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게시판입니다.
Date 15/12/28 13:48:12
Name   뤼야
Subject   영화 <더 헌트> 이상합니다?
어제 <버드맨> 한번 더 보고 올해 개봉한 영화중 볼만한 것이 있나 뒤적거리다 토마스 빈터베르 감독의 <더 헌트>를 보게 되었습니다.

대충 줄거리를 살펴보자면 주인공 루카스는 유치원 교사로 아내와 이혼한 뒤 죽마고우의 딸인 5살 클라라의 거짓말로 인해 소아성범죄자로 몰리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 어른들은 루카스와 그의 아들에게 위협과 폭력을 가하고 뒤늦게 클라라는 "내가 바보 같은 말을 했다"라고 실토하지만, 어른들은 어린이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 속에서 기억을 지우는 거라고 믿습니다.

루카스를 둘러싼 모든 사회적 관계들이 한순간에 송두리째 단절돼 버린 뒤에야 루카스는 혐의 없음으로 풀려나지만, 누군가가 루카스의 집 창문으로 돌을 던지고 애완견 패니를 죽이기 까지 하죠. 피해자 중심주의 폐해, 경직된 PC가 가져올 수 있는 역설적 모순등을 그린 수작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사건의 발단에서부터 어딘가 모를 위화감이 느껴젔습니다. 절친의 딸인 클라라는 부모 대신 자신을 따뜻하게 돌봐준 루카스에게 애정을 표시하는데 이를 받아들이는 루카스의 태도는 너무나 경직되어 있습니다. 루카스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헌신적인 교사인지는 영화의 초반에 잘 드러나 있고, 아이들도 이런 루카스와의 관계가 매우 원만합니다. 헌데 머리에 피도 안마른 절친의 딸이 만들어준 선물을 어찌하여 거절했는지 잘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 장면은 꼭 성인남성 선생님이 사춘기소녀의 성적 판타지가 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즉, 루카스와 어린 클라라의 갈등을 만들어내기 위한 장치로는 억지춘향격이라 느껴진다는 것이지요. 아이가 조막손으로 만든 선물을 거절하는 루카스의 태도는 마치 소아성범죄자의 신탁을 받은 오이디푸스가 자기 운명을 맞이하는 장면처럼 되어버리지요. 그리고 이건 너무나 사후적인 해석이고요.

이 장면을 빼버리고 차라리 클라라가 아무 생각없이 내뱉은 말이 어른들의 언어로 바뀌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겨 갈등이 커지는 쪽으로 만들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들 어찌 보셨는지요.



0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96 문화/예술가슴이 뻥 뚫리는 락 추천 부탁드립니다. 47 헤칼트 16/05/21 4956 0
1087 문화/예술. 2 yujung 16/05/18 2913 0
1085 문화/예술마르쉘 뒤샹의 '샘'에 대해서 18 하늘밑푸른초원 16/05/18 5993 0
1038 문화/예술영화를 봤는데.. 6 눈부심 16/04/29 3651 0
1015 문화/예술걸스데이 민아 - 나도 여자예요 같은 풍의 노래 추천해주세요. 2 하늘밑푸른초원 16/04/21 4070 0
1013 문화/예술해외에서 한국음악 스트리밍할 수 있는 앱 없나요 10 기아트윈스 16/04/21 24649 0
1000 문화/예술정장 위아래 색 톤이 다르면 이상한가요? 7 아삼 16/04/14 18829 0
986 문화/예술일본만화는 왜 고딩이 주인공인가요? 20 기아트윈스 16/04/09 6674 0
982 문화/예술위로를 위한 책 추천 부탁드립니다. 8 16/04/08 4122 0
934 문화/예술61cm짜리 보드를 담을 만한 가방 브랜드 있을까요? 3 하늘밑푸른초원 16/03/22 4120 0
787 문화/예술배우를 한 명 찾습니다 23 레지엔 16/01/28 3519 0
724 문화/예술만화 그림 같은건 어떻게 실력을 늘리기 좋을까요? 3 Las Salinas 16/01/14 4241 0
670 문화/예술전자책 눈 아프고 집중이 안 되지 않나요? 12 ohmylove 15/12/28 4356 0
669 문화/예술영화 <더 헌트> 이상합니다? 47 뤼야 15/12/28 7566 0
639 문화/예술책 추천 부탁드립니다 8 한아 15/12/21 4319 0
633 문화/예술전경, 혹은 군대의 부조리를 다룬 '한국현대문학' 작품 5 ramram 15/12/19 3779 0
626 문화/예술앤디 워홀과 팝아트에 대해서 9 ohmylove 15/12/18 3897 0
617 문화/예술영어에도 야민정음 같은 게 있나요? 7 王天君 15/12/17 9718 0
589 문화/예술고사성어가 생각이 안나네요. 10 王天君 15/12/10 4444 0
587 문화/예술[초속 5센티미터]가 전하는 첫사랑의 메세지 17 뤼야 15/12/10 4977 2
575 문화/예술유투브에 이런기능 있나요 ? 3 masterofbation 15/12/06 3675 0
528 문화/예술단호박을 가지고 어떻게 요리해야 할까요? 8 王天君 15/11/24 4991 1
478 문화/예술'두껍다'와 '굵다'는 하나가 될까요? 9 스트로 15/11/15 4488 0
404 문화/예술에프엑스 루나 강지영 닮지 않았나요? 3 王天君 15/11/01 4540 0
348 문화/예술영화 질문입니다. 5 새벽 15/10/13 4311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