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게시판입니다.
Date | 18/11/02 05:51:17 |
Name | 벚문 |
Subject | 조선은 왜 그렇게 기록을 중시했나요? |
홍-하! (홍차넷 하이라는 뜻) 안녕하세요 저는 벚문이에오 홍차넷 눈팅하다가 궁금해진건데, 조선이 기록 덕후나라였고 그 기록이 방대하고, 퀄리티도 높으며 동시대를 비교해 쩔었다는 건 알겠어요. 일성록, 실록, 승정원일기, 임진록, 화성의궤 등등... 근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카테고리는 조선의 기록 문화이자 예술적 자산이니까 문화/예술!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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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은 매우 근본주의적인 공동체 윤리고, 자연히 역사적으로 형성된 공동체적 관습과 전통, 규범이 중요합니다. 유학의 본질 자체가 역사적이란 거죠. 이걸 단순하게 말하면 천도고요. 한 마디로 공동체-윤리-역사-인문-천리는 한 묶음으로 밀접하게 연결 되어 있는 것이죠. 흔히 이야기 하는 '역사가 심판할 것이다' 같은 게 유학적 태도이며, 이건 고대의 '춘추'가 난신적자들에게 판관 노릇을 했다는 맹자의 서술에서도 확인됩니다. 그래서 유학자들 자체가 역사에 죽고 사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지요. 모든 행동은 당대의 판단만으로는 불충분하며, ... 더 보기
유학은 매우 근본주의적인 공동체 윤리고, 자연히 역사적으로 형성된 공동체적 관습과 전통, 규범이 중요합니다. 유학의 본질 자체가 역사적이란 거죠. 이걸 단순하게 말하면 천도고요. 한 마디로 공동체-윤리-역사-인문-천리는 한 묶음으로 밀접하게 연결 되어 있는 것이죠. 흔히 이야기 하는 '역사가 심판할 것이다' 같은 게 유학적 태도이며, 이건 고대의 '춘추'가 난신적자들에게 판관 노릇을 했다는 맹자의 서술에서도 확인됩니다. 그래서 유학자들 자체가 역사에 죽고 사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지요. 모든 행동은 당대의 판단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시간의 풍화를 거쳐 후대에 역사적 반추를 거친 뒤에야 인륜과 천도를 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록이 중요해지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죠. 그리고 조선은 국가의 미시부터 거시까지 일관적으로 유학적 이념을 구현한 보기 드문 이데올로기 국가였으며, 나아가 전국 행정을 중앙 통제할 수 있는 체계적인 관료 국가였습니다. 또 이런 국가적 이념을 규범으로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민간에서 실천할 수 있는, '과거'라는 제도와 밀접한 관련을 맺었던 지방 유생 집단이 있었고요. 그렇게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에도 역사의식과 기록, 도덕적 평가가 기본 소양으로 자리잡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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