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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4/03 07:14:59
Name   눈부심
Subject   여성을 위한 스릴러영화 Victoria
아무 기대없이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인데 시청자가 누구냐에 따라 영화에 대한 단상도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저처럼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시면 가장 좋구요. 이 영화의 감상포인트는 스토리가 전개되는 내내 가시지 않는 긴장감과 이들을 밀착취재한 듯 흔들거리는 싱글컷 카메라기법이에요.

독일의 카페에서 일하는 빅토리아는 스페인사람입니다. 독일어를 하지 못하니 어설픈 영어로 소통을 하죠. 혼자 클럽에 갔다가 음흉해 보이는 네 명의 독일남들과 말을 섞게 되는데 영락없이 하릴없어 보이고 두려운 존재이기도 한 이 불량배들과 겁도 없이 천진하게 잘도 대화를 이어갑니다. 보통 폭력적인 영화라고 하면 그 코드가 갱들의 육탄전, 총격전, 살인, 고문 등 다양한데 저에게 가장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코드는 아무래도 성폭력이에요. 한눈에 위험한 갱들이거나 독일불량배들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 보이는 남정네들 사이에서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새끼고양이같은 여주가 언제 끔찍한 성행위를 강요당할지 몰라 조마조마하면서 영화초반을 멀미할 것 같은 심정으로 봤어요.

영화를 온전히 신선하게 즐기실 분들은 아래글은 읽지 않으시는 것이 좋아요. 큰 스포는 없지만.. 아래의 내용이 이 글의 목적이긴 합니다.




빅토리아의 몸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온전합니다. 폭력은 다른 곳에 있어요. 이 영화는 페미니즘영화도 딱히 여성취향을 저격한 영화도 아니에요. 그런데 여성들의 호감을 살만한 영화입니다. 나의 의사를 거스르고 육중한 몸을 덥쳐오는 남성의 폭력은 어디에도 없어요. 이 영화를 본 제 느낌은 American Hustle을 본 느낌과 똑같았어요. American Hustle에서 몹쓸짓을 하고 다니는 간 큰 사기꾼남편 크리스찬 베일은 집요한 아내 앞에서는 무기력한 남자입니다. 아내의 실수로 목숨이 날아갈 뻔한 순간을 모면하고도, 냉큼 집으로 달려온 그 상황에서 아내를 때리지 않아요.  제발 자기말을 들으라고 절규하면서도 손찌검을 하지 않는 그가 저는 최고로 인상적이었어요. 이것이 단지 폭넓은 관객확보를 위한 수위조절에 불과할지라도 제게는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빅토리아>에도 성폭력코드가 전혀 없어요. 영화의 폭력은 전혀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영화초입부터 빅토리아의 안전을 염려하느라 잠시도 두려움을 떨칠 수가 없었어요. 네 명의 독일불량배들이 빅토리아를 범하면 영화가 그럴듯하게 전개될 수 없는 상황이에요. 본격적으로 긴장을 유발시키는 다른 장치들이 이야기의 핵심인데 저는 영화시작부터 상당시간동안 엉뚱한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거예요. 문득 이것이 약간은 감독의 의도였던 걸까라는 생각에까지 미쳤는데 조금이라도 그렇다면 그는 정말 섬세하게 스마트한 사람일 거예요. 여성인 제게 이 영화 최고의 스릴은 위험한 남정네들 속에서 자유로운 먹잇감처럼 놓여 있던 빅토리아의 겁없음과 겁탈의 공포였어요. 시나리오에 존재하지 않는 코드가 스릴의 정점이었고 영화시작부터 압도된 거죠. 성폭력코드가 더 이상 설득력이 없을 때쯤에는 다른 긴장감 넘치는 장치들이 영화에서 안도할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재밌어요. (아기가 등장하는데 물론 이것도 제가 무척 싫어하는 충격소재 중 하나지만 다행히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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