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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9/16 20:05:49
Name   관대한 개장수
Subject   장애인 여자애랑 짝이었던 이야기

중학교 2년 때 일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환절긴가 그랬던 것 같은데

아침조회 시간도 아니고 점심 먹기 전 쉬는 시간에 담임이 어떤 여자애를 데려오더니

전학생이라고 잘 대해주라고 했다.




얼굴은 그냥 예쁘지도 않고 못나지도 않은 평범한 상이었다.

유난히 피부 하얗고 매끈매끈 한 게 눈에 띄어서 원래 외모보다 예뻐보이기도 한 듯했다ㅋㅋㅋ

아 그리고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했다.

중2면 대가리도 클 만큼 커져서 그 말 듣고 단번에 청각 장애인인 거 알아챘다.




난 장애인은 막 얼굴도 비뚤어지고 침 질질 흘리고 그럴 줄 알았는데

저렇게 평범한 여자애가 청각 장애인이라는게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래 남남 여여로 짝지어주는데 내 짝이 학기 초에 캐나다인가 뉴질랜드인가로 유학 가서 내 옆자리가 비어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 옆자리로 앉게 됐다.




인사 안 하고 내 할 거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애가 옆에서 툭툭 치더라.

놀라서 옆에 돌아보는데 꿀 피부에 설렘...

내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멈칫하더니 교복 재킷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더니 '안녕?'이라고 쓰더라...

회상하니까 괜히 슬퍼지네.

하여튼 나도 '안녕'이라고 말했다가 '아 얘 말을 못 듣지'라는 생각에 입 모양으로 또박또박 '안녕'이라고 말했다.

뭐가 웃긴지 막 얼굴 찡그리면서 웃는데 이때는 좀 장애인 같았다.




첫날은 인사만 하고 별일 없었던 것 같다.

그 날 집에 가서 '청각 장애인이랑 대화하는 법, 청각 장애인도 말할 수 있나요?'

이런거 지식인에 계속 쳐봄. 아 참 걔 이름은 ㅈㅇㅇ 이다ㅋㅋㅋㅋ



ㅇㅇ이는 전학 온 첫날 이후로 애들이랑 잘 지냈다.

ㅇㅇ이라고 하니까 괜히 어색하네.

걔랑 얘기할때도 이름 부를 일은 거의 없어서...

어차피 듣지 못하니까 그냥 어깨 툭툭 치거나 하면서 불렀다.

근데 신기한 게 귀 안 들리고 말 못하면 사람들하고 의사소통하기가 엄청나게 힘들잖아.

그래서 사회성도 떨어지고 우울증 걸리고 그런다고 들었는데

걔는 진짜 성격이 밝아서 반 애들이 모두 좋아했다.

남자애 중에는 고백한 애도 있다고 들었음. 소문이라서 아닐지도...




솔직히 난 아싸라 친구도 별로 없었는데 걔 짝이 된 덕분에 친구도 많이 생겼다.

귀머거리에 벙어리이기까지 하면서 반 애들이랑 수첩으로 애쓰며 대화하는 그 애의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동시에 안쓰럽기도 했다.

난 내성적인 편이라 말수가 별로 없었는데도 그 애가 자꾸 말을 걸어줘서 정말 많은 대화를 하게 됐다.

어디에 사는지, 왜 전학 왔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등등..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치킨을 엄청나게 좋아해서 치킨을 제일 좋아한다고 수첩에 썼다.

글씨로 쓴 건 아니고 그림으로 닭 다리를 그렸다ㅋㅋㅋ

닭 다리 그림 보면서 맛있어 보인다며 찡그린 웃음을 짓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애는 애들 도움으로 학교에서 잘 지내기는 했지만

가끔 양아치 새.끼들이 청각 장애인이라는 특성을 이용해서 놀리기도 했다.

그 애가 딱히 미움 살 일을 만들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철이 없었을 때니까..라고 여길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 애를 놀리는 학교 애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복도에서 걔가 걸어가고 있으면 뒤에서 욕하고...

중딩이라 철이 없어서 그런가? 별별 수위 높은 욕들도 다 나왔다.

특수학교나 요양원으로 안 가고 왜 일반 학교로 온 거냐며 쑥덕대는 여자애들도 있었고

심지어 뒤에서 "쟤 전 학교에서 걸레였다며? ㅋㅋㅋ" 거리면서 떠드는 놈들도 있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면 복도에서 직접 들었거든.




영웅 심리 같은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냥 '걸레'라는 말을 듣자마자 빡쳐서 소리 질렀다.

너무 화나면 자기가 무슨 말 했는지 기억 안 나는 그런 거 있잖아.

그래서 뭐라고 소리 질렀는지는 기억 안 나는데 막 닥치라고 여러 번 그랬던 것 같다. 뭔 깡으로 그랬는지...

결국, 그 애 보는 앞에서 양아치들한테 싸대기 2대 맞았다.

여자애 앞에서 일방적으로 맞는 게 그렇게 X 같은 일인지 그때 알았다.




창피해서 한 이틀인가? 삼일인가? 걔랑 말도 안 했다.

처음엔 수첩으로 무슨 일이냐고 왜 맞은 거냐고 묻다가 내가 대답 안 하니까 포기했는지

걔도 더는 내 앞에 수첩을 들이밀지 않았다.

누구 때문에 맞았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속 터졌는데 자존심 때문에 말 못 했다.

그 애가 뒤에서 누가 자기 욕해도 못 알아먹는 청각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답답했다.

그래서 담임한테 양아치들이 ㅇㅇ이 뒤에서 욕하고 다닌다고 일렀다.

무슨 조치를 취한건지는 모르지만, 그 뒤로 그 애 뒤에서 누가 대놓고 뒷담까는 일은 없었다.




그 애랑 대화 안 한 지 이틀인가? 삼일인가? 되는 그 주 일요일에

집에서 비 오는 소리 들으면서 꿀잠 자고 있는데 문자 한 통이 왔다.

지금 학교로 올 수 있느냐는 그 애의 문자였다.

알았다고 답장 보내고 대충 츄리닝 입고 우산을 들고 학교로 갔다.

비가 오는 날이라 옷들이 안 말라서 입을 옷이 츄리닝 밖에 없었다.




학교 운동장에 도착해보니 그 애는 아직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주룩주룩 쏟아지는 빗물을 바라보며 그 애를 기다렸다.

오랜만에 내리는 빗물 소리가 듣기 좋다는 생각과 그 아이는 이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생각이 겹쳐졌다.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고 날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그 애는 오지 않았다.

연락하고 싶어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덜렁거려서 불편할까 봐 휴대폰을 집에 놓고 온 게 실수였다.

ㅅㅂㅅㅂ 거리면서도 짜증보단 걱정이 앞섰다.

아무래도 귀가 들리지 않는 애니까 오다가 차 사고라도 난 건 아닐까 싶어서..

아마 30분은 훨씬 넘게 기다린 거로 기억한다.



기다리다 지쳐 돌아가고 있는데 교문 앞에 있는 그 애가 보였다.

비에 젖은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걱정하긴 했지만, 막상 만나고 나니 짜증이 앞섰다.

왜 늦었냐고 다그치자 그 애는 머뭇거리더니 "미안해" 라고..정확히는 "니앙애" 같은 발음으로 말했다.



깜짝 놀랐다.

목소리가 나오긴 하는구나 싶어서..

추측이지만 학교에서 누구에게도 입을 통해 말을 하지 않은 건

청각장애인 특유의 어물쩍한 발음이 부끄러워서 그랬던 것 같다.




벙쪄있는 나에게 그 애가 비닐봉지를 건넸다.

우산을 쓰긴 한 건가 싶도록 잔뜩 젖은 치킨 박스가 들어있었다.

내가 예전에 치킨을 가장 좋아한다고 수첩에 썼던 게 생각나서 좀 찡했다.




우리는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서 다 젖은 치킨을 한 조각씩 뜯어먹었다.

젖어도 치킨은 맛있더라ㅎㅎ

내가 자기 놀리는 애들한테 뭐라 하다가 맞은 거 어떻게 어떻게 알게 됐다더라.

치킨은 사과의 선물 같은 것이었고.

늦은 건 어물쩍거리면서 그냥 미안하다고만 하더라.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았다.

비 오는 날에 여자애랑 치킨 먹고 있으니까 굉장히 설렜다.

하지만 고백할 생각도 용기도 없었다.

그냥 그때는 그런 걸 잘 몰랐던 것 같다 ㅋㅋ 지금은 모쏠 아다는 아님.




치킨 먹으면서는 손을 쓸 수가 없잖아.

그래서 난 입 모양으로 그 애는 어물거리는 발음으로 대화했는데

학교에서는 입 안 열다가 나한테만 말하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내가 그 애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아서 괜히 우쭐거리는 마음도 있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 날 그 애와 먹은 젖은 치킨의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애는 전학을 갔다.

내가 담임한테 양아치들이 ㅇㅇ괴롭힌다고 꼬질렀던 것처럼

담임도 ㅇㅇ이 부모님께 그 사실을 말한 듯했다.

그리고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셨는지 특수학교로 보내기로 하셨다고 한다.





중2 감성이라 그런가 그 애가 전학 간 뒤에 많이 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애를 많이 좋아했던 것 같다.

근데 그때는 이성으로서 좋아한다는 감정이 낯설어서 고백이라던가 뭔가를 해 볼 생각을 못 했다.

그 뒤로 그 애를 만나지 못했다.

머리가 좀 커서 고등학교 올라갈 때쯤에 찾아가려고 연락을 해봤지만, 번호가 바뀌어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정도는 물어볼 것을.. 후회됐다.

아마 첫사랑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도 첫사랑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그 애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겨우내 안 오던 비가 오랜만에 내려서 문득 떠올려봤다.

앞에서는 하하 호호하다가 뒤에서 호박씨 까대는 삭막한 인간관계에 지치다 보면

불쑥불쑥 그 애의 얼굴이 떠올라서 그리워진다. 잔뜩 찡그리며 웃던 얼굴이..



10


님니리님님
풋풋한 사랑이야기 좋네요.

그런데...

유우머의 상태가...?
티타임으로 옮겨드릴까요?
관대한 개장수
제가 쓴거 아닙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펌글인가요?
관대한 개장수
예, 펌글이라 유게에 올렸습니다.
파란아게하
전에 봤는데,
또 봤네요.
추천하고 가요
솔로왕
기분 좋아지게 풋풋하네요
세계구조
ㅎㅎ 커플 되는건 줄 알고 식겁했넹
비익조
정말 현실적인데 풋풋한 느낌도 나고 따뜻하니 좋네요.
미카엘
풋풋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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