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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08 16:21:59수정됨
Name   아침
Subject   그 애 이름은 ‘엄마 어릴 때’
그 애 이름은 ‘엄마 어릴 때’
어린이책 번역작가 과정 들을 때 했던 번역인데 파일 정리하다가 찾았네요 ㅎㅎ
이때만 해도 재미삼아 들은 수업이라서 실감하지 못했지만 번역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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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일어난 건 엄마가 저녁밥으로 간과 양파 요리를 내놓고 간식조차 안 주셨던 바로 그 날이었어요.

'"우-엑"
내가 막 소리를 질렀어요.
엄마는 늘 그렇듯이 잔소리를 했어요.
"리자벳, 또 편식하는구나. 엄마 어릴 때는 주는 대로 아무거나 잘 먹었는데 말이야."
엄마가 말을 마치자마자 난데없이 웬 여자아이가 나타나는 게 아니겠어요. 단정하고 깔끔하고 얼굴은 어찌나 말쑥한지, 반짝반짝 윤기 있는 얼굴 위로 '나는 착한 어린이‘ 표 미소가 흘렀어요.

"저 애는 누구예요?"
내가 비명을 지르다시피 물었어요.
"이 애가 바로 '엄마 어릴 때'란다"
엄마는 어릴 때? 무슨 이름이 그래?
그제서야 그 애가 누군지 감이 오더군요. 그 앤 엄마가 내 나이 때 찍은 사진이랑 꼭 닮아 있었어요.
"간이랑 양파 요리네요"
'엄마 어릴 때'가 말했어요.
"아, 맛있겠다. 잘 먹겠습니다. 이런 맛있는 저녁이라면 간식은 안 먹어도 되겠어요.
전 '엄마 어릴 때'를 쏘아보고 또 쏘아보았어요.
그 앤 아랑곳 않고 그 맛없는 저녁밥을 하나도 안 남기도 다 먹더군요. 옷에 국물 한 방울도 안 흘리면서요.

저녁을 먹고 나서 '엄마 어릴 때'와 난 밖으로 나갔어요.
그 앤 줄넘기도 모래 장난도 다 싫대요.
"옷이 더러워지잖아."

'엄마 어릴 때'가 드레스 주름을 곱게 펴며 말했어요.
"그러셔?"
그렇게 대꾸해주고 난 엄청나게 거대한 모래성을 쌓았어요.
성 둘레를 따라 진짜처럼 근사한 6차선 고속도로를 짓고 있을 때였어요.
“얘들아, 이제 들어오렴"
엄마가 불렀어요.
엄마는 맨날 내가 중요한 일 하고 있을 때만  불러요.
"조금 있다가요. 지금 바쁘단 말이에요."
"지금 당장이라고 했다, 리자벳."
난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옮겼어요.

"꼴이 이게 뭐니."
엄마가 쯧쯧 혀를 차며 나무랐어요.
"어떻게 이렇게 흙투성이가 될 수 있는지."
난 그렇게 흙투성이는 아니었는데. 엄청나게 거대한 성이랑 6차선 고속도로를 짓고 온 것 치고는 말이에요.
그 때 '엄마 어릴 때'가 점잖게 헛기침을 했어요. 그 앤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이 없더군요. 옷은 그 어느 때보다 깨끗하고 주름 한 점 찾아볼 수 없었어요. '나는 착한 어린이‘ 표 미소도 빼먹지 않았고요.

"쟤는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예요?"
내가 물었어요.
"얼마 동안"
엄마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 얼마가 영영 계속되면 어쩌죠?

그날 밤이었어요. 나는 모두가 잠든 틈을 타서 발끝으로 살금살금  내려와 할머니께 전화를 걸었어요.
"안녕하세요, 할머니."
" 우리집에 한 번 와주셔야겠어요. '엄마 어릴 때'라는 애가 지금 우리집에 있어요. 얼마 동안 있을 거래요. 그럼  내일 봬요, 할머니."

그 다음 날은 비가 내렸어요.  거친 회색 빗방울이 세차게 내렸지요. 나는 장난감으로 마을 하나를 통째로 지어서 차로 붕붕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엄마는 어릴 때'는 조용히 앉아서  백과사전을 읽고 있었어요. 새치름한 미소도 여전했고요.

이윽고 해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현관 초인종이 딩동 울렸어요.
할머니였어요.
" 그냥 한 번 들렀단다"
할머니가 나에게 찡긋 윙크를 보내며 말했어요.
"할머니, 이 애가 '엄마 어릴 때'예요."
"오, 우린 벌써 만난 적이 있지. 아주 옛날에."
할머니가 알아보자 '엄마 어릴 때'는 조금 창백해졌어요.
나는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점심시간에 엄마는 염소 치즈가 들어간 새싹 샌드위치와 양배추 샐러드를 내놓으셨어요.
"아아. 이게 뭐야"
내가 투덜거렸어요.
'엄마 어릴 때'는  환호성을 질렀어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너무 맛있어 보여요."
할머니가 그 애를 이상한 듯 쳐다보았어요.

"어머나, 너 많이 변했구나. 내 기억에는 땅콩버터하고 젤리 샌드위치 아니면 손도 안 댔던 것 같은데 말이다."
순간 '엄마 어릴 때'가 움찔했어요. 얼굴은 한결 창백해졌고 미소도 이전만큼 밝지 않았어요.

점심식사 후에 나는 엄마에게 나가서 놀아도 되냐고 물었어요.
" 그럼. 단, 나가기 전에 장난감부터 치우고."
" 아이, 나중에 하면 안 돼요, 엄마? 흙탕물이 다 마르잖아요."
'엄마 어릴 때'가 벌떡 일어났어요.
"제가 할게요. 전 청소 하는 거 좋아해요."
할머니의 눈썹이 올라갔어요.
"정말? 내 기억하고는 전혀 다른데. 왜, 네 방은 항상 더러웠잖니. 어찌나 어질러져있는지 들어가려면 삽으로 파내야할 정도였지."
'엄마 어릴 때'가 분필처럼 하얗게 질렸어요. 미소는 아예 사라졌고요. 반대로 제 미소는 꽃피었죠.

정리를 다 하고 나서 고무장화를 신었어요.
"우리 진흙탕 돌아다니면서 놀자."
“진흙탕이라고?”
‘엄마 어릴 때’가 끔찍한 듯 몸을 떨었어요.
“안 할래. 그러다 옷을 버리면 어쩌려고?”
할머니가 웃음을 터뜨렸어요.
“너 기억 안 나니? 어릴 때 네가 제일 좋아하던 놀이가 돼지놀이였는데. 한 번은 젖은 도랑에서 뒹굴다가 진흙이랑 풀로 범벅이 되어서 나타났지. 내가 호스로 싹 씻어낸 다음에야 집안에 들여보낼 정도였단다.”
‘엄마 어릴 때’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어요. 이제는 아파보이기까지 해서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죠. 많이는 아니고 아주 약간요.
엄마가 한숨을 쉬었어요. 엄마는 돌아서서 ‘엄마 어릴 때’를 향해 말했어요.
“이제 갈 시간이 된 것 같구나.”
‘엄마 어릴 때’가 들릴 듯 말 듯 “예”라고 대답한 뒤 점점 옅어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완전히 사라졌어요.
나는 진흙탕 중에서도 제일 진흙이 많은 웅덩이에서 흙탕물을 튀기며 기쁨을 누렸어요.

그날 밤, 잠자리에 들면서 내가 엄마에게 물었어요.
“엄마, 내가 ‘엄마 어릴 때’ 같았으면 좋겠어요?”
“넌 벌써 ‘엄마 어릴 때’와 똑같단다. 할머니가 기억하는 ‘엄마 어릴 때’ 말이야. ‘엄마 어릴 때’는 어땠는지 내가 깜박 잊고 있었구나.”
“‘엄마 어릴 때’가 없어서 아쉬워요. 같이 재밌게 놀 수도 있었는데.”
“걱정 말거라.”
엄마가 말했어요.
“ 내일 우리 둘이 같이 재밌게 놀자꾸나.”
난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엄마, 우리 내일 돼지놀이 할까요?”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0-04-21 10:24)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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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아...재밌게 번역잘하신거같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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