탕으로 교육방법론 완성, 배포). 이 글 완성한... 더 보기
제가 주워 들은 CRT는 백인우월주의비판이라고 간략하게 요약이 되는데 리버럴 언론에서는 CRT가 너도 나도 비판은 하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는 이론이라는 식으로 정면대결을 피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아이들을 상대로 인종의식을 강요하는 교육이 제가 짐작하는 이상으로 진행이 되고 있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생각하구요. 이 영상을 보니 교육이나 제도권에 좀 이상한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긴 한가 봐요. 완벽주의, 기록을 잘 하거나 글을 잘 쓰는 것, 위기대응의식, 개인주의 등이 다 백인우월주의 문화라고 교육하는군요(이건 아이들 대상은 아니고 이런 사고를 바탕으로 교육방법론 완성, 배포). 이 글 완성한 사람은 백인 여자예요. 저게 흑인이 열등하다고 욕하는 거지 백인우월주의냐는.

역시 보수가 아닌 같은 좌파가 비판을 하니 왜곡이 없어서 비판내용이 팍팍 이해가 되네요.
https://youtu.be/vqV3ARvuymY
The Absurdity of "White Supremacy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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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다녀왔습니다 호호 좋은 댓글 감사해요. 꼭 상호교차성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전 디안젤로 등이 하는 주장을 보면서 내가 백인 남성이면 진짜 피로하겠다 싶었어요.

이 댓글도 그렇고, 이후에 올려주신 티타임 글도 그렇고 대항담론이 안티테제라는 것 자체만으로 성화되어서는 안 되는 점을 잘 짚어주신 듯해요. 외부에서는 알기 어려운 내부의 세세한 역동을 바탕으로요.

저야 논문을 통해 보고된 일부만 걸러듣는 편인데, 말씀해주신 내용 듣고 보니 생각나는 자료가 하나 있네요. 흑인 남/여학생들의 정체성 형성 과정에 대한 내용인데, 몇 주 안에 정리해서 올려봐야겠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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