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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9/08/26 15:31:46수정됨 |
Name | Jace.WoM |
Subject | 삼촌을 증오/멸시/연민/이해/용서 하게 된 이야기 |
어릴적, 그니까 한 7살때쯤? 명절날 작은 삼촌이 저와 사촌동생이 말싸움하는걸 보고 화가나서 명절날 어머니와 제 앞에다가 다리미를 던졌적이 있습니다. 삼촌은 이혼해서 사촌동생을 혼자 키우고 있었는데, 저랑 사촌동생이 말싸움 하는걸 보고 어머니가 제 편을 드는게 고까우셨는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화를 내다가 에이 하고 땅바닥에 다리미랑 주위 물건을 내팽겨쳤어요. 어머니는 물건에는 직접 맞지 않으셨지만 피하다가 팔이 문 모서리 긁혀서 막 피가 철철 나기 시작하고 겁이나서 막 울면서 어쩔 줄 몰라 하셨고 당연히 일가 친척들 다 난리가 나서 그 날로 우리는 아빠 차를 타고 집으로 올라왔죠. 이후로 어머니는 한동안 친가에 내려가지 않으셨고 저는 갈 일 있으면 아버지를 통해서 먼저 삼촌이 집에 없는것을 확인한 이후 (아마 아빠가 내보내셨겠죠 ㅋㅋㅋ) 가서 할머니와 사촌 형 동생과 고모들만 보고 오곤 했었습니다. 그 일을 겪고 처음에 제가 삼촌에게 느낀 감정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강한 트라우마와 증오였습니다. 어릴적 내게 세상이나 다름 없던 우리 부모님을 내 눈앞에서 처음으로 다치게 했던 사람이니까, 당연하기도 했지만, 당시 제 나이를 생각해보면 그래도 좀 심할 정도로 미웠어요. 아직도 기억나는게 자기전에 엄마한테 자주 얘기한 내용이 "나중에 삼촌 죽으면 장례식날 내가 옆에 HOT 불러서 콘서트 열거야" 였거든요 ㅋㅋㅋㅋ 실제로 어릴적 공부를 열심히 했던 이유도 HOT 콘서트를 여는데 돈이 많이 드니까 그랬던것도 조금은 있었을거에요. 유년기를 보내고 청소년기, 남들 다 사춘기를 보낼 시기가 되었을때, 당시 저는 나름 공부를 열심히해서 꽤 높은 학업 평가를 받고, 친구들과도 인싸흉내내며 잘 지내고 말 그대로 자신감에 차 있었어요. 그 즈음에 아마 저의 삼촌에 대한 생각은 증오에서 멸시가 되었을거에요. '아, 한심한 인간이여 그 나이 먹도록 노래나 하고 다니느라 돈도 못 버니 와이프가 자식도 버리고 널 떠나지, 자격지심에 차서 폭력이나 휘두르는 너 같은 볼품인간 인간한테는 증오조차 아깝다.' 뭐 이런 생각이었죠. 이때부터 저는 삼촌에게 복수하겠다 ㅋㅋㅋ 하는 어린아이 같은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럴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모기야 피라도 빨아가서 밉기라도 하니까, 파리같은 존재로 봤어요. 사람을요. 철 없던 사춘기 시절을 지나 고등학생이 되고, 봉사활동을 시작하고 책상공부만큼이나 세상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삼촌의 아들, 그때 말다툼 했던 사촌동생하고도 다시 교류를 하기 시작했어요. 핸드폰이라는게 생겼거든요 ㅋㅋㅋ 사촌동생은 제가 삼촌을 피하는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엔 너무 어렸기에 (4살이었으니 ㅋㅋㅋ) 정확히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지는 몰랐는데, 워낙 착한 아이라 고작 3살 차이에도 불구하고 저를 형 형 거리며 많이 따랐고, 저도 친동생처럼 사촌동생을 아끼고 귀여워 했습니다. 아마도 그 영향이었을거에요. 삼촌에 대한 제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지워졌어요. 이렇게 착한 아이가 엄마 없이 커야 하는 환경을 만든 그 능력없는 필부가 더 이상 한심하고 밉기 보다는 안타까웠습니다. 나라도 사촌 동생에게 좀 더 잘해줘야 겠다.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이것은 성숙한 이해는 아니었습니다. 한 단어로 생각하면 그냥 연민이었죠. 나와 다른, 나보다 한참 못한 존재에 대한 안타까움과 불쌍함, 길거리에서 동냥하는 사람에게 한푼 적선해주면서 난 정말 좋은 사람이야하고 생각하는것 같은 얄팍한 마음. 이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고, 꽃같은 청춘만 나를 기다리고 있을줄 알았던 제 인생에도 큰 위기가 왔습니다. 물론 그 전까지도 순탄한 삶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것들은 부모님의 문제가 아닌 내 문제라 생각하고 해결하고자 맘 먹은 뒤에는 그저 좀 높아서 힘들뿐인 언덕 정도였다면, 대학 들어가고 나서 터진 집안일은, 저걸 내가 정말 넘을 수 있나? 싶을만큼 가능여부조차 불투명한 장애물이었어요. 실제로 이렇게 저렇게 부딪혀도 몇번이고 실패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참 늦게도 경험하게 된 '진짜 실패'의 맛이었죠. ㅋㅋㅋ 미래, 현재, 돈, 건강, 사람 참 많은것을 포기 혹은 미뤄가며 집안 문제를 기어코 어느정도 해결한 이후에, 스스로를 돌아보니 참 많이도 황폐해져 있었습니다. 계속 연락하면 반드시 손 빌리게 될거 같아서 아예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탄 덕분에 영문도 모르고 연락을 끊어버린 제 모습에 실망해서 떠나가서 붙잡지 못한 인연 한트럭에, 건강도 어느새 반 넝마가 되어있고 ㅋㅋㅋ 그야말로 개차반이었죠. 그래도 좌절하고는 담을 쌓은 성격이라 잃은것을 되찾기 위해 조금만 쉬고나서 다시 일어서서 걸었습니다. 사람들한테 연락해서 한동안 연락이 안 된 이유를 덜 불쌍해보이게 잘 섦여하고, 운동도 다시 하고 몸도 좀 가꾸고, 그러던 와중에 아버지를 통해 친가족 사람들과도 다시 연락이 통했어요. 그리고 그때 오랜만에, 한 5년만에 삼촌의 존재에 대해서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느꼈어요. 내 안에서의 삼촌에 대한 감정이 증오 멸시 연민에 무시를 걸쳐서 마침내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것을요. 삶이라는것은 이렇게도 무섭고 아프고 괴로운것이구나, 20대 중반이고 세상에 무서울게 없었던, 그리고 또 정말 잘난 사람인 (나르시스트 기질은 고생한다고 버려지지가 않더라구요 ㅋㅋㅋ) 나조차도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것이 이토록 힘들었는데 집에 재산도 없이 당시 아들 하나키워야 하는 상황에 와이프는 도망가고 자기 인생은 잘 안 풀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꿈인 가수는 포기하기 싫고, 애는 한살씩 먹어가고 형들은 결혼해서 처자식 데리고 명절에 와서 잔소리하고 지금 내가 그렇듯 그 사람도 처음부터 어른은 아니었을텐데, 어쩌다 어른이 되고 나서 어떻게 돌이켜보니 하고 싶었던건 제대로 하나도 하지 못하고 책임감만 잔뜩 늘어난 상황에서 자기 자식이 무시당한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해줄 수 없는것도 없으니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정도 지난 후에, 몇년만에 할머니댁에 가서 거진 15년만에 삼촌을 만났습니다. 저를 본 삼촌의 첫 마디는 '야, 반갑다. 어머니 잘 계시지? 였습니다' 이제 저도 그때랑 달리 완전히 어른이 되었기에 능숙하게 삼촌의 말을 받아줄 수 있었죠. 흔히 성인 남성들이 만나면 나누는 국룰과 같은 실없는 인사치레를 서로 몇마디 나누고 나서, 삼촌은 제게 사과를 해왔습니다. 대충 예전에 그랬던건 아직도 크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어머니꼐도 꼭 죄송하다고 전해달라. 직접 사과하는걸 더 불편해하실거 같으니까 네가 전해주는거 더 좋을거 같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삼촌을 용서했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집에와서 어머니께 이 얘기를 말씀드렸습니다. 사과했다 단순히 그 얘기 말고, 이 글의 처음부터 끝까지, 제 감정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읊어드렸죠. 그러자 어머니께선 '솔직히 말하면 난 니가 어릴때부터 너무 화내고 미워하길래 그냥 니 장단에 맞춰준거지 금방 괜찮아졌었다'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ㅋㅋㅋㅋ 아니 어머니 ㅋㅋㅋ; 이 일을 겪고 느낀바가 하나 있습니다. 제가 삼촌을 용서하는 과정에서 실제로는 저와 삼촌이 나눈 커뮤니케이션은 마지막 사과 단 하나뿐이라는거에요. 그 외의 감정의 변화는 모두 제가 제 삶을 사는 과정에서 알아서 스스로 변화한거죠. 증오가 멸시로, 멸시가 연민으로 연민이 이해로 바뀐것은 모두 철저히 내 안에서만 일어난 일입니다. 만약 그 전에 삼촌이 사과를 해왔으면 저는 삼촌을 이해끝에 용서할 수 있었을까요? 아닐거 같아요. 증오할때 연락해왔다면 '네 알겠습니다 그럴수도 있죠 이해합니다' 라고 말해놓고 나중에 찌르기 위해 소매에 칼 한자루를 숨겨놨을거고, 멸시할떄 연락해왔다면 그러거나 말거나 하고 그냥 연락도 안 받고 씹었겠죠. 삼촌이 아무리 성의를 보이려고 해봐야, 내가 준비되기전에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용서를 할 수가 없었을거에요. 그래서 주위에서 가끔 용서를 하고 싶은데 잘 안된다, 혹은 잘못했는데 용서를 받고 싶다 이런 진지한 상담을 해오는 사람들에겐 그렇게 말합니다. 네가 용서를 하는 입장이건 받는 입장이건, 상대가 준비가 될때까지 기다리라고요, 아마도 그 전에는 뭘 어떻게 해도 별 소용이 없을거라고... 피해를 입힌것에 대한 성의있는 보상과 사과와 별개로, 용서를 받는데는 상대가 내가 증오가 이해가 될때까지 그랬던것처럼 감정의 모험을 끝마치길 기다려야 할 거라고 ㅎㅎ 삼촌과 얼마전 전화통화를 했는데 위암 초기시라고 하시더라구요. 예후가 나쁘지 않은 단계라고 하셨으니 좋아지시길 바랍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9-09-10 08:44)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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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그럼 우리는 이제 이 댓글란에서 글쓴이와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화자가 여럿인 독백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말예요
어려운 질문이긴 한데 ㅎㅎ 굳이 따지자면 본문의 커뮤니케이션도 제가 댓글에서 말한 광의에 가까운 표현이었습니다. 진짜 아무런 교감이나 안부를 주고 받는 행위가 전혀 없었거든요.
얼굴을 본것도, 목소리를 들은것도, 물리적으로 반경 1km 이내에 위치해있던것도 다리미 던질때가 마지막이었습니다. 15년만의 얼굴, 목소리였죠. 사촌동생하고 놀때도 삼촌에 대한 얘기는 단 한마디도 했던적이 없어요. 제 감정의 여행은 정말로 제 혼자만의 것이었고, 저는 마지막으로 만날때 그래서 이미 스스로 용서할 준비가 된 상태였어요.
확실하지 않은... 더 보기
얼굴을 본것도, 목소리를 들은것도, 물리적으로 반경 1km 이내에 위치해있던것도 다리미 던질때가 마지막이었습니다. 15년만의 얼굴, 목소리였죠. 사촌동생하고 놀때도 삼촌에 대한 얘기는 단 한마디도 했던적이 없어요. 제 감정의 여행은 정말로 제 혼자만의 것이었고, 저는 마지막으로 만날때 그래서 이미 스스로 용서할 준비가 된 상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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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질문이긴 한데 ㅎㅎ 굳이 따지자면 본문의 커뮤니케이션도 제가 댓글에서 말한 광의에 가까운 표현이었습니다. 진짜 아무런 교감이나 안부를 주고 받는 행위가 전혀 없었거든요.
얼굴을 본것도, 목소리를 들은것도, 물리적으로 반경 1km 이내에 위치해있던것도 다리미 던질때가 마지막이었습니다. 15년만의 얼굴, 목소리였죠. 사촌동생하고 놀때도 삼촌에 대한 얘기는 단 한마디도 했던적이 없어요. 제 감정의 여행은 정말로 제 혼자만의 것이었고, 저는 마지막으로 만날때 그래서 이미 스스로 용서할 준비가 된 상태였어요.
확실하지 않은 얘기라 글에는 쓰지 않았지만, 저는 아마 삼촌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을거라고 생각해요. 그 일이 일어난지 바로, 혹은 얼마 안돼서 아버지나 할머니께서 억지로 사과를 시켰다면, 미안하다곤 했어도 사과하는 삼촌 입장에도 순수하게 미안한 마음보다는 복잡한 심경이 훨씬 컸을거라고 생각해요. 받아들일 사람도 준비가 안됐고 사과하는 사람도 준비가 안됐으니 지금처럼 봉합이 잘 됐을거 같지도 않고...
얼굴을 본것도, 목소리를 들은것도, 물리적으로 반경 1km 이내에 위치해있던것도 다리미 던질때가 마지막이었습니다. 15년만의 얼굴, 목소리였죠. 사촌동생하고 놀때도 삼촌에 대한 얘기는 단 한마디도 했던적이 없어요. 제 감정의 여행은 정말로 제 혼자만의 것이었고, 저는 마지막으로 만날때 그래서 이미 스스로 용서할 준비가 된 상태였어요.
확실하지 않은 얘기라 글에는 쓰지 않았지만, 저는 아마 삼촌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을거라고 생각해요. 그 일이 일어난지 바로, 혹은 얼마 안돼서 아버지나 할머니께서 억지로 사과를 시켰다면, 미안하다곤 했어도 사과하는 삼촌 입장에도 순수하게 미안한 마음보다는 복잡한 심경이 훨씬 컸을거라고 생각해요. 받아들일 사람도 준비가 안됐고 사과하는 사람도 준비가 안됐으니 지금처럼 봉합이 잘 됐을거 같지도 않고...
음, 그럼 이때 말씀하시는 상대의 준비란 본인 안에서 해소되는 것일진대... 그 같은 마음의 평화라면 굳이 상대의 준비가 필요할까요? 그럼 나만의(정확히는 나의 의식 속 너를 향한) 준비와 너와 나의 커뮤니케이션이란 과연 무엇이 다를까요. 커뮤니케이션 전과 후로 무엇이 바뀔 수 있을까요. 글쓴 님의 말씀을 따라가보면 정작 상대의 준비를 기다리기보다 중요한 건 그 자신이 더욱 준비하고 스스로를 돌아봐야한다는 이야기가 되지 않나요?
ㅎㅎ 사실 제가 쓴 글이지만 이 글 자체가 제목에선 삼촌을 용서한 얘기 어쩌고 해놓고 클릭해보니 삼촌 얘긴 두문단하고 끝이고 나머진 제 얘기만 하고 있고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표현도 저는 글에서 딱 한번만 사용했습니다. 그것도 그냥 지나가듯이요.
즉 이 글은 "용서의 과정에서 서로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란 얘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면의 준비가 되기전의 억지 커뮤니케이션은 별 쓸모가 없다"는게 제 주장이에요.
용서의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제 생각엔 그냥 "의식"이에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게 무슨 역할을 하는건... 더 보기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표현도 저는 글에서 딱 한번만 사용했습니다. 그것도 그냥 지나가듯이요.
즉 이 글은 "용서의 과정에서 서로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란 얘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면의 준비가 되기전의 억지 커뮤니케이션은 별 쓸모가 없다"는게 제 주장이에요.
용서의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제 생각엔 그냥 "의식"이에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게 무슨 역할을 하는건... 더 보기
ㅎㅎ 사실 제가 쓴 글이지만 이 글 자체가 제목에선 삼촌을 용서한 얘기 어쩌고 해놓고 클릭해보니 삼촌 얘긴 두문단하고 끝이고 나머진 제 얘기만 하고 있고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표현도 저는 글에서 딱 한번만 사용했습니다. 그것도 그냥 지나가듯이요.
즉 이 글은 "용서의 과정에서 서로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란 얘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면의 준비가 되기전의 억지 커뮤니케이션은 별 쓸모가 없다"는게 제 주장이에요.
용서의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제 생각엔 그냥 "의식"이에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게 무슨 역할을 하는건 아닌거죠. 본문에서도 전 삼촌의 사과를 받고나서야 비로소 삼촌을 용서했다는 표현을 썼지만, 사과는 그냥 통상적인 수준의 것이었고, 자체적인 의미가 담길만큼 대단한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어떻게 보면 오늘부터 1일선언 같은거죠.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표현도 저는 글에서 딱 한번만 사용했습니다. 그것도 그냥 지나가듯이요.
즉 이 글은 "용서의 과정에서 서로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란 얘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면의 준비가 되기전의 억지 커뮤니케이션은 별 쓸모가 없다"는게 제 주장이에요.
용서의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제 생각엔 그냥 "의식"이에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게 무슨 역할을 하는건 아닌거죠. 본문에서도 전 삼촌의 사과를 받고나서야 비로소 삼촌을 용서했다는 표현을 썼지만, 사과는 그냥 통상적인 수준의 것이었고, 자체적인 의미가 담길만큼 대단한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어떻게 보면 오늘부터 1일선언 같은거죠.
음 저도 mime님의 첫 질문을 그런 뜻이라고 생각하고 답한거지 본문의 모순을 지적하거나 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한적 없습니다! 그래서 제 대답은 첫 대답의 반복이 될거에요. 하지만 제 표현이 뭔가 부족해서 다시 물어보셨을거라고 생각하고, 저도 다시 대답해드릴게요. ㅎㅎ
저는 당신과 제가 같은 홍차넷이라는 공간에서 같은 시간에 머물러 그저 서로 같이 있음을 느끼는것이 훌륭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하고, 제가 기대한것은 그것뿐입니다.
그것은 잘 읽었다는 댓글일수도, 추천일수도, 쪽지일수도 있겠죠.
혹은 글 개못쓴다는 품평... 더 보기
저는 당신과 제가 같은 홍차넷이라는 공간에서 같은 시간에 머물러 그저 서로 같이 있음을 느끼는것이 훌륭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하고, 제가 기대한것은 그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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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저도 mime님의 첫 질문을 그런 뜻이라고 생각하고 답한거지 본문의 모순을 지적하거나 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한적 없습니다! 그래서 제 대답은 첫 대답의 반복이 될거에요. 하지만 제 표현이 뭔가 부족해서 다시 물어보셨을거라고 생각하고, 저도 다시 대답해드릴게요. ㅎㅎ
저는 당신과 제가 같은 홍차넷이라는 공간에서 같은 시간에 머물러 그저 서로 같이 있음을 느끼는것이 훌륭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하고, 제가 기대한것은 그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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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글 개못쓴다는 품평이나 이유없는 욕설, '나 얘 아는데 얘 현실에선 쓰레기임 인증가능' 이라는 실친의 폭로일수도 있겠죠.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제게 전달되진 않지만 그냥 글을 읽고 지나간 사람, 혹은 아예 제목만 보고 지나간 사람이 하는 미묘하고도 짧은 생각일수도 있습니다.
제가 기대하는것은 이중 어떤 특별한것은 아닙니다. 이 모든것이 전부 대화고, 커뮤니케이션이고, 의미가 있죠. 내용과 별개로 답글이 달리는게 무조건 기분이 제일 좋지만, 그것만이 목적은 아니니까요.
저는 당신과 제가 같은 홍차넷이라는 공간에서 같은 시간에 머물러 그저 서로 같이 있음을 느끼는것이 훌륭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하고, 제가 기대한것은 그것뿐입니다.
그것은 잘 읽었다는 댓글일수도, 추천일수도, 쪽지일수도 있겠죠.
혹은 글 개못쓴다는 품평이나 이유없는 욕설, '나 얘 아는데 얘 현실에선 쓰레기임 인증가능' 이라는 실친의 폭로일수도 있겠죠.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제게 전달되진 않지만 그냥 글을 읽고 지나간 사람, 혹은 아예 제목만 보고 지나간 사람이 하는 미묘하고도 짧은 생각일수도 있습니다.
제가 기대하는것은 이중 어떤 특별한것은 아닙니다. 이 모든것이 전부 대화고, 커뮤니케이션이고, 의미가 있죠. 내용과 별개로 답글이 달리는게 무조건 기분이 제일 좋지만, 그것만이 목적은 아니니까요.
음 ㅋㅋ 저는 기본적으로 용서와 화해는 정말 서로 전혀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에서 저는 삼촌을 멸시/연민하는 과정에서도, 아니 심지어 증오할때조차 아마 삼촌이 사과를 해왔다면 화해는 했을겁니다. 하지만 속마음은 크게 달라질게 없었겠죠
응 너 죽으면 HOT 콘서트열거야~~/ 증오
응 그래 쓰레기야 귀찮게 좀 하지마/ 멸시
에휴 불쌍한 사람... 안타깝다 증말/ 연민
등등 ㅋㅋ 이런 마음으로 화해했을거에요. 그리고 용서는 아마 사과랑 별개로 본문과 비슷한 상황에서 했을거고요.
많은 피해자들이 용서와 이해... 더 보기
응 너 죽으면 HOT 콘서트열거야~~/ 증오
응 그래 쓰레기야 귀찮게 좀 하지마/ 멸시
에휴 불쌍한 사람... 안타깝다 증말/ 연민
등등 ㅋㅋ 이런 마음으로 화해했을거에요. 그리고 용서는 아마 사과랑 별개로 본문과 비슷한 상황에서 했을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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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ㅋㅋ 저는 기본적으로 용서와 화해는 정말 서로 전혀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에서 저는 삼촌을 멸시/연민하는 과정에서도, 아니 심지어 증오할때조차 아마 삼촌이 사과를 해왔다면 화해는 했을겁니다. 하지만 속마음은 크게 달라질게 없었겠죠
응 너 죽으면 HOT 콘서트열거야~~/ 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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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등 ㅋㅋ 이런 마음으로 화해했을거에요. 그리고 용서는 아마 사과랑 별개로 본문과 비슷한 상황에서 했을거고요.
많은 피해자들이 용서와 이해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어쩔 수 없이 상대와 화해하고 참고 부대끼며 살아요. 특히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많이 접하다보면 그걸 정말 많이 느껴요. 여전히 밉고 증오스럽고 한심하고 답답한데도 걍 받아주고 사는거죠.
이런 상황에서 진심어린 용서까지 서둘러 바라지 말란거에요. 서두른 용서의 강요를 많이 볼 수 있는 가장 흔하고 좋은 예시가 있어요. 학폭이죠.
학폭 이슈에 얽힌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용서라는 그 의식이 반드시 필요해요. 그리고 그들은 직업적 커리어 유지라는 외부요인에 의해서지만 피해자에게 성의가 담긴 사과를 할 준비가 되어있죠.
그런데 피해자들이 그걸 용서해주던가요? 그런 그림은 거의 볼 수 없죠. 어떤 경우에는 피해자가 용서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도 나중에 아직도 괴롭다고 번복하는 케이스도 있어요. 왜냐면 대부분의 경우 이들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거든요. 당연하죠 사과의 시점 자체도 가해자들이 자기들 사정에 따라 임의로 정한거니까 ㅎㅎ
위에도 달았듯이 용서와 사과가 그래서 별로 밀접한 팩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말씀해주신대로 그저 의식인거죠. 반드시 필요하긴 하지만 그저 확인과정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 상대가 용서할 준비가 되었는지는 그냥 물어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ㅋㅋ 싸늘하고 냉담한 대답이 돌아와도 그건 잘못한 내가 감수해야죠
응 너 죽으면 HOT 콘서트열거야~~/ 증오
응 그래 쓰레기야 귀찮게 좀 하지마/ 멸시
에휴 불쌍한 사람... 안타깝다 증말/ 연민
등등 ㅋㅋ 이런 마음으로 화해했을거에요. 그리고 용서는 아마 사과랑 별개로 본문과 비슷한 상황에서 했을거고요.
많은 피해자들이 용서와 이해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어쩔 수 없이 상대와 화해하고 참고 부대끼며 살아요. 특히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많이 접하다보면 그걸 정말 많이 느껴요. 여전히 밉고 증오스럽고 한심하고 답답한데도 걍 받아주고 사는거죠.
이런 상황에서 진심어린 용서까지 서둘러 바라지 말란거에요. 서두른 용서의 강요를 많이 볼 수 있는 가장 흔하고 좋은 예시가 있어요. 학폭이죠.
학폭 이슈에 얽힌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용서라는 그 의식이 반드시 필요해요. 그리고 그들은 직업적 커리어 유지라는 외부요인에 의해서지만 피해자에게 성의가 담긴 사과를 할 준비가 되어있죠.
그런데 피해자들이 그걸 용서해주던가요? 그런 그림은 거의 볼 수 없죠. 어떤 경우에는 피해자가 용서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도 나중에 아직도 괴롭다고 번복하는 케이스도 있어요. 왜냐면 대부분의 경우 이들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거든요. 당연하죠 사과의 시점 자체도 가해자들이 자기들 사정에 따라 임의로 정한거니까 ㅎㅎ
위에도 달았듯이 용서와 사과가 그래서 별로 밀접한 팩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말씀해주신대로 그저 의식인거죠. 반드시 필요하긴 하지만 그저 확인과정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 상대가 용서할 준비가 되었는지는 그냥 물어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ㅋㅋ 싸늘하고 냉담한 대답이 돌아와도 그건 잘못한 내가 감수해야죠
아이가 이번에 태권도 2품 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2학년 많은 형이 자꾸 귀찮게 해서 결국 폭발해서 울게 되고, (물론 심사는 그래도 어찌저찌해서 잘 봄 - 합격함, 여러분 아이들 태권도가 이렇게..) 심사가 끝나고 대기실에서 결국 울고불고 화를 냅니다. 그래도 그 형한테 뭐라고는 안하죠. 그 형 엄마도 있었고. (아 이 부분은 생각하면 승질나는데)
암튼
사범님과 관장님이 (그 분들은 이런 일이 있는지 모르셨음. 당연히 그럴 수밖에..) 제 이야기를 듣고는 한놈씩 불러다가 자초지종을 캐묻고 ... 대충 무마하는 선에서 반강제로... 더 보기
암튼
사범님과 관장님이 (그 분들은 이런 일이 있는지 모르셨음. 당연히 그럴 수밖에..) 제 이야기를 듣고는 한놈씩 불러다가 자초지종을 캐묻고 ... 대충 무마하는 선에서 반강제로... 더 보기
아이가 이번에 태권도 2품 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2학년 많은 형이 자꾸 귀찮게 해서 결국 폭발해서 울게 되고, (물론 심사는 그래도 어찌저찌해서 잘 봄 - 합격함, 여러분 아이들 태권도가 이렇게..) 심사가 끝나고 대기실에서 결국 울고불고 화를 냅니다. 그래도 그 형한테 뭐라고는 안하죠. 그 형 엄마도 있었고. (아 이 부분은 생각하면 승질나는데)
암튼
사범님과 관장님이 (그 분들은 이런 일이 있는지 모르셨음. 당연히 그럴 수밖에..) 제 이야기를 듣고는 한놈씩 불러다가 자초지종을 캐묻고 ... 대충 무마하는 선에서 반강제로 화해를 시키더군요.
바로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다가
... 아 씨bal 저건 아닌데...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사범님/관장님이 지도를 하시는데 제가 끼어들 수는 없고 (합쳐서 태권도 10단도 넘..) 해서 그냥 가만히 보고 있었습니다.
화해를 하면 남자답다. 남자답게 사과하고 남자답게 받아들여라. 다시 그러면 혼나! 형 혼냈으니 너도 눈물 뚝! 챙피하게 그러면 안되지!
결코 제가 집에서 하지 않는 말들이거든요. 아니 남자도 화나고 울고 사람들 앞에서 감정을 드러낼 수도 있는거라고! 무엇보다 사과를 받아들이는게 왜 남자다운건지.
이번 글을 제가 너무 동감하면서 본게 결국은 사과든 뭐든 용서든 뭐든, 수용하는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수용하는 사람이 수용할 수 있다면 그냥 카톡 두글자로도 해결이 되고, 준비가 안된다면 10억엔으로도 해결이 안되죠. 정말 곰곰히 계속 읽게 됩니다.
삼촌에 쾌차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암튼
사범님과 관장님이 (그 분들은 이런 일이 있는지 모르셨음. 당연히 그럴 수밖에..) 제 이야기를 듣고는 한놈씩 불러다가 자초지종을 캐묻고 ... 대충 무마하는 선에서 반강제로 화해를 시키더군요.
바로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다가
... 아 씨bal 저건 아닌데...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사범님/관장님이 지도를 하시는데 제가 끼어들 수는 없고 (합쳐서 태권도 10단도 넘..) 해서 그냥 가만히 보고 있었습니다.
화해를 하면 남자답다. 남자답게 사과하고 남자답게 받아들여라. 다시 그러면 혼나! 형 혼냈으니 너도 눈물 뚝! 챙피하게 그러면 안되지!
결코 제가 집에서 하지 않는 말들이거든요. 아니 남자도 화나고 울고 사람들 앞에서 감정을 드러낼 수도 있는거라고! 무엇보다 사과를 받아들이는게 왜 남자다운건지.
이번 글을 제가 너무 동감하면서 본게 결국은 사과든 뭐든 용서든 뭐든, 수용하는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수용하는 사람이 수용할 수 있다면 그냥 카톡 두글자로도 해결이 되고, 준비가 안된다면 10억엔으로도 해결이 안되죠. 정말 곰곰히 계속 읽게 됩니다.
삼촌에 쾌차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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