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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3/06/04 20:25:40
Name   구밀복검
Subject   몸을 떼놓고 영혼만으로 가르칠 순 없다
https://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05326&fbclid=IwAR1iaxkMM-7HLiAYhrSORzTxImVWIsdy46N_mmQloZST435OTphu3GxXdpY
아버지의 재혼으로.. 베트남 새엄마는 20대 초반에 한국에 와서 이주여성의 삶을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다문화가정에서 자라게 된 삶의 경험은 그대로 연구 관심사로 옮겨가게 되었다...  가족의 연은 국적을 넘어 이어지는 것인지, 나도 20대 초반부터 미국을 거쳐 일본에서 이주여성으로 살게 되었다.

석사과정 중이던 2010년대 초반에는 결혼이민자와 영유아 다문화 자녀에 대한 연구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당시는 ‘지식 자본’이라는 개념을 빌려와서 분석했다. 학생의 다문화 배경을 한국 사회 적응의 걸림돌로 보는 게 아니라, 학생 고유의 지식 자원으로 바라보는 개념이다.

...석사 연구 동안 네 명의 다문화 학생을 만났다. 이 학생들은 납작한 위계 안에 갇혀 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 사회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촘촘한 위계를 가지고 놀며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미디어에 재현되는 것처럼 차별받는 피해자로 남아 있지도 않았으며, 일방적 지원이 필요한 존재도 아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다언어를 자원으로 활용하여 영어를 배우는 학생도 있었고, 자신의 능력을 십분 활용하여 학교에서 인기를 끄는 학생도 있었다. 피해-가해, 약자-강자, 한국인-외국인 등의 납작한 구도로 다문화 학생의 영어학습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다문화 학생이 이중언어 환경에서 자라나는 것은 분명히 장점이었다. 그러나 이 이중언어의 경험이 한국 사회에서 가치 있는 자원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어머니가 영어 관련 전문직 일을 하던 학생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영어 발음이 학교의 미국 중심의 영어 발음과 다르다는 이유로 미국식 학교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도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자원’이라고 여겨지는 언어 경험의 폭이 너무 좁은 것이 문제였다. 그렇다면 이 자원의 외연을 어떻게 넓힐 수 있을까...

...박사 이후, 이주여성으로 일본에 와서 영어를 가르치며 온갖 일을 겪었다. 미디어에 대서특필되는 것처럼 노골적인 혐오는 아니었다. 언제나 내가 너무 예민한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를 고민하게 되는 아리송한 일이었다...

금발 벽안의 미국 출신 남성은 교실에 그냥 걸어 들어가는 것 자체만으로 영어 교사의 권위를 얻는다. 영어 교사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온 젊고 작은 여자가 교실에 걸어 들어가면, “학생 아니야? 왜 저기 있어”라는 관념을 먼저 깨야 하고, 그 다음엔 “왜 영어 선생이야? 한국어 선생 아니야?”의 벽을 또 뛰어넘어야 한다. 그 이후 “영어 제대로 하는 거 맞아? 왜 한국인이 영어를 가르쳐?” 라는 편견을 학위와 논문, 화려한 경력 등으로 맞서야 한다.

이렇게 몸을 입고 한 경험은 그대로 다양성 수업으로 연결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 수업에는 백인 남성의 영어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나이지리아 출신 작가의 프리젠테이션, 임신한 CEO의 연설, 일본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영어 인터뷰, 방에서 은둔하는 사람의 사회 재적응을 돕기 위한 원격 카페 아르바이트 영문기사 같은 자료가 내 교실을 채웠다. 영어는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이 서로 연결되기 위해 쓰는 언어라고 소개하고 싶었다. 영어는 선진국 백인 남성의 언어가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의 언어니까... 연구자는 진공 속에 갇힌 지식을 생산하지 않는다. 연구자는 몸을 입고 있고, 그 몸은 싫든 좋든 사회 안에 담겨 있다. 사회는 몸에 이런저런 라벨을 붙이고, 특권을 입혀 주기도 하고,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연구, 연구자, 연구자의 몸, 연구자의 사회. 이 넷은 전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재미있는 글이다 싶어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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