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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12/22 19:31:30
Name   알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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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악의 - 작가의 자식 (약스포)





노노구치와 히다카는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였다.

히다카가 모 출판사 주최의 신인상을 수상했을 때 노노구치는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시샘이 일었다. 노노구치 역시 작가의 꿈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 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고 그런 꿈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히다카는 셜록 홈즈와 뤼팽을 좋아했고 노노구치는 쥘 베른을 좋아했다.

그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자신도 써 보고 싶다고 히다카는 곧잘 말했다.

그런 배경이 있었기에 한 발 앞서 작가가 된 히다카에게 약간의 질투심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친구의 성공을 응원하는 마음이 더 컸다.

노노구치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히다카를 통해 출판 관계자와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

정말로 히다카는 노노구치의 첫 작품을 자신에게 보여 주면 아는 편집자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제안했고 들뜬 노노구치는 1년 동안 질질 끌던 작품을 한 달 만에 완성시켜 히다카에게 원고를 주었다.

그런데 히다카에게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한 달 간격으로 세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그때마다 바빠서 못 읽었다는 답변 뿐이었고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을 때에야 히다카는 자신의 집으로 노노구치를 불렀다.

아마추어로서는 잘 쓴 편이지만 프로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게 히다카의 평가였다.

실망한 노노구치에게 히다카는 다른 주제로 작품을 써보라고 권유했고 노노구치는 두 번째로 집필을 시작하지만 히다카의 평가를 의식하니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두 번째 소설을 쓰는 동안 노노구치는 이따금 히다카의 집을 찾아갔다. 학창시절의 우정이 되살아난 것 같았지만 사실은 히다카의 아내인 히츠미를 보기 위해서였다.

하츠미는 항상 노노구치를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화려하게 꾸몄을 때보다 평상복 차림일 때 더 아름다운 여자였다.

어느 날 노노구치가 예고 없이 히다카의 집을 방문했을때 공교롭게도 그는 외출중이었다. 문 앞에서 인사만 하고 돌아서려는 노노구치에게 하츠미는 케이크를 만들었으니 먹고 가라고 권했고 노노구치는 말로는 사양하면서도 그런 꿈 같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집 안에 들어간 노노구치는 마음이 붕 떠 요설가가 되었다. 하츠미는 못마땅한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이 소녀처럼 까르르 웃어 주었다.

노노구치의 얼굴은 불그레하게 달아올랐다.

집을 나온 뒤에 얼굴을 쓰다듬는 차가운 바람이 상쾌했다.

그 뒤에도 노노구치는 문학 담론을 한다는 핑계로 계속 히다카의 집을 드나들었다.

히다카는 전혀 알아채지 못한 눈치였다.

이윽고 노노구치의 두 번째 소설이 완성되었다.

이번에도 히다카의 감상은 혹평에 가까웠다.

낙담한 노노구치는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날이 계속되었고 완전히 컨디션이 망가지고 말았다.

감기가 심해져서 이불 속에서 비참하고 외롭게 앓고 있는데 믿을 수 없는 행운이 찾아왔다.

하츠미가 노노구치의 집으로 병문안을 온 것이다.

하츠미의 모습을 본 노노구치는 자신이 열 때문에 이상해졌나 의심했다.

하츠미는 노노구치의 감격이나 놀라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직접 부엌에서 노노구치를 위한 요리를 해 주었다.

병에 걸리면 잘 낫지 않는 체질인 노노구치는 그 병약함에 고마워해야 했다.

일주일씩이나 앓아 누운 사이에 세 번이나 하츠미가 보러 와주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찾아왔을 때 노노구치는 히다카가 보내서 온거냐고 물었다.

하츠미는 남편에게는 얘기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어째서냐고 묻자 대답 대신 남편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하는 하츠미.

건강이 회복되자 노노구치는 감사의 표시로 히다카가 집을 비웠을 때 하츠미에게 식사를 함께 하자고 했고 롯폰기의 일식집에서 식사를 한 밤 둘은 노노구치의 집에서 잤다. 비극적인 사랑의 시작이었다.

얼마나 시간을 보냈을까, 하츠미는 슬픈 표정으로 히다카가 노노구치를 속이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히다카는 노노구치의 첫 작품을 받자마자 그것을 읽었다.

노노구치의 소설에 푹 빠진 히다카는 자신보다 흘륭한 작품에 대한 질투로 혹평을 해서 노노구치가 작가의 꿈을 포기하도록 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히다카가 둘만의 관계를 알아차린 것 같다는 하츠미의 이야기를 듣고 노노구치는 히다카를 죽일 결심을 했다.

하지만 히다카는 노노구치의 범행 계획을 사전에 눈치채고 함정을 파서 범행을 무산시키고 그 증거를 확보해 노노구치를 협박한다.

노노구치의 소설을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아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권위 있는 문학상까지 받는다.

노노구치는 경찰에 자수해서 모든 걸 밝히고 싶었지만 하츠미가 공범이라는 사실 때문에 계속 히다카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하츠미는 그 일로 괴로워하다가 자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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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다카는 협박만 한게 아니라 회유도 했다.

노노구치의 작품이 내용이 좋아도 히다카라는 간판을 달지 않았더라면 독자들에게 읽히지 못하고 묻혀 버렸을 거라고.

한 작품이 주목을 받으려면 지겨울 정도로 수많은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고.

히다카라는 이름을 책을 팔기 위한 상표 정도로 생각하라고.

인세의 1/4 을 노노구치에게 주겠다고.

노노구치는 실제로 글을 쓴 사람이 반도 못 받는다는게 말이 되냐고 항변했지만

네 이름을 책을 내면 히다카로 냈을 때의 1/4보다 많이 팔릴거 같냐는 물음에 제대로 대답할 말이 없었다. 1/4은 커녕 1/6도 안 팔릴 것이었다.

결국 처음에는 약점을 잡혀 어쩔 수 없이 히다카의 고스트라이더가 됐던 노노구치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히다카와 꽤 죽이 잘 맞는 콤비가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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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노노구치가 히다카를 살해한 후 가가형사에게 꼬리를 잡혀 자신의 범행을 고백할 때 나오는 내용이다.

사실 이후 큰 반전이 나와 책을 다 읽고 나면 지금의 이 내용을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여야 하게 되는데

그래도 나는 이 책의 주된 주제가 누가 범인이었냐 동기가 무엇이었냐 하는 일보다 훌륭한 창작활동을 하기 위한 작가의 고충과 그로 인한 갈등이 아니었나 싶다.

위에 소개한 히다카와 노노구치의 관계 이외에도 작가와 해당 작품의 주인공 롤모델간의 갈등도 다룬다.

노노구치가 범인인 것이 밝혀지기 이전에 유력한 용의자였던 인물의 예상 살해 동기가 소설 속 주인공이 자신을 모델로 한 것이 분명한데 자신의 치부를 너무 잘 드러내는 바람에 사생활 침해와 명예훼손을 주장하며 소설의 전량 회수와 전면적 개작을 요구했던 것이다. 여기에 대해 작가는 예술성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사생활 침해는 불가피하다며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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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노구치의 수기가 소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이 수기는 노노구치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트릭을 사용하여 작성하였기 때문에 처음에 줄거리 파악을 위해 읽었을 때랑 나중에 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나서 두 번째 책을 읽을 때랑 완전히 의미가 달라진다. 그런 면에서 재독의 재미가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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