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 게시판입니다.
Date 15/07/29 02:18:49
Name   kpark
Subject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시즌 내내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한화 이글스와 관련된 각종 논란거리들입니다. 그 중 단연 최고봉은 혹사 논란... 저번에도 한숨 쉬면서 썼던 적 있지만, 한화 필승조의 두 기둥 권혁과 박정진은 올 시즌 100이닝을 넘길 페이스로 등판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데자뷰처럼 박정진과 권혁이 등판했고, 이번엔 박정진 3이닝-권혁 1이닝을 막으면서 경기를 끝냈습니다. 이전에 두 선수가 나란히 120이닝을 돌파할 페이스라고 했는데, 오늘 경기 후에는 박정진 123.7이닝 / 권혁 130.7이닝 페이스로 나오네요. 불펜 투수가 130이닝을 돌파한다면 2009년 SK 와이번스 전병두 이래 첫 기록이 됩니다. 순수 불펜 투수로만 따지면 한참 전으로 돌아가야 할텐데 그 기록은 잘 모르겠네요(전병두 선수는 선발로도 나왔습니다). 당연히 두 선수는 통산 최다 이닝 돌파가 확실시되고 있습니다(권혁 선수는 오늘자로 돌파했습니다).

이닝 페이스야 몇 달 전부터 계속 이랬으니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오늘은 권혁 선수가 9회 8점차인 상황에 등판하면서 야구 커뮤니티가 시끄러워졌습니다. 그 이유야 당연히 8점차에도 권혁이 왜 쉬지 못하느냐 여기에 의문이 든다는 겁니다. 필승조 투수가 큰 점수 차에도 나오는 건, 보통 휴식이 너무 길어져서 컨디션을 조절하기 위한 목적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권혁이 오래 쉬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은 것이, 25-26일 이틀 연투를 하고 27일 하루만 쉰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이번 기용을 잘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김성근 감독은 여느때처럼 '리드하는 상황이라서 권혁이 나왔다'고 소신있게 말했습니다. 일반적인 시각에선 이해할 수 없는 사유입니다.

1이닝 8점차, ERA로 단순 환산하면 72.00이 됩니다. 올 시즌 한화 투수들 중, 0.1이닝이라도 소화한 투수들 중에서 ERA가 72.0이 넘는 선수는 장민재 단 한 명입니다. 보통 패전조, 추격조로 기용되는 선수들도 ERA가 두 자리수를 넘어가는 일은 드뭅니다. 보통 그런 경우는 소화한 이닝 수가 너무 적을 때가 많기 때문에, 숫자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즉 1군에 올라올 정도의 실력을 가진 선수라면, 어지간해선 아웃 3개를 잡으면서 8점을 내주긴 어렵다는 뜻입니다. 제가 저번에 스팀 받아서 글을 썼을 땐 2이닝 7점차인데 권혁이 올라와서 성토했던 기억이 나네요. 오늘은 그거보다도 더한 상황이었다는 거죠.

어떤 이유를 가져다 붙이려 해도, 오늘과 같은 기용은 정상 범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더구나 그게 8월이 되기 전 이미 80이닝을 소화한 불펜 투수의 기용이라면 말이죠. 1980년대라면 모를까, 지금은 투수들이 시속 140km가 넘는 공을 쉽게 뿌리는 2015년입니다. 승리의 기쁨을 떠나서, 저는 과연 저 선수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면서, 마치 하루하루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 같은 환자를 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겉으론 멀쩡해 보였어요. 아니 저렇게 구른 투수가 시속 145, 146, 147km짜리 직구를 계속 던지는 게 가능한 일인지 올해 처음 알았습니다. 하지만 보는 내내 이게 회광반조는 아닐까,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느낌입니다.

제 개인적인 감상은 차치하고, 제목을 저렇게 정한 이유는 이런 당연해 보이는 사실들, 느낌들을 애써 외면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여서 답답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요즘 세상이 흑과 백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정말 당연한 진리를 여러번 곱씹어보게 됩니다. 왜냐면 그것과 반대로 세상을 흑백의 렌즈를 통해서만 보려는 것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이거든요. 한화 이글스, 오늘 승리했습니다. 권혁, 올해 과도한 이닝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이 마치 N극과 S극처럼 하나는 사실, 하나는 거짓인양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입니다(혹자는 후자를 가치판단의 영역에 놓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한화를 응원하려면 혹사에 대해선 눈 감아야 한다. 한화를 응원하는 팬이라면, 기용에 대해서는 가타부타하지 말아야 한다. 팀에 대한 응원과 선수에 대한 걱정, 이 둘이 왜 양립 불가능한 걸까요?

왜 인정하지 못하는 걸까요? 1984년, 롯데 자이언츠는 구단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자신의 어깨를 바치고 선수로서의 미래를 바친 최동원의 혹사, 강병철 감독의 묵인이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우리는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2014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고, 그 월드시리즈 7차전에는 '혹사가 아니냐'는 평이 쏟아진 매디슨 범가너의 등판과 호투가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우리는 남과 북처럼 극과 극에 놓인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저는 한화를 응원합니다. 그리고 권혁과 박정진의 혹사에 대해서 걱정합니다. 이 두 문장은 반의어도, 동의어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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