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0/05/16 19:11:50수정됨
Name   메존일각
Subject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에 대한 반성, 무식함에 대한 고백
이번 정의연 사태를 보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께 반성하는 마음을 담아 글을 씁니다. 무지가 아닌 저의 무식함에 대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일제에 의해 자행된 위안부 문제는 눈을 돌리고 싶을 만큼 처참하지만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위안부 할머님들은 직접적인 피해자로서 이루 표현 못할 만큼 큰 고통을 받으셨고, 이 문제는 여전히 말끔하게 청산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저는 피해자 할머님들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측은지심을 지니면서도,

1) 이 분들이 공통된 인식과 의견을 가진 공동체이며,
2)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제는] 초연하셨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미디어에서 보도하는 할머님들과 단체, 집회 모습과 수박 겉핥기식 설명에 얼마간 영향을 받았다고 하나, 사안을 더 깊게 헤아리지 [않은] 채 제 스스로 선입견에 사로잡힌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던 중, 많이들 읽으셨겠습니다만 이용수 님의 인터뷰에서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용수 할머니 "윤미향 양심 없다, 왜 위안부 팔아먹나"
https://news.nate.com/view/20200514n01974

기사의 여러 얘기들 중 다음의 두 가지가 저를 특히 민망하게 했습니다.

1) 이용수 님께서는 성노예라는 표현이 너무 더럽고 싫었고 부끄러웠으며,
2) 이용수 님을 포함해 일본이 낸 10억엔을 받고 싶어하는 피해자 할머님들이 계셨다는 얘기가 그것입니다.

그렇지.
당연히 그러셨겠지.
그런데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저는 요 며칠 간 이용수 님의 증언과 이에 따라 불거진 정의기억연대(과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안을 주시하며 깨우침을 얻어가는 중입니다. 생각의 방향도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저에게 평온한 날이 더 많았던 군대의 기억은, 때때로 꿈에서 고통스러운 형태로 나타납니다. 고작 평시 군복무 정도로도 그럴진대, 할머님들이 겪어야 했던 그 떠올리고 싶지 않은 비극적인 기억은, 그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괜찮아질 리 만무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저는 모든 할머님들이 세월의 무게를 느끼면서 이 문제에 초연해지셨고, 금전문제에는 달관하셨으며, 일본과의 위안부 문제를 청산하기 위해 한 마음 한 뜻을 모아 결연히 맞서신다고 [멋대로]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가아끔 불거져 나오는 할머님들의 돌출행동(?) 뉴스는 '언론이 이간질을 위해 장난질을 치기 위한 것' 정도로 단순히 치부해버렸습니다. 

가족 간에도 한 뜻을 모으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거늘, 조금만 찬찬히 생각해 봐도 내 생각이 그저 망상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을 텐데요. 

성노예라는 표현.
피해자가 이 표현을 아프게 생각한답니다. 본인이 왜 그렇게 불려야 하는지 모르겠답니다. 한데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고, 피해자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안아야 할 단체가 힘있고 큰 나라가 무서워한다(?)는 이유로 피해자 상처에 소금을 무자비하게 뿌려댔습니다. 피해자의 의사는 사라졌습니다.

금전적 보상.
피해자 할머님들은 죄인이 아닌데 죄인처럼 살아오셨습니다. 할머님들 중엔 이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조금이라도 편해지고자 보상을 희망하시거나, 더러는 자손들을 위해 희망하시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위안부 지원금 1억 받으려하자, 윤미향이 못 받게 했다"
https://news.nate.com/view/20200511n00137

日10억엔, 위안부 피해 할머니 47명중 35명은 받았다
https://news.nate.com/view/20200511n34673

언론사의 의도를 걷어내더라도,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일본 정부의 출연금을 수령한 피해자 할머님들이 적지 않으셨던 건 사실로 보입니다. 족히 70년이란 세월을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살아오신 분들이 작든 크든 어떤 식으로라도 보상을 받고 싶어 하신답니다. 피해자 할머님들의 생각과 결정을 누가 어떤 자격으로 손가락질 할 수 있겠습니까. 

돌이켜 보면 저는 피해자의 목소리에는 무심한 채, 굳건한 의지를 지닌 할머님들의 [이미지]를 멋지다고 생각한 사람이었습니다. 할머님들 개개인들께 [피해자 측]이란 이름의 투사가 되기를 강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청산이든, 나라 대 나라의 정치나 자존심 싸움이든, 피해자 없이는 본질에서 멀어진 부차적 사안일 수밖에 없는데도요.

고백합니다. 깜냥도 안 되면서 괜히 깨어있는 척 말하고 싶었고, 실상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반성합니다. 불완전한 저는 앞으로도 여전히, 무식함을 드러낼 일이 많을 것입니다. 허나 최소한 본 사안에서 조직이라는 이름으로 제시된 하나의 목소리를 보면, 거기에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 개개인의 생각이 무엇인지는 헤아려보고자 노력하겠습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0-05-25 23:56)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49
  • 저 또한 무지하긴 마찬가지였네요. 감사합니다
  • 저도 반성합니다.
  • 노력하겠다는 말씀이 멋지십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37 과학[코로나] 데이터... 데이터를 보자! 20 기아트윈스 20/03/22 6622 12
938 정치/사회섹슈얼리티 시리즈 (4) - 젠더는 BDSM 속에서 작동하나요? 6 호라타래 20/03/23 5275 13
939 정치/사회가속주의: 전세계의 백인 지상주의자들을 고무하는 모호한 사상 - 기술자본주의적 철학은 어떻게 살인에 대한 정당화로 변형되었는가. 18 구밀복검 20/03/24 7622 23
940 역사오늘은 천안함 피격 사건 10주기입니다. 23 Fate(Profit) 20/03/26 6209 39
941 일상/생각한국이 코로나19에 잘 대처하는 이유 24 그저그런 20/03/31 6328 10
942 정치/사회[데이빋 런시만] 코로나바이러스는 권력의 본성을 드러냈다. 10 기아트윈스 20/04/02 6150 22
943 창작말 잘 듣던 개 6 하트필드 20/04/04 5370 4
944 정치/사회해군장관대행의 발언 유출 - 코로나 항모 함장이 해고된 이유. 4 코리몬테아스 20/04/07 5713 11
945 창작그 애 이름은 ‘엄마 어릴 때’ 14 아침 20/04/08 5099 12
946 창작기대 속에 태어나 기대 속에 살다가 기대 속에 가다 3 LemonTree 20/04/09 5088 15
947 문화/예술[번역] 오피니언 : 코로나 19와 동선추적-우리의 개인적 자유를 희생시킬 수는 없다. 39 步いても步いても 20/04/13 6152 6
948 일상/생각아싸, 찐따, 혹은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11 이그나티우스 20/04/17 6196 17
949 역사도철문, 혹은 수면문 이야기 2 Chere 20/04/18 5214 16
950 일상/생각자아를 형성해준 말들 30 ebling mis 20/04/21 5804 32
951 일상/생각돈으로 헌신에 감사 표하기 28 구밀복검 20/04/22 7425 25
952 정치/사회[번역-뉴욕타임스] 삼성에 대한 외로운 싸움 6 자공진 20/04/22 5544 25
953 일상/생각한국인이 생각하는 공동체와 영미(英美)인이 생각하는 공동체의 차이점 16 ar15Lover 20/05/01 5924 5
954 일상/생각큰고모님 4 Schweigen 20/05/02 5034 27
955 일상/생각할아버지 이야기 10 私律 20/05/03 4435 17
956 일상/생각나는 내가 바라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9 켈로그김 20/05/06 5085 34
957 기타출산과 육아 단상. 16 세인트 20/05/08 4961 19
958 일상/생각제주도에서의 삶 16 사이시옷 20/05/13 5716 26
959 일상/생각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에 대한 반성, 무식함에 대한 고백 18 메존일각 20/05/16 6208 49
960 일상/생각웃음이 나오는 맛 13 지옥길은친절만땅 20/05/17 4583 11
961 과학고등학교 수학만으로 수학 중수에서 수학 고수 되기 11 에텔레로사 20/05/22 6172 7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