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사족부터 달게요. 게오르그 루카치(죄르지 루카치)의 책은《소설의 이론》, 《미학》, 《역사와 계급의식》, 《사회적 존재의 존재론》등 그냥 아무 인터넷 서점에만 가도 여럿 나오는데 왜 번역본이 없다고 하셨을까요.
지난 번에 다른 글에 어떤 분이 말씀하셨지만 지금 느끼고 계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철학은 적절한 도구가 아닌 것 같아 보여요. 너무 논리(또는 패턴일까요)를 파고들지 마셔요. 굳이 라캉을 소환해서 말하자면 상징계(쉽게 말해 인지 가능하고 정립되었다고 보이는 세상)는 결여(다시 쉽게 말해 어긋난 곳 또는 세계의 내적...더 보기
먼저 사족부터 달게요. 게오르그 루카치(죄르지 루카치)의 책은《소설의 이론》, 《미학》, 《역사와 계급의식》, 《사회적 존재의 존재론》등 그냥 아무 인터넷 서점에만 가도 여럿 나오는데 왜 번역본이 없다고 하셨을까요.
지난 번에 다른 글에 어떤 분이 말씀하셨지만 지금 느끼고 계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철학은 적절한 도구가 아닌 것 같아 보여요. 너무 논리(또는 패턴일까요)를 파고들지 마셔요. 굳이 라캉을 소환해서 말하자면 상징계(쉽게 말해 인지 가능하고 정립되었다고 보이는 세상)는 결여(다시 쉽게 말해 어긋난 곳 또는 세계의 내적 논리로는 해소되지 않는 질문)를 품고 있어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까지 갈 것도 없이, 세상의 모든 것이 논리로 다 파악되지도 않는데다 어느 지점에서는 결국 믿음의 도약을 필요로 합니다.
앞의 니체 이론에 던진 세 질문의 답을 찾으시는 건지, 아니면 니체 비판서를 읽고 싶으신 건지 알려주시면 어느 정도 선에서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원래 철학자의 저술은 본인이 아무리 떨치려해도 현상학적일 수밖에 없고(현상학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까요.), 현상학은 역시 그 창시자가 아무리 배제하려했어도 심리주의의 가장 극단적인 면만을 쫓으니까요. 순환논증으로 보신다면 순환논증이 맞습니다(니체야 본인이 개념의 철저한 논증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지만 아주 심각하게 신경을 썼던 헤겔만 봐도 자기가 앞서 전제했던 바를 은근슬쩍 뒤엎는 논지 전개가 왕왕 튀어나오죠.). 단지 그 호弧에 깃든 (인)문학적 상상력에 당대와 후대의 학자들이 매혹되었을 뿐입니다. 어쩌면 니...더 보기
원래 철학자의 저술은 본인이 아무리 떨치려해도 현상학적일 수밖에 없고(현상학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까요.), 현상학은 역시 그 창시자가 아무리 배제하려했어도 심리주의의 가장 극단적인 면만을 쫓으니까요. 순환논증으로 보신다면 순환논증이 맞습니다(니체야 본인이 개념의 철저한 논증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지만 아주 심각하게 신경을 썼던 헤겔만 봐도 자기가 앞서 전제했던 바를 은근슬쩍 뒤엎는 논지 전개가 왕왕 튀어나오죠.). 단지 그 호弧에 깃든 (인)문학적 상상력에 당대와 후대의 학자들이 매혹되었을 뿐입니다. 어쩌면 니체는 저러한 저술의 성격을 누구보다 먼저 간파한 저술가 중 한 사람일 겁니다. 그러니 철저하고 단단한 논증을 구축하기보다 모호한 아포리즘을 그렸지요. 꼭 보르헤스가 프루스트나 조이스 식의 사변소설을 비웃으며 짤막한 모험 소설을 쓴 것처럼 말이죠.
니체가 속한 대륙철학의 전통에서 [철학자 a에 대한 비판]이란 보통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집니다.
1. a의 개념틀을 빌려서 a와는 다른 자기 주장을 하고 싶다.
2. (a의 논증 과정에서 유추할 수 있는 a의 주장과 좀 동떨어졌더라도) a가 표상하는(혹은 표상한다고 비판자가 생각하는) 가치관을 부정하고 싶다.
니체는 2에 해당하겠죠.
우선 니체 이후의 대륙철학의 조류 중 그 개념틀이나 자기 철학의 전개 방식에 있어서 니체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니체가 가리키던 지점을 부정하지 않은 학자들이 있었어요. 흔히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요. 그들은 니체의 주장을 계승하되 그 개념틀과 표현 양식을 달리해서 자기 철학을 전개했으니 니체를 비판할 이유가 없었지요.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려는 학자들도 당연히 있었지만 그들도 니체를 비판하지는 않았습니다. 자기 저서를 하나 바칠 만큼 다른 철학자의 저술을 비판한다는 건 아주 공이 많이 드는 작업인데요. 기왕에 비판할 거라면 철두철미한 논증 체계를 갖춘 후대의 철학자를 비판하는 게 낫죠. 맑스가 헤겔에게 그런 것처럼 비판자 입장에서도 자기 체계를 쌓을 수 있고 보일 수 있으니까요.(베르그송이 지금보다 중요한 이름으로 다뤄지던 시절에도 베르그송에 대한 비판이 별로 없었던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한편 현상학 전통에 속한 학자들은 인식, 윤리/도덕, 신앙 등의 주제에 대한 전대 서양철학의 접근에 미진함을 느꼈으며 그들 자신이 '현상학'이란 틀로 진정한 형이상학과 신학을 재구성할 야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니체를 비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어요. 무엇보다 니체를 체계화하여 지금과 같이 신화화한 장본인이 현상학 계보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하이데거기도 했거든요.
아, 그리고 루카치의 저술은 홍차의 오후님 말씀처럼 대한민국에서 충분히 구할 수 있습니다. 구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문학 전공인 학생이라면 신입생 때부터 학부 내내 그 이름만 듣다가 졸업하기도 하고요. 님께서 인용 문구로 보셨다는 루카치의 원저는 아마 이성의 파괴일 겁니다.
그리고 아마 파랑새의나침반님에게 가장 도움이 될 글이 아닌가 싶어 링크합니다. 아쉽게도 레만의 저서는 국내에 번역은 아니되었습니다. 다만 앞서 말했듯 정작 이런 분석적인 접근은 대륙철학에서 그다지 중시되는 흐름이 아니라서요. 레만은 들뢰즈가 니체를 왜곡해 자기 철학을 정당화했다고 하는데... 들뢰즈가 니체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건 맞지만 그게 딱히 자기 철학...더 보기
그리고 아마 파랑새의나침반님에게 가장 도움이 될 글이 아닌가 싶어 링크합니다. 아쉽게도 레만의 저서는 국내에 번역은 아니되었습니다. 다만 앞서 말했듯 정작 이런 분석적인 접근은 대륙철학에서 그다지 중시되는 흐름이 아니라서요. 레만은 들뢰즈가 니체를 왜곡해 자기 철학을 정당화했다고 하는데... 들뢰즈가 니체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건 맞지만 그게 딱히 자기 철학의 정당화를 위해서는 아닐 겁니다. 그보다는 니체의 철학을 (들뢰즈가 생각하기에)보다 발전시켰다는 게 맞겠죠. 그 발전의 동기라면 어떤 정치적인 의도보다는 차라리 훈고학적, 수사학적, 심미적인 의도였다는 게 더 진실에 가까울 거고요.
그외에 루카치와 좀 다른 맥락이긴 한데 하버마스도 니체를 비판하기는 했습니다. 다만 이건 제가 직접 읽은 게 아니라 맥락을 간추린 다른 논문을 읽었던 거고 그 맥락조차 제가 위에서 말한 [비판의 1과 2]가 오묘하게 뒤섞였다보니 님께서 찾으실 대답 같지는 않네요.
그럼 대륙철학에 기반한 신학처럼 결국 현상학으로 수렴되는 주제에서는 관심을 끊으시는 게 맞을 거예요. 그리고 ㅎㅎ 님의 생각이 제 의도와 별로 다르지는 않을 겁니다. 저도 저런 인문학의 양상이 별로 즐겁고 유쾌하지는 않았으니까요. 결국 제가 공부를 업으로 삼지 않았던 것도 그와 비슷하다면 비슷할 이유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