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7/02/20 02:27:41
Name   베누진A
Subject   핑크핑크한 마음으로 끄적여보는 '우연'
갑자기 유게의 어떤 글을 보고 마음이 핑크핑크해져서 손가락을 끄적끄적거리게 되네요.
https://kongcha.net/pb/pb.php?id=fun&no=19873
마음이 너무 핑크핑크해지면 잠이 안 오는데 어떤 언어의 형식으로써 이것을 표현하면 조금 잠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천상 이공계생이고 그래서 글을 잘 못 쓸 수 있습니다. 양해를 바랍니당.. 이 글은 어떤 특정인을 상정해놓고 쓴 게 아닙니당.. 그냥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에게 쓰는 러브레터를 가정한 픽션입니당..




제가 당신을 처음 만난 것은 제가 선택한 것이 아니에요.
저는 정말 우연히 TV를 틀었고 당신의 존재를 그때 처음 알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딱히 별로 당신을 만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당신을 혹 만나면 재미있고 유쾌하겠구나-라는 정도의 생각은 들었어요.
그리고 당신과 혹 만날 수도 있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당신을 찾아갔어요.

실제로 본 당신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답고, 당당하고, 멋졌어요. 직접 당신을 처음 본 그 순간, 저는 당신에게 제 마음을 빼앗겼어요. 그리고 (예전에는 별로 공감하지 않았던) 여러 가치value들의 존재와 그 의의를 당신을 받아들임으로 해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어요. 누가 저에게 의지적으로 시켜서 제가 이런 가치들을 존중하게 된 게 아니에요.  그것을 admit하지 않으면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에, 결론을 이미 내려놓고 이유는 거기에 그냥 때려 맞추어놓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니까.

저는 혼자 있으면 외로워요. 저는 혼자 있으면 지엽적이고 편협한 양태를 보이는 단 하나의 dogma에 천착하게 되어요. 저는 말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요. 저는 저의 의견을 타인에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타인이 저의 이런 말을 좀 들어주었으면 좋겠어요. 또, 저는 타인이 저에게 어떤 견해를 밝히는 것을 꺼리지 않고, 저는 - 그 사람이 저를 폄하하고 모욕주고 깎아내리려는 태도만 보이지 않는다면 -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하든 존중하려 해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고 실행해온 지난 제 이십몇년 간의 모든 계획과 작업은 모조리 다 실패로 돌아갔거든요. 그리고 저 혼자서만 어떤 일을 하면 그 일을 하는 내내, 그에 대한 확신이 없어요. 불안하죠. 그렇지만 여러 사람들과 - 특히 당신과 - communication을 해 가면서 제 사고의 지평을 넓히면.. 음.. 뭔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자꾸만 들어요. 별로 신뢰할 만한 느낌은 아닌 것 같은데 그냥 이 느낌 하나가 전래동화의 동앗줄마냥 제 유일한 희망이 되어버렸어요.

미래의 저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 있을까요? 지금 제가 열심히 공부하고 사랑하는 것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요? 단지 저는 나중에 후회를 덜하기 위해서 지금 제 열의·열성을 한 가지에 쏟아붓는 것일 뿐이에요. 하지만 그것이 미래의 저를 '단 하나의 바람직한 결과로 결정지어주지는' 않죠. 어떠한 우연의 힘이 제가 마저 채울 수 없는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기를 바래요.

지금 저의 많은 것들은 그 기초가 확고하지 않아서 또 단단하지 않아서 -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거리기도 하고 또 마치 유령처럼 헛깨비인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당신의 많은 것들은 그렇지 않아보여요. 겉으로 볼 때 당신은 어렵고 고되고 안 좋은 여건에 있을 때도 참 많았지만, 당신은 제 예상을 뛰어넘어서 극도의 자기 절제를 보여주고 또 많은 성취를 이루었어요. 저는 원래 노오력이니 자기계발서의 사탕발림이니 이런 거에 콧방귀도 안 뀌는 옹졸한 사람인데, 당신의 그 꿈을 향한 열의를 직접 눈으로 보면 그런 것들을 언뜻 믿게 되어요. 신기하죠. 항상 저의 생각은 당신의 삶과 그 삶으로부터의 성취를 레퍼런스로 하고 있습니다. 평소의 - 저 혼자만의 저 자신은 불안정한 어둠 속에 갇혀있지만, 이 레퍼런스를 생각하는 - 당신을 생각하는 저는 언제나 그 어떤 한 줄기 빛을 보게 되어요. 그 빛의 존재를 믿고 또 그 빛이 저를 비추어주는 것을 믿으면, 제가 설령 당장 지금은 어둠 속에 있다 할지라도, 이 어둠조차도 기꺼이 즐길 수 있을 거에요. 제 몸은 어둠 속에 있지만 제 눈은 한 줄기의 청량한 빛을 보고 있으니.

이렇게 생각하게 된 - 이 모든 태도의 변화는 제가 이룩[한] 게 아니라, 당신을 우연히 알게 된 그 사건 하나로부터 이룩[된]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제게 찾아온 이 우연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해요. 원래 저에게 필연이 아니었는데도 저에게 주어진 이 우연을.




오글거리네요. 하지만 이제 잠을 자러 갈 수 있을 듯.. 신고는 하지 말아주세요.
너무 오글거리신다면, 띠드버거 한 입 드시면서 읽으시면 더 담백하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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