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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9/12/03 18:46:36수정됨
Name   necessary evil
Subject   관점의 전복 - 약자의 강함
아르바이트 시장에서 관찰되는 이상한 현상 중 하나는 거의 모든 사장들이 (거진 최저임금을 받는) 직원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갑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채용 과정에서는 그렇겠죠. 특히 요즘 들어 일자리가 매우 준 것도 맞으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입맞에 맞는 직원을 채용하면, 그때부터 관계는 역전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단 말이죠.

영세 업장에서 직원이 사장이나 사업장에 대해 갖는 무기는 너무나 많습니다. 직급이란 것도 없고 최저임금이니 감봉이나 강등 조치를 할 수도 없고, 해고 통보도 1달 전에 해야 하거나 1달치 월급을 주고나서야 가능하죠. 반대로 아르바이트는 전날 그만둔다고 말해도 실질적으로 대처할 수단이 없는데요. 주휴수당? 저는 이 제도가 정말 쓰레기같다고 생각하지만 뭐 최근에 생긴 법도 아니고 까놓고 말해 가게 차리면서 노동법 근로기준법 한번 안뒤져본 대가를 치르는 게 맞고요. 즉 일에 투입된 후부터 사장은 직원의 일을 잘 해줄, 근태가 성실할, 체불임금 신고하지 않을 선의에 전적으로 기대야하는 구조인 셈이죠.

더욱 신기한 일은 이처럼 명백하게 권력의 우위가 기울어져 있음에도, 대부분의 아르바이트 직원들은 권력을 행사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뭐 업무 태만이나 근태 불성실 같은 악질적인 행위는 몰라도 계약서와 법에 근거한 정당한 수단에도 대개는 무관심하단 말이죠. 옛날에 저도 근로계약서 미작성으로 신고를 해본적이 있는데, 당시 직원들 중 누구도(퇴사한지 오래 지난 사람조차도!) 미작성 진술을 해준 사람이 없었단 것에 충격을 받았었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간단히 유추해보자면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특히 젊은 사람의 경우 아르바이트가 평생 직장이 아니고 학업 등과 병행하고 있으니 돈 얼마보다는 귀찮은 일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하니까요. 결국 실제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학업으로 예상되는 미래의 가치보다 현재의 불이익을 더 크게 받아들이는 소수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죠. 다시말해, 미래의 강자됨을 접어두고 현재 약자로서의 권력을 이용하겠다 마음먹은 사람만이 실제로 그리 할 수 있는 법입니다. 좀 비약하자면 한국 청년들이 불행한 이유를 저는 아직 약자의 마음가짐이 덜 되어서라고 생각해요. 다들 꿈만은 장밋빛이거든요.

아주 많은 힘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닌 한, 주어진 여건이 조금씩 나아질수록 권력은 약해집니다. 아르바이트보단 그래도 중소기업이, 독신보다는 가정이 있는 쪽이 평균적으로 여건은 낫죠. 그런데 근무태만하거나 부당노동 신고하는 건 중소기업보단 아르바이트가 훨씬 수월하고, 뉴스에 가끔 나오는 파업 시위같은 것도 독신이 잘 버티지 가족 있는 사람은 힘겨워하죠. 송곳 다들 봤잖아요?

약자의 권력. 그것은 쉽게 말해 '내 개지읒대로 해도 니들은 날 어쩔 수 없으셈'의 정서입니다. 꽃뱀이나 가짜 미투는 왜 발생하는가? 그것은 여자들이 보통은 약자이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경우 성문제에 취약한 것이 여자들이기 때문에, 그 언더도그마를 바탕으로 일부가 개지읒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소년법도 마찬가지죠. 기준을 어느정도 조절할 수는 있어도 원천적으로 소년을 성년과 동등하게 처분할 수는 없어요. 그 틈새가 개지읒대로 할 수 있는 양분이 됩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도 하지 않는 한 말이죠.

그리고 마지막 하나 더. 가정에서 쥐뿔도 없는 백수 아들 딸들이 부모 상대로 역갑질하는 일들이 언제나 존재하긴 했지만, 앞으로는 더욱 늘어날 겁니다. 헬조선이란, 희망의 언어입니다. 속으면 안돼요. 실패감에 덜 물들었기에 그런 단어가 유행탔던 거예요. 지금 조금 이 말이 잦아든 이유? 일본 비슷하게 만성적인 실패 상태로 접어들어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스스로 성공 가능성을 차단해버린 만성적인 실패자의 눈에 나를 먹여살리는 부모보다 만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인터넷에서야 20살엔 '당연히' 독립하는 거 아니냐고 성화겠지만, '당연히'란 말만큼 공허한게 어딨겠어요? 주변에 20살에 독립한 사람은 본적도 없는데. 그럼 의식주를 대가없이 제공하는 명백한 강자인 부모는 실패한 자녀의 횡포를 인터넷에서 쉽게 말하듯 내칠 수 있을까요? 이보다 더 훗날엔 그렇게 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과도기의 초입인 지금은 대부분 그렇지 못해요. 자식은 실패자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약자의 강력함에 이제 눈을 뜬 반면 부모는 측은지심과 분노 가운데 어떻게 해야할지 갈팡질팡하는 단계에 있기 때문이죠.

아직 한국 사람들은 약자가 얼마나 강한지 잘 몰라요. 사회복지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나 좀 체감할까. 그건 나라가 망하네 뭐네 해도 아직은 여기가 천국이라는 증거죠. 슬럼도 없고, 히키코모리는 들어나만 봤고, 요즘세대가 욜로하네 뭐네 해도 따져보면 다들 허슬하고 있고.. 그러나 지금의 이 천국에서 허슬하는 고통스러운 삶은 머지 않아 지옥에서 욜로하는 마음 편한 미래로 대체되겠죠. 아직도 멍청한 성공론 책이 불티나게 팔리던데 그것보다 가진것 없는 포기한 자의 삶이 더 자유도가 높다는 것을 알게되기까진 길지 않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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