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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5/30 06:38:29
Name   뤼야
Subject   보스포루스의 물이 빠져나갈 때
그 무엇도 인생만큼 경이롭지 않다.
글쓰기를 제외하고는.

- 이븐 제르하니가 아랍어로 옮긴 [모호한 책] -


보스포루스의 물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모를 것이다. 축제에 놀러 나온 아이같이 즐겁게 흥분하여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요즈음에, 우리 중 누가 무엇인가를 읽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겠는가? 우리는 칼럼조차 복잡한 페리 선착장에서 팔꿈치로 서로 밀치면서, 만원 버스 안에서, 글자가 덜덜 떨리는 돌무쉬 의자에서 대강 읽는다. 나는 이 이야기를 지질학 잡지에서 읽었다.

흑해는 온도가 올라가고 지중해는 차가와진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바다 바닥에 입을 벌리고 있는 거대한 동굴에 바닷물이 들어가고, 지각 변동의 결과로 지브롤터, 다르다넬스, 보스포루스 해협의 바닥이 올라가기 시작한다고 한다. 보스포루스에 남아 있는 어부들은, 과거에는 정박을 하기 위해 사원 첨탑 길이의 사실을 던져야 했지만 지금은 배가 바다 바닥에 닿는다며 이렇게 물었다.

"우리 수상께서는 이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나요?"

나는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갈수록 가속화되는 이 진행 과정이 가까운 미래에 가져올 결과이다. 확실한 건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때 우리가 '보스포루스 해협'이라고 했던 천국처럼 멋진 이곳이 번쩍이는 이빨을 드러낸 유령처럼 드러낸 진흙투성이 난파선이 드문드문 번들거리는 시커먼 늪으로 변할 거라는 사실이다. 무더운 여름의 끝이면 이 늪은 작은 마을에 물을 대 주는 보잘 것 없는 시내처럼 여기저기 물이 말라 진흙탕이 될 것이고, 게다가 파이프 수천 개에서 폭포처럼 콸콸 쏟아지는 하수구가 물을 대는 비탈에는 풀과 들국화의 싹이 틀 거라는 건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보스포루스 해협에 있는 크즈 쿨레시가 언덕 위에 진짜 탑처럼 끔찍하게 치솟을 이 깊고 황량한 계곡에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이다.

지금 벌금 통지서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시청 공무원들의 시선 사이에서, 나는 한때 보스포루스라고 불리던 아무것도 업는 진흙탕에 세워질 새로운 마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무허가촌, 노점, 바, 클럽, 유흥업소, 회전목마가 있는 놀이동산, 도박장, 사원, 수도원, 마르크스주의자 파벌의 소굴, 오래 못 가는 플라스틱 작업장과 나일론 제조 공장...... 재앙에 가까운 이 혼란 속에서 옛날 자선회사의 잔재인 옆으로 누워 있는 배의 시체와 사이다 병뚜껑과 해파리 밭이 보일 것이다. 물이 모두 빠져나가는 마지막 날에는, 좌초된 미국 대서양 횡단 정기선과 이끼 낀 이오니아 기둥 사이에 미지의 신에게 애원하는, 선사시대의 유산인 입 벌린 켈트인과 리키아인 해골이 보일 것이다. 조개로 덮여 있는 비잔틴 보물, 은과 양철로 된 포크와 나이프, 1000년 된 포도주 통, 사이다 병, 선미가 날카로운 전함의 시체 사이에서 솟아오를 이 문명은 오래된 난로와 램프를 피울 연료를 늪에 처박힌 오래된 루마니아 유조선에서 끌어 올거라는 상상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예비해야 할 것은, 이스탄불의 진한 녹색 하수구가 물을 대는 이 저주받은 웅덩이에서, 선사시대의 지하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른 독가스, 마른 늪, 돌고래와 가자미와 황새치 시체, 새로운 천국을 발견한 쥐의 군대들 속에서 발생할 새로운 유행성 질병이다.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경고한다. 그날, 철조망으로 격리될 이 질병 지역에서 일어날 재앙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때는 보스포루스의 비단결 같은 물을 은빛으로 비추는 달을 바라보았던 발코니에 앉아 땅에 묻을 수 없기 때문에 서둘러 불태워버리는 시체에서 나는 푸르스름한 연기와 불빛을 바라볼 것이다. 한때는 박태기나무와 인동덩굴의 향기 속에서 라크를 마셨던 해안의 탁자에 앉아서는 썩은 시체와 곰팡이에서 나는 코를 찌르는 냄새를 맡을 것이다. 부두에서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파도 소리와 평온한 봄새의 노래와 줄지어 서 있는 어부들의 소리가 아니라, 죽음이 두려웠던 조상들이 1000년이나 계속된 수색을 피하려고 바다에 던져 버렸던 다양한 검, 총, 녹슨 언월도를 가지고 서로 싸우는 남자들의 고뇌에 찬 비명이 들릴 것이다. 한 때 해안가에서 살던 이스탄불 사람들은 저녁에 피곤에 지쳐 집으로 돌아갈 때도 해초 냄새를 맡기 위해 버스 창문을 서둘러 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불이 밝혀진 그 끔찍한 어둠을 내려다보며 썩은 시체와 진흙 냄새가 새어 들어 오지 말라고 시내버스 창틈에 신문이나 천 조각을 끼워 넣을 것이다. 풍선 장수와 뻥튀기 장수가 우리 주위를 돌아다니던 해안가 커피 집에서는, 전함 축제가 아니라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만졌다가 함께 터져 버린 지뢰의 핏빛 광명을 볼 것이다. 폭풍이 휩쓸어 왔다가 백사장에 버리고 간 비잔틴 동전과 빈 통조림통을 모아 돈을 벌던 사람들은, 홍수가 해안 마을에 있는 목조 가옥에서 쓸어 와 보스포루스 해협 깊은 곳에 쌓아 놓은 커피 분쇄기, 이끼 낀 뻐꾸기 시계, 조개가 갑옷처럼 뒤덮인 검은 피아노를 주워 생계를 유지할 것이다. 이러한 날들 중 어느날 나는, 새로운 지옥 안에서 검은색 캐딜락을 찾기 위해 한밤중 철조망 밖으로 조용히 빠져나갈 것이다.

검은색 캐딜락은 지금으로부터 삼십 년 전, 내가 풋내기 기자였을 때 행적을 쫓았던 베이올루의 도둑이('갱'이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다.) 타던 전시용 자가용이었다. 나는 그가 주인이었던 어떤 소굴 입구에 걸린 이스탄불 그림 두 점에 흠뻑 빠져 있었다. 이스탄불에는 당시 철도 부자였던 다으델렌 씨와 연초왕이었던 마르프 씨에게 똑같은 차가 있었다. 우리 신문기자들이 그의 최후를 일주인간 연재해 전설로 만들어 준 그 도둑은 한밤중 경찰에 포위되었는데, 어떤 주장에 따르면 마약에 취해서, 어떤 주장에 따르면 말을 벼랑으로 모는 산적처럼 일부러, 애인과 함께 캐딜락을 타고 아큰트 곶에서 보스포루스 해협의 어두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잠수부들이 바다 바닥을 며칠 동안 수색해도 찾지 못했고, 신문과 독자도 얼마지나지 않아 잊어버린 캐딜락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나는 어림할 수 있다.

그것은 그곳에, 과거 '보스포루스'라고 불렸던 계곡의 심연에, 게들의 보금자리인 700년된 신발, 부츠 한 짝, 낙타 뼈, 미지의 애인에게 쓴 연애펴지로 꽉 찬 병들이 가리키는 진흙 벼랑 밑에, 홍합과 해면의 숲이 다이아몬드, 귀걸이, 병뚜껑, 금팔찌로 반짝이는 비탈 뒤 어느 곳에, 썩은 유람선의 시체 안에 급히 설치한 마약 실험실과, 불법 소시지 장수들이 말과 당나귀를 죽인 후 양동이 한가득 피를 뿌리던 굴고 모래톱 조금 앞에 있을 것이다.

한 때 '해안길'이라고 불렸지만 지금은 산길 같은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를 들으며 밑으로 내려가서 시체 냄새 나는 고요 속에서 캐딜락을 찾고 있을 때, 물에 던져진 그대로 자루 속에 몸을 오그리고 있는 오래전의 궁정 음모자 발목에는 아직도 대포알이 묶인 채 십자가와 지휘봉을 껴안고 있는 정교회 신부의 오래된 해골을 우연히 발견할 것이다. 처음에는 굴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톱하네 부두에서 갈리폴리로 병사를 싣고 가던 귈제말 배(결국에는 프로펠러가 어부의 그물에 걸린 다음 이끼 낀 바위에 들이박아 바다로 가라앉아 버린)에 어뢰 공격을 하려 했던 잠수함의 잠망경에서 피어오르는 푸르스름한 연기를 볼 것이다. 우리 시민들은 새로운 집에서(아주 오래전에 리버풀 조선소에서 만든) 산소 부족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영국 해골들이 앉았던 장교용 벨벳 의자에 앉아 중국산 자기 찻잔으로 차를 마실 것이다. 그 뒤로 어둠 속에는 한때 빌헬름 황제의 것이었던 전함의 녹슨 닻이 있을 것이고, 거기서 자개로 뒤덮인 텔레비젼 화면이 내게 윙크할 것이다. 약탈한 제노바 보물이 잔재, 입구에 진흙이 들러붙어 있는 총신이 짧은 대포, 조개로 뒤덮인, 사라지고 잊힌 민족의 그림과 우상, 뒤집어진 놋쇠 샹들리에의 깨진 전구를 볼 것이다. 밑으로 내려가 진흙과 바위 사이를 조심조심 걸을 때는 노에 사슬로 묶인 채 영원히 이별하며 별을 쳐다보는 갤리선의 노예 해골을 볼 것이다. 어쩌면 해초에 매달려 있는 목걸이와 안경과 우산은 주의 깊게 보지 않을 테지만 고집스레 서 있는 멋진 말 해골 위에 완전 무장을 하고 앉아 있는 검은 캐딜락을 기다려 왔음을 두려움 속에서 깨달을 것이다.

어디서 스며 들어왔는지 알 수 없는 인광으로 가끔 희미하게 밝아지는 검은 캐딜락 쪽으로 나는 천천히, 두려워하며, 옆에 있는 십자군 기사들에게 허락을 받듯이 엄숙하게 다가갈 것이다. 캐딜락의 문손잡이를 잡고 억지로 열어 보려 하겠지만, 온통 조개와 성게로 뒤덮인 차는 나를 안으로 들이지 않을 것이며, 꽉 닫힌 초록빛 창문은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려면 나는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 손잡이와 창문을 덮고 있는 초록색 이끼를 천천히 긁어 낼 것이다.

한밤중, 끔찍하고 마법같은 어둠 속에서 성냥을 켜면 십자군의 갑옷처럼 여전히 반짝이는 멋진 운전대, 니켈 눈금계, 바늘, 시계가 보일 것이고, 가녀린 팔목에 팔찌를 차고 손가락에 반지를 낀 애인과 도둑의 해골이 앞 좌석에 앉아 껴안은 채 입을 맞추고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맞물려 있는 턱뼈뿐만이 아니라 두개골도 불멸의 키스로 밀착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성냥을 다시 켜지 않고 돌아서서 도시의 불빛을 응시하며 내가 본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것이다. 대재앙의 순간에 이보다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할 길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고뇌에 빠져 먼 연인에게 외칠 것이다. 내 사랑아, 나의 아름다운 여인아, 나의 운명아, 재앙이 닥쳐오고 있어. 내게로 와. 지금 내게로 와. 지금 이 순간 어디에 있든지, 담배 연기 가득한 사무실이든, 흐트러진 푸른 침실이든, 빨래가 말라 가는 집의 양파 냄새 나는 부엌이든, 때가 되었으니, 내게로 와. 우리에게 밀려드는 재앙을 잊기 위해서는 커튼이 쳐진 반쯤 어두운 방의 정적 속에서, 어둠에 덮이면, 서로를 힘껏 껴안고 죽음의 시간을 기다려야 해.

- 오르한 파묵 [검은 책]중 제2장 보스포루스의 물이 빠져 나갈 때-


가입인사를 대신해서 올려봅니다. 가끔 세파에 삭막해지는 마음을 추스릴 때 보려고 블로그에 올려두었던 글입니다.
제 닉네임 '뤼야'는 [검은책]의 히로인이죠. 흐흐흐
얼마전에 세상을 떠난 귄터 그라스와, 소설의 신격인 살만 루슈디와 오르한 파묵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세 명의 소설가입니다.
물론 이외에도 좋아하는 작가는 많지만, 이 셋을 빼놓고는 '소설 읽기'를 말할 수가 없네요.
좀 긴 글이지만 연인에게 카톡으로 보내주면 좋아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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