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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07/30 17:47:52
Name   jo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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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워크래프트 3)낭만오크 이중헌의 이야기. 세 번째.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이중헌. 오른쪽 끝의 인물은 승부조작범이므로 인민의 포토샵질 완료.)


지난 글들에서 이중헌의 3연속 준우승에 대해 길게 썼었습니다만, 이중헌을 위해 변호를 좀 해주자면 당시 워3는 오크가 나이트엘프와 맞서며 결승에 가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나이트엘프는 해설자들조차 공공연히 언급할만큼 강한 종족이었죠.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오크들이 느끼는 나이트엘프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나엘의 탈론-키메라 전략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문제가 되었던 것은 탈론, 스2의 바이킹처럼 공중모드와 지상모드가 가능한 마법 유닛이었는데 황당할만큼 성능이 좋았습니다. 간단히 말해 바이킹이 하늘에선 공대공 최강, 지상에 내려오면 우수한 화력으로 대지와 대공이 가능한데다가 애시드 스포어와 단일 타겟을 얼려버리는 스킬까지 가지고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게다가 가격도 싸서 양산도 쉬웠죠. 이렇게 탈론으로 중반을 버티며 공대지 최강 유닛 키메라를 모으면 오크는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이중헌만이 오크 게이머들 중 독보적인 기초 유닛 컨트롤과 빌드, 심리전으로 나이트엘프를 이겨낼 수 있었죠. 그러나 이중헌 조차도 당대 최강의 나이트엘프들이 작정하고 칼을 갈고 나오는 결승전에선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테란 맵의 홍수 속에서 한 끗 차이로 번번히 준우승에 머물렀던 홍진호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천하의 이중헌도 우승은 안 되나 보다...라고 팬들이 생각할 무렵, mbc게임에서도 이중헌은 대회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블리자드가 예고한 확장팩 발매가 약 두 달 앞으로 다가온 5월 말에 mbc게임은 자사의 워3 대회를 '프라임리그' 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범시켰고, PL 1은 클래식으로 진행될 마지막 워3대회였죠. 그런데 대회의 일정이 확장팩의 발매와 어그러지며 꼬였습니다. 프라임리그 1은 8월 1일에 결승전을 치르는데, 확장팩 발매는 7월 말이었거든요. 물 들어올 때에 노를 저어야 했기에 mbc게임은 확장팩으로 치러질 PL 2의 예선일을 7월 29일, 개막일을 8월 8일로 잡았습니다. 이렇게 대회가 끝나자 마자 다음 주에 곧바로 차기 대회를 여는 것은 스1에서나 워3에서나 유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곧 PL 1에 참여하는 선수들이 클래식과 확장팩을 모두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이중헌은 여기서 중대한 결단을 내립니다. hp배 준우승자로서 얻은 온게임넷 차기 시드를 포기하고 PL 2에도 불참하면서 오직 PL 1에만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죠. 다행히 PL 1에서는 이전과 같은 불운은 없었습니다. 이중헌은 4인 1조의 16강에서 정동국(sarang)과 이재박(evenstar)를 연파하면서 일찌감치 8강 진출을 확정짓습니다. 다만 마지막 경기에서는 언데드 게이머 전영현(jyoung)에게 방송 경기 사상 최초로 언데드에게 패배하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뜻밖의 행운도 있었습니다. 8강 경기가 열리기 직전에 블리자드가 1.10 패치를 단행하면서 오크가 상향된 것이죠. 그 중에는 이중헌이 즐겨 쓰던 유닛인 와이번의 체력 상향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늘이...아니 블리자드가 도와주는 이 호재를 타고 이중헌은 8강에서 언데드 오정기를 2:0으로 제압합니다. 1경기에서는 와이번을 예상하고 핀드를 뽑은 오정기의 허를 찔러 그런트를 꺼내들어 승리, 2경기에서는 방송경기 사상 최초로 '날아오는 데스 코일을 포탈로 흡수하기' 컨트롤을 선보이며 팬들을 열광시켰죠. 지금은 누구나 다 하는 컨트롤이지만 그 때는 이런 발상을 한 사람이 이중헌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4강에서 이중헌을 기다리는 것은 지난 날 이중헌에게 첫 좌절을 안겨줬던 라이벌 임효진이었습니다. 개인으로서의 라이벌리, 소속 클랜 간의 악연, 그리고 종족과 종족의 자존심이 걸려 있던 최고의 매치업이었죠. 이제는 프로게임단 삼성 칸의 소속 게이머로서 팀의 유니폼을 입고 나온 임효진과 아직 팀을 구하지 못 해 야인으로서 사복을 입고 나온 이중헌의 모습마저 기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1경기, 이중헌은 뒷마당 배럭 이후 빠르게 멀티를 먹는 전략을 들고 나옵니다. 멀티 이후 뿜어져 나오는 그런트의 힘과 정확한 타이밍의 견제로 이중헌이 서서히 승기를 잡아갑니다. 그러나 임효진 역시 집요하게 멀티를 퍼뜨리며 레벨을 잘 올린 영웅의 힘으로 버텼습니다. 이윽고 나엘의 마지막 자원줄인 중앙 멀티에서 최후의 교전이 벌어졌고, 임효진은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프문의 궁극기 스타폴을 씁니다. 그러자 이중헌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아이템인 윈드 완드로 프문의 채널링을 끊어버리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스스로 자신 있는 맵이었다는 1경기에서 물량전으로 패배를 맛본 임효진은 2경기에서 역으로 빠른 멀티 빌드를 꺼내듭니다. 반면 이중헌은 빠르게 홀업을 올리고 2비스티어리에서 와이번을 뽑는 빌드를 썼습니다. 임효진은 와이번에게 강한 아처를 다수 모으면서 오크의 방해 없이 빠르게 사냥을 돌아 데몬 헌터의 6레벨을 만들었습니다. 오크가 멀티도 없고 와이번이 다수 모이지도 못 한 상태에서 아처 다수와 6레벨 데몬이 갖춰지자 임효진은 승리를 자신하며 오크의 본진으로 달렸습니다. 그런데 본진에서 나엘 병력을 기다리는 것은 와이번이 아니라 망치와 도끼를 든 중립 용병 오거와 트롤이었습니다. 이중헌의 진짜 전략이 이거였습니다. 패스트 와이번인 척 하면서 딱 2기만 뽑고, 임효진이 아처를 뽑게 만든 후 다시 그 아처의 카운터인 용병을 잔뜩 긁어모으는 것이었죠. 이 교전에서 나엘의 병력이 전멸하며 게임이 끝났습니다.

이렇게 1,2경기에서 완벽하게 패배한 것의 후폭풍인지 3경기에서 임효진은 힘없이 허물어졌고 이중헌은 숙적 임효진을 넘어 다시 한 번 결승에 올랐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4번째 개인전 우승 도전이었습니다. 반대편의 4강 대진을 뚫고 올라온 것은 같은 클랜의 이형주. 이로써 약간은 멋쩍게 푸 클랜이 염원하던 첫 번째 개인전 우승자 배출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둘 다 결코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이었죠. 이중헌은 기나긴 준우승의 잔혹사를 끊고 황제의 대관식을 필요로 했으며 이형주는 늘 최고였지만 개인전에서 연이 없었던 설움과 지난 온게임넷 16강의 아픔을 설욕해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프로즌 쓰론의 발매 열기를 잠시 뒤로 하고 클래식 버전으로 진행된 결승전 1경기 맵은 로스트 템플, 오크가 나엘에게 꽤 유리한 맵이었습니다. 이중헌으로서는 반드시 잡아야 할 경기였죠. 늘 하던데로 하면 이중헌을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던 이형주는 몰래 멀티를 가져가면서 히포그리프를 뽑는 필살 전략을 준비해왔습니다. 히포그리프는 여태까지 드라, 탈론, 헌트 등의 사기 유닛들에 밀려 별로 쓰이지 않았었고 그래서 패치의 칼을 피해갔던 유닛입니다. 당시 이형주는 히포를 두고 '내가 쓰면 사기 유닛이다' 라는 말을 남겼는데 과연 그 말대로 히포가 모이니 엄청나게 강력했습니다. 이중헌은 맞멀티를 가져가며 그런트, 레이더를 다수 양산하며 이에 맞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상 근접 유닛인 그런트, 레이더는 공중유닛 히포그리프의 화력 집중을 이겨내지 못 했습니다. 결국 후반부 교전에서 순식간에 이중헌의 영웅이 잡히면서 패배하죠.

2경기는 나엘맵인 라운드 어바웃에서 열렸는데, 여기선 이형주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중헌의 사냥을 방해하고 유닛을 끊어먹고 중요 건물을 테러하는 완벽함을 보여주며 무난히 승리합니다. 이중헌은 1경기와는 달리 이형주의 히포그리프에 대항해 그런트가 아닌 와이번을 들고 나왔지만 또다시 패배하면서 3경기에서는 무슨 유닛을 써야할지도 막막한 상황이었습니다. 4강에서 숙적 임효진도 3:0으로 이겨냈는데 또다시 무너지는가...지난 온게임넷 대회에서 4강을 3:0으로 이긴 후 결승에서 0:3 패배를 당했던 기억이 팬들의 마음 속에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0:2로 몰렸지만 담담하게 아직 할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맞이한 3경기, 이중헌은 초반부터 승부수를 던집니다. 나무를 캐는 일꾼을 1기 줄이고 배럭스를 앞당기면서 테크트리를 올렸죠. 이형주는 이번에도 히포그리프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중헌이 한 박자 빠르게 모인 병력을 가지고 나엘의 본진을 타격했습니다. 이 찌르기에 지어지고 있던 윈드가 깨지면서 히포그리프가 나오는 타이밍은 뒤로 늦춰졌고 이중헌은 그 후로도 나엘이 멀티를 가져가지 못 하도록 계속 교전을 벌여 밀어붙였습니다. 즉, 이중헌이 들고 온 해법은 정확한 타이밍의 견제와 소모전으로 히포가 모이기 전에 끝낸다는 것이었죠. 이 승부수가 통하며 이중헌은 한 경기를 만회할 수 있었습니다. 4경기도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갔는데 이형주가 교전에서 약간의 실수를 범하고 이중헌이 한 수 위의 컨트롤을 보여주며 승리, 승부를 5경기로 끌고 갔습니다.

다시 로스트 템플로 돌아온 5경기에서 이형주는 다시 한 번 1경기에서 썼던 멀티 이후 히포그리프 빌드를 꺼내들었습니다. 이중헌의 선택도 1경기와 같은 그런트, 레이더였고요. 하지만 맞멀티 이후 히포그리프의 물량전으로 가면 오크가 이길 수 없다는 것이 1경기에서 증명되었기에 뭔가 차이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중헌은 3경기에서 그랬듯 다시 한 번 히포가 나오기 직전 타이밍에 나엘 본진으로 달렸습니다. 그러나 이형주는 거기에 또 당하지 않기 위해 본진에 타워까지 건설해 둔 상태였죠. 김동준 해설이 '지금 나엘 본진에 오크가 뛰어들기 정말 싫을 것이다' 라고 극찬했지만 이중헌은 용감하게 본진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무모해 보이는 공격, 그러나 이형주는 멀티와 테크트리 모두에 자원을 투자한 상태였고 그만큼 아처가 적었습니다. 이 실낱 같은 타이밍에 들어간 오크의 군세는 순식간에 아처를 녹이며 영웅까지 모조리 잡아내었습니다. 이중헌은 여세를 몰아 계속 승기를 굳혀나갔고 다시 한 번 나엘의 본진을 밀어버리며 gg를 받아냅니다. 마침내 우승, 3번의 준우승과 0:2 스코어 속에서 달성한 기적의 역전 우승이었습니다. 그동안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였지만 왕관이 없었던 황제의 대관식이었죠.


이렇게 워3팬들을 열광시키며 워3의 클래식 시대는 끝났고 확장팩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팬들은 확장팩에서도 이중헌이 오크와 워3를 이끌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원래 이번 글로 끝내려 했는데 분량 조절에 실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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