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 17/08/13 00:38:03 |
Name | 공대왜간공대 |
Subject | 중고등학생 시절 사교육 받은 이야기 |
1. 중학교 들어가고 처음으로 중간고사라는 걸 보았을 때 일이다. 시험은 잘 치뤘다. 다만 과학 성적이 유난히 안 나와서 많이 속상해했다. 어머니 지인의 소개로 한 과외선생님을 뵙게 되었다. 열심히 과외에 임했고, 선생님도 많이 도와주시려고 했고, 숙제도 열심히 했고, 결과적으로 기말고사 때 좋은 과학성적을 받게 되었다. 그때까진 과외에 만족을 하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수학과 과학이 재밌어서 자연스레 과학고 진학을 목표로 하였다. 과학고를 진학하려면 고교과정 선행은 물론 경시대회 실적도 갖추어야 한다. 물화생지 중에 난 화학이 그나마 만만해보여서 화학올림피아드 준비를 그 과외선생님 지도하에서 시작하였고, 이때 내가 느끼지 못한 문제점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 선생님은 이런 식이었다; 당시 고교 과정 참고서에 나와있는 지문을 "그대로" 읽어주셨다. 예를 들면 "자 xx야 참고서 187쪽 봐바. 자 여기서 몰의 정의가 뭐라 나와있어? ~~~~지? 자 그러면 밑에 읽어봐 ~~~~지? (귀찮으셨는지) 자 여기는 너가 읽어보고, 옆에 있는 문제 풀어봐" 이렇게 1분만에 설명을 끝냈다. 그 이후엔 선생님 아들이 속해있는 중학교 학생회 어머니들과 통화를 한두시간 넘게(그것도 내 옆에서 시끄럽게) 나누었다. 간혹 어린 조카가 과외방에 놀러올 때가 있는데 애기라 울고불고 난리를 쳤고, 선생님은 그걸 달래곤 했다. 솔직히 난 선생님이 설명해주신 부분이 이해가 거의 대부분 안 갔다. 중2짜리가 고2, 고3들이 배우는 화학 1,2를 바로 이해하기란 힘들겠지만, 그걸 보조하는게 선생님의 역할이지 않겠는가? 정말 미안하게도 선생님은 그런 역할을 제대로 못해주었다. 그래도 그냥 혼자서 책 읽다가 오면 과외가 뭔소용이겠거니 하고 이해가 안가는 부분/문제를 선생님한테 여쭈어봤는데 선생님께선 매우 당황해하시며 답지를 그대로 읽어주셨다. 어느새 질문하기를 포기했고, 선생님은 그런 나를 이해를 잘하는 천재로 오해하시곤 어머니한테 내 칭찬을 가득 했다. 한번 갈때마다 4시간씩 과외를 받고 왔는데 거의 대부분 이런식이었다. 이럴려고 내가 과외를 받나 자괴감이 심히 들었다. 나중에 나도 개념을 읽는 것조차 포기하고 선생님과 노가리를 까고, 과외방의 학우들과 노가리까다가 집에 오곤 했다. 엄마한테 가끔 돌려서 문제점을 말해도 엄마는 흘러들었다. 그러다보니 선생님은 최선을 다하는데 내가 멍청해서 그런갑다 하고 넘어갔다. 그렇게 나는 어느새 화학공부와 멀어져갔다. 뭘 알아야 복습을 하던 말던 하지. 그렇게 대비를 한 지 1년, 그렇게 준비한 화학올림피아드에서 아무 상도 못 건져서야 엄마는 크게 속았다고 생각을 하시고, 내가 앞서 말한 과외의 실상을 제대로 다 말하니 바로 과외를 끊고 대형학원으로 나를 보냈다. 허술히 진행되었던 과외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하나하나 상세히 진행되는 첫 수업을 듣고, 쉴새없이 뿌려대는 여러 보충자료를 정리하고, 같이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는 학우들과 모의고사나 거진 그런 경쟁을 하니 그 과외에서 어영부영 보낸 1년이 너무나 아깝고, 속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준비한 다음 시험에선 꽤 좋은상을 탔다. 이와는 별개로, 과학고 진학은 성공하지 못했다. 솔직히 아직도 아쉽다. 입시던 시험이던 적절한 진입시기가 있는데 난 그 과외에서 허송세월로 보내는 바람에 진입시기를 놓쳤다. 그걸 타파할 의지나 재능이 부족했던 탓도 있지만. 2. 고1때였다. 친구랑 같이 과외를 받게 되었다. 강남에서 이름을 날렸던 과외교사란다. 레벨 테스트를 봤는데, 진도를 아예 안 나간 기벡 문제와 미적분 문제를 내는 것이다. 선생님이 채점을 하면서 "선행이 부족하네~ ㅉㅉ" 라는 비웃음을 듣고 과외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2주만에 그만뒀다. 그 선생님은 실력도 없는데 자기자랑은 엄청났다. 자기가 강남에서의 활약상, 강남에서의 교육열, 자기가 강남에서 가르친 제자들의 이야기를 하며, 강북출신인 우리 둘을 무시했다. 그리고 과장-어쩌면 사기-도 심했다. 다음시간엔 고품격 모의고사를 가지고와서 풀리겠다고 했는데 가져온게 n월 학력평가-이미 학교에서 모의고사 준비한다고 풀어본 것-이었고, 숙제도 고품격 문제들만 엄선했다면서 1주일동안 문제은행에서 뽑아온 프린트 50쪽(!)을 풀어오게 시켰다. 더 웃긴건 ㄹㅇ 학교 야자실에서 열심히 다 풀어오니 선생님은 "어 이걸 다풀어왔어? ㅎㅎㅎ 다 풀라고 준 게 아니였는데 ㅎㅎㅎㅎ" 라 한다. 아니 그럴거면 미리 말해주질 말지..... 그리고 채점을 했는데 소나기가 내렸다. 선생님의 꿀밤도 몇대 맞았다 그런데 틀린 걸 분석해보면 분명히 난 맞게 풀었는데 틀린게 상당수였다. 그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면 "왜 개겨?"라 말하며 "누가 이기는 지 해볼까?" 이런 식으로 나왔다. 그래서 선생님이 맞으면 몰라. 정작 풀리게 시키면 십중팔구 내가 맞았다. 때론 완전 오개념을 맞다고 우긴 적도 있었다. 그럴때 정석책을 펼치면서 "여기 써있잖아요 ㅡㅡ"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동그라미를 쳐주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점과 직선사이의 거리 정의를 상기해보자; 점에서 직선 위 수선의 발까지 길이 아닌가? 그런데 그 선생은 점에서 수직선이 아닌, 점에서 y축에 평행하게 그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석까지 들이내밀며 항의했는데 자기 동료교사라는 사람한테 갑자기 전화해보더니, 꿀밤을 때리며 자기가 맞았다고 하는 것이다. 그 날 이후로 과외를 그만두겠다고 어머니께 말했다. 더 이상 이 선생님하고 과외하면 암걸릴 것 같다고. 이땐 어머니도 선생님을 변호할 생각이 없으시더라. 이후에 혼자하다가, 고2 시작하면서 반년 동안 학원에서 고교진도 다 빼고 이후 학원 끊고, 학교 보충만 듣고 나머지 시간에 혼자 자습했다. 모의고사에서 1개 이상 틀린 적이 손에 꼽았다. 3. 자 이제 좀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중학교 때 수학경시반에 들어갔다. 첫 시간에 선생님이 문제 프린트를 주더니 혼자서 고민을 해보라고 한다. 그리고 정답자가 발생하면 나와서 문제를 풀게 했다. 정답자가 안 나올 때에는 힌트를 던져주고 학생들을 자극했다. 선생님이 하시는 일이라고는 단 한가지, 학생들의 풀이를 검토해주면서 오타 등을 조정해주고, 모범답안을 써주고, 가끔가다 거기서 파생되는 이론/스킬들을 알려주셨다. 수업 1시간 중 45분 가량은 개인이 혼자서 문제를 푸는 시간이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고, 도무지 답이 안보이는 문제를 잡고 있자니 심히 당황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수학을 대하는 습관이 바뀌는 걸 느꼈다. 예전에 수학문제를 풀다 모르는 게 있으면 답지를 보고 외우곤 했다. 그러다보니까 불안했다. 세상에 수학문제가 한두개가 아닐텐데 모를때마다 일일이 외울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고민하는 습관을 들이니 문제를 풀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시도를 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안 풀릴 것 같은 문제들도 풀리게 되니 자신감이 붙었다. 어려운 문제를 보면 고민하는 습관과, 그것을 대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배워갔다. 난 그 반에서 최하위권이었다. 열에 아홉이 해결하는 문제가 있으면 난 그걸 못푸는 1인에 해댱하였다. 결국엔 수학경시대회에선 입상을 못 하였지만 그 때 얻은 습관-고민하고 또 고민하기-은 내 수학실력 향상에 귀중한 보물이 되었다. 실력정석책을 답지 한번도 안보고 풀었던 거 같다. 고민하면 어찌됐던 다 풀리더라. 한창일때 하루에 4~5시간씩 붙잡고 있었다. 2에서 언급했듯이 선행을 위해 단기간 학원을 다녔지만, 선생님께 문제 자체를 질문한 적은 거의 없었다. 진도만 나갔고 중요한 key-point만 듣고 정리했을 뿐 뭔가 선생님한테 모르는 문제를 질문하는 건 자존심이 허락을 하지 않았다. 수학은 전교에서 3등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결국 내가 목표하는 대학교로 진학하였다. 4. 우리나라 학생이면 어떠한 방식이던 학원이나 과외를 받았을 것이다. 난 사교육을 부정하지 않는다. 사교육은 공교육에서 커버해주지 못하는-이를테면 수월성교육이라던가-영역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방법과 매터리얼을 갖추고 있고, 무엇보다도 비슷한 수준의 의욕있는 집단이 경쟁하니 개인의 실력향상에 큰 도움을 준다. 의욕있는 개인이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서 적절한 사교육은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개중에 오로지 선전이나 언변만 수려하지 실제로 교수능력은 결여된 학원/강사도 있다. 돈 낭비, 시간낭비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책임감을 떠올리게끔 한다. 난-비록 내가 과외나 교사의 길은 안 걷겠지만서도-누군가한테 도움을 주어야 할 입장이면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여기까지 고등학교 졸업하고 군대까지 갔다온 한 20대 중반 대학생의 회상이었습니다.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5
이 게시판에 등록된 공대왜간공대님의 최근 게시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