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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05/24 21:05:16수정됨
Name   joel
Subject   11년 만에 되찾은 영광,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오랫동안 암흑기를 걷는 팀들이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유명한 문구처럼 잘 되는 팀들은 비슷한 성공가도를 걷고 있으나 안 되는 팀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부진을 겪고 있지요. 고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 해서 부진한 팀들이 상당수이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음에도 안 되는 팀들도 존재합니다. 둘 중 뭐가 더 팬들에게 고통스러운 일인가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겠으나, 전자의 팀들이 팬들을 분노하게 한다면 후자의 팀들은 팬들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처음 몇 번은 이게 문제야! 이것만 고치면 우리도 나아질 수 있어! 라는 희망을 품다가 실패하기를 거듭하다보면 '그냥 이 팀은 안 되는 팀인가 보다' 하는 무력감이 팽배해지는 거죠. 지난 10년간 암흑기를 보내왔던 이탈리아의 축구팀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가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11년 전, 인테르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영광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오랜 세월 챔피언스리그 우승이 없었던 한을 풀었고, 리그와 코파에서도 우승을 거머쥐며 이탈리아 클럽 사상 유일무이한 트레블을 달성했죠. 이 때만 하더라도 이 팀이 10년간 암흑기에 허덕일 거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 했을 겁니다.

그러나 당시 인테르는 트레블의 영광에 가려졌을 뿐 큰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주력 선수들이 30대에 접어들며 팀이 늙어가고 있다는 거였죠. 이 시점에서 인테르는 아직 주력들이 좀 더 활약할 수 있는 1~2년간의 시간을 리빌딩의 시간으로 삼았어야 했지만 이후 지리멸렬한 운영으로 그 기간을 낭비하고 맙니다.

트레블을 이룬 감독 무리뉴가 그 해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고, 그 뒤를 이어 선임된 감독은 발렌시아에서 자신의 동상을 세우고 리버풀에서 빅 이어를 들어올렸던 명장 라파 베니테즈였죠. 이 만남은 인테르와 라파 양쪽에게 최악의 결과로 끝이 납니다. 라파는 늙어가는 팀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을 요구했지만 구단주 마시모 모라티는 거부했고 팀 스쿼드는 어정쩡하게 방치됩니다. 그렇다고 라파가 잘 했느냐 하면 절대 아닌 것이 선수들에게 맞지 않는 역할과 전술을 요구하다가 팀 성적을 7위로 말아먹고 선수들과의 불화를 겪으며 선임된 지 몇 개월만에 경질되죠. 당시 클럽월드컵에서 인테르는 아챔 우승팀 성남과 경기를 벌였는데 어마어마한 팀의 체급차로 승리는 했지만 경기력은 의외로 성남이 선전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이 때 라파에게 전권을 주고 팀을 개혁했다면 어땠겠느냐는 가정도 가능은 하지만 당시 라파가 보여준 형편없는 모습을 보면 그냥 잘릴만 해서 잘린 겁니다.

라파의 후임으로는 놀랍게도 인테르의 라이벌 밀란에서 활약하던 레오나르두가 부임해 옵니다. 다행히 레오나르두는 팀을 빠르게 수습하며 2위로 시즌을 마치죠. 인테르에서는 레오를 붙잡고 싶었지만 때마침 쇼미더머니를 치기 시작하던 psg가 냉큼 단장으로 데려갑니다. 그 후임으로는 제노아의 돌풍을 이끌었던 3백 장인 가스페리니가 이어받고요.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맞게 된 11/12 시즌, 그런데 시즌 개막도 하기 전에 향후 두고두고 인테르를 괴롭힐 어마어마한 악재가 터집니다. UEFA가 클럽들의 방만한 운영을 막겠다며 시행을 예고했던 FFP룰이 11년 6월부터 시행된 거죠. 그간 인테르는 구단주 마시모 모라티가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며 팀의 영광을 이끌어 왔으나 그 과정에서 엄청난 빚이 팀의 명의로 남았습니다. 번 만큼만 쓰라는 FFP룰에 정면으로 저촉되는 실정이었기에 이대로 두면 어마어마한 징계가 뒤따를 것이 뻔했죠. 하필이면 이 무렵에 구단주 마시모 모라티가 재정난을 겪고, 엉뚱하게 남 도와준다며 정치판에 끼어들면서 문제는 더욱 악화됩니다. 11년부터 3년간의 수익이 이후의 판정기준이기에 이는 당장의 문제는 아니었으나 이 때부터 반드시 팀이 성적을 내며 장기적으로 수익구조를 개선시켜야 했었죠.

그러나 이후 인테르는 혼란만 거듭하며 무너져내립니다. 가스페리니는 팀의 사정과 전혀 맞지 않는 3백만 고집하다가 팀을 강등권으로 몰아넣는 처참한 모습을 보이며 시즌 중 경질, 인테르는 소방수 전문 감독 라니에리를 모셔왔지만 또 경질, 이번엔 유스 감독으로 성과를 냈던 스트라마키오니를 1군 감독으로 선임하는데 이게 겨우 한 시즌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제법 큰 기대를 걸고 데려왔던 자블라니 마스터 포를란은 이 사람이 세리에A에서 뛸 수 있는 수준의 선수이긴 한가 싶은 한심한 경기력만 보이다 1년 만에 떠났고요. 최종적으론 6위에 머무르며 챔스 진출조차 실패합니다. 반면 인테르와 철천지 원수 지간인 유벤투스는 바로 이 시즌부터 암흑기를 끝내고 무패우승을 달성하며 유벤투스 독주 시대를 시작했기에 인테르 팬들에게 있어서 이 시즌은 상처만 남은 시즌이 됩니다. 그러나 진정한 몰락은 다음 해에 찾아옵니다.

12/13시즌은 정말 총체적 난국 그 자체. 스트라마키오니는 도대체 이 사람이 1군 감독을 맡을 최소한의 자격은 있나 싶은 무기력한 모습만 보여주는 가운데 선수들은 줄줄이 부상으로 나가 떨어져서 20/21시즌의 리버풀이나 레알조차 한 수 접어줄 부상병동의 전설을 찍었죠. 포르투의 미니 트레블을 이끌었던 프레디 구아린을 사왔지만 오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부상...그리고 구아린의 활약상 자체도 과거 미니 트레블 시절만큼은 아니었고요. 제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납니다만 얘가 옛날 그 돌격대장 구아린이 맞는가 했던 경기들이 자주 나왔던 거 같습니다. 리그 순위는 9위로 굴러떨어져 유로파리그조차 진출할 수가 없었고요. 트레블 이후 3년 만에 이렇게까지 팀이 망가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구단주 마시모 모라티도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13년 여름에는 대격변이 일어납니다. 모라티가 팀의 지분을 매각하고 명예 회장으로 물러났고 인도네시아의 재벌 토히르가 지분을 인수해 새 구단주가 됩니다. 토히르는 취임 기념으로 돈을 꽤나 써서 팀을 정비하죠. 감독으로는 나폴리의 명가 부활을 이끌며 세리에A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감독 마짜리가 새로 취임했고 선수단은 이카르디, 비디치를 비롯한 괜찮은 영입이 이어집니다. 반면 팀의 전설 사네티를 비롯한 노장선수들이 팀을 나가며 이제 드디어 한 시대가 저물었음을 보여주죠. 이렇게 야심차게 시작한 새 시즌...그러나 마짜리는 초반에만 반짝했을 뿐, 과거 나폴리에서 보여주던 그 명장의 풍모는 다 어디갔는지 점차 답답한 경기력과 그놈의 이상한 고집, 이따금 튀어나오는 팬들 속 뒤집어 놓는 인터뷰로 좋지 않은 모습만 보여줍니다. 최종적으로는 5위로 리그를 마무리하며 지난 시즌에 비해 큰 발전을 보여주긴 했으나 쓴 돈에 비하면 결코 좋은 성적이 아니었습니다.

어쨌건 순위는 상승했고 유로파도 진출했으니 마짜리를 믿어보자는 기대를 가지고 맞이한 14/15시즌은 한 마디로 말해 '인테르야 또 속냐!' 로 정리됩니다. 작년과 똑같은,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건지 모를 전술이 이어지는데 상대팀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더 이상 당해줄 리가 없었고 이제는 성적도 안 나옵니다. 도저히 참고 볼 수 없었던 인테르는 마짜리를 시즌 도중 경질하고 때마침 맨시티에서 경질되어 나온 과거의 전설 만치니를 데려옵니다. 2000년대 중반에 인테르의 리그 지배기를 이끌던 양반이니 뭔가 다르지 않겠냐 하는 기대를 받았지만 결국 리그 8위로 마무리하죠.

그래도 인테르 운영진은 만치니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줍니다. 15/16시즌 이적시장에서 에르나네스, 콘도그비아, 요베티치, 멜루, 랴이치 등등 빅 사이닝은 아니어도 굵직한 알짜 영입들이 이어졌죠. 그간 영입하는 선수마다 망했던 전철을 털어내고 이적생들이 좋은 활약을 펼치는 가운데 이카르디가 공격에서 득점포를 터뜨리며 인테르는 마침내 전반기 1위라는 업적을 달성합니다. 마침내 암흑기가 끝나고 그랑데 인테르의 시대가 돌아오는가...라고 팬들은 생각하고 있었죠. 그러나 해가 바뀌고 이어진 후반기...인테르는 거짓말처럼 무너집니다. 감독인 만치니는 스스로도 전술에 확신이 없는 듯 이리저리 3백과 4백을 오가다가 성적만 더 나빠졌고 선수들 개개인 폼도 떨어지며 패배가 이어지죠. 결국 우승 경쟁에서 탈락하고 간신히 4위로 시즌을 끝마치며 챔스 티켓을 지키는데 만족해야했습니다.

시즌이 끝난 후 만치니는 팀을 떠납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구단주 토히르가 중국 자본 쑤닝 그룹에게 팀을 매각합니다. 중국 자본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알 수 없었으나 다행히 쑤닝 그룹은 3년 전 토히르가 그랬듯이 큰 돈을 지원해줍니다. 그런데 돈은 많이 썼는데 이적시장이 끝나고 보니 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한 자원이라기엔 시원치 않고, 뎁스를 두텁게 하기 위한 영입이라 하기엔 너무 비싸보이는 선수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래도 이젠 챔스진출도 해봤고 젊은 재능들도 모였겠다, 올 시즌도 기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으나 여기서 또다시 인테르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만치니 후임으로 아약스를 이끌던 더부르 감독이 왔는데 당시에는 아약스의 4연패를 이끌던 명장이라 칭송 받았지만 인테르에서는 라파 베니테즈 시즌 2를 찍으며 눈 뜨고 못 봐줄 축구만 하다가 빠르게 경질됩니다. 후임으로 들어온 피올리는 처음엔 팀을 잘 이끄나 싶었으나 삼척동자도 대비책을 마련할 수 있을 법한 뻔한 전술을 반복하다가 시즌 후 피오렌티나로 가버립니다. 순위는 다시 7위로 떨어졌고요. 위에서 참 여러번 봤던 광경 아닙니까?

설상가상으로 쑤닝 그룹이 갑자기 과거 말라가의 구단주 알 사니 구단주가 그랬던 것마냥 축구에 관심이 떨어졌는지 17/18시즌 부터는 자금 지원도 뚝떨어집니다. 지원만 안 하면 모르겠는데 모든 결정이 중국에서 이뤄지는 특성상 구단 운영의 비효율성까지 겹치며 이적시장에서 실패를 거듭하게 되죠. 안 그래도 FFP 때문에 UEFA에게 찍혀서 돈이 있어도 못 쓸판이고 장부를 맞추기 위해 쓸만한 유스들을 줄줄이 팔아치우고 있는 판인데 말입니다. 그나마 긍정적인 일이라고는 로마에서 성과를 냈던 명장 스팔레티를 모셔온 것 뿐이었죠.

헌데 정말 놀랍게도 기대도 안 했던 17/18시즌에 반전이 일어납니다. 이제는 완전히 인테르의 주포로 자리잡은 이카르디의 득점포가 이어지고 유스에서는 인테르가 죽어도 팔지 않고 끌어안았던 보물 슈크리니아르가 1군에 합류해 든든히 후방을 지켜주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했죠. 후반기로 가면서 다시금 내려앉으며 또 몇년 전의 재탕이 되는가 싶었지만 챔스진출권이 걸린 마지막 경기에서 라치오를 극적으로 이기며 4위로 시즌을 마칩니다.

스팔레티가 마침내 일을 내나 싶었던 18/19시즌...그러나 이번엔 또다시 경기 외적인 악재가 이어집니다. 그동안 구단이 애지중지 키워온 유스들 중에서 줄줄이 쓸만한 선수들이 나왔지만 그놈의 FFP 때문에 선수들을 또 팔아서 장부를 맞춰야 했습니다. 가장 뼈아픈 사례는 유망주 자니올로. 이 친구는 돈 없는 인테르가 어떻게든 돈을 아껴서 전력 보강을 해보고자 현금과 함께 얹어서 로마로 보낸 선수인데 여기서 대박을 터뜨리며 로마의 중심으로 자리잡아 인테르가 땅을 치게 되죠.

그래도 어찌어찌 시즌을 순항 중일 무렵에 주장이자 팀의 기둥으로 생각했던 이카르디가 대형사고를 칩니다. 이카르디의 아내 겸 에이전트인 완다가 팀의 라커룸 화목을 망치는 언론플레이를 연달아 저지르며 팀을 조롱하다시피 하는데도 이카르디가 이를 묵인하고 있었죠. 선수단 분위기는 최악으로 떨어지고 이카르디는 팀이 부당하게 자신의 주장 완장을 빼앗고 괴롭히고 있다면서 태업, 언론플레이 등등 선수로서 할 수 있는 최악의 짓거리만 골라서 하더니 급기야 '유벤투스로 보내달라' 라는, 인테르로서는 절대로 들어줄 수 없는 요구를 하죠. 레알에서 주장이랍시고 앉혀놓은 팀의 에이스가 저러면서 '바르샤로 보내달라' 라고 했다면 레알팬들이 느꼈을 심정이 이와 같았을 겁니다.

이제는 하다하다 이런 일까지 터지는가...라는 생각에 팬들의 눈에 눈물조차 말라버릴 시즌이었지만 인테르는 이 와중에도 최대한 팀을 추스르며 다시 한 번 리그 4위로 챔스에 진출합니다. 연속으로 챔스에 진출하면서 얻은 돈으로 FFP에서도 한 숨을 돌릴 수 있었고요.

19/20 시즌을 앞두고 마침내 인테르는 중대한 결단을 내립니다. 스팔레티의 후임자로 유벤투스의 전설이자 유벤투스 독주 시대의 개막을 열었던 감독 안토니오 콘테를 선임한 것이죠. 한국 축구대표팀이 '일본의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끈 명장 모리야스 하지메를 감독으로 선임했습니다!' 라고 하는 격인데 의외로 인테르 팬들은 담담하게 콘테를 맞이합니다. 유벤투스의 일부 과격팬들이 콘테를 레전드에서 제명해야 한다고 했을 뿐. 다만 콘테가 지금까지 리그에서는 잘 했어도 유럽대항전에선 뾰족한 성과를 못 낸 감독이라는 것이 불안요소였고요.

콘테의 취임에 발맞추어 활발한 영입도 이어졌습니다. 맨유에서 루카쿠와 산체스를 데려온 것을 필두로 AT 마드리드의 고딘이 합류하며 스쿼드는 더욱 발전했죠. 팀도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한 번 무너지면 줄줄이 무너지던 과거와는 달리 위닝 멘탈리티를 보이면서 시즌 끝까지 질주하며 유벤투스를 쫓아갔습니다. 그간 나갔다 하면 16강이 한계이던 유럽 대항전에서도 콘테의 징크스를 깨고 유로파 결승까지 올랐고요. 비록 유로파의 황제 세비야의 벽을 넘지 못 하고 준우승에 머무르고 리그 역시 승점 1점차로 2위에 그치며 유벤투스에게 우승을 내주었으나 분명히 팀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마침내, 마침내 암흑기가 끝나는가...팬들이 오랜 절망에서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할 찰나에 이번엔 구단주인 쑤닝 그룹에서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옵니다. 기업의 자금난으로 중국에서 운영하던 축구팀을 하루 아침에 해산했다는 것이었죠. 자연스럽게 인테르의 운명이 화제에 오르며 매각설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시즌이 끝나자마자 콘테가 도대체 이 사람 왜 이러나 싶은 행보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적 시장에서 30넘은 노장들을 줄줄이 수집하면서 팀의 평균연령을 확 끌어올리고, 구단의 황금 유스이자 미래인 슈크리니아르를 자기 전술에 안 맞는다며 팔아치우려 하질 않나, 첼시가 팔지 않고 선수 본인도 안 오려할 캉테를 사달라고 징징대며 구단이 지원을 안 해준다 라고 하질 않나. 이런 행보에 분노한 국내의 어느 축구 기자는 '콘테가 건설 중인 인테르 복지회관' 이라는 제목까지 써가며 비판할 정도였죠.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시작된 시즌...예상대로 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챔스에서는 콘테 징크스 어디 안 간다는 듯 글라드바흐와 샤흐타르에 밀려 조 꼴찌로 탈락했고 리그에서는 챔스권 밖으로 주저앉았죠. 이것만 해도 인테르 팬들의 가슴에 사리가 맺힐 판인데 콘테는 마치 '나 좀 짤라줘라. 이래도 안 짜를래?' 라고 작심한 듯한 말들을 쏟아냅니다.

콘테가 겨우 3~4개월 남짓한 이 시기에 쏟아낸 주옥같은 명언들만 모아보면

"구단은 우리에게 아무런 보호를 해주지 않았다"
"구단은 우승을 강요하지 말라"
"경기는 지배했으나 선수들이 골을 못 넣어서 졌다"
"강팀 상대로 한 명 퇴장당한 탓에 어쩔 수 없이 졌다"
"EPL 시절은 환상적인 경험...언젠가 돌아가고파"
"(노장들만 수집해놓고는)우리는 성장하고 있다"
"클롭(다 망한 팀에 부임해서 첫 해에 유로파 결승진출) 역시 우승하기 위해 4년이 필요했다"

팬들의 여론이 어땠을지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제정신을 차리고 있던 인테르 운영진은 콘테와 면담하여 일단 갈등을 봉합했고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주었습니다. 다행히 좋은 쪽으로도 콘테 징크스가 이어지면서 2020년 11월 이후 6연승을 달린 것을 포함해 유벤투스와의 경기도 승리로 장식하며 리그 2위로 전반기를 마쳤습니다만 팬들의 마음은 떠난 상태였죠.

그렇게 모두가 콘테의 후임 감독을 생각해보았을 2021년...새해들어서 아무도 생각 못 했던 기적이 펼쳐집니다. 콘테가 여름 내내 직접 붙들고서 등지는 플레이만 죽어라 연습시켰다는 루카쿠가 더욱 발전하여 리그를 지배하는 선수로 거듭났고 루카쿠가 열어주는 공간을 통해 공격이 이뤄지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합니다. 라이벌이자 1위 경쟁팀 밀란을 상대로 완승을 거둔 것을 포함해 후반기 시작과 동시에 무려 11연승을 달리죠. 전반기 1위팀 밀란은 후반기로 갈수록 힘이 떨어졌고 유벤투스는 초짜감독 피를로를 선임한 대가를 치르며 팀이 무너졌기에 인테르는 압도적으로 1위를 달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경기를 넷 남기고 34라운드에서 11년만의 우승을 확정짓습니다.



그간 인테르가 정말 안타까웠던 것은 이상의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특정한 한 두 가지의 원인 때문에 암흑기가 시작되었다기 보다는 정말 다채로운 원인들이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인테르는 암흑기를 끊기 위해 정말 안 해본 것이 없었습니다. 주축들이 늙었으니 선수단도 갈아보고 검증된 자원도 영입해보고 유스도 올려보고 명장도 모셔와보고 내부 승진도 해보고 심지어는 구단주까지 바꿔봤습니다. 돈을 안 쓴 것이 문제다 싶어서 돈도 꽤나 써봤고요. 하지만 모두 실패하며 암흑기만 길어졌죠.

데려오는 선수는 망하고, 명장인 줄 알았던 감독은 졸장이 되어 나가고, 팀의 주장으로 믿었던 놈은 축구 역사에 남을 행패를 부리다 나가버리고, 구세주로 보였던 구단주는 썩은 동앗줄이었고, UEFA는 FFP를 가지고 집요하게 괴롭혀오고...심지어 새로운 구장을 짓고 팀의 미래를 만들려고 했더니 밀라노 시에서 막아서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온갖 문제가 터지며 인테르는 정말 안 될 팀인가, 여기서 뭘 더해야 하나 하며 팬들이 절망해온 세월이 10년입니다. 제가 인테르의 팬도 아니고 아무 감정 없이 지켜보는 입장이지만 참 어떻게 저렇게 안 풀릴 수가 있나 싶었을 정도입니다.

비록 올해 우승은 했지만 저는 인테르의 미래를 밝게 보지 않습니다. 콘테가 건설한 인테르 복지회관이라는 비판처럼 주축들은 늙었고 루카쿠에게만 의존하는 전술은 너무 단순하죠. 구단주의 자금 사정도 좋지 않은데다 슈퍼리그 가담 때문에 UEFA에게 미운털이 박히고 징계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어쩌면 11년 전 그랬던 것 처럼 다시금 암흑기가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인테르에게 있어 그것이 중요하진 않을 겁니다. 세상사가 참 불공평하고 운빨망겜이지만 그래도 단 한 가지, 인과에 관계 없이 결정지어진 운명이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보인 인테르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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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이네요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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