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8/06/16 16:01:55
Name   나방맨
File #1   CE68F020_0501_4F52_9826_910C9275E079.jpeg (655.0 KB), Download : 25
File #2   4DECEF74_FE4C_450F_8E9E_EEAD580740EF.jpeg (891.4 KB), Download : 22
Subject   여름 낮에 밤 눈 이야기 하기




밤 눈

  네 속을 열면 몇 번이나 얼었다 녹으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또 다른 몸짓으로 자리를 바꾸던 은실들이 엉켜 울고 있어. 땅에는 얼음 속에서 썩은 가지들이 실눈을 뜨고 엎드려 있었어.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빛을 한 점씩 하늘 낮게 박으면서 너는 무슨 색깔로 또 다른 사랑을 꿈꾸었을까. 아무도 너의 영혼에 옷을 입히지 않던 사납고 고요한 밤, 얼어붙은 대지에는 무엇이 남아 너의 춤을 자꾸만 허공으로 띄우고 있었을까. 하늘에는 온통 네가 지난 자리마다 바람이 불고 있다.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 찬 세상, 그 끝에 첫발을 디디고 죽음도 다가서지 못하는 온도로 또 다른 하늘을 너는 돌고 있어. 네 속을 열면.

**
  또 겨울이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나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그때도 거리는 있었고 자동차는 지나갔다. 가을에는 퇴근길에 커피도 마셨으며 눈이 오는 종로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시를 쓰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형식을 찾지 못한 채 대부분 공중에 흩어졌다. 적어도 내게 있어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이 육체에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알았다.
  「밤눈」은 그 즈음 씌여졌다. 내가 존경하는 어느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삶과 존재에 지칠 때 그 지친 것들을 구원해줄 수 있는 비유는 자연(自然)이라고.
  그때 눈이 몹시 내렸다. 눈은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지상은 눈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지 위에 닿을 듯하던 눈발은 바람의 세찬 거부에 떠밀려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늘과 지상 어느 곳에서도 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 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때까지 어떠한 죽음도 눈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밤눈」을 쓰고 나서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https://youtu.be/1ODes7nlPrc

기형도 전집 중



6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845 기타스타크래프트 II 무료 플레이.swf 김치찌개 17/12/28 5169 1
    5106 문화/예술오늘은 여성의 날입니다. 6 Beer Inside 17/03/08 5169 2
    4863 일상/생각발렌타인데이에 관한 짧은 썰 11 열대어 17/02/14 5169 3
    13462 댓글잠금 정치윤석열, 출산율, 나경원, 부동산 그리고 근로시간 37 당근매니아 23/01/06 5168 9
    7796 게임 [LOL] 믿고 보는 슈퍼팀!! KT의 전승과 함께하는 리프트 라이벌즈 1일차 3 Leeka 18/07/05 5168 0
    12835 일상/생각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착각 14 moqq 22/05/19 5167 5
    12702 일상/생각신기하고 사랑스러운 강아지란 존재 7 StrPepMint 22/04/07 5167 14
    12459 일상/생각그 식탁은 널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2 Erzenico 22/01/22 5167 25
    3461 음악개인취향+잡설 가득한 클래식 추천 (피아노 - 3) 14 elanor 16/08/06 5167 2
    13993 꿀팁/강좌제초제 열전 (산소편) 5 바이엘 23/06/20 5166 8
    8165 스포츠180902 김치찌개의 오늘의 메이저리그(다나카 마사히로 7이닝 6K 1실점 시즌 10승) 김치찌개 18/09/03 5166 0
    3644 기타역사 시리즈.jpg 5 김치찌개 16/09/04 5166 3
    7095 철학/종교푸코의 자기 배려와 철학상담(7) 1 메아리 18/02/12 5164 3
    6933 일상/생각날이 얼마나 추우면 물도모자라서 창문까지 6 제천대성 18/01/12 5164 0
    2673 일상/생각신병위로휴가 나왔습니다! 16 삼성그룹 16/04/22 5164 2
    9566 IT/컴퓨터앱스토어 한국 신용/직불카드 금일부터 지원 5 Leeka 19/08/20 5163 7
    5547 IT/컴퓨터아이맥 개봉 후일담 - 애플의 브랜드 가치 1 Leeka 17/04/29 5163 0
    2169 정치메르스 공무원 파면·해임 중징계 정당한가 10 일각여삼추 16/02/03 5163 0
    11319 경제서울 아파트값, 다주택자가 적어질수록 더 많이 올랐다. 9 Leeka 21/01/04 5162 2
    11214 영화디즈니 플러스의 필살기가 나왔습니다. 6 저퀴 20/12/11 5162 0
    7696 도서/문학여름 낮에 밤 눈 이야기 하기 3 나방맨 18/06/16 5162 6
    6805 게임Dutch Frontline(스포가 포함되있을수도 있습니다.) 2 1hour10minuteidw 17/12/21 5162 0
    6011 일상/생각존경하는 친구 11 OshiN 17/07/26 5162 27
    4144 일상/생각짝사랑 해보고 싶어요! 24 진준 16/11/12 5162 0
    12529 기타2월의 책 - 온라인 줌번개 일요일 오늘 오후 3시 - 종료 5 풀잎 22/02/20 5161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