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5/06/01 11:15:05
Name   BLUE_P
Subject   [계층] 프라탑이 쌓여가면서
※독백느낌을 살리기 위해 반말로 작성했습니다. 읽는 분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나에게 이명박 대통령 시절은 암흑의 계절과도 같았다. 원-엔화 환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았기 때문에 당시 학생이었던 나에겐 HG등급 하나 사는 것도 벅찬 일이었다. 그럼에도 취미커뮤니티를 들어가면 이런 말들이 종종 보였다, 이른바 '프라탑이 쌓인다'고 하는 사람들의 푸념이. 시간은 없는데 신제품을 계속해서 지르게 되니 개봉하지 않은 프라모델의 박스들이 탑처럼 올라가는걸 프라탑이라고 하는데, 그 당시의 나에겐 정말 배부른 소리로만 들렸다. 정말 남의 일인줄만 알았다.

  그리고 세월은 훨훨 지나갔다. 난 직장인이 되었고, 원- 엔화 환율은 반대로 되었다. 엔화는 낮으니 지름은 멈추질않았다. 게다가 검색실력이 느니 할인정보를 얻기도 빨라졌고, 돈의 여유도 있지만 반대로 시간이 없어져 버렸다. 어느샌가 만들지 못한 프라모델 박스들이 미륵사지 석탑의 형태를 띄어갔다. 마치 롤에서 할인을 하길래 챔프를 샀는데 플레이 횟수=0 와 같은 상황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저번주 토요일, '건프라 8배세일'이란 문구에 혹해서 무려 9000엔 짜리 물품을 예약해서 질러놓은게 도착해 버렸다. 택배가 왔다는 말에 신이 나서 집에 도착한 나는 할 말을 잊어버렸다. 그 거대한 단일 박스의 위용에 생각나는 첫 느낌은 행복이 아닌 당혹감이었다.

'이걸 어느 세월에 만들어...'

게다가 도서 정가제 전에 한탕 하겠답시고 질러놓은 책들도 방 한구석에서 조용히 나를 노려보고 있다. 지금 난 '시간과 정신의 방'이 너무나 필요하지만 여기는 3차원의 냉혹한 현실셰계이다. 그리고 방금 현실세계는 문자 한통으로 현실이 얼마나 냉혹한지 다시금 알려주었다.

'XXX님께서 주문하신 물품이 발송되었습니다.'

나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정말로 필요하다.



0
    이 게시판에 등록된 BLUE_P님의 최근 게시물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577 과학/기술수학계에 천지개벽할 사건이 일어났네요. 19 darwin4078 15/11/17 7847 0
    10296 도서/문학일독김용(一讀金庸): 김용 전집 리뷰 34 기아트윈스 20/02/16 7848 23
    739 영화머니볼 : 스포츠 드라마의 종언(스포일러) 35 구밀복검 15/08/06 7849 0
    4804 정치이재명이 싫은 이유? 2007년에 그가 한 "짓" 때문에. 38 Bergy10 17/02/08 7849 14
    2894 과학/기술보톡스 (Botox) 7 모모스 16/05/25 7856 2
    1303 문화/예술조성진 제 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3 reason 15/10/21 7861 0
    12306 일상/생각동물복지에 대한 생각 4 천하대장군 21/11/27 7864 10
    193 기타잡설 #01 온라인과 광고 5 Secundo 15/06/03 7869 0
    8172 IT/컴퓨터Gmail 내용으로 구글캘린더 이벤트 자동생성하기 8 CIMPLE 18/09/06 7869 6
    9089 의료/건강오늘 받은 정관수술 후기 19 미스터주 19/04/17 7871 34
    157 기타[계층] 프라탑이 쌓여가면서 5 BLUE_P 15/06/01 7875 0
    13136 일상/생각요즘 애들 어휘력 부족이 정말 심각하다? 저는 동의 안 됩니다. 33 OneV 22/09/05 7877 0
    305 기타국가지정병원 이야기 7 세상의빛 15/06/11 7879 0
    1022 정치'헬조선증후군'이란?-jtbc기사(link) 20 천무덕 15/09/17 7879 0
    286 기타안녕하세요~ 처음으로 인사 올려요 29 지니 15/06/10 7880 0
    3486 꿀팁/강좌 치즈와 GMO이야기 19 눈부심 16/08/10 7886 4
    233 기타ROM 족 약 30년만의 커밍아웃 16 이젠늙었어 15/06/06 7887 0
    1046 음악Kath Bloom - Come Here 2 새의선물 15/09/20 7888 0
    1336 일상/생각마리텔, AMA 게시판, 소통 5 王天君 15/10/25 7888 4
    213 기타시나리오를 구합니다.... 15 표절작곡가 15/06/05 7892 0
    225 기타2007-09 불황은 어떤 사람에게 가장 피해를 줬을까? (링크 수정) 3 낭만토토로 15/06/06 7892 0
    8490 일상/생각한 때 썸 타던 남자가 갑자기 연락와서 마음 복잡하네요 24 쭈꾸미 18/11/08 7892 6
    6924 경제원전으로 보는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 20 소맥술사 18/01/10 7895 17
    4074 게임디시 이제동 갤러리에 '쌌던' 잡글들. 9 알료사 16/11/04 7896 4
    1440 일상/생각아차! 말실수 했구나 5 바코드 15/11/03 7898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