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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06/30 15:39:50 |
Name | 수박이두통에게보린 |
Subject | 조선 시대에는 등창이 고치기 힘든 병이었나요? |
조선 왕들의 사망 원인을 보니 등창이 상당히 많이 있더라구요. 당시 최고의 수준으로 왕의 건강을 책임졌을텐데 등창으로 죽은 것이 좀 의아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등창이 고치기 힘든 병이었나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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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좀 빨리 죽은 건 맞습니다. 위에 평균 수명은 '비교적 건강하게 살았을 때의 기대 수명'이 아니라 유아사망률과 전쟁사망률이 포함된 값이라... 실제로 그 시대에도 어려서 잘 지내고 환란이나 돌림병만 피하면 50대 정도는 노려볼만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추론이 있는데...
1. 일단 조선시대 왕들이 대부분 유전적인 질환이 의심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비만, 당뇨, 피부 감염에 취약한 특수한 체질이 자주 발견되는데(특히 조선 초기왕들이 그러합니다), 이게 수명에 영향을 줬을 겁니다.
2. 그리고 말씀하신 스트레스 과식... 더 보기
1. 일단 조선시대 왕들이 대부분 유전적인 질환이 의심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비만, 당뇨, 피부 감염에 취약한 특수한 체질이 자주 발견되는데(특히 조선 초기왕들이 그러합니다), 이게 수명에 영향을 줬을 겁니다.
2. 그리고 말씀하신 스트레스 과식... 더 보기
일단 좀 빨리 죽은 건 맞습니다. 위에 평균 수명은 '비교적 건강하게 살았을 때의 기대 수명'이 아니라 유아사망률과 전쟁사망률이 포함된 값이라... 실제로 그 시대에도 어려서 잘 지내고 환란이나 돌림병만 피하면 50대 정도는 노려볼만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추론이 있는데...
1. 일단 조선시대 왕들이 대부분 유전적인 질환이 의심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비만, 당뇨, 피부 감염에 취약한 특수한 체질이 자주 발견되는데(특히 조선 초기왕들이 그러합니다), 이게 수명에 영향을 줬을 겁니다.
2. 그리고 말씀하신 스트레스 과식 운동부족이 위의 질환들을 직접적으로 악화시킵니다.
3. 식단의 불균형이나 영양소 섭취 불균형도 좀 심한 수준이었습니다. 뭐 유교적인 이유로 특정 음식을 못 먹게 되는 건 신하들도 마찬가지지만(상중에 육류 끊기라거나...) 왕이 이러한 행사가 좀 더 빈번했고, 수라의 경우도 그걸 본인이 다 먹는게 아니라 적당히 골라먹고 땡치는 형태인데 이게 식단 불균형을 가져왔을 수 있습니다. 가끔 단식 투쟁도 있고...
4. 의학적 관리의 수준이 높냐 낮냐를 따질만큼이 아니기도 했고(애초에 '건강하다'의 정의 자체가 20세기 이전과 이후는 궤를 달리 하거든요. 판단의 기준 자체가 틀어져있죠 결국), 왕과 비빈에 한정해서 정치적인 이유로 의학적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특히 몇몇 유학자들은 자신의 유학적 세계관을 임상 의학으로 치환해서 비인가 임상실험(..) 을 때리기도 했는데 조선왕 중 몇 명이 이 부분에서 자유롭지 않고(대표적으로 정조), 이외에도 의관이 어떠한 치료를 제시하면 비전문가인 관료들이 딴지를 거는 일도 종종 보이는 것으로 볼 때 일관된 판단에 기반한 진료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했을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5. 그리고 조선왕들 상당수는 인격장애가 의심됩니다. 정치병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6. 신료들과 비교해서 보면, 바이아스가 있어서 그러합니다. 왕은 걍 한 세대 한 명으로 노출되어있고 전수조사가 되는데, 신료들은 '커리어를 쌓을만큼 오래 살아야' 고위직에 갈 수 있습니다. 즉 애초에 오래 살만한 사람들이 오래 살아서 위로 가서 좀 더 살고 죽으니 길어보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1. 일단 조선시대 왕들이 대부분 유전적인 질환이 의심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비만, 당뇨, 피부 감염에 취약한 특수한 체질이 자주 발견되는데(특히 조선 초기왕들이 그러합니다), 이게 수명에 영향을 줬을 겁니다.
2. 그리고 말씀하신 스트레스 과식 운동부족이 위의 질환들을 직접적으로 악화시킵니다.
3. 식단의 불균형이나 영양소 섭취 불균형도 좀 심한 수준이었습니다. 뭐 유교적인 이유로 특정 음식을 못 먹게 되는 건 신하들도 마찬가지지만(상중에 육류 끊기라거나...) 왕이 이러한 행사가 좀 더 빈번했고, 수라의 경우도 그걸 본인이 다 먹는게 아니라 적당히 골라먹고 땡치는 형태인데 이게 식단 불균형을 가져왔을 수 있습니다. 가끔 단식 투쟁도 있고...
4. 의학적 관리의 수준이 높냐 낮냐를 따질만큼이 아니기도 했고(애초에 '건강하다'의 정의 자체가 20세기 이전과 이후는 궤를 달리 하거든요. 판단의 기준 자체가 틀어져있죠 결국), 왕과 비빈에 한정해서 정치적인 이유로 의학적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특히 몇몇 유학자들은 자신의 유학적 세계관을 임상 의학으로 치환해서 비인가 임상실험(..) 을 때리기도 했는데 조선왕 중 몇 명이 이 부분에서 자유롭지 않고(대표적으로 정조), 이외에도 의관이 어떠한 치료를 제시하면 비전문가인 관료들이 딴지를 거는 일도 종종 보이는 것으로 볼 때 일관된 판단에 기반한 진료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했을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5. 그리고 조선왕들 상당수는 인격장애가 의심됩니다. 정치병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6. 신료들과 비교해서 보면, 바이아스가 있어서 그러합니다. 왕은 걍 한 세대 한 명으로 노출되어있고 전수조사가 되는데, 신료들은 '커리어를 쌓을만큼 오래 살아야' 고위직에 갈 수 있습니다. 즉 애초에 오래 살만한 사람들이 오래 살아서 위로 가서 좀 더 살고 죽으니 길어보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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