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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1/09/20 21:30:48수정됨 |
Name | 알료사 |
Subject | 문학 속 '성차별 패치' 떼는 출판계 |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011772.html 음.. 어느정도 이해가 되기도 하고.. 또 너무 오버할거 같기도 하고.. 예전에는 알료사가 형인 이반한테 존대를 쓰고 카체리나랑 그루센카가 그들 각각의 연인인 이반, 드미트리한테 존대를 썼었는데 민음사 번역으로 나오면서 반말로 바꼈거든요. 도끼가 표현하고자 했던 인물들 간의 친밀도를 감안했을때 반말이 훨씬 자연스러워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었어요. 이런 맥락에서의 수정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데.. 아예 원작에서부터 젠더감수성 구린거를 원작 훼손하면서까지 어색하게 수정하지는 않겠죠.. 그리스인 조르바 어쩔.. 기사에서 죄와벌 언급되고 있는데 당장 도끼 팬들 소냐 주체적 여성으로 바꿔버리면 죽창 들어야 한다고 벼르고 있음.. ㅋㅋ 에이 뭐 민음사 카라마조프처럼 존대 수정이나 좀 하겠지.. ㅋ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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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가 개작하는 건 뭐 문제될 게 없고
출판사 등 판권자의 경우도 원칙적으로는 가능할 테고..
번역의 경우는 원문이 차별적이라면 그걸 애써 온건하게 번역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헛소리를 했으면 헛소리한 그대로 보여줘야 헛소리인 줄 알 수 있는 거기도 하고. 작가의 사려깊지 못한 시선 역시 우리가 읽으면서 평가하고 검토할 수 있는 일종의 서사입니다. 작가의 멍청한 서술을 억지로 고치는 것은 표도르 파블로비치를 시대 조류에 맞춘답시고 착실한 인물로 윤문하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음. 작가에 의해 구성된 서술자및 그를 ... 더 보기
출판사 등 판권자의 경우도 원칙적으로는 가능할 테고..
번역의 경우는 원문이 차별적이라면 그걸 애써 온건하게 번역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헛소리를 했으면 헛소리한 그대로 보여줘야 헛소리인 줄 알 수 있는 거기도 하고. 작가의 사려깊지 못한 시선 역시 우리가 읽으면서 평가하고 검토할 수 있는 일종의 서사입니다. 작가의 멍청한 서술을 억지로 고치는 것은 표도르 파블로비치를 시대 조류에 맞춘답시고 착실한 인물로 윤문하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음. 작가에 의해 구성된 서술자및 그를 ... 더 보기
원작자가 개작하는 건 뭐 문제될 게 없고
출판사 등 판권자의 경우도 원칙적으로는 가능할 테고..
번역의 경우는 원문이 차별적이라면 그걸 애써 온건하게 번역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헛소리를 했으면 헛소리한 그대로 보여줘야 헛소리인 줄 알 수 있는 거기도 하고. 작가의 사려깊지 못한 시선 역시 우리가 읽으면서 평가하고 검토할 수 있는 일종의 서사입니다. 작가의 멍청한 서술을 억지로 고치는 것은 표도르 파블로비치를 시대 조류에 맞춘답시고 착실한 인물로 윤문하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음. 작가에 의해 구성된 서술자및 그를 통해 드러나는 작품의 시선 역시 역시 하나의 등장인물이에요. 그리고 그런 부도덕하고 불건전한 시선들 역시 예술에서만 표현할 수 있는 다양성의 일부이며 엄연히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고요. 겸디갹의 미지의 세계가 가지는 미덕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세계는 다원적으로 불가해하게 구성되어 있기에 각도를 달리하며 볼 때에 실체와 본질을 잡아낼 수 있는 거고, 비뚤어진 각도를 취할 때에 오히려 평소에 가려진 진실들이 잘 보일 수가 있죠. 특히 빻은 각도에서 드러내는 세계관은 적어도 빻은 놈들은 어떤 식으로 세계를 보고 듣고 느끼는지 알려주고 그 역시도 세계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기에 읽는 이의 세계 이해를 향상시켜줍니다. 가령 조정래가 태백산맥에서 끼적인 지저분한 성묘사를 보다 보면 옛날 아조씨들의 성관념이란 것의 실체를 쉽게 터득할 수 있으며 그 역시도 하나의 배움이고 무기가 되죠.
다만 이런 것에 대해 서문이나 각주(미주 아웃)로 지적을 한다든지 현시대에 적합한 표준 지침을 제시한다든지 disclaimer를 덧붙인다든지 할 수는 있다 생각합니다. 독자가 작품을 바라볼 때에 정전으로서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은 채 경각심을 가지고 메타적 시각에서 비판할 수 있게끔 유도하는 거죠.
반면 원문과 무관하게 번역어가 차별적이라면 당연히 이건 교정 대상이죠. 링크에서 언급된 일방적 존대 같은 것도 그런 예고.
출판사 등 판권자의 경우도 원칙적으로는 가능할 테고..
번역의 경우는 원문이 차별적이라면 그걸 애써 온건하게 번역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헛소리를 했으면 헛소리한 그대로 보여줘야 헛소리인 줄 알 수 있는 거기도 하고. 작가의 사려깊지 못한 시선 역시 우리가 읽으면서 평가하고 검토할 수 있는 일종의 서사입니다. 작가의 멍청한 서술을 억지로 고치는 것은 표도르 파블로비치를 시대 조류에 맞춘답시고 착실한 인물로 윤문하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음. 작가에 의해 구성된 서술자및 그를 통해 드러나는 작품의 시선 역시 역시 하나의 등장인물이에요. 그리고 그런 부도덕하고 불건전한 시선들 역시 예술에서만 표현할 수 있는 다양성의 일부이며 엄연히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고요. 겸디갹의 미지의 세계가 가지는 미덕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세계는 다원적으로 불가해하게 구성되어 있기에 각도를 달리하며 볼 때에 실체와 본질을 잡아낼 수 있는 거고, 비뚤어진 각도를 취할 때에 오히려 평소에 가려진 진실들이 잘 보일 수가 있죠. 특히 빻은 각도에서 드러내는 세계관은 적어도 빻은 놈들은 어떤 식으로 세계를 보고 듣고 느끼는지 알려주고 그 역시도 세계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기에 읽는 이의 세계 이해를 향상시켜줍니다. 가령 조정래가 태백산맥에서 끼적인 지저분한 성묘사를 보다 보면 옛날 아조씨들의 성관념이란 것의 실체를 쉽게 터득할 수 있으며 그 역시도 하나의 배움이고 무기가 되죠.
다만 이런 것에 대해 서문이나 각주(미주 아웃)로 지적을 한다든지 현시대에 적합한 표준 지침을 제시한다든지 disclaimer를 덧붙인다든지 할 수는 있다 생각합니다. 독자가 작품을 바라볼 때에 정전으로서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은 채 경각심을 가지고 메타적 시각에서 비판할 수 있게끔 유도하는 거죠.
반면 원문과 무관하게 번역어가 차별적이라면 당연히 이건 교정 대상이죠. 링크에서 언급된 일방적 존대 같은 것도 그런 예고.
음 앞으로는 판본을 찾아보는 문화가 생길지 모르겠네요.
원작자의 의도가 가장 잘 표현된 초판본, 젠더감수성을 잘 지킨 5판본 요런식으로..
원작자의 의도가 가장 잘 표현된 초판본, 젠더감수성을 잘 지킨 5판본 요런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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