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10/12 16:45:24
Name   하얀늑대
Subject   [잡담]나는 달라질 수 있을까
9월에 처음으로 운동한 날이 50%가 되었다.

빡세게 헬스장 다니면서 하는 운동도 아니고

스쿼트와 푸쉬업, 런지만 깨작깨작하는, 그야말로 하루 20분이면 끝날 맨몸운동을 말이다.

3월부터 시작한 운동한 날은 3월 100%에서 93%, 80%, 73%로 점점 줄어들어가더니 9월에 드디어 저점을 찍었다.

그래도 이정도면 내 인생에서 가장 꾸준히 뭔가 해본거다.

영어 공부하려고 뽑아놓은 뉴스, 연설, 스크립트 등은 책장 어딘가에 처박혀있고

수학 공부를 위해 샀던 교재들은 먼지만 소복소복 쌓이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부모님은 항상 내게 '넌 끈기가 너무 없어'라고 얘기하시곤 했다.

물론 어른들이 노력 얘기하는건 일종의 패시브라고 생각하지만

난 정도가 심하긴 했다.

같은 친구들과 비교해도 끈기가 부족했고 주의력이 산만했다.

게으르고 체력도 부족해 졸기도 잘 졸았다.

넌 키도 작고 얼굴도 평범하고 돈도 없으면서 뭘 믿고 이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사냐는 얘길

먼 과거 여자친구에게 듣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예의없는 말이었지만 또 팩트만 보면 사실이라 그때도 허허 웃어넘겼다.

진짜로 그렇다.

20대 중반에 같이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나처럼 정말 아무것도 준비 안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모습때문인지 다른 사람들이 '넌 그래도 좀 노력하면 뭐라도 할 수 있어'라는 말을 하지만

오히려 그런 얘길 들을때마다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 커진다.

난 거만했다.

문제는 거만한데 운도 좋았다.

그래도 서울에서 열손가락 안에 든다는 학교에 운좋게 수시로 들어왔고

어렸을 때 책 좀 읽어놔서 남들보다 텍스트에 대한 이해도 빨랐다.

그래서 난 내가 어떻게든 잘 되겠거니 생각했다.

대학에 들어와서 정말 아무것도 안했다. 고등학교 땐 시키는대로 하고 웬만하면 전부 천편일률적인 삶을 살고 있으니

나처럼 해도 도태되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대학에 와서 군대를 포함해 몇 년을 대충대충 보내고 나니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과 나의 격차는 어마어마해졌다.

이제서야 그걸 자각하고 나니 의지가 불끈 솟아올랐다.

문제는 의지와 능력의 갭이 커질수록 삐걱댄다.

이제는 스스로 벌을 받고 있는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남들이 정말 힘들게 공부해서 온 대학을 상대적으로 편하게 오고(수시 자체를 비하하는게 아니다. 내가 예외일 뿐)

어릴 때 조금 해놨던 독서빨에 대한 과신,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에 대한 벌.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하면 할수록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은 점점 박살나고

스스로에 대해 화가 난다.

열심히 하는 자세, 새로운 것을 익히는 능력,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방법

난 왜 이런걸 전혀 습득하지 '않'았는가.

지나간 시간은 매몰비용이고 현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면 안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미래를 바꾸고 싶다면 어떻게든 다시 해보고, 달라져보려고 발버둥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 버릇 남 못준다고 여전히 작심삼일, 완벽히 준비되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는 준비병에 빠져있다.

오늘도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멍하니 바깥을 보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현재를 헛되이 보내는건 단순히 그 시간만을 버리는게 아니다.

미래에 이 시간을 반드시 후회할 것이기에

현재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미래의 시간마저 빌려다 쓰는 것이라고.

그래, 날 모자란 놈으로 만든 건 다름 아니라 나 자신이다.

이제 그만하고 나가서 공부해야지.

유게만 보고.
---------------------------------------------------
자게에 좋은 일이 참 많은데 제 이야기는 썩 즐겁지 않아서(우울해서)

찬물을 끼얹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 쓴 글이라 편의상 반말로 썼습니다.

제 현재상황이고, 질게에서도 많은 조언을 구했었는데 참 힘들고 어렵습니다.

오히려 공부하고 책을 읽을수록 정말 결정적 시기가 지나서

지금 하는건 정말 요만한 도움만 되고 끝인건가 싶기도 합니다.

유전이나 재능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얘기도 예전엔 크게 거부감을 느꼈는데,

요샌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기도 하구요.

변화에 대한 믿음이라는건 결국 허상이고 이젠 틀린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허탈합니다.





3
  • 춫천
  • 제방 cctv꺼주세요
  • 왜 제 이야기를 허락도 없이 쓰십니까 ㅠㅠ
이 게시판에 등록된 하얀늑대님의 최근 게시물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316 일상/생각극한직업 _ 회의 예약.. 5 CONTAXS2 17/09/21 3086 0
5155 스포츠갈아타는(?)자의 변명. 12 세인트 17/03/12 3087 1
5202 창작불결한 글. (1) 5 세인트 17/03/16 3087 3
12817 경제신흥 디지털 보석시장의 개장 ... 5 쥬라기재림교 22/05/15 3087 8
13741 일상/생각공부는 노력일까요? 재능일까요? 39 비물리학진 23/04/11 3087 0
3885 일상/생각[잡담]나는 달라질 수 있을까 11 하얀늑대 16/10/12 3088 3
12566 도서/문학3월의 책 - 어른의 문답법 4 풀잎 22/03/03 3088 1
12664 음악[팝송] 찰리 XCX 새 앨범 "Crash" 4 김치찌개 22/03/21 3088 1
3226 스포츠[7.5] 김치찌개의 오늘의 메이저리그(이대호 1타점 적시타) 1 김치찌개 16/07/08 3090 0
4402 게임슈퍼마리오 런 플레이 소감 1 Leeka 16/12/17 3090 0
5537 게임[LOL] 롤챔스, 롤드컵, MSI 역대 MVP 리스트 3 Leeka 17/04/27 3090 1
13139 일상/생각옛날 장비들을 바라보면서^^ 15 큐리스 22/09/07 3090 0
13218 게임디아블로2 레저렉션 래더2기 시작 기념 소서리스 스타팅 가이드 9 CheesyCheese 22/10/11 3090 11
13356 여행세상이 굴러가게 하는 비용 5.5 달러 15 아침커피 22/11/26 3092 22
3940 게임롤드컵 4강 관련 잡담과 우승 이야기 2 Leeka 16/10/18 3093 0
11877 일상/생각회피를 통한 극복 3 lonely INTJ 21/07/13 3093 8
4843 일상/생각짝사랑 하면서 들었던 노래들 1 비익조 17/02/11 3093 0
13500 일상/생각Lunar New Year는 안쓰는/없는 말일까? 55 그저그런 23/01/23 3093 4
12063 음악Jamiroquai Virtual insanity 25주년 4k 리마스터 4 ikuk 21/09/10 3094 4
12355 경제연도별 대한민국 1조 돌파 백화점들 11 Leeka 21/12/16 3094 1
11606 음악[MV] 월간윤종신, 선우정아 - 모처럼 BigBlur 21/04/23 3095 1
11058 게임[LOL] 10월 16일 금요일 오늘의 일정 발그레 아이네꼬 20/10/15 3096 2
3927 기타이태원 지구촌축제 하더라고요 2 아재형 16/10/16 3097 0
11940 일상/생각ㅂ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3 둥그란인생 21/07/30 3097 1
4511 음악걸그룹 음악 추천 1. [ I.O.I ] 8 꿈깨 17/01/02 3098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