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9/12/09 00:34:58수정됨
Name   whenyouinRome...
Subject   12월에 강릉에 가는 이유...
안녕하세요~

타임라인에 가벼운 글만 쓰려다 티타임에 장문의 글을 쓰려니 좀 어색하네요..

벌써 12월에 강릉에 여행 간 게 횟수로도 꽤 되네요.

제작년 와이프가 열감기가 너무 심해져서 계획한 여행을 취소했던 적 빼고는 최근에는 매 해 다니는 것 같아요..

제가 호주에서 와이프를 만나서 한국에 들어와서 결혼 했을 때는 경제적으로 크게 넉넉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국내에서 신혼 여행을 가기로 계획했어요.

물론 결혼 후 다시 타국으로 가야했기 때문에 궂이 신혼여행을 해외로 갈 계획은 하지 않았지만 그 이면에는 제 넉넉치 못한

경제적 상황도 서로 암묵적으로 고려한 결정이었죠.

어디로 갈까 하다 신혼여행을 강릉으로 가기로 했어요.

그닥 좋지 않은 호텔을 예약하고 결혼식 끝나고 렌트카 한 대 빌려서 떠난 신혼여행..

보통 신혼여행 하면 동남아나 태평양 화려한 리조트에서 썬배드에 누워 맥주나 칵테일 한잔하거나 유럽같은 곳 신혼여행 패키지같은

화려한 여행을 꿈꿀텐데 그나마 가는 곳이 강릉이라 참 미안했죠.

강릉가서 경포대 바다 보고 회 한 접시 먹고 바닷가 까페에서 커피 한 잔 하고 좀 돌아다니니 하루가 끝나가더라구요..

계획도 딱히 안하고 1~2일정도만 있다 올 생각이어서 할 것도 마땅치 않았는데 문득 용평리조트 생각이 나서

와이프한테 보드나 타러 가자고 했어요.

그 때 와이프랑 용평에서 굴러댕기며 보드 타고 놀고 저녁에는 당구장 가서 포켓볼치고 저녁밥으론 네네치킨에 맥주 한잔하고..

넉넉치 못한 상황에서 할 수 있었던 그나마도 짧은 소박한 여행이였달까요..

속으론 참 미안했는데 와이프가 서운한 맘 없이 즐겁게 다녀줘서 정말 고마웠네요..

그게 벌써 9년 전이네요....

참 시간 빠르네요.

그 이후로 다시 호주에 갔다가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몇 년은 참 힘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자리도 안 잡히고 심신이 지쳐갈때마다 옆에 와이프가 있어서 버틴거 같네요.

몇몇 분들은 예~~~전에 제가 다른 곳에 쓴 글 때문에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정신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쓰를 받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한국 돌아오고 근 2년 정도는 너무 힘들었던것 같습니다.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고 심신이 너무 스트레쓰로 피폐해지고 나약해져있었죠.

그 때 우연찮게 아내 지인의 겨울에 강원도에 다녀오자는 제안에 돈도 없으면서 거의 쥐어짜다시피 경비 마련해서 아내랑 함께 다녀왔어요.

강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아내랑 함께 강릉에 갈 때 생각이 났어요. 차에서 둘이 손을 꼭 잡고 갔어요. 또 강릉이 가고싶더라구요.

너무 좋고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그 때 좀 정신을 차리고 아내와 함께 활짝 웃었던것 같아요.

그러고도 힘든 시기는 있었지만 항상 옆에서 격려해준 아내덕에 기운을 차리고 다시 생활을 해 나갈 수 있었어요.

그 시기에 아내는 제가 일하러 나갈 때마다 "항상 어깨 피고 다녀요. 어깨 움추리고 다니지 마세요. 나한텐 누구보다 멋지고 당당한 사람이니까

기죽어서 다니지 마세요."라고 이야기 해주며 어깨를 펴줬어요.

아마 한국에 돌아온지 4년째정도? 그러니까 결혼 5년차 정도부터 제 일이 좀 좋아진거 같아요.

수입도 늘어나고 여유가 생기고.. 아들 녀석도 점점 커가구요..

그 때부터 12월이 되면 강릉에 갔어요.. 갈 때마다 신혼여행 이야기를 하며 더 좋은 곳 못가서 미안했다고 이야기 해요.

아내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 자기는 그 때도 너무너무 좋고 행복했다고 해요. 저랑 함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상관 없었대요..

12월 결혼기념일 전후로 시간을 내서 강릉에 가면 항상 용평리조트를 가요. 같이 보드도 타고 또 횡성면에 내려와서 포켓볼도 치고

치킨을 먹기도 하고 황태 국밥을 먹기도 해요.

그렇게 보드를 타고 놀고나면 다음날엔 강릉에 가요. 테라로사에 가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카페거리에 가서 아무대나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경포대에 가기도 해요.

우리가 서서 사진찍었던 바닷가 앞에서 다시 사진도 찍고, 다정히 팔짱 끼고 걷기도 해요.

추워서 얼른 돌아오긴 하지만.. 신혼여행때도 바닷가는 5분만 보고 나왔거든요.. 우린 둘 다 추위에 약해요..

이제 벌써 9년이 다되가요.. 올해 12월 1x일이 9주년 결혼 기념일이에요.

이번에도 우린 강릉에 갈 꺼에요.

강릉에 가기전에 용평리조트에 가서 신나게 보드도 탈거에요.

이번에는 보드탈때 아들도 같이 탈거에요. 항상 강릉갈때 아들은 어머니한테 봐달라구 했었는데 작년부터 열심히 가르쳐서

이젠 스키를 제법 탈 수 있어요. 이젠 결혼기념일 기념 부부 여행이 아니라 가족 여행이 됬어요.

제가 올해에도 용평에 숙소를 예약하고 강릉에서 뭘 할지 이야기 하고 바닷가 앞에 숙소를 예약하면서 신이 나서

이렇게 저렇게 하자고 이야기 하니 심드렁하게 반응하던 아내도 내심 좋은가봐요.

바닷가 풍경보며 반신욕 할 수 있는 팬션을 찾았다니까 보드 타고 나서 뻐근할텐데 잘됬다며 좋아하네요.

12월에 이렇게 여행을 하면서 항상 그때 생각을 해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결혼하자고 했을 때 기꺼이 받아주고 자기 인생을 걸고 나의 보완자가 되어준 아내가 너무 고마워요.

제 옆에서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고 지원해주고 믿어줘서 제가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었어요.

나처럼 보잘 것 없었던 남자에게 모든걸 맡기고 옆에 와준 아내가 너무 사랑스러워요.

아마도 시간과 환경이 허락하는 한 12월은 계속 강릉을 갈 거 같아요. 아내는 또 가냐고 그만가자고 해도, 또 제가 가자고 살살살살 달래면

못이기는 척 하며 따라와줄거에요.

더 힘든 길도 못이기는 척하며 아니 오히려 은근슬쩍 도와주며 함께 해줬으니까요..

이제 우리 둘 사이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 우리 틈을 파고들어서 둘이 나란히 걷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날 믿고 날 사랑해준

그 불확실했던 시기의 아내의 마음을 잊지 않을거에요.

12월에 강릉에 가면 그 때 생각이 나요.. 2010년 12월 그 때가 생각이 나요..

그럼 잊지 않을수 있어요. 그 때의 내 뜨겁던 사랑과 고마움을요.

그래서 전 12월에 강릉에 가요.. 올해도 아내와 함께 갈거에요.


그리고 이번에도 가서 신나게 보드 탈꺼에요.. 우히힛.


* 토비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9-12-24 22:47)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34
  • 아침부터 사나이 울리고 이러기 있기 없기?
  • 왜 내 가슴이 찡해지죠?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55 게임랑그릿사와 20세기 SRPG적 인생 14 심해냉장고 21/01/23 5764 34
1045 요리/음식(내맘대로 뽑은) 2020년 네캔만원 맥주 결산 Awards 34 캡틴아메리카 20/12/27 6756 34
1042 정치/사회편향이 곧 정치 20 거소 20/12/23 5558 34
1028 일상/생각팬레터 썼다가 자택으로 초대받은 이야기 19 아침커피 20/11/06 6272 34
956 일상/생각나는 내가 바라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9 켈로그김 20/05/06 5119 34
896 여행12월에 강릉에 가는 이유... 6 whenyouinRome... 19/12/09 6063 34
879 기타영국 교육 이야기 16 기아트윈스 19/10/23 6721 34
845 의료/건강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환자 11 Jace.WoM 19/08/15 6727 34
808 일상/생각영업사원의 삶이란? 27 배워보자 19/05/26 7778 34
732 요리/음식위스키 입문, 추천 27 Carl Barker 18/11/11 9259 34
419 정치/사회동성애 이슈와 팬덤정치 이야기 137 기아트윈스 17/04/26 9554 34
345 일상/생각타임라인과 속마음 나누기 36 Toby 17/01/13 7609 34
283 일상/생각태어나서 해본 최고의 선물. 81 SCV 16/10/13 10467 34
197 역사유게에 올라온 유재흥 글에 대해 67 눈시 16/04/29 7504 34
1419 기타페미니스트 vs 변호사 유튜브 토론 - 동덕여대 시위 관련 26 알료사 24/11/20 4553 33
1273 정치/사회석학의 학술발표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왜곡되어 소비되는 방식 14 카르스 23/02/03 4127 33
1272 일상/생각내 인생 가장 고통스러운 명절연휴 6 당근매니아 23/01/31 3085 33
1204 일상/생각형의 전화를 끊고서, 진토닉 한 잔을 말았다. 4 양양꼬치 22/05/26 4014 33
1105 요리/음식라멘이 사실은 일본에서 온 음식이거든요 50 철든 피터팬 21/07/13 6036 33
962 일상/생각슈바와 신딸기. 24 Schweigen 20/05/26 5676 33
936 역사[번역] 유발 노아 하라리: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세계 13 기아트윈스 20/03/21 8111 33
756 일상/생각대체 파업을 해도 되는 직업은 무엇일까? 35 레지엔 19/01/11 7359 33
677 기타러시아와 미국의 전술 교리에 대해 알아봅시다 17 기쁨평안 18/08/08 6706 33
658 일상/생각왜 펀치라인? 코메디의 구조적 논의 8 다시갑시다 18/07/06 6531 33
586 일상/생각조카들과 어느 삼촌 이야기. 9 tannenbaum 18/02/02 7653 33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