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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1/09 18:07:25
Name   kpark
Subject   오타니 쇼크? 아니 예견된 패배
어제 프리미어12 개막전으로 치뤄진 한국과 일본 대표팀 야구 경기는 한국-일본 간의 전력 차이를 여실히 드러낸 자리였습니다. 오타니 쇼헤이 - 노리모토 다카히로 - 마쓰이 유키로 이어지는 일본 투수진은 한국타자들에게 7안타 3볼넷만 허용하며 무실점 완승을 거뒀습니다. 특히 최고구속 161km/h를 기록한 오타니는 많은 야구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일각에선 이번 경기를 '오타니 쇼크' 혹은 '삿포로 참사'로 부르고 있지만, 저는 과연 이번 경기 결과가 충격 혹은 참사로 불릴 성격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단정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야구계 종사자가 어제 경기 내용을 보고 그런 반전을 느꼈다면 평소에 일본야구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알고도 그랬다면 야구를 보는 눈이 없거나 현실 도피로 일관한 것입니다. 그 정도로 현재 한국과 일본의 전체적인 수준 차이는 매우 큽니다.

[물론, 냉정히 말하자면 오타니 1인의 수준이 리그 전체 수준을 대변하진 않습니다. 왜냐? 오타니는 일본이 좋아했던 식으로 표현하면 '탈아입미' 수준... 당장 메이저리그에 가서도 3~4선발, 2~3년만 다듬으면 1선발 혹은 사이영상 경쟁이 가능해 보일 정도의 초초초초초특급 유망주니까요. 류현진이 잘한다고 KBO 전체 수준이 그 정도가 아닌 것처럼...]

혹자가 말하듯이 컨디션 차이라던가, 적응 문제라던가, 오타니한테 익숙한 삿포로에서 경기를 해서라던가, 아니면 일정 때문에
연습이 부족해서라던가... 물론 연습 좀 더 했으면 무득점은 아니고 3~4점 정도 내고 대등하게 싸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로스터 구성에서 보이는 리그 선수층의 두터움 차이, 뎁스 차이는 가릴 수 없었습니다.

각설하고 한일 대표팀 전력에서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은 역시 투수진이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대표팀 레벨에선 야수 간의 전력 차이는 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다만 앞으로 수 년 뒤에는 또 격차가 날 것 같아 우려가 됩니다). 하지만 투수 부분은 도저히 2~3년 안에 메꿀 수 없을 것 같은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구위나 제구력처럼 투수 한 명 한 명의 수준을 따졌을 때도 차이가 있다고 느꼈지만, 한국이 크게 뒤쳐져있다는 느낌이 제일 크게 다가온 부분은 '선수진의 구성'입니다. 요약하자면, '한국 투수진에는 구면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사실 야수진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먼저 한국 투수진을 소개하겠습니다. 이번 프리미어12 대표팀 명단입니다.

선발: 장원준, 이대은, 김광현, 우규민, 차우찬, 이태양(nc)
불펜: 정대현, 정우람, 이현승, 임창민, 조무근, 심창민, 조상우

굵게 표시한 선수들의 공통점은 90년생 이후, 즉 1991년생 혹은 그보다 어린 선수들이라는 겁니다. 이태양, 조무근, 심창민, 조상우 단 4명입니다. 선발 1명 불펜 3명. 나머지 9명은 모두 90년대 이전 혹은 1990년에 태어난 선수들입니다.



[오타니 쇼헤이. 비율까지 좋음... ㅡ.ㅡ]


일본의 경우...

선발: 스가노 도모유키, 마에다 켄타, 오가와 야스히로, 다케다 쇼타, 오노 유다이, 니시 유키, 노리모토 다카히로, 오타니 쇼헤이, 후지나미 신타로
불펜: 마쓰이 히로토시, 사와무라 히로카즈, 야마사키 야스아키, 마쓰이 유키
(선발/불펜 구분은 리그 소속팀에서 기용되는 것을 기반으로 함)

5명이 91년 혹은 그 이후에 태어났습니다.

어라? 4명이나 5명이나 도찐개찐인데? 그렇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게 당연합니다. 진짜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그 퀄리티...에 있기 때문입니다.

노리모토 다카히로: 10승 11패 2.91 ERA 194.2이닝 215삼진 48볼넷 176안타
오타니 쇼헤이: 15승 5패 2.24 ERA 160.2이닝 196삼진 46볼넷 100안타
후지나미 신타로: 14승 7패 2.40 ERA 199이닝 221삼진 82볼넷 162안타
야마사키 야스아키: 37세이브 1.92 ERA 58경기 56.1이닝 66삼진 11볼넷 38안타
마쓰이 유키: 33세이브 0.87 ERA 63경기 72.1이닝 103삼진 28볼넷 37안타

그렇습니다. 이 선수들은 단순히 나이만 어린 게 아니라 일본에서 A급, S급으로 활약하고 있는 이들입니다. 특히 오타니, 후지나미는 이미 수 년 뒤에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확률이 아주 높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메이저리그 팀들의 스카우트 대상이 된지 오래입니다.

반면 한국 대표팀의 젊은 선수들은 A급 반열에 오른 선수도 있지만 '그렇게 후하게 쳐주진 못하겠는데...' 싶은 선수들도 있습니다. 저는 조무근/조상우는 이미 A급 선수라고 보지만, 이태양/심창민이 그러한 지는 크게 회의적입니다.

또 하나 문제는 일본의 영건 5인 중 노리모토/오타니/후지나미 3명은 선발투수로 뛰고 있는 반면 한국의 영건 4인은 이태양 혼자 선발 투수라는 겁니다. 그나마 이태양도 이닝, ERA, 삼진, 피홈런 등 세부적인 기록을 보면 KBO 최고의 선수 대열에 들지 못합니다.

결국 한국은 선발진을 김광현, 장원준, 우규민 같은 구면으로 채웠습니다. 그나마 새로 합류해 2선발 역할을 기대하는 이대은은 KBO가 아닌 MLB에서 성장한 선수입니다. KBO 소속 팀들에서 우람하게 성장한 영건 선발은 한 명도 없습니다.




[마이너리그 시절의 이대은. 냉정히 말해 오타니와는 유망주 시절의 가치도, 지금의 가치도 크게 차이납니다.]



이처럼 한국에선 어느 순간부터 국가대표급 선발투수로 성장하는 유망주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됐습니다. 박찬호, 김병현, 구대성, 손민한, 배영수, 서재응, 봉중근, 오승환, 김광현, 류현진...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국가대표 맨 첫손에 꼽을 만한 선발투수들이 나왔고 항상 리그를 지배했지만, 2009년 이래 그런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다음은 2010년부터 KBO에서 WAR(대체선수 대비 승수) 최상위 20위권 안에 드는 한국인 선수 목록입니다. 슬래시(/)를 기준으로 10위권, 20위권입니다.



연도: 10위 이내 / 20위 이내

2010: 류현진, 김광현, 봉중근, 장원삼, 서재응, 양현종, 김선우 / 송승준, 장원준, 유원상
2011: 윤석민, 장원준, 김선우, 윤성환, 송승준, 박XX / 고원준, 양훈, 차우찬, 안승민
2012: 류현진, 서재응, 노경은, 이용찬, 니퍼트, 윤석민, 장원삼 / 배영수, 김진우, 윤희상, 송승준, 김혁민
2013: 이재학, 윤성환, 송승준, 우규민 / 유희관, 노경은, 윤희상, 배영수, 강윤구
2014: 김광현, 양현종, 윤성환, 우규민 / 이재학, 장원준, 유희관, 류제국, 이태양(한화), 임준섭, 채병용
2015: 양현종, 윤성환, 우규민, 유희관 / 김광현, 장원준, 차우찬



2012년을 기점으로 한국인의 비율이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새롭게 보이는 얼굴도 점점 사라져갑니다. 즉 A급 선수 육성이 팀을 막론하고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한때 야구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던 '리그 하향평준화 설'은 어쩌면 이런 사실에서부터 출발한 걸지도 모릅니다. 많은 분들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저는 솔직히 하향평준화가 맞다는 쪽에 손을 들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구단은 10개로 많아지고 관중 숫자는 증가하는 등 한국야구는 외연적으로는 성장했지만, 그 내면까지 탄탄하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팀들이 '코치가 없다'고 말합니다. 양적으로도 부족하지만 질적으로도, 즉 제대로 코칭을 해줄 인재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때문에 일본으로, 미국으로 선수를 가르칠 지도자를 찾아서 구단들은 손을 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 많은 유망주들이 미국으로 떠났지만 과실을 얻은 이는 없었습니다. 도전에 실패한 이들 중 몇몇은 국내 복귀를 타진했고, 드래프트 최상위권 인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과거의 질 좋은 씨앗이 5~6년 가까이, 혹은 그보다 더 오래 실패했음에도 제일 좋은 씨앗으로 평가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보다 한 등급 낮았던 씨앗들은 여전히 싹을 틔우지 못했거나, 어중간한 위치에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번 국가대표의 첫번째 실패는(네, 두번째에선 설욕할 수도 있기에 전부 다 실패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많은 이들이 몰랐거나 무시해왔던, 아니면 알고도 모른체 하고 싶었던 한국야구계의 현실적인 수준을 말해줬습니다. 세간에서 말하듯이 '돈만 밝힌다'라고 하려는 게 아닙니다(로컬 마켓에서 수요-공급 때문에 일어난 인플레이션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실력이 뒤처진 상황이 오래됐다는 겁니다.

정체된 유망주들의 수준, 그보다도 정체된 코칭스태프들의 능력, 그나마 발버둥치고는 있지만 아직 조악한 부분이 많은 육성 시스템과 계획... 지금까진 선수들의 재능이 기댄 면이 많았습니다. 소위 '베이징 세대', 'wbc 세대'가 이제 곧 프로 씬에 도래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만으론 앞으로도 일본에 3~4년 이상 뒤쳐지는 일이 반복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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