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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7/05 11:24:47
Name   뤼야
Subject   [한밤의 아이들]과 퀴어퍼포먼스로 읽어보는 시선과 권력의 이야기


살만 류슈디의 소설 [한밤의 아이들]은 다음과 같은 일화로 소설을 시작합니다. 주인공인 아담 아지즈는 의사가 되기 위해 독일에서 공부한 뒤, 인도로 막 돌아옵니다. 그는 한 지주의 딸을 진찰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는데, 지주의 집에 도착하여 딸을 보자고 하자, 그녀의 아버지인 지주는 자신의 딸이 낯선 남자에게 몸을 보여주지는 않는 요조숙녀라고 설명하지요. 어리둥절한 아지즈는 한 방으로 안내를 받는데, 그곳에는 프로레슬러 같은 체격을 한 두 명의 여자가 거대한 흰색 (침대)시트의 한 모서리를 각각 잡고서 뻣뻣하게 서있습니다. 시트의 정중앙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 구멍은 약 7인치 직경의 원입니다. 의사는 이 구멍 뚫린 시트를 통해서만 환자를 진찰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며, 어떤 부위를 진찰하려 하는지 지정해 달라고 친절하게 요청받습니다.

그렇게 해서 의사가 그의 환자와 사랑에 빠지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삼 년간의 절차가 시작됩니다. 그 기간 동안, 지주의 딸은 엄청난 수의 사소한 질병에 걸리며, 의사 아지즈의 방문은 거의 주말행사가 되지요. 매 경우마다 그는 구멍 뚫린 시트를 통해, 그 어린 여인의 몸의 각각 다른 7인치 원에 대한 일별一瞥을 허락받습니다. 지주의 계획이 놀랍도록 효험을 발휘한다는 것과 오직 부분부분으로만 알고 있는 지주의 딸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의사 아지즈에게 일어난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타인의 시선에 한 번도 발가벗겨지지 않은 요조숙녀이면서 동시에 완벽한 객체로서 주체에게 욕망의 악무한(헤겔) 루프를 걸어버리는 이 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타인의 시선이 근본적으로 불편한 이유는 우리가 타인의 시선 앞에서 주체가 아닌 객체가 되는 경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라캉이 이야기하듯 수치심은 근본적으로 냉혹할 수 밖에 없는 타자의 시선 앞에 놓임으로서 발생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늘 타자를 향해 시선을 돌리고 늘 타자의 시선 아래 놓입니다. 사회적 교환(들뢰즈)이 가능하지 않을 때, 주체의 시선은 욕망의 시선이 됩니다. 아지즈와 지주의 딸인 나심의 이야기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주체가 바라본 대상은 주체에 의해 일방적으로 해석되고 이해되는 객체이기 때문입니다. 사르트르는 이에 대해 [원죄란 이미 타인이 존재하는 세계에 내가 나타났다는 사실]이라고 역설적으로 말하기도 했지요.

늙으나 젊으나 남성이 아름다운 여성을 보기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름다운 여성은,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 남성에게 전유되기 때문입니다. 페미니스트들이 이렇게 객체로 전락해버린 여성의 이미지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요. 걸그룹의 유혹적인 몸짓은 '당신은 주체, 나는 객체, 나를 가져봐!'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완벽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서 이런 메세지를 상품화해서 파는 것에 딱히  부정적인 입장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한 가지씩 우리의 재주를 팔아먹으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인간이 완벽한 주체로 살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지요.

시선이 곧 권력, 즉 시선을 가진 이는 주체이고 시선의 대상은 객체가 되는 비대칭적 현상에 관해 알기위해 우리는 굳이 푸코씩이나 읽을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나를 쳐다본다'는 이유로 폭력을 휘두르는 사건은 술자리에서도, 학교에서도 심심치않게 일어나는 일인데다가, 퀴어퍼레이드가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시선의 비대칭성과 이러한 비대칭성이 곧 권력의 구조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으니까요. 푸코는 이 문제에 대해 철학적으로 고찰을 했겠지만, 그딴거 다 집어치우고 이 두 가지의 사례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쳐다본다는 이유로 폭력을 휘두른 사건은 말하자면, '네 시선 아래 나는 객체가 되기를 거부하겠어!'라는 열사의 몸부림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지요. 또한, 퀴어퍼레이드를 보면서 불편해 하는 사람들은 [주체인 내 시선 아래 놓인 객체의 모습이 몹시 욕망하기 껄끄러운 형상을 하고 있음]에 대한 감정적 토로이겠지요. 김수영의 시 [하루살이]에 이런 싯구가 등장하지요. '모여드는 모여드는 하루살이여/나의 시각을 쉬게하라'... 시를 쓰다가 잠시 쉬는 자신의 시야에 사로잡힌 하루살이에게 시인이 내지르는 일갈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합니다. 주체로서의 시인 자신과 시인의 시야에에 머무르는 객체로서의 하루살이는 주체의 일상을 방해하는 방해꾼인 것이죠. 하루살이는 자신의 일을 할 뿐이고 시인의 시쓰기 따위가 안중에 있을리 없는데도 말입니다.

저는 그들의 퍼포먼스가 어떤 철학을 담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소수자로서 비대칭적인 시선아래 놓였던, 주체로서 능동적으로 살아왔다기 보다 타인의 시선에 항상 신경을 쓰며 객체로서의 자신을 더 챙겨야했던 것에 대한 반발이 아닌가 추측할 따름입니다. 즉, 이성애를 당연시 여기는 사회의 공기(시선)가 그들을 주체로 살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며 살아야하는 객체로 전락하게 했다는 이야기지요. 아무리 위아더월드를 외쳐도 우리의 시선에 그들에 대한 타자화와 차별이 있다는 것이 그들이 모를까요? 우리가 바보가 아닌만큼 그들도 바보가 아니지요.

그들은 자신들이 인정받는 방식에 이의異意가 있었을 것입니다. 왕따와 이지메를 당하는 사람이 왕따와 이지메를 안당하려고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슬픈 이야기입니다. '해치지 않아.' 따위의 메세지로 존재를 인정받는다니요. 이것은 뒤집어 이야기하면 마치 이유가 있으면 얼마든지 왕따도 이지메도 승인할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 말이 되지요. 그들이 퍼포먼스는 다소 과격한 방식이긴 하지만, 수긍할만한, 그리고 객체가 아닌 주체로 다시 서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읽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객체로 놓이는 여성의 노출과 주체로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보이는 그들의 노출이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거기에 놓인 코드가 다르니까요. 예쁘게 노출하라? 누구를 위해서입니까? 주체로 서기 위한 자리에 그들은 누구에게 예쁘게 보여야 할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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