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7/01/08 18:57:55
Name   알료사
Subject   댓글부대
어제 정모에서 장강명의 소설 댓글부대 이야기가 나왔는데 후기들을 죽 읽어보니 2차 치맥장소에서 또한번 떡밥이 돌았었나보네요..가 아니라 저도 잠깐 옆에 앉았었군요 ;; 대화에 끼고 싶었는데 아쉬웠습니다 ㅋ 아래로는 예전에 옆동네에 올렸던 책 소개글인데 말 나온 김에 재탕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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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만 보고는 지난 국정원사건을 다룬건가 싶었는데

그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인터넷 공간이라는 곳이 얼마나 허약한 구조물인지 묘사한 그런 소설이네요.

줄거리는 대충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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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온라인 마케팅 업체 <팀-알렙>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오르게 해주겠다는 내용의 제안서를 들고

개인병원이나 의류 쇼핑몰, 영화 배급사, 작은 게임업체들을 찾아다니다가

자신들과 비슷한 온라인 마케팅 업체들이 우후죽순 난립하자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양보다는 질, 즉 가짜 구매후기나 가짜 20자평을 올리고



나중에는 가짜 블로그에 거의 소설에 가까운 체험후기를 올리는 활동을 한다.

가짜 블로그는 한 포털사이트에서 파워블로그로 선정되기도 하고 잡지사에서 기고 요청이 오기도 했다.

잘나가는 인터넷 강사를 라이벌 강사의 의뢰를 받아 악플로 매장시키기도 하고

선생님에게 체벌을 받은 학생의 학부모에게 의뢰를 받아 해당 교사가 사직서를 내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던 <팀-알렙>은 W전자(삼성인듯 하네요 ㅋ)의 의뢰를 받으며 '2세대 댓글부대'로 거듭난다.

'가장 슬픈 약속'이라는 영화('또 하나의 약속'인듯 ㅋ)가 흥행하지 못하도록 막아달라는 의뢰였다.

<팀-알렙>은 '일베'에 자신이 영화산업 노동자 아무개라며 글을 올린다.

가장 슬픈 약속의 촬영 스태프로 일하면서 받아야 할 임금을 340만원이나 받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글만 올린게 아니라 밀린 임금을 달라는 피켓을 들고 상영관 앞에 가서 시위를 하는 시늉을 하고 그걸 지나가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처럼 사진을 찍어 목격담을 만들어 올리고...

<팀-알렙>의 목적은 가장 슬픈 약속이 화제가 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진보 쪽 게시판에서는 이 영화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됐다.

누가 '두 시간 내내 가슴이 먹먹했어요.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쓰면,

'아따 우덜식 노동착취는 착한 노동착취랑께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사람들은 그런 분위기에서 영화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고 특히 사회성 있는 영화들은 입소문 장산데 임금체불 논란이 그런 움직임을 완벽하게 막은 것이다.

일베 게시판은 '좌좀들 위선이 다 드러났다' '감독과 제작자에게 산업화 표창장을 줘야 한다'는 드립으로 난리가 났다.

아무튼 그렇게 영화는 망했다. (물론 소설입니다.... ㅋ)


그 의뢰를 성공시킨 후 <팀-알렙>의 멤버들은 자신들의 이번 작업이 그 이전까지 해왔던 일과는 뭔가 크게 차이가 있다는걸 느끼고 뿌듯해(?)한다.

무언가를 뛰어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영화를 성공시키기 위해 홍보하고 광고하고 공짜표도 뿌리고 진보언론에서 노골적으로 밀어주고 했는데 그것을 인터넷 댓글만으로 저지한 것이다.

그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팀-알렙>에게는 점점 더 큰(...)의뢰들이 들어오게 되고...

다양한 종류의 진보 커뮤니티들을 하나하나 박살내기 시작하는데...

소설이니까 당연히 가상의 커뮤니티들이지만 대략 실제 커뮤니티들과 어느정도 매칭도 가능하겠더라구요..  일베,오유,네이트판 등은 아예 실명으로 등장합니다... ㅋ

그런데 이 <팀-알렙>에게 커뮤니티들이 파괴되는 과정을 보면... 이건 딱히 누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하지 않아도 각각의 커뮤니티가 가진 단점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이렇게 될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음연타나 이모티콘, 기타 저속한 인터넷 드립들이 대거 묘사되어 제가 여태 읽어본 순수문학 중에 가장 젊다는 느낌이 확 들기도 했구요.

장강명은 동아일보에서 11년간 기자로 일하다가 때려치우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문학상 수상을 통해 등단한 작가면서도 온라인 소설연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관련 강의같은 것도 찾아가 듣고 하더라구요.

대놓고 '문학성보다는 팔리는 글을 쓰겠다'는 인터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설속 국정원 요원인 이철수가 <팀-알렙>의 한 구성원과 대화한 내용입니다. 과장은 있지만 마냥 무시할 만한 것도 아니어서 발췌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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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목적이랄 게 있나요? 인터넷은 그냥 있는 거죠'  

그랬더니 이철수가 웃으면서 자기는 처음에 인터넷이 역사를 바꿀 줄 알았다는 거예요.

'인터넷이 이미 역사를 바꾸지 않았나요?'

그랬더니 이철수가

'그렇긴 한데 인터넷이 역사를 좋은 쪽으로 바꾸는 건 이제 힘들 것 같다.

처음에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내 또래들은 정말 엄청난 도구가 왔다. 이걸로 이제 혁명이 일어날 거다. 하고 생각했지.

모든 사람이 직위고하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으로 대안을 찾아낼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생각했지.

인터넷이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권위를 타파해서 민주화를 이끌 거라고도 믿었어.

거대 언론이 외면하는 문제를 작은 인터넷신문들이 취재하고 인터넷신문조차 미처 못 보고 넘어간 어두운 틈새를

전문 지식과 양식을 갖춘 블로거들이 파고 들어갈 줄 알았어. 그런데 과연 그런가? 인터넷신문이나 블로거들이 과연 그런 역할을 하냐고.

그냥 거대 언론이 하던 나쁜 짓을 아마추어들도 소자본으로 하게 됐을 뿐이야.

거대 언론이 기업에 겁을 주며 광고를 따냈다면 인터넷신문들은 대놓고 삥을 뜯지. 블로거들은 동네 식당을 협박하고.

이것도 민주화라면 민주화지. 누구나 더럽고 야비한 짓을 할 수 있게 되는 민주화.

그런 대신에 인터넷신문들과 블로거가 기존 언론이 쓰지 않던 무슨 좋은 기사를 내놓느냐 하면, 이런 거야.

누구누구 아찔한 뒤태, 남녀 생각 차이 열네 가지, 노래 따라 부르는 일본 강아지 화제...

한때는 인터넷이 영원히 익명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헛소문이나 잘못된 정보가 나와도 좋은 정보도 있기 때문에 자정작용이 일어날 줄 알았던 거지. 하지만 이제는 그게 안된다는 걸 알아.

인터넷에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자정작용이 일어날 수가 없어. 오히려 그 반대되는 현상이 일어나지. 끼리끼리 뭉치는 거 말이야.

사람들은 절대로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고치려 들지 않아.

애착이 가는 커뮤니티를 두세 개 정해놓고 거기 새로운 글 올라오는 거 없나 수시로 확인하지.

그런데 그 커뮤니티들은 대개 어떤 식으로든 크게 편향돼 있어.

취향과 성향 중심으로 모인 공간이다 보니 현실의 오프라인 공간보다 편향된 정도가 훨씬 더 심한 게 당연해.

그런 데서 오래 지내다 보면 어떻게 되겠어? 처음에는 집 꾸미기나 육아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커뮤니티에 가입하지.

거기서 시댁이나 남편 욕도 같이 하고 산후우울증 이야기에 공감도 해주면서 커뮤니티에 대한 애착심이 생겨나지.

직장 다니면서 애 키우려니 힘들어 죽겠고 지하철에서 늙은이들이 자리 비키라고 행패를 부리나 이놈의 한국 사회 정말 짜증난다, 누가 그렇게 글을 올리면 폭풍 공감이라는 댓글들이 우르르 달리지.

그런데 왜 사회가 바뀌지 않지? 그건 기득권 탓이고 정부와 재벌과 언론이 그 기득권과 결탁해 있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다는 댓글을 다는 한 사람을 다른 아홉 사람이 불편해하고 은근히 따돌리게 되지.

온건한 진보주의자 열 사람이 모여서 시국을 논의하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 중 세 사람은 극좌파로 변하게 돼.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고. 그 사람들은 자기가 극단적이라는 사실도 몰라. 왜냐하면 자기 옆에 있는 아홉 사람의 평균 의견이 자신과 크게 차이 나지 않으니까. 그렇게 인터넷을 오래할수록 점점 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돼. 확증 편향이라는 거야. TV보다 훨씬 나쁘지. 인터넷은 어떤 신문 방송보다 더 왜곡된 세상을 보여주면서 아무런 심의를 받지도 않고 소송을 당하지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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