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5/14 11:35:13
Name   원하
Subject   정맥주사라인 잡기 이야기
Zel님이 유게에 가져온 닥터테디 병원폭파 3화 링크입니다.

저도 인턴한테 정맥주사 라인 잡게 시키는 병원에서 트레이닝 받았는데, 병원이라는 무림정글에서 인턴으로 들어오면 정말 레벨 1의 뉴비거든요. 온갖 강캐들 등쌀에 치여가면서 태스크 완료하면서 레벨 올라가는 기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술기들 하다보면 그런 몇몇 순간들이 있습니다. 계단식 성장곡선에서 다음 계단으로 올라가는 시점들이죠. 체력 및 멘탈 고갈상태로 1년을 버티면 여러 술기들, 특히 정맥주사 라인잡기에 한해서는 나중에는 정말 무림고수가 된 듯합니다.

몇몇 에피소드들 보면, 3월 제일 처음에 흉부외과에서 수술 전날 라인 잡아야했던 건장한 아저씨, 두번이나 실패했는데 오히려 먼저 자신감있게하라고 해줘서 무척 감사했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배려해주는 느낌이 참 좋은 환자분이었습니다. 출발이 좋았네요.

두번째는 내과계 중환자실. 여기 멘탈나가서 obey안되는데 몸도 부어서 혈관 안보이는 에이즈환자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내과계 중환자실에 인턴업무 인수인계 받으러 갔더니 인계해주는 인턴 카운터가 일주일 전에 라인잡다가 바늘에 찔렸다더군요. 에이즈 검사결과 기다리면서 항바이러스약먹고 있다는 흉흉한 소식 듣고는 더 무서웠습니다. 그래도 여기는 보호자가 환자 옆에 없어서, 내 페이스대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한달보내고 왔더니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폐관수련한 기분이더군요.

마지막으로 혼돈의 소아응급실. 퀄과 속도 모두 잡아야 하는 곳이죠. 대개 아이들은 살집이 있어서 혈관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어린 혈관은 탄력이 있어서 시각에 의지하기보단, 만져보면서 촉각에 의지해야 하는걸 알려준 곳이었습니다. 마치 낚시할 때의 손맛 같은게 제대로입니다. 그런데 미운 네살. 한두살 정도 어린 애기들은 겁나 울면서도 힘이 없어서 팔을 도망가지 못하는데, 네살쯤되면 자기 의지를 관철시키는 힘이 생깁니다. 라인 잡을라고 팔 붙잡고 있기도 어렵고, 기껏 잡아놨더니 뽑아버리기도 하고.. 여기는 술기도 난이도가 있는데, 보호자가 더 신경쓰였어요. 여기까지 했더니 정맥주사는 경지에 올랐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런 저를 다시 겸허하게 해준 마우스 꼬리정맥 주사에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이거도 이제는 좀 경지에 오른 느낌이라 흠흠. 그래도 겸손해야죠.



0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568 일상/생각정모후기 입니다 16 와이 17/01/08 3975 3
    4566 일상/생각정모후기 27 The Last of Us 17/01/08 4886 4
    4570 일상/생각정모 후기는 아니고 그냥 기억입니다. 26 깊은잠 17/01/08 4811 6
    4569 일상/생각정모 후기. 좋은 사람들과의 시간. 6 Credit 17/01/08 4639 5
    4453 게임정모 프로그램 소개 - 보드게임 28 Toby 16/12/27 4089 3
    4582 기타정모 퀴즈 문제 공개 21 Toby 17/01/09 4782 0
    8023 오프모임정모 얘기를 꺼낸김에 15 Toby 18/08/09 4632 9
    2808 의료/건강정맥주사라인 잡기 이야기 21 원하 16/05/14 11396 0
    8440 스포츠정말로 예전보다 요즘 골이 더 많이 들어갈까? 5 손금불산입 18/10/30 4314 8
    2802 의료/건강정말로 신은 없습니다. 22 레지엔 16/05/13 4960 1
    3440 정치정말 젊은 여성들은 정치/사회에 관심이 없을까? 20 DoubleYellowDot 16/08/03 6645 10
    657 일상/생각정말 열받는 일 5 nickyo 15/07/26 4538 0
    14373 역사정말 소동파가 만들었나? 동파육 이야기. 12 joel 24/01/01 2340 24
    5194 일상/생각정리해고 당했던 날 46 소라게 17/03/15 4438 30
    14655 일상/생각정리를 통해 잠만 자는 공간에서 나로써 존재할 수 있는 공간으로 6 kaestro 24/05/07 1200 2
    13745 일상/생각정독도서관 사진 촬영 사전 답사의 기억 공유 15 메존일각 23/04/12 2767 12
    279 기타정도전 29화 천하대장군 15/06/09 14003 0
    271 기타정도전 28화 천하대장군 15/06/08 14602 0
    259 기타정도전 27화 천하대장군 15/06/08 13476 0
    251 기타정도전 26화 천하대장군 15/06/07 13896 0
    248 기타정도전 25화 4 천하대장군 15/06/07 13016 0
    246 기타정도전 24화 2 천하대장군 15/06/07 12845 0
    229 기타정도전 23화 2 천하대장군 15/06/06 15607 0
    228 기타정도전 22화 2 천하대장군 15/06/06 14907 0
    227 기타정도전 21화 4 천하대장군 15/06/06 14959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