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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07/24 13:34:25
Name   joel
File #1   sonokong.jpg (230.9 KB), Download : 23
Subject   워크래프트 3)낭만오크 이중헌의 이야기. 두 번째.



이중헌이 스타로 떠오른 2003년 1월 무렵에 한국의 워3를 양분하며 라이벌리를 세우던 두 개의 클랜이 있었습니다. 이중헌이 속한 pooh 클랜과 임효진의 werra 클랜이었죠. 그런데 두 클랜은 운영 방향이 반대였습니다. 푸는 정인호가 매의 눈으로 골라낸 소수정예 팀이었고 웨라는 실력 있는 게이머에게 쉽게 문호를 여는 팀이었습니다.

푸의 기둥이 정인호였다면 웨라에는 큰 형님 김대호가 있었는데, 둘 다 1세대 오크 게이머로서 이름을 떨치던 선수입니다. 겜비씨 2차리그에서 맞붙었던 이중헌과 임효진은 양 클랜의 자존심이자 최고의 흥행 매치업이었고요. 뿐만 아니라 클래식 시절 아크메이지 5인방이라 불리며 휴먼의 최강자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박세룡(showbu, 또는 swain)과 원성남(kenshin) 역시 각각 푸와 웨라 소속이었습니다. 그 밖에도 훗날 나이트엘프의 최강자로 거듭나게 될 푸의 이형주(check), 언데드들의 큰 형님이던 웨라의 오정기(susiria) 등의 선수들도 하나 같이 쟁쟁한 선수들이었지요. 그리고 푸 클랜에서 엄청난 기대를 모았지만 심각한 방송경기 부적응을 겪던 어떤 선수가 있었는데...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합시다.

두 클랜이 최초로 격돌한 단체전 CTB 1에서는 푸가 이중헌, 정인호, 이형주 3인이 모두 올킬을 기록하는 맹활약과 결승전의 기적으로 전승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웨라 역시 푸가 아닌 클랜들에게는 전승을 거뒀고, 결승에서 푸를 셧아웃 직전까지 몰고 가는 저력을 보여줬습니다.

CTB 1의 인기몰이에 힘입어 개최된 CTB 2 역시 두 클랜의 독무대였습니다. 푸와 웨라는 강한 전력으로 타 클랜들을 찍어눌렀고 우승 후보는 이번에도 둘의 몫이었습니다. 두 팀의 맞대결에서는 승리와 저격, 승패의 반복 끝에 3:2로 푸가 승리하며 전승으로 결승에 올랐죠. 결승에서 다시 웨라를 만난 푸는 이형주와 박세룡이 승리를 합작하며 3:1로 2연속 전승 우승에 성공합니다. CTB 1의 영웅이었던 이중헌은 이번에는 많은 활약을 하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또 한 번의 올킬을 기록하며 3승 1패로 제몫을 해줬고요.

온게임넷에서 열린 팀플최강전에서도 이중헌은 이형주와 짝을 이루어 칩튼의 오오라를 활용한 나엘-오크 조합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즉, 이 때까지 있었던 모든 단체전을 푸가 석권한 것입니다.

단체전에서는 이렇게 푸의 압승이었지만 개인전에서는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겜비씨 2차리그에서 임효진이 이중헌을 누르며 우승을 차지한 것과는 달리 푸에게는 아직 개인전 우승자가 없었거든요. 이중헌 개인으로 봐도 이제 그는 개인전 우승을 달성하며 스타로서의 대관식을 치를 필요가 있었습니다.

2003년 1월, 온게임넷에서는 한빛소프트배 워3 프리매치 라는 대회가 열립니다. 이 대회에서 3위 안에 입상한 선수에게는 블리자드 본사로 초청되어 그 해 여름에 발매될 확장팩을 미리 시연해볼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죠. 이중헌은 같은 팀의 이형주와 함꼐 예선을 돌파하여 마침내 온게임넷 대회에 처음으로 진출했습니다.

이 당시 온게임넷의 워3 대회 진행 방식은 스타리그와는 달리 16강부터 3전제 토너먼트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추첨에서 하필 이중헌과 이형주가 만나버립니다. 하필이면 딱 둘 밖에 없는 푸 클랜 선수가 추첨에서 만나버릴 줄이야...누가 이겨도 웃을 수 없는 매치업이었습니다. 게다가 팀킬이라는 문제를 제외하고도 이형주는 이중헌이 절대 만나기 싫은 상대였을 겁니다. 이형주는 후일 정인호가 '팀내에서 연습을 해보면 이형주가 너무 잘 해서 이중헌이 번번히 졌었다' 라고 말할 만큼 강한 나이트엘프였죠.

개인전에서의 팀킬 매치는 재미없게 끝나기 쉽지만 그래도 둘은 훌륭한 명승부를 펼칩니다. 1경기는 이형주가 한 박자 빠르게 키메라를 뽑아 이중헌의 지상군을 압도하며 승리, 2경기는 이중헌이 더 정교한 교전 컨트롤로 승리하며 최종전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3경기에서 이중헌은 그간 자신이 나이트엘프전에 즐겨쓰던 3영웅,3와이번,3샤먼(일명 333 러시) 체제에서 와이번 대신 중립용병 썬더리자드를 뽑는 선택을 합니다. 와이번을 저격하기 위해 다수 드라이어드를 모았던 이형주가 이 조합 앞에 무너지며 이중헌이 8강에 오릅니다.

8강 상대는 나이트엘프의 전략가로 유명한 박종호(I.K.E) 였는데 이 선수도 오프라인 대회 경험이 없을 뿐 배틀넷에서 탈론 전략의 창시자로 불리던 유명한 게이머였습니다. 이에 맞선 이중헌은 다시 한 번 적극적인 용병활용으로 1경기를 가져갑니다. 2경기에서는 박종호가 전략가라는 별명답게 강한 크립을 이중헌의 본진으로 꼬여온 후 자신은 타워로 사냥하고 멀티하는 빌드를 들고 나옵니다. 처음 당해보는 전략에 당황한 이중헌은 만만찮은 피해를 입었고 박종호가 순조롭게 멀티를 성공하며 앞서갔습니다. 그러자 이중헌은 몰래 상대의 본진 뒤편에 타워와 배럭을 짓더니 공성병기 캐터펄트를 뽑아 나무를 파먹고 들어갔습니다. 이 한 방에 박종호의 본진이 날아갔고 여기서 사실상 승부가 갈렸습니다. 이중헌이 4강에 진출했습니다.

4강에서 만난 상대는 나이트엘프 베르트랑(elky). 이 선수는 꽤나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인데 유일무이하게 스1과 워3에서 모두 4강에 올랐던 선수였고 온게임넷 1회 대회 준우승자이기도 했습니다. 놀랍게도 명목상으로는 이중헌과 같은 푸 클랜 소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스1 게이머로서 게임단 AMD 소속이었기에 거의 이름만 푸 클랜인 수준이었죠. 베르트랑은 그 당시 스1에서는 한물 간, 그냥 좀 잘 하는 외국인 선수로 여겨졌지만 워3에선 온게임넷 대회에 3연속 진출한 강한 나엘이었습니다. 처절나엘, 데몬의 화신이라 불리며 어떻게든 게임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서 6레벨을 찍은 데몬헌터의 궁극기로 역전하는 것이 그의 특기였죠.

1경기는 나이트엘프가 매우 유리하다는 플런더 아일에서 벌어졌습니다. 여기서 이중헌은 상대 영웅 레벨이 높지 않은 타이밍에 2영웅 만으로 교전을 벌여 상대 병력을 줄여준 후 쓰레기 취급을 받던 유닛인 트롤 헤드헌터 다수를 뽑는 전략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쓰레기도 이중헌이 쓰면 다르다는 것을 다시금 보여주며 승리를 가져왔죠. 2경기에서는 처음부터 이중헌이 여러 번 견제를 성공시키며 매우 유리하게 게임을 끌고 갔습니다. 그러나 베르트랑은 이중헌의 병력에 카운터가 될 키메라를 뽑으며 처절하게 버티더니 기어코 데몬 6레벨을 만들어 게임을 뒤집어 냈습니다. 3경기에서 이중헌은 전진 배럭스에 이은 초반 그런트 압박 전략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베르트랑은 이를 잘 막아냈고 되려 이중헌의 파시어가 잡히면서 게임이 어려워졌죠. 베르트랑은 차분히 병력을 모으면서 키메라를 뽑기 시작했습니다.

이전 경기에서도 키메라가 뜨면서 역전이 되었듯 이 당시 오크는 키메라가 모이면 못 이긴다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그나마 이걸 막아보려면 빠르게 테크트리를 올려 와이번을 모았어야 했는데 이중헌은 초반에 그런트를 뽑으며 자원을 소비한 상황이었고요. 그가 즐겨쓰던 와이번, 샤먼, 영웅 조합을 갖추기엔 시간이 너무 늦어 있었습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이중헌은 뜻밖에도 레이더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레이더는 근접 공성병기 라는 특이한 컨셉의 유닛이었는데 상대 유닛을 묶어버리는 인스네어가 좋은 스킬이긴 했어도 정면싸움에는 별 도움이 안 되어서 오크들이 거의 쓰질 않았었죠. 그러더니 키메라가 나오기 직전, 베르트랑이 사냥을 위해 본진을 비운 기가 막힌 타이밍에 그런트와 레이더, 샤먼을 끌고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키메라는 나오자마자 레이더의 그물에 묶여 땅으로 떨어졌고 그런트에게 허무하게 잡혔습니다. 이 강력한 한 방에 뒤늦게 구원하러 온 베르트랑의 병력이 무너지고, 멀티까지 박살이 나며 승부가 기울었습니다 베르트랑은 계속해서 버티면서 어떻게든 역전을 만들어보려 했지만 이중헌은 레이더의 그물로 데몬을 묶으며 잡아버렸고 와이번을 추가해 게임을 마무리 짓습니다. 그야말로 오크 유저들의 한을 풀어준, 오늘날까지도 오크 유저들이 전설로 회자하는 경기입니다. 스1으로 치면 박정석의 우주배 슈퍼 멜스트롬 경기라고나 할까요.

이렇게 오크 유저들을 열광시키며 결승에 진출한 이중헌은 다시 웨라 클랜의 게이머와 만납니다. 상대는 웨라의 나이트엘프 *박외식(gerrad, 후일 스2에서 승부조작을 저지름. 이름을 언급하기도 싫으니 이하 '*박'으로 지칭)이었죠. 강한 상대이긴 하나 이미 이중헌이 CTB 1 결승에서 이겨 본 상대이기도 했고 충분히 해볼만했습니다. 16강부터 나이트엘프만 만나서 올라온 이중헌이었기에 기대는 더했고요.

1경기에서 이중헌은 다시 한 번 레이더 전략을 들고 나옵니다. 이번에는 키메라 카운터 용이 아니라 빠른 기동력과 건물 파괴력을 이용한 테러 전략이었죠. 이것이 제대로 먹히면서 이중헌이 승리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2경기에서는 타워 사냥 전략이 완벽히 막히면서 패배, 3경기에서는 레이더를 활용한 힘싸움에서 밀리며 패배, 4경기에서는 장기전 끝에 또다시 키메라와 6레벨 데몬에게 밀리며 패배...허무하게 1:3으로 무너지며 눈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16강에서 팀킬로 이형주를 이기고 올라왔기에 더욱 아쉬운 결과였죠.

프리매치의 아쉬움을 블리자드 본사 방문으로 겨우 달래고 돌아온 이중헌은 온게임넷의 HP배 워3 리그에 참가했습니다. 확장팩 발매가 예고되었기에 클래식으로 진행되는 온게임넷의 마지막 워3리그였죠. CTB 2에서 푸를 우승시켰던 휴먼 에이스 박세룡이 본선에 진출하며 푸는 두 명의 선수로 다시 우승을 노렸습니다. 지난 번에는 불행히도 16강부터 팀킬이 나왔지만 이번에는 가급적 높은 곳에서 만나길 기약하며 두 선수가 같이 연습을 하지 않았다고 하죠. 그런데 세상에, 이번에도 16강 추첨에서 둘이 만나버렸습니다!

운명의 신이 가혹해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 법, 이중헌은 1경기에서 다시금 중립용병을 활용하는 빌드를 들고 나왔습니다. 박세룡이 너무나 간단하게 이를 막아내고 그리폰을 띄워 승리하자 정일훈 캐스터는 이중헌이 너무 파격적인 빌드만 고집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표했죠. 그러나 2경기에서는 이중헌이 지상군 최강 조합인 타우렌, 샤먼, 닥터 조합에 이어 블레이드 마스터 궁극기를 선보이며 승리합니다. 3경기의 양상도 비슷하게 흘러갔는데 여기선 박세룡이 병력 이동 중에 영웅이 크립에게 횡사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고 이를 놓치지 않으며 이중헌이 8강에 갑니다.

바뀐 방식에 따라 8강부터는 4인 1조의 리그를 치르게 되었는데 얄궂게도 지난 대회에서 패배를 안겨준 '*박' 과 휴먼 김병수(rusi), 언데드 유승연(f5)와 같은 조가 되었습니다. 김병수에게는 예상치 못 한 역전패를 당했지만 이번에는 *박에게 지난 결승의 패배를 설욕하고, 오크가 유리한 종족전인 언데드 유승연에게는 시종일관 몰아치며 승리를 거둔 끝에 4강에 진출하죠.

4강에서 맞붙게 된 선수는 온게임넷 2차리그 우승자인 나이트엘프 황연택(jojo)이었습니다. 이중헌이 처음으로 해보는 개인전 5전제 승부이기도 했죠. 여기서 이중헌은 전략부터 견제, 컨트롤까지 모든 면에서 황연택을 압도하며 3:0 스코어로 또다시 결승에 진출합니다. 1경기는 2영웅을 따로 컨트롤 하며 상대를 견제함과 동시에 자신의 멀티를 가져가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2경기는 치열한 중앙 싸움 끝에 교전에서 이익을 보며 승리, 3경기는 초반부터 집요한 견제로 게임을 마무리지었습니다.

결승에서 이중헌을 기다리는 상대는 또다시 웨라 클랜 소속의 게이머인 김대호였습니다. 본디 오크 게이머였던 선수지만 이번에는 나이트엘프로 종족을 바꾼 상태였지요. 이중헌으로서는 두 번 연속으로 팀 동료의 가슴에 못을 박고 올라온 만큼 우승이 절실했습니다. 4강에서 너무나 완벽한 모습으로 나이트엘프를 제압한데다가 지난 대회가 끝나고 패치가 되어서 지긋지긋했던 숙적 나이트엘프도 약화되었으니 충분히 가능성도 있었고요.

그러나 이중헌만큼이나 우승이 고팠던 사나이가 김대호였습니다. 1경기에서 이중헌의 전진 건물을 완벽한 컨트롤로 막아내며 승리한 김대호는 2경기에서 역으로 전진 건물 이후 거점 장악 빌드를 들고나와서 승리, 3경기에서는 빠른 멀티와 물량전으로 이중헌을 압살하며 3:0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중헌은 결국 3연속으로 결승에서 웨라의 선수들에게 무너졌습니다. 두 대회 연속으로 16강에서 팀킬, 결승에 진출은 하지만 준우승. 세간에서는 이를 두고 '푸의 저주'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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