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3/10/30 09:55:56
Name   tannenbaum
Subject   적당한 계모님 이야기.
아버지 돌아가신지 벌써 10년도 훌적이지만 아직도 계모님께 때 되면 연락도 드리고 용돈도 보내고 도울일 일으면 힘 보태면서 지냅니다.

계모님이 저를 친자식처럼 키워주셔서 그럴까요? 아니요. 솔직히 말하면 계모님은 저에게 그리 좋은 새엄마는 아니었습니다. 적당히 구박도 하고 적당히 차별도 하고.

하지만 그 [적당한] 계모였기에 저가 감사한 마음으로 갚는거죠.

저 중딩 때 아버지와 재혼하자마자 뉴 맏며느리라고 할아버지 병수발 1년, 할아버지 가시고 몇달만에 이번엔 할머니 병수발 1년 반.

근 3년 동안 다른 아버지 형제들은 어쩌다 가끈 음료세트나 과일 사들고 찾아와 얼굴 빼꼼 비추고 나몰라라 할때, 계모님은 병원으로 반찬 해다 나르고 똥오줌 빨래 해가며 쎄빠지게 고생했어도 돌아오는 건 ‘정성’이 부족하다는 타박 뿐이었죠. 거기다 중환자들 특유와 짜증과 감정배설 쓰레기통 역할은 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버지… 불편한 보조침대에서 아버지 가시는 날까지 근 2년을 또 반복하셨죠. 그렇게 계모님이 병수발하는 동안 전 몇달에 한번 얼굴 비추면서 병원비만 결제해도 하늘이 내린 효자가 되었지만 역시나 계모님은 천하의 악처가 되었습니다.

기실 그 [적당한] 계모님이라서 다행이었어요. 주어진 상황과 역할이 XX 같아도 옛날 분 가치관과 세뇌에서 벗어나지 않은 분이라서요.

막말로 애지녁에 도망쳐도 이상할 것 없는 역할이었지만 거부하지도 못하는 롤플레잉에 매몰되던 바보 같은 사람.

아버지 가시기 얼마전 병환이 심해졌을 때 저가요양병원으로 모시자 했을 때 계모님이 그러시더만요.

[거기 가면 송장으로 나온대. 우짤라고? 그냥 내가 옆에 있을란다.]

아… 객관적으로 못 배우고 무식한, 그리고 현명하지도 못한 계모님이시지만… 저보다는 몇배는 인간다웠고 저보다는 천배는 노력했고 저보다는 비교할 수 없이 고생하셨죠.

그래서 갚으면서 살아요.





41
  • 측은지심이 사람다운 사람인지 보는데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많이 배운거랑은 전혀 다른 관점인 것 같고요. 글쓴이도 좋은 분이고, 지금처럼 그렇게 하시면, 될 것 같아요.
  • 요즘 세태에 보기 드문 계모님이시네요. 그리고 그걸 알아 봐 주시는 ___님도 훌륭하시고요.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5460 일상/생각전 여친은 페미니스트였다. 84 그럼에도불구하고 17/04/17 13869 18
14858 일상/생각전 그저 키스만 했을뿐인데 ㅎㅎㅎ 10 큐리스 24/08/21 1264 3
11325 정치적폐. 23 moqq 21/01/07 4851 19
2566 과학/기술적록색맹과 Vitamin C 이야기 19 모모스 16/04/07 8662 9
7424 철학/종교적대적 현실 하에서 全生을 실현하려는 실천의 하나 : 무(武) - 2 1 메아리 18/04/22 3433 4
7423 철학/종교적대적 현실 하에서 全生을 실현하려는 실천의 하나 : 무(武) - 1 메아리 18/04/22 4235 4
12081 경제적당한 수준의 실거주 1주택을 추천하는 이유 35 Leeka 21/09/16 4023 4
14236 일상/생각적당한 계모님 이야기. 10 tannenbaum 23/10/30 2377 41
12910 일상/생각적당량의 술과 음악이 있음으로 인해 인생은 유쾌한 관심거리다. 알버트킹 50 사이공 독거 노총각 22/06/12 5052 43
235 기타적금 만기된 사연 15 블랙밀크티 15/06/06 8513 0
4729 요리/음식저희집 차례(제사)상 소개합니다. 19 셀레네 17/01/31 6290 0
9252 의료/건강저희는 언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까요.. 18 Zel 19/05/30 7086 66
12385 일상/생각저희 아이가 다른 아이를 다치게 했다고 합니다. 9 엄마손파이 21/12/27 4693 2
4364 일상/생각저희 강아지는 유기견이었습니다 17 우웩 16/12/12 4678 29
7452 철학/종교저항으로서 장자 8 메아리 18/04/28 5142 8
5516 정치저장용으로 정리해뒀던 대선후보 문화공약 6 천도령 17/04/25 4555 2
14388 일상/생각저의 향수 방랑기 29 Mandarin 24/01/08 2005 3
3944 게임저의 하스스톤 4 헬리제의우울 16/10/18 3512 0
3206 일상/생각저의 첫 차를 떠나 보내게 되었습니다. 32 Toby 16/07/06 4368 0
9698 일상/생각저의 첫 단독 베이킹, 레몬머핀 23 은목서 19/09/23 4834 22
8703 의료/건강저의 정신과 병력에 대한 고백 13 April_fool 18/12/29 7220 44
166 기타저의 인터넷 커뮤니티 생활에 대한 잡설 10 으르르컹컹 15/06/01 9130 0
14240 일상/생각저의 악취미 이야기 8 김비버 23/11/01 2309 12
4047 일상/생각저의 다이어트(?) 이야기 성공 or 실패? 14 엘멜 16/10/31 3176 0
4022 일상/생각저의 다이어트 이야기 -3- 15 똘빼 16/10/28 3729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