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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8 17:55:53
Name   간로
Subject   홍콩의 화양연화[香港的 花樣年華](1)

화양연화 재개봉에 부쳐...


香港的 花樣年華
홍콩의 화양연화



박해(persecution)는 특정한 유형의 작(作)이라 해도 될만한 독특한 방식의 글쓰기를 낳는다. 
그러한 글쓰기에서 결정적이고 중대한 것들에 대한 진실은 오직 글의 행간(between the lines)에서만 나타날 뿐이다. 

-레오 스트라우스-


二千十九年 香港
2019년 홍콩


2019년 11월에 홍콩 시위가 일어났을 때, 시위가 격화되고 조금 지났을 때였다. 약간 소강기가 왔을 때. 그때 숙소가 싸기도 하고 다른 일도 있어서 홍콩을 방문했다. 홍콩은 두번째 방문이었다. 

지난 처음 방문에서 홍콩의 첫 인상은 차들로 가득찬 도로였다. 첫 방문 때는 공항에서 숙소가 있는 침사추이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중심지로 접어들자마자 인산인해와 도로를 가득 메운 다종다양한 전차와 차량들에 버스는 움직임을 멈췄다. 시간이 너무 지체될 거 같아 친구와 그냥 캐리어를 들고 조던역 근처에서 침사추이까지 걸어 갔던걸로 기억한다. 그때만 그런게 아니라 이후에도 침사추이나 센트럴 등 주요 도심지는 항상 그러했다. 주말이 아니라도 차로, 사람으로 항상 바글바글대는게 홍콩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방문했을 때는 도심지로의 도로가 뻥 뚫려 있었다. 물론 가기 전에 시위나 소요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다. 경제도 많이 위축되고 있다 하고 실제로 그때 홍콩항셍지수도 박살나 있을때였다. 그런데 첫 방문 때와 동일하게 버스로 이동했는데 너무나도 달랐다. 두번째 때는 숙소를 센트럴 근처로 잡았다. 침사추이는 홍콩반도고 센트럴은 남쪽 홍콩섬에 있는데 거기에 숙소를 잡은거다. 그러니까 공항에서는 침사추이를 지나서 더 남쪽으로 내려가야 되는 길이고 지난 방문 때보다 더 멀리 가야 하는데 이번엔 버스가 도로를 막힘없이 통과하고 있었다. 이게 진짜 좀 상황이 다르구나를 실감했다. 가면서도 도로 표지판이나 벽이나 이런 데에 스프레이로 시위 구호 같은게 적혀있고. 이런 모습은 어느 중심지 어디에서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주말 밤에도 침사추이나 센트럴에 사람이 그닥 붐비지 않았다. 이전과는 다른 홍콩의 분위기가 도처에서 느껴졌다.



一八四二年 南京 一九八四年 北京, 和 香港
1842년 난징과 1984년 베이징, 그리고 홍콩 

모두들 알다시피, 홍콩은 영국령으로 탄생했다. 1차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는 1842년 영국과 불평등 조약인 난징조약을 맺는다. 이를 통해, 홍콩은 영국령이 된다. 긴역사를 중국으로 이어왔으면서도 우리가 오늘날 그곳을 '홍콩'이라고 따로 부르는 것은 거기에서 연원한다. 


-지금 대황제가 장차 홍콩 한 섬을 대영국 군주에게 급여하니, 사후 왕위를 세습하는 자가 항상 영원히 장악하고 편의에 따라 법도를 세워 다스리도록 맡긴다.
-중국 황제 폐하는 대영제국의 여왕 폐하에게 홍콩 제도를 양도한다. 홍콩 제도는 영원토록 대영의 여왕, 그 상속자와 후계자의 소유가 될 것이며, 대영제국의 여왕 폐하가 직접적으로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이와 같은 법률과 규정에 의해서 통치될 것이다.

-난징 조약 제3조, 한문과 영문본-


하지만 80년대 들어서 마가렛 대처 때 영국은 홍콩 시가지의 배후지인 신계 지역의 조차(租借) 기한이 끝나가고 있는 상황 때문에(신계지역은 의화단 사건의 뒷수습으로 맺어진 1898년의 별도조약으로 99년간 조차하기로 합의되었었다. 그게 끝나는 시점이 1997년이었고.) 홍콩 중심지와는 별도로 중국이랑 홍콩 전부를 반환하기로 합의를 한다. 이게 1984년 베이징에서 발표된 중영공동선언이다. 이후 홍콩사람들은 계속 불안감이 있을 수 밖에 없었을 거다. 정치 여건이 완전히 달라지는거니까. 내가 홍콩을 좋아하는 이유인 영화도 그런 변화들과 무관하지는 않았다.



二〇〇〇年 花樣年華
2000년 화양연화

화양연화도 그러하다 하면 비약일까.


화양연화는 남녀간의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영화라고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많이들 망각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주기적인 자막에서 드러나듯이 왕가위의 영화들 중 가장 시간대를 강조하는 작품이다.(이에 비할만한 유일한 작은 아마 대놓고 시대극인 '일대종사' 정도가 아닐까. 나중에 말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대종사 또한 홍콩의 탄생에 대한 작이라 생각한다.) 작품의 주요 시간대는 1962년이다. 하지만 자막을 제외하고, 이때의 시대적 배경이 작 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대사에서 당시 시대상에 대한 이야기가 대놓고 드러나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그렇기에 이걸 남녀간의 로맨스로만 이해하는게 대다수의 시각인것도 당연하다. 두 부부가 나오고 각자의 상대방이 바람을 피고 있다는 걸 알고 나서 모운(양조위)과 리첸(장만옥)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까워지고 로맨스를 겪는게 영화의 주요 내용인데, 결국은 둘이 맺어지지 못한다. 그리고 마지막 시퀀스에서 1966년으로 시간이 옮겨지고 장소도 캄보디아로 바뀌고, 거기서 이제 앙코르와트 씬이 나온다.



그런데 캄보디아로 넘어갈 때 중간에 낯선 장면이 툭 나온다. 드골이 캄보디아를 방문하는 장면이다. 되게 생뚱맞은 장면이다. 다 보면은 이게 남녀간의 로맨스 영화인데, 그래서 그걸 굉장히 이쁘게 찍은 영화고 분위기 있고 한데 갑자기 뜬금없이. 공항에 도착한 드골이 비행기에서 내려오고 이를 캄보디아 왕과 왕비가 영접하러 나오는 장면. 이건 뭘까 대체. 이런 당혹감에, 화양연화를 이미 본 사람이라도 이 장면이 있는지를 기억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것을 무엇이라고 미리 규정짓는 이해는 디테일들에 대한 망각을 불러오니까.


과거의 아름다웠던 로맨스와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화양연화다. 그런 영화로만 화양연화를 보면 이 장면은 단순히 배경설명을 위한 거로 볼 수 밖에 없다. 이제 장소가 홍콩에서 캄보디아로 넘어가는 걸 그냥 보여주는거다. 그런데 이렇게 설명을 하면 이 부분이 온전히 납득이 안 된다. 왜냐하면 직전 장면에서 이미 자막에 다 띄워줬기 때문이다. 1966년 캄보디아라고. 어차피 바로 뒤이어서 앙코르와트 신이 나올거기도 하고. 굳이 드골 장면을 넣을 필요가 없다. 남녀간의 로맨스영화라면 불필요하고 너무 이질적인 장면이 툭 튀어나온거다. 이 툭 튀어나온 부분은 총 34초에 달한다. 꽤 길다. 이 씬은 드골이 공항에서 도착한 걸 당시 캄보디아 왕국의 왕과 왕비가 영접하고 이후 이동하는 행렬을 프놈펜 시민들이 나와서 환영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캄보디아 왕조 역사상 유례없는 대환영이라는 평이 불어로 이야기된다. 그렇다면 배경 설명 외에 굳이 이 장면을 왜 넣었을까. 


캄보디아는 원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였다. 그리고 드골은 1966년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다. 식민지였던 국가가 이전에 자기를 식민지로서 다스리던 나라의 지도자를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있는거다. 심지어 국가 차원에서 왕이랑 왕비가 직접 나가서까지. 이걸 한국의 관점에서 보면 일본의 총리나 덴노가 방문하는걸 국가 왕실이나 대통령이 나가서 공항에서 직접 맞이하고 이동하는 것을 서울시민들이 나와서 꽃을 흔들며 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캄보디아에서는 이상한게 아닐 이유가 뭘까. 그건 이후 캄보디아의 역사와 관련해서 보면 이해가 가능하지 않을지.

이후 캄보디아는 쿠데타로 왕조가 끝나고 1970년에 공화국이 세워지고 5년 후에 그 무시무시한 크메르루주의 시기가 온다. 킬링필드라고 들어봤을 것이다. 폴 포트의 급진적인 공산주의 정책 하에 80만~100만 이상으로까지 추정되는 인구가 학살되었다. 중국도 문화대혁명으로 그 정도가 죽었다 하지만 거기는 인구비율로 보면 10억의 중국과 1500만의 캄보디아는 비할 바가 아니다. 가끔 사업차 캄보디아에 왔다갔다 하던 사촌형의 말로는 이 시기 이후 지식인이나 배운 사람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문화나 기술을 처음부터 다시 쌓아올려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어느 곳에서는 글자를 보여주고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다 죽였다는 얘기가 있으니. 독립 후의 혼란상이 대학살인 킬링필드로 귀결되는 과정을 다 보고난 입장에서는 프랑스 식민지시기는 글쎄, 오히려 저렇게 드골장군을 환영할만할 정도로 더 나은 시기였다고 할 수도 있지 않겠나. 실제로 당시 시아누크 왕의 치세는 불안정했다.


이 얘기를 홍콩으로 돌려서 생각해보면 영국령 시기가 지난 이후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열렬히 환영하고 있는 광경을 떠올려 볼 수 있을거다. 반환을 전후한 홍콩인들은 대놓고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이런 심정 아니었을까?


살펴 볼 장면이 하나 더 있다.


아직 앙코르와트 씬이 나오기 전 1966년 홍콩이 나온다. 거기서 리첸(장만옥)은 모운(양조위)와의 로맨스가 있었던 옛 집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집주인과 조우하고 차를 마시는 장면에서 집주인은 저런 말을 한다. 홍콩의 장래가 걱정된다며. 

물론 66년의 시기에 홍콩반환을 두고서 홍콩의 장래를 걱정할 수는 없다. 여기엔 당시 실제로 불안해할만한 일이 있긴 한데 구룡반도와 홍콩섬을 이어주는 스타페리의 급격한 요금인상으로 인한 항의시위였다. 당시 홍콩은 오늘처럼 터널도, MTR도 없었다. 페리는 대체하기 어려운 교통수단이었다. 이를 계기로, 주로 중국에서 넘어와서 열악하게 살아가던 이가 많던 구룡반도 주민들의 불만이 시위로 터져나왔다. 이는 총독부에 의해 진압되지만 66년의 이 일은 서곡일 뿐이었다. 

이듬해 67년 폭동은 이런 혼란의 정점을 찍는다. 처음에는 노동쟁의에서부터 시작되던 사태가 영국의 식민통치를 타개하려는 공산주의자나 홍위병의 선동과 폭발물 테러로 번지게 된 사건이다. 이 폭동의 배경은 중국공산당이 지배하던 중국과 서구적 자본주의의 영국의 대립도 있고, 당시의 극심한 홍콩의 빈부격차와 부정부패를 꼽기도 하지만, 이걸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66년 당시부터 일어나던 중국의 문화대혁명이다. 그 영향을 홍콩도 피해가지는 못했다. 실제로 당시 공산당이나 홍위병이 개입을 하기도 했고. 66년이면, 이런 홍콩내의 사회적 불만이나 중국 본토에서의 문화대혁명 때문에 실제로 정세가 불안정해지던게 느껴졌을 거다. 그래서 집주인이 저렇게 홍콩의 장래가 걱정된다고 말하는 것이고.

하지만, 이 영화가 만들어졌을 90년대나 개봉 당시인 2000년은 홍콩반환을 전후한 시기다. 아마 당시 이 영화를 보면서 저 대사를 들었던 사람은 저 말에서 바로 67년 폭동을 떠올리기보다는 당시의 홍콩반환과 관련한 상황이 떠오르지 않을까. 홍콩의 장래가 걱정된다며. 최소한 나는 그렇게 들린다. 
미국에 있다는 집주인의 딸 얘기도 홍콩반환 전 무수히 빠져나가 북미에 자리잡은 이주 홍콩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마찬가지로.


이런 함의가 담겨 있다고 본다면, 드골 영접이라는 쌩뚱맞은 장면을 굳이 넣은 이유는 이미 영화에서 충분히 암시가 된다. 개봉 당시 '감히' 공개적으로 말해질 수 없는 이야기. 이 글에서 굳이 대놓고 쓰고 싶지 않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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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길어지네여... 아직 못다한 얘기가 많은데... 다음글에ㅠㅠ 


(2편 예고)

Kakao-Talk-20201212-144641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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