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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7/08 07:37:59
Name   뤼야
Subject   이탈리안 식당 주방에서의 일년(3)
주방에서 일하는 동안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급한 볼 일이 있어 택시를 타고 가는데 운전기사님이 제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 오시길래 나름대로 응해드렸는데 제 목소리가 좋다시며 직업이 뭐냐 물으셨습니다. "식당종업원입니다."라고 대답했더니, 왠지 기대와는 다른 대답이라는 투로 "아...그래요?"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 주었더니 "도대체 너는 뭐가 잘못된 인간이냐?" 면서 저를 타박했습니다. 그럼 식당종업원이니까 식당종업원이라고 하지 뭐라고 해야하나 물으니 걍 얼버무리지 뭐가 자랑스럽다고 그런 걸 떠벌리냐는 겁니다. 떠벌린게 아니고 물어오니까 답해준 것 뿐인데 말입니다.

학교를 졸업할 무렵 대학원에 진학한 동기들을 제외하고 가장 먼저 취업을 했습니다. 어쩌다보니 4학년때 과대표까지 맏아서 교수님을 통해 제의가 들어온 일자리도 있었지만 여러 전형을 거치고, 삼차까지 어려운 면접을 뚫고 들어간 회사에 취업을 했습니다. 그러나 회사생활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왜 이 일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회의가 가장 컸습니다. 일은 다른 사람이 다 하고 있는데 나는 그저 그 사람들이 다 해놓은 일을 감시하고 잘못된 것을 집어내 보고서나 작성하는 것이 다로구나 회의가 찾아왔습니다. 평생 이 일을 하며 살 생각을 하니 답답해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아침에 출근하기가 너무 싫어서 그냥 전화도 받지말고 죽은 척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일하러 가기가 싫었습니다. 그러다 한 일년쯤 후에 사표를 쓰고 말았습니다.

그 후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여의도에 있는 한 학원에 학생들을 가르치러 나가게 되었습니다. 다소 유난스럽게 아이들을 공부시키는 부모와 그 부모 밑에서 시달리다 보니 어느새 스스로를 다그치는데 익숙해진 아이들이 학업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상당했습니다. 사실 학원선생이란 요령껏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을 다그치는데도 도가 터야 합니다. 하루는 수업시간에 몰래 영어숙제를 하는 녀석이 있어 "뭐 하는 거냐?" 물었더니, 하는 말이 오늘 이 숙제를 다 해가지 못하면 영어선생이 엄마에게 전화를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엄마한테 엄청나게 야단을 맞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학생의 엄마한테 전화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까요? 제게 하는 말이 더 가관입니다. 자신은 4살때부터 영어공부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를 잘 하니?" 제가 물었더니 잘한답니다. "그럼 지금부터 나랑 영어로 대화를 해보자." 그랬더니 대답을 안합니다. 그곳에서는 꽤 오랫동안 일했고 그 때 커진 목소리가 여전히 크고 우렁찹니다. 아마 제게 직업이 뭐냐고 물었던 기사님도 제 발성이 남달라서 직업을 궁금해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부심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최저시급을 간신히 넘는 낮은 임금때문이겠지요. 자본주의 세계에서 임금은 곧 자부심이겠지요. 거의 대부분의 식당이 주6일 12시간 근무를 기본으로 직원을 뽑습니다. 이탈리안같은 경우는 사정이 좀 나은 편입니다. 10시간 근무가 보편적으로 확산되고 있고, 경험이 있고 실력을 인정받는 경우는 임금도 높은 편이라 들었습니다. 큰 규모의 식당은 오픈조와 마감조를 나누어 직원이 출퇴근을 합니다. 오픈조는 밑준비를 맏고 일찍 퇴근하는 대신에 마감조는 조금 늦게 출근하고 뒷정리를 하는 식이죠. 대부분의 이름난 셰프들은 자기 식솔을 거느립니다. 말하자면 한 식당에서 다른 식당으로 자리를 옮길 때 팀으로 짜인 조리사들과 함께 이동하는 식입니다. 오랫동안 손발을 맞추어 온 터라 눈빛만 봐도 다음에 뭘 해야하는지, 뭐가 필요한지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이런 팀들 간의 알력다툼이 일어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또한 홀직원과 주방의 직원들이 서로 못잡아 먹어서 안달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로 셰프와 홀매니저의 사이가 좋지 않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셰프는 매니저가 요리도 모르는 무식한 놈이라고 욕하고, 매니저는 셰프에게 실력도 없는 놈이 싸가지가 없다고 욕을 하죠. 셰프와 매니저의 이런 알력다툼과 무관한 밑엣것들은 '서로를 무시하라'는 암묵적인 룰을 비웃기라도 하듯 오다가다 마주치면 키득거리면서 둘 다 사이코라고 욕합니다. 손님에게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매니저는 옳다쿠나 하고 셰프에게 따집니다. 셰프는 홀이 바쁜 시간에 직원들이 음식을 제 때 서빙하지 못한다고 따지고 욕합니다. 밑엣것들은 무슨 죄입니까?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고된 일과 함께 하는데 서로 정답게 웃으며 일하면 안돼나요? 네????? 셰프님? 매니저님?

주방에서는 메뉴에 대해 서로 의견이 상충해서 사이가 벌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로제소스(토마토소스와 크림소스를 일정 비율로 섞은 소스로 정작 이탈리아 정통 메뉴에는 없는 소스입니다. 다만, 새콤한 토마토소스를 싫어하는 사람과 크림소스의 느끼함을 싫아하는 사람에게 어필하기 좋은 소스죠)를 만들때 토마토소스와 크림소스의 비율이 어떠해야 하는가로 싸우기도 하고, 리조또의 알덴떼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 피자 반죽의 부풀기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에 대한 이견 때문에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반죽을 밀 때 밀가루와 폴렌타라고 하는 입자가 있는 옥수수 가루를 섞어 반죽이 잘 밀리도록 하는데 폴렌타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폴렌타가 많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폴렌타를 좋아하는 사람이 조리대 위에 폴렌타를 어지럽게 흩어놓으면 폴렌타를 싫어하는 사람은 욕을 하기 마련이죠. 같은 공간에서 작업대를 서로 돌려쓰다보니 자신의 취향만을 고집할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소해 보이는 일로 욕하고 싸우는 경우가 주방에서는 비일비재합니다.

주방에 인원이 많으면 힘든 일을 안하려고 요리조리 미꾸라지가 빠져나가듯 요령을 피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는데 한 가지 일이 힘이 더 든다하면 덜 힘든 쪽으로 몸을 피했다가 더 쉬운 일이 한가지 더 진행되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그쪽으로 옮겨가죠. 주방에서는 힘든 일은 서로 나누어 하고 돌아가며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주방은 폐쇄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사람사이의 갈등이 묻히는 경우보다 드러나고 대립하는 경우가 더 많아서 이런 식으로 일을 하는 사람은 금새 다른 사람의 타겟이 되어 공격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우짓을 하는 사람이 셰프가 아끼는 사람이라거나 서열상 높은 위치에 있으면 아래 사람들의 업무에 부하가 걸리게 됩니다. 이런 일이 쌓이다보면 아랫것들은 불평불만이 많아지고 그러다보면 더러워 못해먹겠다 하며 자리를 밖차고 나가버리죠. 사장입장에서 없어서는 안될 셰프가 주방의 이런 크고 작은 다툼을 중재하지 못하면 난감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무리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하더라도 새사람을 뽑아 냉장고에 어떤 식재료가 어떤 식으로 적재되어 있는지부터 하나하나 새로 가르쳐야 하는 것은 또 다른 주방직원에게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지요.

뭐 어떤 직장이든 다 그렇겠지만 중요한 건 팀웍입니다. 손발이 척척 맞는 주방은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몸을 부딪히며 같이 땀흘리는 사람들간에는 특별한 우애가 싹트기도 합니다. 제가 살면서 만났던 어떤 사람들보다도 주방에서 만난 사람들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꿈을 꾸며 다종다양한 경험을 하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에 몸은 고되지만 하루하루가 즐거웠습니다.

쓰다보니 글이 자꾸 길어지네요. 더 실용적인 내용이 되었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다음번에는 들통으로 하나 가득 토마토소스 만드는 이야기랑 오이 두 상자, 무 한상자를 사다가 피클담는 이야기를 해볼까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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