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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07/09 06:16:53
Name   기아트윈스
Subject   왜 일본 만화 속 학교엔 특활부 이야기만 가득한가 - 토마스 라마르
토마스 라마르(Thomas LaMarre) 선생의 발표를 듣고 왔습니다. 발표가 넘나 인상적이에서 나중에 찾아보니 위키피디아에 등재된 네임드였다능.
https://en.wikipedia.org/wiki/Thomas_LaMarre 이하는 제가 듣고 요약한 내용입니다.



1. 일본의 중고등학교는 애니 속에서 어떻게 표상되는가.

라마르가 보기에 2000년대를 전후로 아주 중요한 변화가 있었답니다. 그 이전의 학원물의 공간적 배경은 교실-복도로 이루어져있으며, 사건은 대개 수업시간의 교실이나 쉬는시간의 복도에서 일어난다든가, 그게 아니라면 하교길에서 일어난다든가 합니다. 학내에서 교실-복도를 제외하고 무언가 일이 벌어지려면 고작해야 운동부 정도. 란마 같은 만화를 생각해보시면 대충 각이 나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 이 구도가 바뀝니다. 방과후 클럽/서클 활동이 들어오면서 학교생활은 이 '부서' 위주로 재편됩니다. 교실의 등장 비중 및 역할이 크게 축소되고 부서활동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케이온이나 두근두근 문예부 같은 경우를 생각해보십시오. 학교 다니는 게 학교 다닐라고 다니는 게 아니라 부서활동 할라고 다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



2. 왜 그런가

일본의 교육정책이 바뀐 게 큽니다. 90년대 말까지의 중고교 교실은 대입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이 컸습니다. 선생들은 애들 기강을 잡고 (discipline) 벌을 줍니다. 학생들은 옆에 앉은 섁기를 제치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배틀로얄은 교실의 이러한 성격을 대표하는 작품이자, (어쩌면) 최후의 작품입니다.

2000년대에 들어 일본 정부는 모든 학생에게 특별활동 클럽에 들기를 장려하기 시작합니다. 밴드를 하거나, 다도를 하거나, 좀비아포칼립스를 하거나 (??), 추리를 하거나, 기타등등 뭘 해도 됩니다. 특활은 아이들에게 취미를 개발할 수 있는 시공간을 제공합니다. 일본 애니는 이런 변화를 즉각 받아들였습니다. 왜냐면, 쟝르융합에 아주 유리하거든요. 일본만화의 과반은 학원물인데, 현실의 학교에서 공부만 한다면 만화속 학교가 다룰 수 있는 소재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특활부 위주로 새롭게 재편된 학교는 학원물의 쟝르적 한계를 극복하게 해줍니다. 소재가 뭐가 됐든 대충 어디 고등학교 특활부에서 이런 걸 했다...고 하면 됨.



3. 좋은 거냐

좋을 수도 안좋을 수도 있습니다. 애들 쥐어짜서 동경대 보내는 교육은 미셸 푸코가 말했던 것처럼 유순한 몸뚱아리(docile body)를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불균일한 개개인에게 강한 기율 (discipline)을 부여해서 고분고분한 인간상을 만들어낸다는 거지요.

특활부 위주의 학교는 유순한 몸뚱이를 만드는 데 적합한 공간이 아닙니다. 대신에, 쥬디스 버틀러가 말한 바 흥분시키기 쉬운 몸뚱아리 (excitable body)를 만들어내는 곳이라고 볼 여지가 있습니다. 유순한 몸뚱이는 국가가 요구하는 몸뚱이들입니다. 애들이 말을 잘 들어야 동원(mobilise)이 되거든요. 반면에 흥분시키기 쉬운 몸뚱아리는 자본이 요구하는 몸뚱이들입니다. 자본이 '자 이거 갖고 싶지?' 라고 말했을 때 맘이 흔들려서 '아아... 호시이데스..'하고 지갑을 열어주는 몸뚱아리들이 있어야 되거든요. 자극에 쉽게 반응하는 몸뚱아리를 조련하기 위해서는 일찍일찍 취미시장에 노출시키고 굿즈 맛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고,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교실위주의 학교 (금욕적 학교)보다 활동부 위주의 학교(취미발달 학교)가 더 적합니다.

또 한 가지 관련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은 일본 사회의 역동성이 상당히 감소했다는 점입니다. 이부분은 두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는데, 하나는 계층이동, 다른 하나는 이념입니다.

아득바득 동경대에 가야만 했던 사회는 그래도 '출세'가 가능한 사회였는데, 계층이동이 어려워진 지금은 그렇게 아득바득 공부하느니 걍 학교에서 열심히 기타나 치다가 졸업하고 바로 편의점 알바하면서 소소하게 살다 죽는 삶이....

일본사회가 무이념사회가 됐다는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90년대까지는 그래도 '우뚝 일어서서 영광스런 일본을 건설하자' 정도의 이념은 있었는데 그 이후론 이렇다할 이념적 동력이 안보입니다. 딱히 우리 모두 열심히 살아서 어딘가로 함께 나아가겠다는 힘이 없으니 걍 어려서부터 기타나 치면서 너도 초식 나도 초식 하는 게 아닌가...;ㅅ;

라마르는 그래서 두 눈 부릅뜨고 발버둥치던 배틀로얄의 시대가 끝났다고해서 모든 교육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그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종류의 문제가 나타났고, 특활만 하는 만화속 중고교생들의 모습은 그런 문제를 어렴풋이 시사해주는 일각일지도 모른다고 하네요.


4. 결론

이 아조시가 워낙 달변이라 발표 듣는 동안은 아 그렇구나 설명 참 시원시원하게 잘하시네 하고 넘어갔는데 이제사 복기해보니 어쩐지 헬조선의 향기가 킁킁 나는군요. 크큭... 과연 동조선과 서조선은 형제의 나라라는 것이로군요 (웃음)....

* 수박이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8-07-23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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