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9/08/26 06:07:49수정됨
Name   우유홍차
Subject   강아지를 잘 기르기 위해서
중국어와 중국 공부를 완전히 그만두기로 했을 때 결심한게 있었어요. 다시는 싫어하는 걸 억지로 좋아하지 않겠다고. 내 감정에 솔직해지자고. 중국어를 꽤 오래 공부했고 좋아하려고 노력했어요. 실제로 재미있는 면도 많이 발견하고 정도 들었지만 고운정미운정이었을 뿐, 전 중국어가 싫었어요. 오해는 말아주세요. 중국어도 중국도 객관적으로 꽤 매력있는 국가라는 건 알아요. 주변에 중국 여행가고 싶다고 노래부르고 중국어를 재미있어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하지만 저는 그냥 싫었어요. 저와 상성이 안 맞았겠죠, 아마.

뭐 고작 제2외국어쯤, 이런 선언을 할 만큼 비장한 결단은 아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건 메타포같은거였어요. 메타포 맞나요? 사실 맞는 용례인지 모르겠음. 헤헿. 암튼 그동안 내가 인생에서 해야만 했던 일들을, 좋아한다고 나를 속이려는 노력을 그만두겠다고. 그 즈음까지도 해도 저는 제가 고등학교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시간을 내가 좋아한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위해 애썼어요. 실제로 그렇다고 믿었죠. 하지만 아니었어요. 나는 그 공부가 싫었고 그래서 그렇게 힘들었던거에요. 그걸 인정하자 뭔가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좋은건 좋다 싫은건 싫다. 저는 춤이 겁나 좋고 춤을 잘 추고 싶었어요. 또 뭐가 있지. 밀크티가 좋고 팀원들이 많이 좋아요. 말 잘하는 사람이 좋고 날 만만하게 보는 사람이 싫어요.

물론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죠. 예를 들면 회사를 간다던가 회사를 간다던가 회사를... 하지만 그것도 억지로 좋아하지 않기로 했어요. 전 제 업무의 대부분이 싫습니다. 회사도 나쁘지 않고 사람들은 좋은데 지금 업무는 싫어요.ㅎ 아니 이딴 걸 대체 왜 시키는 거야아악!! 그런다고 달라지는건 아무것도 없지만, 제가 달라지죠.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이 그랬어요. 자기는 뇌가 강아지라고 생각한대요. 뇌라는 강아지를 기른다고 생각하고 싫으면 보이콧도 해보고 지쳤으면 맛있는 거 먹여준대요. 그러면 자신도 해본적 없던 상상을 하게 된다고.

아 나는 업무가 싫구나. 내가 춤을 보면서 자꾸 깎아내리려 드는 건 사실 그 사람들이 부러운데 부러움을 감추고 싶었던 거였구나. 업무가 싫고 일일 뿐이니 빨리 끝내자. 그리고 사람들이랑 맛있는거 먹으러 가야지.

'내'가 좀더 분명해졌어요. 못난 내 감정이 더 솔직하게 보이고, 그래서 뭐가 됐든 나는 나인 기분이랄까. 이 업무의 우유홍차말고 그냥 우유홍차란 사람. 그리고 혼자서 더 솔직해지면 사는 방향이 실제로 조금은 달라지기도 하더라구요. 중국어 아니면 못 먹고 살거라 생각할 때도 있었는데 중국어 안하고도 잘먹고 잘 살고 있으니까. 사실 간단한 거였는데. 회사를 그만두진 않았지만 이직을 상상하게 됐구요.

뭔가 졸라 깨달은 현자처럼 썼지만 사실 아직도 찌질한 생각을 많이 하는 찌질이입니다.ㅋㅋ 싫어하는 걸 싫어하겠다고 하다가 그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어 버리기도 하고요. "싫어. 어쩔 수 없지." 가 되어야 하는데 "싫어. 으아아아앙 싫다고오오오 힝힝"까지밖에 못왔어요. 하지만 이게 시작이라고 믿어요.

이걸 왜 썼냐면 제 스스로 다짐하기 위해서에요.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됐대요. 와 그건 축구선수나 나가는 건줄 알았는데. 춤을 다시 추면 안된대요.

낮에는 현명한 생각을 했어요. 어쩔 수 없는 건 털고 할 수 있는거에 집중하자. 이제는 그런 어른스러운 생각을 하게된줄 알았어요. 와 우홍 이제 어른 다 됐네^0^

근데 안 내키는거에요. 그러다가 깨달았어요. 아 나 지금 거어업나 속상하구나. 내가 그렇게 많이 좋아하는걸 다시는 못하게 된다는데. 내가 이걸 정말로 보내려면 지금 겁나 속상한 걸 나는 알아줘야겠구나. 내 강아지 서러웠쪄? 오구오구 해줘야겠구나. 그래서 겁나 울었더니 좀 나아졌어요. 앞으로 한동안은 좀 울려구요. 그리고나서 그 다음을 생각하려구요.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9-09-10 08:43)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26
  • 우리 우홍님 강아지에게 균형잡힌 영양식 시저 캔을 섞은 로얄캐닌 사료가 필요할 것 같군요!
  • 토닥토닥...
이 게시판에 등록된 우유홍차님의 최근 게시물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38 정치/사회권력과 프라이버시 32 기아트윈스 18/05/28 5914 27
581 일상/생각 19 기쁨평안 18/01/23 6025 27
567 일상/생각할머니가 돌아가셨다. 8 SCV 17/12/28 6840 27
518 일상/생각평등 31 알료사 17/09/26 7434 27
362 일상/생각엄마. 16 줄리엣 17/02/09 5310 27
1329 기타여름의 끝자락. 조금 더 자란 너 7 쉬군 23/09/14 2294 26
1328 과학체계화된 통빡의 기술 - 메타 휴리스틱 13 서포트벡터 23/09/14 3039 26
1252 일상/생각박사생 대상 워크숍 진행한 썰 19 소요 22/11/19 4093 26
1222 정치/사회장애학 시리즈 (1) - 자폐를 지닌 사람은 자폐를 어떻게 이해하나? 16 소요 22/07/14 4455 26
1185 기타왜 범행일이 아니라 판결일로 집행유예 처벌이 달라져요? 6 집에 가는 제로스 22/04/15 4017 26
1176 의료/건강오미크론 유행과 방역 '정책'에 관한 짧은 이야기 12 Ye 22/03/08 3830 26
1008 일상/생각나는 대체가능한 존재인가 15 에피타 20/09/23 5589 26
958 일상/생각제주도에서의 삶 16 사이시옷 20/05/13 5746 26
875 일상/생각죽음을 대하는 일 2 멍청똑똑이 19/10/15 5532 26
873 문학홍차넷 유저들의 도서 추천 22 안유진 19/10/07 7924 26
852 일상/생각강아지를 잘 기르기 위해서 4 우유홍차 19/08/26 5096 26
829 경제퀀트는 어떤 일을 하고, 그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25 굴러간다 19/07/10 7792 26
790 일상/생각봄의 기적, 우리 동네 6 매일이수수께끼상자 19/04/06 5212 26
777 일상/생각영국은 섬...섬... 섬이란 무엇인가? 38 기아트윈스 19/03/04 6363 26
794 의료/건강마약은 무엇을 가져가는가? 헤로인 17 월화수목김사왈아 19/04/15 9223 26
796 일상/생각축구지를 펴내기까지... 그 나름의 철학 ㅋ 18 커피최고 19/04/18 8116 26
763 여행그저그런의 일본항공 일등석 탑승 후기 (1) 46 그저그런 19/01/24 8793 26
593 IT/컴퓨터금융권의 차세대 시스템이 도입되는 과정 41 기쁨평안 18/02/13 10713 26
571 일상/생각고3담임이 느낀 올해 입시 20 당당 18/01/04 7740 26
472 일상/생각고시낭인이라 욕하지마라. 17 tannenbaum 17/07/14 6867 26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